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키우는 시민의 대학

서울자유시민대학, 그 미래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전 서울시민대학 운영위원장)

대학교육에서 인문학이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시민사회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몰아치던 시기가 있었다. 좋은 일이었다.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사는 건가, 라는 질문은 언제나 소중하다. 제도교육보다 현실을 사는 이들의 각성이 보다 빠르고 절실한 것은 당연했다.

이런 문제를 끌어안는 인문학이 시민들 사이에 급부상한 까닭은 분명했다. 팍팍해지고 있는 우리 삶에 대한 고뇌의 결과였다. 그러나 인문학조차 돈을 앞세우는 시장의 논리에 휘둘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깊은 성찰보다는 당장의 재미를 내세우는 쪽으로 기울면서 인문학도 인기라는 덫에 걸려들었다. 슬픈 일이었다.

인문학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다가가기 쉽게 하는 노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존엄한 정신적 권리를 길러나가는 의지와 만나지 못하면 곤란하다. 그건 한때의 유행으로 머물고 만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비켜가면서 시민의 권리를 말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시민으로서의 품격, 사유의 능력, 권리 그리고 참여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직결되는 문제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제도교육은 이런 방향으로 틀을 잡고 있지 못하다.

시민대학의 태동…평생학습은 시민의 권리

2011년 후반기, 박원순 시장은 평생학습과 관련한 “정책, 시민으로부터 들어 본다”라는 의미로 “청책(聼策)”회의를 열었다. 시민대학 태동의 시작이었다. 여러 수준과 단위에서 이루어져 왔던 평생학습을 “시민의 권리”를 중심으로 새롭게 짜들어가자는 집단지성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서울시와 시민이 함께 하는 박원순 시장의 “협치(協治)”철학이 가동되면서 서울시 관계 공무원과 시민사회의 전문역량이 탄탄하게 결합되어 운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년 가까이 시민대학의 철학, 구조, 프로그램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펼쳐졌고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졌다. 시민대학의 뼈대가 이때 거의 모두 만들어졌다.

핵심은 간단했다. (1)기존의 평생학습을 시민의 권리라는 차원으로 도약시킨다. (2)인문학적 교양을 비롯해 시민교육, 서울에 대한 이해, 역사와 예술 등의 분야를 종합적으로 체계화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3) 시민대학의 수강자들이 단지 피교육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철학과 기조는 여전히 중심에 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시민대학은 이제 꽤 단단한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햇수로 보면 6년째라 아직 10년은 지나지 않았으나 그 사이 서울시민대학은 규모로나 내용으로나 엄청난 발전을 했다.

서울시 시민청에만 국한되어 있던 학습장이 서울시 여러 곳으로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과의 연계로 시민들의 지역적 요구와도 만나는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일반시민을 위한 과정만이 아니라 평생학습 교육자들을 위한 전문가 과정도 만들어졌다. 시민들의 호응과 평가는 예상을 넘었다. 신뢰와 열광이었다. 여전히 그렇다고 자부할 수 있다.

본부 캠퍼스 개관, 그리고 서울자유시민대학으로의 변화

2018년, 그간 숙원이었던 본부 건물이 개관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이로써 서울시민대학의 교육에 대한 제도적 틀거리가 마련된 것이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운영주체도 서울시와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의 시스템이 결합되어 위탁체제가 되었다. 인적 자원의 밀도가 높아지고 역량도 확대된 것이다.

이에 더하여 가장 큰 변화는 교육방향의 제3차원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름 또한 새로워졌다. <서울시민대학>이 <서울자유시민대학>이 되었고, 교육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역량으로까지 지향점을 세우게 되었다.

인문적 교양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의식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발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자는 것이다. 노령화사회에서 이는 필연적이다. 뿐만 아니라 급속하게 변모하는 사회에서 이를 뛰어넘는 비전과 철학 그리고 실천능력 역시 절실하다. 시민대학의 좌표는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사실 초기 논의단계에서 이미 구상했던 바이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시민들에게 평생의 기간 최고수준의 교육과 시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을 철학의 기조로 한다. 여기에 “자유”가 붙은 까닭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열려진 공간(open)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에 더하여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서울시장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학사, 석사, 박사과정도 신설했다. 제도교육을 따라가려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정밀성을 확보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돌아보면, 이러한 발전에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기여, 시민사회의 역량을 집중시킨 운영위원들의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원순 시장의 시민철학이 시민의 지지를 토대로 작동한 바가 크다. 이제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새로운 미래와 마주하고 있다. 시민들이 함께 하는 대학, 평생학습의 기대되는 내일이 여기에 있다. 시민 여러분들의 꿈, 함께 일구어나가고 싶다.


개방성과 다양성 : 뮌헨시민대학 Einstein 28센터

민병철(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정책사업팀)

‘건축은 시대를 담는다’는 말이 있다. 건물의 형식이나 소재를 보면 언제 어떤 철학을 담아 건축됐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학로에 즐비한 김수근의 빨간 벽돌 건물들은, 1980년대의 자유로움과 경직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3월 16일 방문한 뮌헨 시민대학 Einstein 28센터도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뮌헨 시민대학의 오늘과 내일의 철학을 보여줬다.

뮌헨시민대학 담당자의 발표를 듣고 있는 모습

▲뮌헨시민대학 담당자의 발표를 듣고 있는 모습

방문 전, 남에게 말 못할 걱정이 있었다. 우리 일행을 담당한 Mucha 박사는 Einstein 28센터로 방문해 주길 바랐다. 홈페이지를 보면, Einstein 28센터는 뮌헨 시민대학의 100여개 학습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서 5분 거리에 위치한 Gasteig 본부도 반드시 보여 달라고 사정하면서 여러 번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누구나 가장 자신 있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 주기 나름이다. Einstein 28센터는 뮌헨 시민대학에서 가장 세련된 첨단의 장소였다.

Einstein 28센터 전경<br />

▲Einstein 28센터 전경
(사진 출처 : 뮌헨시민대학 홈페이지(https://www.mvhs.de))

철학을 공간에 담아내다

Einstein 28센터는 주소인 Einstein가 28번지를 그대로 붙인 이름이다. 맞은편에는 생의학계에서 유명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있다. 취리히 공과대학에 입학 전까지 뮌헨에 살았던 때문인지 몰라도, 센터가 위치한 거리는 Einstein가로 이름 붙여져 있었다. 센터의 겉모습은 유럽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건물이었다.

Einstein 28 센터 안 아인슈타인과 채플린의 이름을 딴 ‘Albert & Charlie’ 카페

▲Einstein 28 센터 안 아인슈타인과 채플린의 이름을 딴 ‘Albert & Charlie’ 카페

21세기 뮌헨 시민대학의 철학은 개방성과 다양성의 존중이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과 넓은 창들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었다. 4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로비 위로 천장까지 공간이 개방되어 높게 느껴졌고, 로비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별다른 조명 없이도 실내가 밝았다. 로비 맞은편에 있는 카페 ‘Albert & Charlie’에서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펴고 정보를 검색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페 이름은 아인슈타인과 채플린의 이름에서 가져 왔다고 한다. 실제 두 사람이 친했고,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았으며, 생전 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자 노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센터 안의 카페 이름까지 뮌헨 시민대학의 지향점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천장을 전면 유리로 시공해 개방감을 살렸다

▲천장을 전면 유리로 시공해 개방감을 살렸다.

우리가 뮌헨 시민대학이라고 하면,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습은 Gasteig이다. 커다란 벽돌 건물인 Gasteig은 1985년 개관한 독일 최대 문화공간으로써, 시민대학과 함께 뮌헨 필하모닉, 시립 도서관, 공연예술 대학이 함께 사용하고 있다. 직접 가보니 창문이 적고 적벽돌로 마감되어 있어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Einstein 28센터는 뮌헨 시민대학의 두 번째 본부로서, 현재 역량의 집적체이다. 3년간 2천만 유로(약 270억 원)를 투자해 1만 제곱미터 규모로 2017년 3월 개관했다. 건물은 커다란 창문과 밝은 색 나무로 마감되어 있어서 별다른 조명 없이도 밝은 느낌이 들었다. 기존 두 건물을 중간 다리로 연결해 만들어, 각 건물마다 계단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 건물 계단은 예전 건물을 살려 고풍스러운 형식으로, 다른 건물 계단은 현대적인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현대식 계단의 손잡이는 두 줄로 되어 있는데, 키 작은 아이들이 계단을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기존 손잡이 아래 아이들을 위한 손잡이를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한다. 계단 손잡이처럼, 시설 곳곳에 다양한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예전 건물의 계단과 신규 건물의 계단. 아이들을 배려한 손잡이가 눈에 띤다

▲예전 건물의 계단과 신규 건물의 계단. 아이들을 배려한 손잡이가 눈에 띤다.

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다

Mucha 박사의 설명 중 가장 놀랐던 부분은 뮌헨 시민대학에 46개 외국어의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은 그 수치가 이해가 안 되었는지 외국어 강좌가 46개인지 확인했다. Mucha 박사는 한국어 강좌도 있다는 너스레와 함께, 46개 외국어에 대한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단순한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고 싶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 가족 혹은 이웃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외국어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현재 독일사회는 이민자들과 난민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독일 사회는 작년 시리아 난민들에게 기꺼이 따듯한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덴마크 등 주변 국가들이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난민을 거부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극우 정당도 프랑스 등과 비교해 보면 그리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 한다. 도리어 극우적 폐쇄성과 차별에 사회적 감시와 비판이 강하다. 나치 시대에 대한 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시민대학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시민들의 소양과 역량을 꾸준히 키워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뮌헨시민대학 수업 장면

▲뮌헨시민대학 수업 장면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한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경제력을 꼽는다. 하지만 서독이 누리고 길러 온 개방성과 다양성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지 아니었을까? 독일 분단 초기 반공교육과 프로파간다가 양측 정치 문화를 지배했지만, 통일 직전 서독이 동독에 보여줬던 문화적 우위는 상대의 다른 점 까지 포용할 수 있는 개방성과 다양성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독일 곳곳의 시민대학에서 문화와 교양의 힘을 꾸준히 키워왔음을 이번 방문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