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들

동네마다 북적이는 서울. 그 속에 천만 시민의 삶과 배움 이야기가 넘칩니다. 지금, 서울의 구석구석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다들>과 함께 살펴보시죠.

일본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30년 간 누가 살지 않아 텅 빈 잡화점에 도둑 세 명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누군가가 밀어 넣고 간 고민 상담 편지 한 통에 답장을 하면서 도둑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자신들도 바뀐다.
이 책 제목의 ‘기적’은 잡화점 안의 시공간이 30년을 넘나드는 기적 외에도 진심을 담은 편지 한통이 인생을 바꾸는 기적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공간에서 일어난 기적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고 한다면,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네배움터’ 운동이야말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아닐까?

서울에서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노원구 월계 1동에는 복지관도 없고, 동사무소도 멀어서 동네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보다 못한 마을 주민 6명이 경로당 건물 지하에 4년째 방치된 공간을 리모델링하기에 이르렀다. 그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달빛마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자, 중학생부터 노인들까지 온 동네 사람들이 오며가며 보드게임도 하고, 한글도 배우고, 그림책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게다가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엮은 ‘노원 동네배움터’라는 책자도 출간됐다. 이제 이곳 마을 주민들은 버스 타고 나가지 않아도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곳에 생겨 마냥 즐겁기만 한다.

▲ 줌마랜드 동네배움터의 ‘줌마밴드’ 공연 연습 장면

쌍문동 청소년랜드는 음악실과 강당 등이 갖추어진 청소년들의 공간이다. 이곳에 아줌마들이 자리를 빌렸다. 학생들이 학교 간 사이 빈 공간에서 밴드연습도 하고, 자녀 교육 프로그램도 듣는다. 줌마밴드는 공연도 벌써 몇 번이나 했다.
엄마는 청소년 공간에서 자녀의 숨결을 느끼며 교육에 관한 강의를 들으니 좋았고, 딸은 맨날 잔소리만 늘어놓던 엄마가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청소년과 엄마들의 사이좋은 동거가 바로 ‘줌마랜드’ 동네배움터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낮에 비고, 밤에 비고, 주말에 비는 공간들

‘동네배움터’는 동네의 놀리기 아까운 유휴 공간을 활용해서 교육도 하고, 모임도 만들고, 취미활동도 하는 서울시의 평생학습 지원 사업이다. 각 구마다 도서관과 평생학습관 등이 있지만, 다양한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소화하기 위해선 더 문턱 낮은 공간이 필요하다.
‘달빛마실’처럼 없던 공간을 만들 수도 있지만, 있는 공간을 살뜰히 활용할 수도 있다. 마을 사업을 통해 조성된 마을 커뮤니티 공간이나 마을도서관 등 평생학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동네에 널려 있다. 이 외에도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회의실, 서점과 카페를 겸하는 북까페, 타파스 식당이나 보건소 내 가정지원센터 등이 동네배움터로 등록되어 있고, 주말이나 방학에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대학교, 공연이 없는 날의 소극장 등도 참여하고 있다.

▲ 서대문구의 ‘한뼘책방’ 동네배움터

SNS 시대와 발맞추는 동네 배움터

인스타그램에 예쁜 카페와 디저트 사진을 찍어 올리는 트렌드 이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집세가 너무 비싸 번듯한 자기 방을 가질 수 없는 청년들이 시간당 돈을 내고 빌리는 공간이 바로 카페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기보다 SNS 속의 남들을 매 순간 살피고 부러워하는 이유도 어쩌면 공간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동네배움터는 이런 모이는 공간, 즐기는 공간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이다.
가까운 곳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배우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무료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동네배움터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는 오프 모임을 지향하지만, 온라인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이제껏 평생교육강좌는 관에서 정해주는 대로 들어야 했다면, 동네배움터에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은평구에서는 회원 수가 많은 ‘은평맘 카페’에 홍보글을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금천구 박미배움터에선 한번 수업을 들은 사람들을 밴드에 가입시켜 강좌 수요를 조사하고 의견을 반영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조화롭게 만나는 곳이 바로 동네배움터다.

배운 것을 동네에 환원하는 공유 교육

그렇다면 지금까지 동네배움터에선 어떤 걸 배우고 어떻게 활동했을까?
관악구에는 관악FM라디오가 있다. 관악FM라디오 분들이 방송스튜디오를 개방해 ‘나도 도전하는 미디어 마을 DJ’ 프로그램을 꾸렸다. 방송의 목적, 스피치 방법, 방송대본 쓰기 등을 배우고 주부들이 일일 DJ가 되어 속마음을 털어놓고 솔직한 토크를 나누었다. 인기가 무척 좋았던 것은 물론, 마을과 소통하고 동네배움터도 홍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금천구에선 ‘꽃피는 마을을 위한 실버들의 모임’ 일명 ‘꽃마실’이 운영되어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그랜드파파’들이 모여 텃밭을 가꾸고, 시흥3동 마을길 가꾸기 활동을 했다.
중앙 동네배움터에선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엄마들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했는데, 이분들이 ‘안전깨치미’라는 모임을 만들어 안양천 물놀이장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영등포구에선 경력단절여성과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경제교육지도자 양성과정’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을 끝낸 수강자들이 교재를 개발하고 연구하여 인근의 당산초등학교에서 경제 선생님으로 재능기부를 했다.
중랑구 나비우채 동네배움터에선 ‘다재다능 프로젝트’를 통해 석고방향제, 디퓨저 등을 만들었고, 이 수제품을 ‘2017 나무그늘 북페스티벌’의 경품으로 내놓았다. 수강생들은 배우고 만들어 기증하여 보람을 느끼고, 주최 측에선 예산절감을 할 수 있는 윈윈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동네배움터에선 일방적으로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후 모임(학습동아리)을 만들어 더 공부하고, 배운 것을 동네에서 나누어 더 좋은 마을을 가꾸어 가고 있다.

▲ 관악FM 또바기 동네배움터 ‘나도 DJ’ 방송, 금천구의 ‘꽃마실’ 마을길 가꾸기, 영등포구 공유 동네배움터의 ‘우리들의 경제생활’ 초등 1학년 경제교육

동네에서 처음 접해보는 신선한 수업들

동대문구는 노인 인구가 많아 이제까지 평생학습을 어르신 위주의 생활체육 프로그램으로 진행해 왔는데, 동네배움터가 생기면서 동대문구 최초로 발레 수업과 연필스케치 수업을 하게 되었다. 노년층 뿐 아니라 유아와 중년층 등 다양한 나이대의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다.
서초구에선 ‘시간여행자’라는 인문교양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예술사를 전공한 주민이 강사로 참여하고,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본 청년들이 크루로 참여하여 아이들에게 딱딱한 세계사가 아니라 그 시대로 여행간 것 같은 체험을 통해 세계사를 배우게 했다. 이렇게 주민들이 강사가 되기도 하고, 수업에 도움을 주기도 하므로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학습을 받는 게 아니라 때로는 교육 받고, 때로는 가르치는 쌍방향의 소통으로 교육 효과도 높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활발하다.

▲ 아름다운 다락방 미루 동네배움터 ‘달빛살롱 민주시민학교’

홍대 앞만이 살고 싶은 동네입니까?

아오이 유우가 나온 영화 <훌라걸스>는 일본 이와키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석탄 산업이 쇠퇴하고 폐광이 늘어가던 시기에 하와이 훌라춤을 배워서 다 쓰러져가던 탄광촌을 관광지로 변모시킨 한 소녀의 이야기다. 자신이 배운 것을 통해 동네를 변모시킨다는 의미에서 동네배움터의 전형이 되는 영화다.
최근 방송된 일본드라마 <키치죠지만이 살고 싶은 거리입니까?>에는 서울의 홍대 앞처럼 힙한 동네 키치죠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자매가 나온다. 사람들이 이 부동산가게에 들어와 조건을 이야기하면 이 자매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럼 키치죠지는 그만둘까요?”라고 묻는다. 즉, 그 조건이라면 굳이 키치죠지를 고집할 필요 없이 다른 동네를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 자매들을 따라 도쿄의 다른 동네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동네만의 정취도 있고, 굳이 키치죠지를 고집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동네배움터가 활발해져 동네마다 주민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모임도 생기고 예쁜 공간들이 활용된다면 서울 역시도 굳이 홍대 앞이나 서촌에서 살겠다고 고집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본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일본에도 ‘공민관(公民館)’, <다들>에서도 소개된 ‘시부야 대학’ 같은 동네배움터와 비슷한 사례가 많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도 살펴보시길 바란다.
동 단위, 마을 단위의 촘촘한 근거리 평생학습 체제를 만들어나가는 ‘동네배움터’. 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학습공간을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올해 지정을 받기 위한 공모는 3월에 시작돼, 4월이면 가까운 동네에서 배움을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의 동네배움터는 어디인지 알아보자!

2017 서울형 동단위 평생학습센터 동네 배움터 운영 사업 성과자료집

동네배움터 사업이 궁금하다면?

2017년 서울형 동단위 평생학습센터 ‘동네배움터’ 운영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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