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학교의 어제와 오늘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서로에 대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관계는 ‘포스트잇’ 같은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필요할 때 붙였다가도 깔끔하게 떨어지는 관계. 떨어졌을 때 질척하게 찌꺼기가 남지 않는 쿨하고 스마트한 관계.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포스트잇 같은 관계로는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오게 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때, 나 혼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힐 때 등등. 그럴 때 우리에게 가장 가깝게 닿아오는 타인과의 관계는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이달 <다들>은 성미산마을의 초창기에 합류해 지금까지 그곳에 살고 있는 위성남(전 마포구 마을생태계 조성지원단장) 단장과 ‘따뜻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정승희(중구 <따뜻한마을 동네배움터> 배움운영위원) 위원을 만나 서울에서 ‘마을’의 의미를 물었다.

동네 학교의 어제

위성남 (前 마포구 마을생태계 조성지원단장)

▲ ‘성미산 마을 주민’ 위성남 씨

공동육아에서 출발한 성미산마을

위 전 단장님이 생각하시는 도시의 마을이란 무엇인가요?

흔히들 마을이라고 하면 장소적인 개념을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농촌 사회의 마을은 긴밀한 커뮤니티이고, 지금도 그런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도시인들은 쿨한 인간관계를 원하고,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공동체를 바랍니다. 성미산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말한다면 저는 도시에서의 마을이란 ‘여러 커뮤니티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체가 없는 것 같지만 있고,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그런 네트워크요.

성미산마을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시민운동으로 출발한 건가요?

그건 아니고, 육아 문제로 시작되었습니다. 30대의 직장을 다니는 젊은 부부들이 공동육아를 통해 육아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했던 모임이 출발이었고, 그것이 우연히 이 지역에 있었습니다. 공동육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면 어린이집을 부모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90년대 초반에 이 운동이 젊은 부모들에게 어필했고, 이게 협동조합이다 보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 조합원으로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관계가 굉장히 긴밀해졌습니다. 아이가 7살이 지나면 어린이집을 졸업하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저학년 동안에는 방과 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또 협동조합을 만들어 방과 후까지 하게 되었죠.
왜 이 지역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데요.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당시 마포에는 출판사가 많았고, 여의도로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죠. 성미산마을의 초기멤버들은 386세대였습니다.

▲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영철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슬리퍼 신고도 갈 수 있는 마을 문화센터의 꿈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동네배움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미산마을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의 우리마을꿈터라는 것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사업이었는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마을꿈터의 기본개념은 이런 겁니다. 당시 신촌에 현대백화점이 있었는데, 백화점에 가면 꼭대기층에 문화센터가 있었잖아요? 사람들이 강좌를 수강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몰린다구요. 성미산마을에 지역 교육 자원이 풍부하니 버스를 타지 말고, 슬리퍼 신고도 갈 수 있는 문화센터를 마을에 만들면 어떻겠는가? 그런 뜻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교육 자원이란 아이들, 지도자, 공간, 프로그램 등이 있지요. 이렇게 흩어져있는 자원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식당, 나중에는 택견장을 교육관으로 활용하여 프로그램을 돌렸습니다. 3~5년 정도 열심히 했구요, 신문도 만들어 뿌리고, 열심히 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과도 있었구요.
하지만 민간에서 독자적으로 하기는 쉽지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이런 배움터야말로 관의 지원이 필요한 부문이더라구요. 서울시 전체로는 훨씬 자원이 풍부하니까 당연히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서울시에서 동네배움터 사업으로 슬리퍼를 신고도 갈 수 있는 배움터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요즘은 전국 각지에서 마을 운동이 활발한데요, 성미산마을과 비슷한 마을로는 어떤 곳이 있을까요?

강북구 삼각산 재미난마을이 비슷합니다. 전국으로 보면 전라북도가 농촌형 마을 만들기가 활성화된 지역이고 진안, 장수 등이 유명합니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칡뿌리 시민운동이 희망제작소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고, 그걸 가장 먼저 받아들인 데가 전라북도 지역입니다. 성미산마을은 거의 맥락이 없고 자연발생적이죠. 공동육아의 흐름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구요, 그래서 30~40대 가족중심의 커뮤니티 마을입니다. 연결해볼 수 있는 해외 사례도 없는데… 이는 도시지역의 주민 커뮤니티 활동이 아닐까 싶고, 이런 관점에서 보니 영국이나 미국 등 외국에서도 무수히 발견되더라구요. 어차피 도시인이 사는 데는 커뮤니티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맥락으로는 전세계적인 보편적 현상 아닌가 싶구요, 다만 한국에서 조금 두드러져 나타났을 뿐입니다.

동네학교의 오늘

정승희 (중구 따뜻한마을 동네배움터 배움운영위원)

▲ ‘따뜻한마을’ 동네배움터의 정승희 씨

주민 강사 발굴과 재능 기부로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지난 한 해, 진흥원에서는 지역 내 유휴 공간 발굴을 통해 동네배움터 45개를 설치·지정했습니다. 69명의 배움플래너를 배치하고 143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총 1,910명의 주민이 강좌를 이수했으며 470여회의 학습공통체 활동에 2,153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얻었지요. 중구의 ‘따뜻한 마을 동네배움터’도 이 중 하나인데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저희는 주민들의 마을 공동체 조직과 모임 활동을 지원하는 마을공동체 지원단을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이 마을공동체 지원단을 시작하게 된 건, 주민이 정말 마을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참다운 자치를 실현해 보자는 마음에서부터였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니 주민 간의 연결이 만들어지고 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가 마을공동체 커뮤니티를 통해 관내 주민들의 학습 커뮤니티를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해보자는 마음이 생겨 동네배움터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마을공동체 지원 활동에서 시작됐군요. 따뜻한마을 동네배움터는 다른 동네 배움터와 어떻게 다른지요?

우리 동네배움터에서는 <우리동네 공방 – 홈쏘잉, 퀼트>와 <초록환경교육-에너지 절약>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우리동네 공방’ 같은 경우에는 동네의 주민강사를 발굴하여 추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역 내에 강의 또는 재능기부를 할 수 있는 주민 인재를 발굴해 보자는 다소 단순한 취지로 주민 강사들을 섭외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이 사업 운영의 ‘신의 한 수’가 되었어요.
전문적인 수업을 처음 접하시는 주민 분들은 바느질 기법 같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어렵고 낯설 수가 있는데, 내가 아는 동네 주민이 강사로 와서 수업을 한다는 자체가 수강생들에게 굉장히 안도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수업 중에 궁금한 점이 있을 때도 부담 없이 묻기도 하고, 상당히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정말 따뜻한마을 동네배움터라는 이름처럼요!

▲ ‘우리동네공방’ 홈쏘잉과 퀼트 수업 모습

주민들의 호응도 좋았겠습니다.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배움터가 동네 사랑방, 혹은 만남의 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배움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시간을 함께 나누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면서 정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학부모들은 서로 공유하는 정보가 매우 유익했다고들 하셨구요.
10주가 너무 짧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 수업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였습니다.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사업 종료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강사를 섭외해서 후속 모임을 지속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또 재능기부를 해주신 주민 강사들에게도 큰 변화들이 있었어요. 배운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약간의 수입도 얻게 되면서, 생활에 자신감과 활력을 얻게 되셨다고들 하셨습니다. 그 동안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 같아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라는 말도 하시구요. 그런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사업 담당자인 저도 물론 큰 보람과 감동을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동네배움터 사업을 통해 신당동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동네배움터 사업에 꼭 참여해서, 더 많은 지역주민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