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교육이 교육의 본질이다”

도정일은 누구인가?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귀국했고, 50년대 한국전 전쟁을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는 신산한 시대를 통과한 사람의 소년시절이 유복했을 리 없다. 전쟁 막바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목숨 부지하는 일에 매달려야 했던 그 시절 소년 도정일도 신문팔이, 가게 점원, 행상 등의 일을 하면서 고단한 세월을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경험이 후일 그의 삶에 마냥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라고 그는 회고한다.
경희대 교수 시절, 그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시장전체주의 논리에 맞서 인문학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대학 교양교육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학에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해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경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동양통신 외신부장, 영문학 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독서운동단체인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켜 인문학적 삶의 토대를 사회적으로 다지는 일에도 기여했다.
지은 책으로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문명 그리고 화두>,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등이 있다. 제7회 소천비평문학상, 제43회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약속 장소인 경기도 분당의 카페에 들어서자 안쪽 룸에 미리 와 있던 도정일 교수가 손을 내밀며 특유의 조용한 미소를 짓는다. 짙은 감색 콤비에 자주색 태터솔 체크 무늬 남방을 받쳐 입고 검게 염색한 머리카락을 정갈하게 빗어 내린 그의 표정에는 원로 인문학자의 딱딱한 위엄 대신 은퇴한 시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인자함이 묻어났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인류에게 미래는 있나?”라는 도발성 물음을 거쳐 “인생은 그런대로 살만한 것이냐?”는 실존적 질문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차분하고 낮은 어조로 차곡차곡 답변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에서 한글을 가장 논리적이면서 가장 아름답게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글쟁이답게 그의 말은 시종 잘 다듬어진 한국어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듯했다.

도정일 교수 사진
3년 전 무거운 짐을 옮기다가 척추를 다쳤다는 그는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로 건강이 녹록치 않다고 한다. 그로 인해 요즘은 집필도 욕심껏 못하고 독서도 쉽지 않다면서도 인터뷰 내내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와 진지한 표정으로 ‘도정일식 인문학’을 펼쳐 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설립을 주도하셨지요? 처음 생길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011년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가 출범했습니다. 설립을 주도한 것은 경희대 조인원 총장이었어요. 나는 옆에서 그냥 도우는 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야심차게 출범하는 통에 내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대학에 새로운 교양교육 체제를 출범시키다보니까 이런 저런 기치들도 내걸었는데 혹시 일이 잘못되거나 중도에 엎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지요. 총장도 그랬고 나도 그랬어요. 조인원 총장은 학교가 사회적으로 약속한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총장으로서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는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후마니타스’(‘humanitas’는 라틴어로 ‘인간’ 또는 ‘인간성’을 뜻한다)라는 용어를 처음 쓰고, 어떤 새로운 형태의 인간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일찍 생각했던 분은 조인원 총장의 선친인 고 조영식 총장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미 1974년에 후마니타스라는 용어를 썼더군요. 저희는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출범시키고 난 뒤 그 사실을 알게 됐구요. 조영식 총장의 생각이랄까, 유훈이 어렴풋이나마 대학에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2011년부터 4년간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을 지냈고 2015년 봄에 퇴임했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것은 2006년인데 퇴임 5년 후인 2011년 조인원 총장의 요청을 받아 후마니타스 대학장으로 재취업했다가 2015년에 다시 퇴임한 거지요. 그러니까 저는 대학에 두 번 취임하고 두 번 퇴임한 셈입니다.

 

시장제일주의로는 교육도, 사회도 지탱 안 돼
‘문명의 야만’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후마니타스 시작

후마니타스 칼리지 설립 당시는 시장전체주의가 대학에까지 관철되고, 학문의 영역까지 마구잡이로 침범해 들어올 때 아닙니까? 바로 그런 엄혹한 시기에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자체가 사실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정확하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그냥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제가 ‘시장전체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같지 않아요. 시장은 경제체제이고 이 체제의 논리, 가치관, 사고 방식이 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해서 지배하는 것이 시장전체주의죠.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센델 교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시장’과 ‘시장사회’를 구별했는데, 그가 시장사회라로 부른 것이 도정일식 표현으로는 시장전체주의 사회입니다. 시장근본주의적 사고가 한국에 들어와서 경제만이 아니고 문화, 교육, 언론 등 광범한 사회 영역들을 접수하고 지배하기 시작한 지 벌써 오래됐습니다. 인문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겠지만, 시장제일주의, 시장근본주의로는 교육도 안 되고, 사회도 지탱할 수 없어요.

▲인터뷰 도중 김영철 원장이 지난 2008년 도 교수의 친필 사인과 함께 선물 받은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이란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학문과 대학, 교육의 영역에서만이라도 시장전체주의를 막아야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셈인데요, 역시 실천적 지식인이십니다. 시민운동가이시구요.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으로 있으면서 조금 부족하거나 후회되는 건 없었나요?

대학 교양교육의 방향을 잡는 일은 학생들만 설득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교수와 직원 등 대학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하고 학부모들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를 설득해 공감을 얻어내는 일도 중요하지요. 인문·교양 교육이 지금 이 시대에 왜 중요한가라는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넓게 확산시키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대학 동료 교수들도 우리가 하려고 했던 일을 잘 이해해주지 않더군요. 사실 그것도 시장전체주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졸업 후 어디에 어떻게 취직할까 같은 걱정들이 학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에 인문교육이나 교양교육을 강조하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런 분위기는 지금도 많은 대학에서 마찬가지일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비인문계 교수의 80%는 인문·교양교육의 이상과 목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경희대도 애를 먹었지요. 그래서 총장이 크게 결심한 겁니다. 학교 안에서 아무리 저항과 반발이 심하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보자고. 총장이 그런 결심을 가지고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출발도 못했을 것이고, 출발 이후에도 지탱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유지하는 걸 보면 잘 하고 계신 것이지요.

 

후마니타스 칼리지 식 교육이 곧 평생을 위한 기본교육,
직업교육과 교양교육은 분리할 수 없어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우리 시민사회와 평생교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저렇게 반발을 극복하고 열심히 하는데, 대학 밖에서 평생교육이라는 걸 하는 우리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것이지요. 요즘 1~2년 사이에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엔 4차 산업혁명이 실제로 오는 것 같습니까? 혹시 신기루는 아닙니까?

신기루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4차 산업사회적 특성들이 사회생활의 영역에, 사람들의 삶에 두루 퍼지고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이미 들어와 있다고 봐야지요. 인공지능산업과 로봇은 대표적인 것들이죠.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제기하는 문제는 진중하게 가려보고 따져보고 생각해보기도 전에 기술변화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한국 사회에 너무 빨리 퍼졌어요. 기술변화는 반드시 어두운 그림자를 수반합니다. 긍정적인 국면 못지않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국면들도 전개되지요. 예컨대 인공지능은 행복한 기술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가짜가 진실을 압도하고 가짜 뉴스와 가짜 현실이 사회를 삼키는 시대가 되었어요. 이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결코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사회가 망각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진실’은 그런 가치이며 ‘인간성’(humanity)이 그런 가치입니다. 이런 가치들이 함몰되면 사회는 신뢰의 파탄이라는 커다한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인문학 교육과 교양교육의 핵심이 바로 가치교육이죠. 변화에 휘둘리는 시대일수록 사회는 인간이 지키고 유지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이미 와 있을지 모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야말로 인문학이 모든 교양교육의 중심에 서야 된다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교양교육 이란 것이 대학에 반드시 필요한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수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죠. 완전히 틀린 생각입니다. 교양교육은 전공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대학에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필수과정입니다. 교양교육 자체가 취업교육의 바탕이고 실업교육이니까요.
직업교육, 기술교육 다 중요하지만, 교육의 목표나 내용이 거기에만 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교육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 교육은 왜 있는가,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라는 질문을 놓치면 안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프로파간다에 너무 휩쓸려서 반성, 성찰, 비판 이 실종했습니다. 거대한 변화가 몰려오는 시대일수록 변화의 내용, 변화의 방향을 점검해야 하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보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지요.

이야기를 나누는 도정일교수와 김영철 원장 모습

 

평생교육은 기술교육, 의미교육, 윤리교육의
세 층위로 이루어져야

제도 안에서 인문학을 해오셨는데요, 제도 밖에서의 평생교육, 지금 한국 사회의 평생교육은 무엇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평생교육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 ‘생존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기술교육, 직업교육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직업교육은 다른 차원의 교육이 따라붙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둘째, 그 다른 차원의 교육이 ‘의미의 요청’에 답하는 교육입니다. 즉, 내게 돈이 많다 해서 내 삶이 자동적으로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게 돈은 왜 중요한가? 돈은 내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 이런 질문을 만들고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돈 버는 능력 못지 않게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자살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성공했는데도 전혀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는 일, 곧 행복감의 결여는 삶에 의미를 줄 수 없을 때 발생합니다. ‘의미의 요청’을 존중해야 할 이유지요.
셋째, ‘윤리의 요청’에 대해 응답하는 교육이 있습니다. 윤리의 요청은 타인들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타인에 대한 나의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이런 질문에 답을 주는 교육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교육에서 크게 빠져 있는 것이 타자에 대한 나의 책임 부분입니다. 내가 왜 저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함께 공존의 삶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타자와의 공존을 도모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생존의 요청, 의미의 요청, 윤리의 요청’ 이 세 가지가 시민교육의 요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민교육은 민주공화국의 시민에게 요구되는 기본 능력을 계발하게 하는 교육이죠. 위에 말한 세 가지 요청에 응답하는 능력은 시민의 기본 능력에 해당합니다.

어느 자리에서인가 헌법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개헌이 요즘 정치권의 큰 화두인데요, 청와대에서 발표한 개헌안은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이번에 나온 청와대 개헌안은 상당히 생각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더군요. 환영할 만한 부분도 적지 않구요. 개헌안이 권력구조 개편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근본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령 시민교육이라고 할 때, ‘시민’이 ‘국민’과 어떻게 다른가? 특히 ‘국민’과 ‘사람’을 분리시킨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국민이기 이전에 사람이거든요.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국민이라는 개념이 필요하지요. 국가 정체성에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국민이잖아요? 그러나 생명, 자유, 평등 같은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권리는 어느 나라 국민인가에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누려야 할 기본 권리입니다. 국민은 국민이면서 사람이고 외국인은 국민이 아니지만 사람이죠.
평생교육에서 이제 헌법 교육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헌법을 법률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으로서 우리가 향유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는 무엇인가? 그건 왜 국경을 떠나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을 갖는가? 경제평등은 왜 중요한가? 지금의 평생교육이 이런 문제들을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확장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도정일 교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김영철 원장

“문송합니다. 문과 공부를 포기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요즘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있는데요,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취직이 어려운 문과생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인문학의 멘토로서 이런 젊은이들이게 해주실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학교육이 문과학생들을 대상으로 꼭 들려줘야 할 얘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될지도 모르지만, 대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떤 직업 영역을 지망해야 되는가, 어떤 영역에서의 기술을 터득했는가라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과이건 아니건 간에 대학이라는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이 반드시 체득하고 있어야 할 기본 능력과 가치관이 없으면 인생의 좌표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삶의 기본적 가치인지를 판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는 어떤 학문 영역보다도 인문학 분야의 교육은 강력합니다.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 …하지만 희망을 내던질 수는 없어

오래전부터 선생님께 여쭙고 싶었던 질문인데요, 인류한테 희망이 있습니까?

외교적 언사를 써야 할 답변과 내심으로부터 나오는 답변이 따로 놀아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내심을 이야기 하자면 저는 솔직히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지요. 다만 이런 건 있습니다. 지금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생존 환경이나 문명의 방향이 비관적이긴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기운이 빠져 나동그라져 있으면 안 된다, 아무리 사소한 시도라 해도 우리가 사는 방식에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이런 생각은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류한테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요?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까?

인간의 욕망은 자연 현상인데 이 욕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자극되고, 무한히 확대될 때에는 탐욕이 되어버립니다. 무한 탐욕이 가져올 것은 인간의 종말이고 문명의 끝이죠. 지금 인류에게 주어진 큰 질문 즉, “너희가 탐욕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저는 솔직히 비관적입니다. 그래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무 대책 없이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그런 어정쩡한 생각을 갖고 있지요.
지금 인간 문명은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구환경 전체에, 그리고 우주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세’라는 말이 있지요? 지질학자들이 인간문명이 지구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말하기 위해 지질학적 연대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이 잘먹고 잘사는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인간의 지구적 운명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 예컨대 다른 생물체들과 인간의 관계, 기후변화와 문명의 미래, 생물종들의 멸종 같은 문제들을 인간의 미래와 연결지어 생각하는데 소홀했습니다. 사정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지구 문명의 운명과 분리되지 않지요. 인간이 지구 문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인문학의 사고의 배경에, 사회과학과 문화, 정치와 경제의 배경 사고로 들어와야 할 겁니다. 교육과 시민의식 속으로도 들어와야 하고요. 지구 문명이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교육이 논하고, 가르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정일 교수의 글을 읽는 김영철 원장의 모습

 

시민교육의 본질 목표는 공화국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런데 시민은 누구인가? 그에게는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 이 질문을 생각해보는 것이 시민교육의 첫 걸음이다.

 

타자에게 가슴을 여는 능력을 키우는 일,
그것이 교양교육의 과제이고 평생교육의 과제

선생님의 작업 중에 ‘동물을 연구하는 인간’ 최재천과 ‘인간을 연구하는 동물’ 도정일의 <대담>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그 책에 보니 “인문학적 삶의 여러 방법 가운데 첫 번째는 타인을 향해 가슴을 여는 삶이다, 자기 존재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는 삶이다, 그래야 타자가 들어오고, 자기 존재가 자유로워진다”고 하셨는데요.

최재천 선생과 했던 대담은 상호침투, 혹은 서로 다른 두 학문세계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지요. 융합교육이니 통합교육이니 하는 말들은 요란하지만 한국 교육에서 융합적 사고를 길러주는 일은 아직 한참 더 필요합니다. 인문학이 자연과학과 상호 참조하고 상호 존중할 수 있는 문을 만들고, 문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대담> 프로젝트였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지독한 편협성, 불용, 협소성, 혐오와 증오의 문화 속으로 빠져들고 있고 정치가 이 경향을 더 심화시키고 있어요. 협소하고 편협하고 옹졸한 인간을 부추기는 데 정치가 기여하고 있습니다. 입만 벌렸다 하면 막말 내뱉고 욕설로 쌈박질 하는 거, 그게 지금 정치권의 모습 아닌가요? 정치권의 막말문화가 젊은 세대의 언어습관을 크게 타락시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소통 수단이 최고로 발달한 시대에 되레 지독한 불소통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설 같아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의 함양입니다. 그게 바로 공감의 능력이죠. 인문학의 가장 큰 힘은 타자를 향해 내가 열리고, 내 가슴이 타자를 만나 열리는 일, 그래서 타자가 늘 내 사유의 세계 속에 들어올 수 있는 감성과 사고의 체제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습니다. 인문학은 그래서 민주주의 교육의 요체입니다.

오늘 모처럼 선생님과 좋은 대담 가졌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요즘 읽고 계신 책이나 <다들> 독자들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시카고대학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 <인간성 수업>과 <역량의 창조> 두 권입니다. <인간성 수업>은 인문학, 고전교육, 토론, 성찰 등 지금 이 시대가 결하고 있는 인간성 궁핍화의 문제를 논한 책입니다. 원문판은 나온 지 꽤 되었지만 국역판은 최근에야 나왔어요. 다른 한 권도 누스바움의 책 <역량의 창조>입니다. 현대 세계에서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정의를 실현하자면 개인의 어떤 역량을 발전시켜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다룬 책입니다. 기본 역량의 개발에는 경제성장을 넘어 개개인의 ‘역량’(capability) 개발이라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지요. 철학자 누스바움의 사회과학적 관심을 드러내는 역저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 바깥으로 나와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조한준 주임, 김영철 원장, 도정일 교수, 김계환 위원, 전아림 주임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 바깥으로 나와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조한준 주임, 김영철 원장, 도정일 교수, 김계환 위원, 전아림 주임.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초란 같은 온기를 선사하던 봄의 태양은 이미 뒷산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다시 한기가 도시의 골목 사이로 슬그머니 내려앉고 있었다. 시대의 인문학자, 우리 시대의 교양인을 자처하는 도정일 교수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다시 시대의 숲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사람의 마을로 돌아와 후마니타스와 인문학을 노래할 때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정리/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 김계환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