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처음처럼, 평생 신선하게’

「다들, 깨움 : FOCUS」는 평생교육 영역의 전문가 기고로 꾸며집니다. 평생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정보, 그리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웹진 <다들> 창간호를 다들 축하한다. 이름을 잘 지었다. 남거나 빠진 것 없는 모두를 뜻하는 ‘다’와 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을 의미하는 ‘들’의 합성어란다. 서울 시민 모두에게 유익하고 폭넓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더욱이 창간의 취지를 살려 모든 코너에 ‘처음’의 의미를 부여하여 창간호의 이름은 ‘다들, 처음’으로 했단다. 메뉴 구성을 보니 ‘다들, 깨움’, ‘다들, 배움’, ‘다들, 채움’, ‘다들, 다움’으로 되어 있다. 나에게는 이슈를 던져 고정관념에서 나를 깨우고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전문가 기고 형태로 ‘깨움’을 채워달란다. 이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는 제목으로 소주 이름이 생각나서 ‘다들 처음처럼, 평생 신선하게’로 써보자며 월요일 출근 뒤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앨빈 토플러의 명언이 생각났다. “21세기의 문맹자는 읽고 쓸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learn), 비우고(unlearn), 다시 배울 수(relearn) 없는 사람이다.”(The illiterate of the 21st century will not be those who cannot read and write, but those who cannot learn, unlearn, and relearn.)인구에 회자되는 명언이니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평생학습의 사이클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평생교육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말하는 지혜의 말로도 들린다. <다들>의 메뉴인 ‘깨움, 배움, 채움, 다움’을 다 채우고 남음이 있는, 토플러다운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비움’이다. 평생학습 시대라고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 고정 관념에 빠진 다들을 깨우련다. 읽고 쓰기의 문자 중심 소극적 문해에서 평생학습 중심의 적극적 학습 문해로의 사상 전향서를 쓰고 싶다.

오늘날 평생학습은 더 이상 특권도 아니고 권리도 아니다. 가정, 직장, 지역사회, 세계 어디에 살든 급변하는 세상에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학습은 생필품이다. 학습이 삶의 전부이고, 삶의 전부가 학습인 학습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학습이 인간을 성장케 하듯 학습도 성장하여 학습사회의 도래는 필연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성인인구 증대로 대표되는 인구혁명, 성인교육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사회혁명, 생산소비자로서 기술변화, 기술폭증에 적응해야 하는 기술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진화가 아니라 혁명의 시대를 살아간다. 느린 변화라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적응 학습(adaptive learning), 따라잡기 학습(catch-up)만으로도 족하다. 그런데 송두리째 변화를 요구하는 지구촌 혁명 시대에는 변화를 주도하는 ‘생성적 학습’(generative learning)이 요구된다. 따라가지 말고 주도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총체적 혁명의 시대에 평생교육자는 평생학습혁명의 전위대여야 한다. 발상부터 혁명적이어야 한다.

총체적 혁명의 시대, ‘평생교육자는 학습혁명의 전위대’

토플러의 명언은 그의 명저인 <제3의 물결>, <부의 미래>의 축약판이다. 제1 물결인 농업시대의 부는 ‘기르고 재배하는 것’(growing)에서 나왔다. 제2의 물결을 대표하는 제조업 시대의 부는 ‘만드는 것’(making)으로부터 나왔다. 오늘날과 같은 지식서비스업으로 대표되는 제3의 물결에서는 ‘생각하는 것’(thinking)으로부터 부는 창출된다. 서울은 지식서비스산업의 수도를 대표한다. 제3의 물결 한가운데 있는 도시다. 사회 변화의 물결과 함께 교육의 물결도 ‘기르기 교육-만들기 교육-생각하기 교육’으로 변하고 있다. 교육도 변화의 물결을 타고 나가야 한다. 21세기의 학습자는 학습하고, 폐기학습하고, 재학습해야 한다. 이것이 선순환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학습–폐기학습-재학습’은 토플러의 생애단계별 평생학습 모델이다. 청소년기에는 학습을, 중장년기에는 폐기학습을, 노년기에는 재학습을 해야 한다. 21세기 인간의 DNA에는 ‘학습’이란 인자가 들어 있다. 21세기의 인간은 학습할 운명체이다. 웹진 <다들>이 이를 상징한다.

서울 평생학습, ‘채움의 학습’이 아닌 ‘비움의 학습’으로!

메뉴에 빠져 있는 ‘비움’의 학습에 집중해보자. 서울 평생학습은 기억의 학습보다는 망각의 학습을, 채움의 학습보다는 비움의 학습을 지향해야 한다. 토플러 부부의 <The Revolutionary Wealth>의 제17장 ‘The Obsoledge Trap’을 읽어보자. 조어의 천재성에 감탄사를 연발할 뿐이다. 잘 알다시피 Obsoledge는 Obsolete + Knowledge의 합성어이다. 지식시대에 쓸모없는 지식의 덫에 걸려들지 말라는 선지자의 경고다. 21세기 개인과 조직은 쓸모없는 지식의 덫에 걸려 고생한다. 토플러가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 대목은 잘 알려져 있다.

변화에 가속도가 붙으면 지식의 노폐율(진부화)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모든 지식은 슈퍼마켓의 신선 채소처럼 신선도 유지기간이 있다. 아무리 신선한 지식도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쓸모없는 지식으로 변한다. 오늘날 개인, 기업, 기관의 데이터(지식) 베이스의 상당 부분은 지식 쓰레기들이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지식) 베이스들이 쓸모없이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지 보라. 지식경제시대의 지식 전문가를 자처하는 우리들조차도 쓸모없는 ‘지식의 법칙’(the law of obsoledge)에 대해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쓸모없는 지식의 축적률도 가속화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큰 지식의 쓰레기란 부담을 지니고 다닌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아이디어에 대해 폭소를 터트리며 조롱할 것이다. 내가 무거운 지식생산의 도구를 지고 다니는 것을 비웃듯, 참으로 웃긴다고.

해법은 있는가? ‘Unlearning’이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되어서 더 이상 쓸모없는 습관, 지식, 기술, 태도 및 행로 의존적 관행을 버린다”는 것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세월이 지나면 순환기 체계에 문제가 나타난다. 혈관에 노폐물이 쌓인다. 개인과 조직의 혈로를 막는다. 동맥 경화로 가다가 심장이 멈춘다. 막힌 혈로를 뚫어야 산다. 생과 사의 문제다. 지식사회의 고지혈증이 Obsoledge다. 이의 용해제가 unlearning이다. 필자도 7년 전에 고지혈증, 지방간, 당뇨 발전 전단계란 판정을 받았다. 용해제로 쌀알 모양의 약을 1년 정도 복용하고 끊었다. 그렇지만 내분비내과에서 피검사를 받아야 할 정도로 3개월마다 체크한다. 몸도 작은 게 헤비급만 좋아해서 Heavy-worker, Heavy-drinker로 살다보니 호르몬 체계가 엉망이 되었단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헤비급보다는 라이트급이 좋다. 버리고, 비우고, 잊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기억의 학습’에서 ‘망각의 학습’으로

‘기억의 학습’을 하기 전에 ‘망각의 학습’을 해야 한다. 연필을 들기 전에 지우개를 들어야 한다. 산업시대의 유물이 난지도라면 지식시대의 유물은 지식 매립장이다. 개인과 조직 편에서는 지식 베이스 구축보다 지식 매립장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학습의 출발점은 폐기학습이다. 그 다음에 재학습(re-learning)이 가능하다. 버리는 것도 학습이다. 바로 폐기학습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지식청소의 교육학이 필요한 때이다. 교육자는 지식 청소부다. 미래학교는 그 안에서 학습(learning), 폐기학습(unlearning), 재학습(relearning)이 순환적으로 일어나는 학습생태계, 학습순환계를 말한다. 과거 학교가 ‘채움의 학교’였다면 미래 학교는 ‘비움의 학교’여야 한다.

미래 학교가 바로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의 웹진<다들>이다. <다들>에 토플러의 사진과 이 명언을 슬로건으로 내걸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울 시민의 자격으로 말이다. 오늘날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도시화와 산업화를 가능케 한 것이 20세기 ‘난지도’의 희생이었다면 21세기 학습사회의 수도 서울을 가능케 한 것은 <다들>의 지식 매립장이었다는 후세 사가들의 사초를 미리 들여다본다. ‘채움, 비움, 또 채움’의 ‘Learning–Unlearning–Relearning’의 사이클이 바로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발행하는 웹진 <다들>이다. <다들>이 또 하나의 지식 DB보다는 ‘서울시민의 지식 매립장’이란 정체성부터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 ‘다들 처음처럼, 평생 신선하게’.smile-symbol

이희수 교수

이희수 교수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중앙대학교 글로벌인적자원개발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