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 차이’를 위한 여정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파티 D-1

 

개강파티를 하루 앞두고 있던 7월 6일 금요일 오후. 전 직원이 모두의학교 1층부터 4층까지 뿔뿔이 흩어져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을 때였다. 물건(?)을 좀 사러 가야겠다는 혜영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혜영님은 김혜영 모두의학교팀장이다. 모두의학교에선 직급이나 직무에 관계없이 서로 존중하며 협업하기 위해 ‘○○님’이란 호칭을 쓴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쏟아져 들어온 택배 상자로 사무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쇼핑몰에서 카트를 밀고 있었다.

 

모두의학교에선 “가능한 모든 것을 시민과 함께”라는 기조 말고도 꼭 지키고 싶은 공동의 다짐 같은 게 하나 있다. 누가 보면 티도 안 난다며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종종 과하게 집착하는 “한 끗 차이”다.

 

같은 옷을 입더라도 가방이나 구두, 액세서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장이 캐주얼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더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고 먹기 싫어질 때도 있지 않던가. 우리는 이렇게 사소한 차이가 생각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 번 쓰고 마는 물건이라도 막 고르거나 대충 넘어가질 못 한다. 참 피곤하다. 근데 또 그게 모두의학교의 매력이요, 그곳에서 일하는 재미라 생각하기에 멈출 수 없다.

 

내수는 안 한다는 사장님과의 만남

 

개강파티 전날, 우리가 또 한 번 “한 끗 차이”를 외치게 한 물건의 정체는 테이블보와 인테리어 소품들이었다. 사실 전자는 주문제작한 게 도착한 후였고, 후자는 말 그대로 인테리어용이라 없어도 별로 문제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했던 색깔이 아니란 이유로, 분위기를 완성시키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산디지털단지까지 극성스럽게 달려갔더랬다.

 

문제의 테이블보와 인테리어 소품(미니 화분 사형제)

 

대형 쇼핑몰이라 그런지 인테리어 소품은 넘쳐났는데, 문제는 테이블보였다. 기성품을 고르자니 마음에 드는 색은 크기가 안 맞고, 크기를 맞추자니 색이 영 아니거나 무늬가 절망적이었다. 그저 어둡고 진한 색에 강의실 책상 하나를 푹 덮을 정도의 크기면 되는데,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먼저 구매한 것을 써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혜영님이 물었다. “지현님, 그걸 뭐라고 하죠? 원단 같은 거, 그런 거 파는 곳?”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들어본 적도 별로 없는 장소를 묻는 말에 “원단이요? 원단? 섬유? 직물? 직물점?” 하면서 혼잣말처럼 수수께끼를 풀고 있을 때 혜영님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외쳤다. “거기 직물점이죠? ○○직물!” 세상 해맑은 목소리로,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짙은 색 천이 필요하고, 당장 사러 갈 수 있는데, 어디로 가면 되느냐며 숨 가쁘게 이어지는 멘트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대답은 “내수는 안 해요”였다. 졸지에 섬유업계 종사자가 된 듯한 혜영님이 또 한 번 속사포처럼 상황을 설명하자 일단 와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나게 차를 돌려 도착한 곳은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한 층 한 층 올라가면서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물에 직물점이?”

 

역시나 전화로 알려준 호수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그곳이 직물점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벨을 누르자 ‘○○○○○ TEXTILE’이라는 글자가 멋들어지게 써진 유리문이 스르륵 열리고, 중년 남성 한 분이 우리를 맞이했다. “내수는 안 하지만, 다급해 보여서 일단 와보라고 했다”는 말과 함께.

 

역시나 직물점이 아니라 고가의 브랜드에 사용하는 직물들을 수·출입한다는 회사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갖가지 원단이 빽빽이 들어찬 방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평범한 원단들은 아닌 것 같았다. 드디어 원하는 테이블보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흥분하고 있을 때, 사장님(?)은 어떤 원단이 몇 야드나 필요하냐고 물으셨다. 그러더니 짙은 남색 원단 한 롤을 내주며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다. 당장 값을 지불하겠다는 의사도, 그럼 나중에 다른 일로라도 연락 달라며 내민 명함도 모두 거절하셨다. 그저 또 한 번 “내수는 안 한다”는 말과 함께.

 

고마움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가운데 우리 그런 사람들(?) 아니라는 항변을 늘어놓고 나와 보니 어느새 우린 그 원단을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고, 모두의학교에 돌아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에 쓰인다는 원단. 아이들이 채소 밑에 테이블보도 감상하고 갔으리라 믿는다.

 

만약 우리가 그냥 아무 테이블보나 쓰자고 했더라면 그 사장님을 만나는 일도, 그런 사장님이 가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런 일기를 쓰며 그날 일을 또 한 번 떠올리는 일도 물론 없었을 거다. 생각지 못했던 소중한 인연과 나눔 덕에 우리는 고집이 헛되지 않았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우리에겐 ‘한 끗 차이’를 위한 여정 그 자체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간다. ‘한 끗 차이’를 위한 여정 속으로!

 

독산동 개구쟁이 사총사에게 점령당한(?) 모두의학교

 

모두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