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은 세상에 대해 신뢰로 가득 찬 사람인가요?

편집자 전아림 이하 아림 : 보통 출판사나 이런 쪽에서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나요?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라니, 낯선 곳에서 갑자기 연락 드려서 의아하셨을 수도 있겠어요. 어휴… 몹시 긴장되네요. 저는 인터뷰 전문가도 아니고… 교육학 전공자고… 이런 건 잘 해본 적이 없어서요.

소설가 정세랑 이하 세 : 저도 역사교육과 나왔어요!

아림 : 안 그래도 『보건교사 안은영』을 내셨으니까 보건교육 특집이라던가, 이걸로 우겨볼까? 하다가.(웃음) 아, 또 마침 역사교육 전공이시라 해서 잘됐다 싶었죠. 인터뷰 질문을 생각해보다가, 오늘 자리는 편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하는 자리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독자들에게 작가님 근황이나 소개를 좀 해야겠죠?

세랑 : 저 계속 마감하구. 으하하. 올해는 청소년 관련한 요청도 꽤 많아요. 제 소설이 딱히 어렵지가 않은 편이라 젊은 세대들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나봐요. 에세이도 하나 쓰고. 겨울에 아마 얇게 책이 한 권 나올 것 같아요. 내년이 될 수도 있구요. 그게 출판사 사정에 따라 달린 거라.(웃음) 기존 소설 영상화 작업도 했고. 개인 단편집도 준비하고 있어요.

 

그냥 흘러서 계속 왔어요.

아림 : 작가님 이력이 독특해요. 역사교육을 전공하시고, 국문과를 복수전공하셨다구요? 그럼 사범대 아니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하셨군요. 이후에 장르문학 전문 잡지에서 등단하셨구요.

세랑 : 교생실습 나갔는데 아닌 거 같더라고요. 하하하. 아니, 재밌긴 했는데,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지는… 졸업하고 나서는 막연히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이 길로… (웃음) 마케팅 쪽으로 출발했는데 어쩌다 보니 출판사 일을 하게 됐고, 그게 또 잘 맞더라구요. 그냥 흘러서 계속 왔어요. <판타스틱>이라는 장르문학 잡지가 한번 폐간됐다가 다시 복간됐다가 다시 폐간이 됐는데, 복간됐던 마침 그 시기에 제가 등단하게 됐죠. 이후에는 장편 위주로 활동했어요.

아림 : 그렇게 흘러 간 게, 운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응이었어요, 아님 ‘아 안 되겠다… 이 길은 아닌 것 같아… 다른 쪽을 개척해보자’ 이런 거였나요?

세랑 : 자극을 받긴 받았던 거 같아요. 출판사에서 잡지를 만들었으니까. 현장에서 제일 신선한, 막 나온 문학들을 읽었던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용기도 얻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기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땐 제가 인터뷰이가 아니라 인터뷰어기도 했고,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정말 여러 명이 모이잖아요. 다양한 사람들과 매호 동시대적인 어떤 걸 만들어갔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자극이었죠. ‘지금 여기’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10년 전이 아니라,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요.
그리고 주위에 재밌는 친구들이 많아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뭘 하다가 갑자기 다른 거 하고.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들이죠. 역사교육과 나와서 대학원까지 갔는데 갑자기 제과제빵학교 들어가고.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타입? 재밌는 친구들이에요.

아림 : 저는 졸업하고 나서 계속 비슷한 일만 해온 케이스거든요. “퇴사하고 싶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란 말이 입에 늘 붙어있는데, 사실은 이 기반이 없으면 저는 너무 무서울 거 같아요. 예컨대 그런 거죠. “다음 달에 내 통장에 월급이 안 찍힌다면, 난 어떻게 살지?”

세랑 : 맞아요, 맞아요! 저도 회사 그만둘 때 너무 무서웠어요. 회사 그만두고 출판한 첫 번째 두 번째 책이 잘 안됐거든요. 거의 천 부 이렇게 팔리고…(웃음) 문학상을 받는다는 등 어떻게든 홍보 수단을 마련하지 않으면 내 작가 생활은 여기서 끝나겠다, 위기감이 들었죠. ‘잘 안 되면 다시 재취직 해보자’ 하면서 1~2년 하다 보니 다행히 잘 됐는데. (웃음) 그때 되게 위기였어요. 제가 열심히 쓰는 거하곤 달리, 문학계 시스템 자체가 문학상을 받거나 혹은 주력 출판사에서 미는 작가가 아니면…(성공하기 힘들어요.) 사실 작가는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소속사 같은 거죠. “내가 YG에 들어가야겠어.”랑 똑같은 거예요.

* 결국 정 작가는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무용해 보이는 시간 덕분에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다

아림 : 제가 요새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바로 ‘갭이어’인데요. 들어보셨나요? 이런 시기에 대해 공부해보고 있어요. 서울시에서 청년들이 했던 여러 이야기도 찾아보고, 청년수당 같은 여러 정책도 들여다보구요. 갭이어를 한다고 하면, 주위의 시선이 제일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아요. “취직 안하고 뭐했어?” 주변에서 자꾸 그러니까 본인이 더 위축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이런 변화의 단계에서 비슷한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이 많이 얘기해주고, 위로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작가님께 삶의 변화에 대해 물어보게 됐어요.

세랑 : 제가 그 해가 그랬던 것 같아요. 회사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하기 전에 한 일 년 그런 시간이 저에게도 있었던 셈인데요. 저는 여러 경험들을 계속 축적했던 것 같아요.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많이 읽고, 운동하고, 여행 가고 뭐 여러 가지. 무용해 보이는 시간이었지만 사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그 이후에 모든 것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죠. 근데 그걸 모든 사람이 누리려면, 글쎄요…

아림 : 그럼 주위에선 뭘 해줄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그 시기에 있는 사람에게 “그 시간에 뭘 좀 배워봐” 정도밖에 말 하지 않는 건 정말 몰이해적인 강요죠.

세랑 : 사실 이 시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인 지원일 수도 있겠어요. 어떻게 하면 안전망 안에서 축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가 필요한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갭이어라는 게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면 좋겠어요. 졸업하기 전, 혹은 졸업하고 일 년 정도는 본격적으로 사회에 들어가기 전에 다양한 경험들을 축적하는 시기로 정한다던가. 사실 지금은 취직이 너무 안 되고…(좀 어렵죠.)

아림 : 떠밀려서 쉬는 거죠. 내 의지로 쉬는 게 아니라.

세랑 : 맞아요. 저도 면접을 30군데나 봤었어요. 너무 스트레스 받았죠. 그때 진짜…
생각해보니까 두 번째 책을 쓰고 그 다음 책을 준비할 때 뉴욕에 갔었던 게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여행으로서 즐거운 것도 있지만 ‘아, 한국이 메인 무대가 아니구나’ 라고 느꼈죠.(웃음)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는 특정 도시들이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가 훨씬 주도권을 갖는 거예요. 비슷한 재능을 가졌더라도 영어권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달라요. 출판사에서 일했을 때, 별로인 소설도 40여 개 나라에 팔려요. 고작 스물 몇 살짜리에게, 전 세계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예요. 한국 작가들은 되게 힘들게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도 하고, 갈망도 느꼈죠. 뉴욕 오번가에서 30층짜리 출판사를 봤을 때 그 충격이라니. 저는 파주에 3층짜리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말이에요. 여기는 전 세계에 판권을 팔면서 노른자 뉴욕 땅에 30층짜리 건물을 짓고 출판을 하는 거. 이건 정말 상대가 안 되는구나. 이런 거죠. 어떻게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던 게 좋았어요.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보편성에 대한 고민의 기회였던 거죠.

 

 

글을 쓰는 건 ‘직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림 : 지금 독자들에게 제일 반응이 젤 좋은 책이 뭐예요?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세랑 : 『이만큼 가까이』 까지요. 세 권이 비슷하게 팔렸어요. 헤헤.

아림 : 책에 나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어떻게 하세요? 이런 질문 많이 받으시죠?

세랑 : 작은 아이디어 서너 개를 메모해놓고 몇 년 있다 보면, 갑자기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이야기가 돼요. 그런데 아이디어들이 서로 언제 어떻게 만날지는 모르구요. 일단 수집만 해놓다가 그 아이디어들이 알아서 모일 때,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원래 하나가 아니었던 것들이 약간 이질적으로. 전 판타지랑 실생활이랑 만나는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평소엔 엉뚱한 분야의 글들을 읽곤 해요. 과학책이나 역사책 같은 거요. 예를 들어 소설을 쓸 때, 다른 사람이 쓴 소설을 읽으면 “와, 잘 썼다” 이런 생각만 들지, 제가 쓰는 것에 딱히 도움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요새는 SF 쓰려다 보니까, 바이러스 관련된 책을 읽고 있죠.

아림 : 저는 결재문서 아니면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웃음)

세랑 : 인터뷰도 글 쓰는 거잖아요.

아림 : 그렇죠. 근데 인터뷰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얼기설기 엮는 거고…

세랑 : 그것도 쉽지 않은데요.

아림 : 내 머릿속에 있던 나만의 생각을 쓴다는 것이 선뜻 안 되더라구요. 한 문장 쓰고 그 다음 문장 쓰면, 갑자기 “어, 아까 쓴 문장 좀 이상한 것 같아” 그러다 보면 또 진도가 안 나가고. 결국 “에휴… 무슨 또 글을 쓰냐…” 이러면서 다 지워버리고. 아마 글을 안 써버릇한 사람들은 다 저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 ‘진도’가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질러본다?

세랑 : 매일 일정량을 쓴다는 건 매우 중요해요. 주변에 보면 보통 하루에 10~20매를 쓰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저도 그렇구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렇게 쓰면 한 달에 300매잖아요. 휴일엔 쉬어야 하니까 뭐 250매라고 치고.(웃음) 그래도 그럼 6개월 안쪽에 장편소설 한 권이 나오는 거예요. 꾸준함의 무서움? 10매 아무것도 아닌데, 습관이 들면 할 수 있어요. 글을 쓸 땐 너무 완벽주의자가 되면 안 돼요. 이 열매는 분명 엉망이고, 마음에 안 들고, 다 다시 쓰고 싶은 열매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어차피 나중에 또 고치게 되거든요. 지금은 괴발개발. 전 글을 쓰는 건 ‘직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퉁이가 있어서, 일단 조금 앞으로 나가서 모퉁이에 도달해야 그 다음이 보이는 거거든요. 전체를 보고 쓰기 시작하면 절대 시작하지 못하고, 1/3이 있으면 쓰기 시작하는 거죠. 1/3을 가면 다음 1/3이 보이고, 또 다음 1/3이 보이고.

모퉁이를 돌다 보면 어느 새 빼곡히 차 있는 나만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편

아림 : 평생교육 전문 웹진이니까, 평생교육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평생교육이라고 딱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세요?

세랑 : 삶의 풍부함 이런 게 떠오르네요. 저는 사람이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거든요. 업데이트 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이만큼 가지고 있었던 세계가 언제든지 더 자극이나 노력 등에 의해 커질 수 있고 또 커지는 과정 자체가 삶 전체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가능성은 생각보다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지만 10년 후에는 뭘 하고 있을지, 사실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세계가 급격히 변할 때 사람들도 다양한 선택들을 할 수 있고, 그런 성장에는 별로 한계가 없다고 믿는 편이라서요. 저도 평생 공부하고 싶어요. 계속 다른 영역을 탐험하고 싶고.

아림 : 지금 이 단계에서 혹시 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세랑 : 아직 모르겠지만, 어떤 교수님이 그러던데요.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람이 세 개의 직업을 가지게 된대요. 저는 편집자였다가 작가가 되었잖아요. 하나 남았단 말이에요. 그게 뭘까? 기분 좋게 기다리고 있어요.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해요. 특히 콘텐츠 쪽은요.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즐겁게, 마치 파도 타는 것처럼 살고 있어요. 책을 가장 사랑하지만 너무 하드웨어에 집착하고 있진 않죠. ‘씀(http://ssm10b.co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에 연재하기도 하고, 『피프티 피플』 같은 경우도 인터넷에서 연재하고 나중에 책으로 엮어 출간하게 된 사례구요.

아림 : 작가님은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SNS에 많이 표명하시잖아요.

세랑 : 어느 정도죠. 헤헤.

아림 : 미투 운동도 있었고. 환경 문제나, 옛날에 세월호 관련해서는.

세랑 : 낭독회도 있었죠.

아림 : 요즘 개인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문제가 있나요?

세랑 : 항상 환경과 인권인 것 같아요. 환경주의자기도 하구요. 페미니즘을 포함한 인권문제 전반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죠. 작가들은 더 그래요. 사람에 대해서 쓰니까. 가깝게는 문학계부터 좀 더 그런 관심이 필요하지 않나… 그 관심이 수그러질까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환기시키는 편이에요.

아림 : 개편을 맞아 편집진의 특권을(?)을 이용해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을 모셨는데요. 작가님을 모신 건 뭐 제가 좋아해서도 있고, 읽으면 마음에 행복이 차오르는 책이 있다고 독자들에게 소개 하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힘들 때 작가님 책을 읽었었는데요. 그 때 저는 이 세상이 썩 그렇게 다정하지가 않다, 이 세상은 너무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사실 지금도 유효해요. 제가 작년에 제 인생에 있어서 축이 휘청하는 시기였나봐요. 그랬을 때 이걸 읽고 ‘그래,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이렇게 흘려보낼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경험을 나누고 싶었구요. 그런데 이 시점에서 묻고 싶네요. 작가님은 세상에 대해 신뢰로 가득 찬 사람인가요?

세랑 :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안은영이 학교에 없으면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피프티 피플』은 대형 사고에 대한 얘기고, 사회의 안전망에 대한 얘기기도 해요. 제 소설은 위로를 위한 소설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저는 세계가 굉장히 참혹한 곳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렇지만 이걸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봐야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있지 않나. 참혹하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세상이니까요.
20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자식을 아프리카에 데려가 사자나 코끼리를 사냥하는 경험을 시켜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였어요. 불과 100년 전도 안 되는 시기인데, 그게 바로 교양이었던 거예요. 지금 그런 짓을 하면 야만인이 되잖아요. 사람들의 윤리 감각이라는 게, 우리가 지켜보는 속도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사실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지금이 참혹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조금씩 앞으로 밀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제 소설은 마냥 낙관적이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참혹한 가운데 자신의 잃을 수 없는 어떤 부분들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지언정 그런 사람들을 발견해서 캐릭터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림 :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죠.

세랑 : 되려고 노력해야 하겠죠.

아림 : 그게 바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구요.

세랑 : 저는 생각보다 개인이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물론 시스템도 중요하지만요. 문화에서부터 출발하는 변화라는 게 되게 무섭거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을 믿는 편이에요. 그런 점에선 대책 없이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하.

작가 정세랑은 누구인가?

정세랑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피프티 피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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