“청년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아세요?”

「다들, 배움 : MENTOR」는 우리 사회의 스승이자 시대의 사표와 함께 배움과 학습의 참된 뜻을 헤아려 보는 자리입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며, 웹진 <다들>의 발행인인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이 인터뷰 진행자(인터뷰어)로 나섭니다.
이번 인터뷰는 창간호 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 2호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 3호(신년호) 박원순 서울시장, 4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5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6호 박재동 한예종 교수, 7호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 8호 김제동 방송인, 9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10호 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 11호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12호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에 이은 열세번째입니다.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

멘토 인터뷰 역사상 가장 나이 적은 인터뷰이가 나타났다. 올해 갓 서른이 된 청년활동가 권지웅씨. 그는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민달팽이 유니온 대표, 서울시 청년 명예부시장 등의 활동을 거쳐 지금은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비영리 주거모델을 실현하고 제도 개선을 실천해 청년주거권 보장과 주거불평등 완화에 기여하는 청년 당사자 단체다. 자매단체인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형식으로 대안 주택을 직접 공급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출자금과 공적 자원을 연계해 평균 임대료보다 30%이상 낮은 임대료의 쉐어하우스 9곳을 서울 시내 곳곳에 만들었다. 10호, 11호도 계속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부산 억양이 살짝 묻어나는 부드러운 목소리, 모든 질문에 심사숙고하는 태도, 예의바르면서 정확한 대답, 사이사이 비치는 유머….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요즘 청년활동가의 모습을 권지웅씨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민달팽이 유니온 페이스북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는 시인 이성부의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바쁜 일정을 쪼개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을 방문한 그와의 인터뷰에는 진흥원 정책·홍보팀의 김혜영 팀장, <다들>의 이유정 작가가 함께 했다.

원장실로 들어온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쩌다 청년 운동가의 길을 걷게 됐나요?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게 맞아떨어졌는가 싶을 정도로 우연이었습니다. 대학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시민사회나 사회운동에 대해 전혀 몰랐지요. 공학도로 잘 살아보려는 생각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걸로 경제생활도 하고 전공을 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구요, 하하.
그런데 3학년 때 선배의 권유로 공대 학생회장에 출마하게 되었고, 회장에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이공계열 등록금이 너무 비싼 게 이슈였어요. 이공계열은 인문계열에 비해 등록금 차이가 100만원, 1년으로 치면 200만 원 이상 비쌌는데요, 그 이유가 실험실습비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대학본부가 학생회에 실험실습비 내역을 보내줬고, 그 총액을 학생 수로 나눠봤더니 1인당 10여만 원이었습니다. 그걸 명분으로 1인당 110만 원 이상 더 받고 있었던 거죠.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대학본부에 내역을 알려 달라, 어떻게 된 거냐 문의했지만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순진했어요. 세상이 정의로워서 이걸 총장님이 몰라서 그렇지 아시면 바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 총회를 열고, 다른 대학들과도 연계해서 총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총장님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총장님도 이해하셔서 원만하게 만남이 끝났습니다. 당연히 조정될 줄 알았지만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등록금 조정은커녕 내역 설명조차 해주지 않았지요.

순진한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겠네요?

물론이지요. 세계관에 충격이 온 겁니다. 세상이 정의롭고,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알게 되면 조정할 거라고 믿어왔는데, 세상의 정의라는 건 권력이 결정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의라는 게 원래 존재하는 게 아니라, 권력 사이의 힘의 균형점에서 마주하는 것, 그걸 보고 우리는 정의라고 하는구나, 그게 세상의 작동 원리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습니다.

올해 갓 서른인데, 군대는 갔다왔나요?

아직 군대를 못 갔습니다. 휴학 기간을 합하면 졸업까지 6년을 꼬박 채웠고, 졸업 후에는 민달팽이 유니온을 맡아 했구요. 학교 다니는 동안은 영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2년 전에는 무슨 맘을 먹었는지 서울에서 집이 있는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결심하고 자전거를 타다가 문경새재에서 새벽에 뭔가에 걸려 넘어져 어깨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때문에 미뤘고, 올해 군대에 갈 예정입니다.

올해 환갑인 저는 군대에서 사회를 배웠습니다. 대학 다니면서 그때 용어로 ‘민중’ ‘민중’ 하다가 군대에 졸병으로 갔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모조리 민중의 아들들이더군요. 앞으로 군대에서 만날 동료들이 청년 운동의 동지들이라고 생각하고 군 생활 잘 했으면 합니다. 민달팽이 유니온의 창립 멤버로 알고 있는데, 이름이 왜 민달팽이인가요?

민달팽이 유니온은 2011년에 창립됐는데, 창립 당시만 해도 학교 내의 작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러다 2012년 전국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기숙사 문제가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다른 학교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대가 가능했습니다.
달팽이라는 동물이 원래 껍질이 있는 동물이잖습니까? 그런데 민달팽이는 껍질이 없습니다. 그런 모습이 집 없는 우리 청년세대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친구가 달팽이 아이디어를 꺼내서 우리의 심볼이 되었지요. 저희끼리는 이름 잘 지어서 이름으로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하.

달팽이집에서 공동생활을 하는데, 힘든 일이나 갈등이 생기는 일은 없나요?

당연히 그런 일이 있지요. 지금 총 9개동의 달팽이집에서 110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개는 취업을 하거나 집으로 내려가야 해서 이사하는데, 개중에 공동생활이 부대껴서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1인실이라도 거실을 같이 써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나는 원룸에 사는 게 좋겠어”라며 나가기도 합니다.
저는 주거비를 낮추는 게 달팽이집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운영해보니까 한 달에 한번 반상회를 하고 같이 밥을 나눠 먹으면서 작은 공론의 장이 만들어지는 게 큰 소득인 것 같습니다. 지금 사회에선 목적화된 자리 말고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는 자리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취업을 위한 모임이나 과모임 외에는 없지요. 동아리 활동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구요. 다른 곳에 몸을 두고 있으면서 대화하는 자리가 없어져 버렸는데 달팽이집은 집집마다 작게 그런 공간이 마련된 겁니다. 이 공간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활력을 되찾고, 대화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하는 것들이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됐어요.

청년 유니온과 민달팽이 유니온은 다른 단체이지요?

유니온이라는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많은 분들이 청년 유니온에서 파생한 게 민달팽이 유니온이냐고 묻곤 합니다. 아닙니다. 둘은 다른 단체입니다. 청년 유니온은 비정규 단기노동자의 노조입니다. 아직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의 노조, 혹은 불완전 노동에 근로하고 있는 사람들의 노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 단체가 많지 않다보니 노동 외의 다른 이슈에도 참여하고 다루는 분야가 많아졌구요. 민달팽이 유니온은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단체입니다.

청년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 먹고 살아요?(웃음)

청년단체들이 상근자를 두기 시작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6년은 처음으로 상근자 7명 모두를 고용한, 그러니까 임금을 주고 채용한, 그런 해였습니다. 저희에겐 의미가 있는 해였지요. 그 임금은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합니다. 회원은 800명 정도이고, 매월 5천원부터 1만 원 이상 회비를 받습니다.
그 외에 정책 사업을 합니다. 연구용역 등을 받아 하는데, 예를 들면 2013년께에는 관리비 이슈가 있었거든요. 아파트는 제도 하에 법적으로 관리비를 중요하게 다루는데 비해 1인 임대주택은 그렇지 않습니다. 관리비는 사실상 월세를 올리는 동인으로 작용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가 없어서 2014년부터는 연구를 해보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보자 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에서는 SH공사와 연계해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을 운영하는데, 기존 공공주택이 건물만 임대하는 거라면,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은 입주자들이 회를 꾸려 협동조합으로 만들어내면 그 협동조합이 주택을 관리하는 형식입니다. 그 부분 청년 코디를 저희가 죽 맡아왔습니다. 그런 인건비들을 모아서 운영하고 있지요.
초창기에는 워낙 수입이 없어서 강연비를 다 모았었고, 요즘도 강연비의 절반 정도는 세금처럼 조직에 납부하고 있습니다. 하하.

사무실은 어디에 있어요?

지금은 신촌에 이사 왔습니다. 처음에는 대학교 중앙도서관 지하에 2년 있다가, 청년허브라고, 서울시에서 만든 곳에서 2년 정도 저렴하게 있다가 최근에 다시 신촌으로 이사 왔습니다. 임대료도 비싸고 부담이 되지만 저희는 야생의 상태에 나온 것에 대해 설레하고 있습니다. 관의 자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게 주는 독이 있기 때문에, 지원을 받는 만큼 예를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게 끊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을 통제할 수가 없거든요. 일종의 예속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사무실은 청년 유니온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요즘 정책의 최우선을 청년문제에 둔다는 정치인들도 많고, 청년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사자로서 지금 대한민국 청년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참 생각한 뒤) 뭔가 해볼 수 없는 상태. 그게 문제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만약 대선 후보가 뭐가 가장 문제냐고 물어보면 일자리와 주거문제를 풀자고 말하겠지요. 사실 일자리와 주거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소득 문제가 있다, 즉 실질소득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보는 게 맞구요. 실질소득이란 양측의 문제인데,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소득을 높이기가 어렵고, 주거비 때문에 생활비를 낮추기가 어렵지요. 이런 식으로 죄다 연결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층위로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활력의 문제입니다.
작년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 22만 명이 지원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뽑혀봐야 4천명이고, 나머지 21만7천명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임입니다. 9급 공무원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근로조건이 좋기는 하지만 소득이 높은 일자리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거기 지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떨어질 걸 몰라서 간 게 아니라 자기 삶의 시야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간 겁니다. 근데 작년 대졸자가 45만 명 정도입니다. 그중 22만 명이 공무원 시장으로 뛰어들었다는 게 바로 사회의 단면을 나타낸 것이지요. 정말 사명감이 있기보단 거기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일전에 청년들을 위한 도시재생 사업에 직원을 뽑는 자리에 면접관으로 갔는데, 웬걸, 첫 번째 면접자가 63년생 남성이었습니다. 63년생은 저희 어머니 나이거든요. 제가 면접시장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더욱 놀랐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에 저런 분이 오셨을까?
지금 취업시장이 이런 상태입니다.
‘뭘 해볼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접근이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주거비를 낮추는 건 웬만한 권력을 가지고도 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문제는 이미 풀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소위 정치권력이 그걸 제어할 정도가 안 된다는 걸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자리 문제를 다 풀겠다는 게 거짓말임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뭐라도 해볼 수 있게 한번 해보겠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실질임금 170만 원 이상의 일자리 몇 만개를 만들겠습니다”가 아니라 “당신들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알려 달라. 그걸 잘하기 위해 지자체에 넘기겠다.”는 식의 선언이 훨씬 더 필요한 것 아닌가요?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들은 아사할 것 같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닙니다. 앞에 길이 안보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게 소득이 5만원, 10만원 오르는 걸로 해결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40대 남성이 집을 빼야 되는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월세 30만원 5개월 치가 밀려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3년 전 이날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 월세를 봉투에 담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3년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거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청년들이 사회에 발을 내딛습니다. “나는 저렇게 안될 수 있을까?”이런 의문을 품고서요. 뭘 해볼 수 없는 상태인 것이지요.
최저임금을 높이고, 국가 차원의 일자리 만드는 걸로는 그걸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시장을 제어할 권력이 없으니까요. 일자리 만들겠다, 해결하겠다 하는 게 뻥인 걸 다들 알고 있잖아요? 2004년에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을 만들었어도 13년이 지났지만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경제성장률은 매해 낮아지고 있습니다. 시장을 파격적으로 제어할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말을 하면 마치 그 말이 꼭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실 지금도 연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포기하고 이 일에 투신했어요. 상징자본을 포기한 대가가 있어야 할텐데…. 대가라 하긴 뭐하지만. 말을 바꿔, 의미 있는 진전이나 보람찬 성취가 있었나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크게 봐서 얼마나 더 좋아지는데 기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주변의 친구들이 이걸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고, 졸업을 하려는 친구들이 이걸 하나의 직장으로 고민이라도 하게 됐습니다. 민달팽이 유니온 대여섯 명, 청년주거네트워크 대여섯 명, 그렇게 10여 명이 월급을 받으며 이 일을 하고 있고, 그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정도로는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청년 활동이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일하면서 받는 월급으로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는 요원합니다. 그래도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면서 3~4년쯤 뒤에는 어느 후배가 취직을 할 때 우리를 하나의 진로로 고려해 고민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하는 말을 합니다.

서울시 청년수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울시 청년 명예부시장을 하면서 박원순 시장님과 친하지 않냐는 오해를 받고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하.
저는 시장님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끝까지 해내겠다는 의지에도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전 이인제 의원께서 청년 수당에 대해 “아편이다”라고 했던 건 제도적으로 구직 시간을 지원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를 반대급부적으로 알려주는 예입니다. 예전에는 교육과정을 마치면 노동시장으로 바로 넘어가는 게 당연한 거였습니다. 구직의 시간은 없거나, 있어도 없어져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근데 세상은 변했고, 작년 통계를 보면 청년들이 평균 11개월의 구직 시간을 거치고 있으며, 그 시간은 더 길어질 겁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 시간이 존재한다면 그걸 인정하고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청년수당이 바로 그 시간을 잘 보내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청년수당이 중심 이슈가 되면서 많은 청년들이 한 번씩은 들어보게 되고, “구직 과정의 일을 제도가 지원해 줄 수도 있구나.” “그래도 돼? 내 개인적으로 취직하는 건데, 국가에서 도와줘도 돼?” 같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완결단계는 아니고, 작년에는 직권 취소까지 됐지만, 올해는 예산이 증액됐고, 인천과 경기도는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고용노동부도 취업생들에게 현금과 같은 수당을 주겠다며 동참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더 놓고 나중에 돌아보면 사회 분배의 관점에서, 국가기관이 사회의 부를 구직 기간의 청년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시발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설사 그 과정에서 고소득자의 자녀가 한 명 정도 청년수당을 받았을지라도, 저는 그것대로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도 청년들을 위한 평생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7년 저의 목표는 평생교육 분야에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민달팽이와 콜라보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저는 대학 교육 자체가 안 좋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사고하는 힘을 배우는 시간이니까요. 그러나 현실적 일에는 다른 영역도 필요한데, 그걸 배울 시간이 없어요. 이를테면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에게 어떻게 전화하지?” 이런 것들은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이걸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필드에서 뛰면서 배울 수도 있고, 교육 조직이 만들어져 그 과정에서 배울 수도 있거든요. 그런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사무실 현관 입구에서 고 신영복 선생님이 써 주신 글씨 아래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혜영 팀장, 김영철 원장, 권지웅 이사장, 이유정 작가

정리 /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다들> 작가 이유정
사진 / 이근원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