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협치는 현장에서 일어난다”

전효관 서울특별시 서울혁신기획관 특강

지난 8월 7일,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전효관 서울혁신기획관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혁신’ 기획관답게 공유, 마을공동체, 지역생태계, 갈등, 민관 협력, 청년정책 등 행정기관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들을 두루 맡고 있습니다. 그가 <민선 7기 공공기관 혁신방안과 사례>를 주제로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해 싣습니다.

 

서울 시정에서 ‘혁신’과 ‘협치’라는 단어가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달 국가에서 관계 국가로>. 영국의 한 보고서 제목입니다. 전달 국가의 행정은 ‘의견 하달’로 이루어집니다. 제가 처음 시에 들어왔을 때, 혁신기획관에서는 공공기관이 가진 유휴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25개 자치구에 공공 공간을 개방하라고 공문을 뿌리고, 독려하는 장치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었죠. 자치구에서는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동사무소로 공을 던집니다. ‘3개월 만에 1,000개소 공간 개방’과 같은 단기 실적이 나올 수 있는 이유입니다. 과연 이 공간들이 실제로 활용되었을까요? 성과만을 위해 개방된 공간은 얼마나 시민들에게 와 닿겠습니까? 시민들이 필요성을 느껴 써보겠다고 제안한 공간이었다면, 1,000개소를 확보하지는 못했겠지만 그 공간들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높은 범죄율을 해결하기 위해선 경찰 공무원을 증원시켜야 된다, 이것이 통상 과거의 해결 방법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범죄가 일어날 때, 시민의 신고로 종결되는 사건이 압도적으로 많죠. 시민이 없으면 경찰 행정은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제 과거의 하달식 행정으로부터 벗어나, 시민에서부터 이루어지는 행정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혁신이고, 이를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 협치입니다.

 

혁신과 협치는 현장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사회가 단순할 땐 문제 추출이 가능했지만, 날로 복잡다단해지는 현대에는 현장에 직접 나가 관계를 형성하고 당사자들이 어떻게 문제를 느끼는지 파악하지 않으면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교육은 커리큘럼보다 관계 형성 중요

저는 지금이 7번째 직장입니다. 서울시엔 만 4년째 있었네요. 민선5기에 ‘청년허브’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서울은 청년에게 취·창업만 권했어요. 진짜 청년을 위한 정책은 없다고 볼 수 있었죠. 청년 문제는 자존을 인식하고, 자활을 통해 결국 자립으로 향하는 흐름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취·창업이라는 단순한 결과만 두고 당사자를 배제한 정책을 펼쳤던 겁니다. 저는 청년들의 커뮤니티 활성화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교육에서, 저는 커리큘럼보다는 그 이후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강의여도 며칠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반면 커뮤니티 등 학습 외적인 관계가 형성된다면 효과가 훨씬 높아집니다. 사회 혁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 사례도 이와 비슷합니다.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담보도 보증도 없이 돈을 빌려 준 건데요. 대신 유누스 교수가 내건 조건은 ‘커뮤니티 활동을 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주 높은 회수율을 보였고, 대출을 받은 절반 이상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죠.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단 관계가 형성되면 긍정적인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성미산 마을 사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마을 아이들은 다른 집에 가서 밥을 잘 얻어먹습니다. 이게 이 마을 특성이에요. 그 동네 살면 누구네 집 아이인지 동네 사람들이 대개 다 알고 있습니다. 관계가 있는 마을은 안전한 마을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있으니까요.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토대는 아주 일상적인 만남이죠.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공동체가 꼭 사적인 친밀함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는 등치시켜왔던 공동체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행정 혁신의 핵심은 권한 나누기

공적인 관계를 사회적으로 많이 만들어낼 때 그만큼 건강하고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회가 됩니다. 서울시는 이런 일들을 ‘혁신 정책’, ‘협치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해왔습니다. 허나 이를 뒷받침할 행정적 제도가 완비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민선 5기와 6기를 지나는 지금, 민간과 행정도 피로감이 쌓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점에서 행정 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저는 행정 혁신의 핵심이 ‘권한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권력 계층에서 사회 문제를 모두 파악하고 정책을 집행할 수 없을 만큼 사회가 다양화 됐습니다. 책임과 권한은 이제 분산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권한을 분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하고 이야기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문제’를 직접 해결하면, 그에 대한 권한이 생깁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문제해결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해결력이 높아지려면 자율권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개선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관계를 다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막스 베버는 권력을 ‘타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정의했는데요. 최근에는 일부 학자들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힘’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권력도 짝사랑과 비슷하군요. (웃음)

 

마침 민선 7기 슬로건이 ‘더 깊은 변화, 더 넓은 변화, 더 오래가는 변화’입니다. 더 넓은 변화는 더 많은 사람의 참여를 만듭니다. 더 오래 가는 변화를 위해서는 더 오래 가는 시스템을 설정해야겠죠. 더 많은 지혜를 모아 일을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직 자체를 학습하는 조직, 자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도를 장려하고, 목적 중심으로 사고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께서도 민선 7기, ‘혁신’과 ‘협치’를 위해 어떻게 하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의욕과 동기를 가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