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 세운 나라, ‘평생학습’으로 다시 세우자!

 

평생학습 서울 선언문(Seoul Declaration on Life-Long Learning)

 

국제노동고용학회 2018 서울세계대회의 직장내 평생학습 특별세션에 참가한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모든 사람에게 지속적 능력 향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을 인지한다. 우리는 이것이 직업의 종류나 경륜과 상관없이, 경제적 상승기회 및 보람과 품위 있는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든 개인에게는 평생학습을 습관화 할 책임이 있고, 정부 및 비정부기구는 직원의 재훈련과 향상훈련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특히 기업은 이 점에서 특별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기업은 현장 사원에서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쉽게 신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강력한 지속적 학습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올바르고 슬기로운 일이라 믿으며, 이는 민간기업이 인적 자본을 개발할 때 투자이익률이 증가한다는 입증된 사실에 근거한다.

우리는 또한 이렇게 입증된 이익효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용주가 지금까지 교육 훈련에 충분한 투자를 해오지 않았으며, 특히 기술 취약층의 사원을 대상으로 한 투자가 부족한데, 사회가 번영하려면 반드시 이 점을 고쳐야함을 인지한다.

 

우리는 위의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 아래와 같이 서약한다.

  • 우리는 자신이 속한 조직 안에서 모든 직원이 충분한 학습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실천한다.
  • 우리는 우리의 파급력을 동원하여 최대한 많은 조직 안에 재훈련과 향상훈련 프로그램과 체제의 도입을 권장하며, 이의 일환으로 모범 기업들을 발굴조명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이 귀감으로 삼도록 고취한다.
  • 우리는 섹터 간(공공, 민간, 비영리) 그리고 기업, 노동단체 및 교육기관 간 가능한 모든 곳에서 동반자 관계를 추진하여 평생학습을 활성화한다.
  • 우리는 평생학습의 새로운 표준(잠정 명칭 LLL-88000) 제정을 지원하여, 세계 모든 기업들에게 목표로 삼을만한 탁월성 수준을 제시한다.

뉴스를 보고 보고 놀랐습니다. 이번 선언을 평생학습을 업으로 하는 저희가 아니라 기업인이 주도하는 걸 보고, 역시 문국현이구나했습니다.(웃음) 저희가 한발 늦었구나 싶기도 했구요. 평생학습의 국제표준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일반인들을 위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먼저 모임의 배경을 말씀드려야겠네요. ILERA는 전 세계 노동 고용 관계 학자들의 세계적 대회입니다. 2,500명의 세계적인 학자, 전문가, 기업인, 정책전문가들이 모여 6일 동안 130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1966년에 창립됐으니 올해 만 52년 된 유서 깊은 학회이지요. 이 학회를 아시아에서 연 건 두 번 뿐입니다. 일본에서 한번,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한번.

 

 

전체 130개의 세션 중에서 특별세션이 2개 있었는데, 하나가 한국이 주도한 ‘평생학습 서울선언’에 관련된 세션이고, 또 하나가 미국이 주도한 ‘초일류 250개 기업 특징은 무엇인가?’였습니다. 전야제 행사로 6개국(독일, 미국, 캐나다, 중국, 한국, 일본)의 성공사례를 발표하고 공유한 뒤 토론이 있었는데, 결론이 이렇습니다. “여태까지의 기술 발전만 가지고도 이미 양극화가 심한데, 제4차 산업혁명에선 더 큰 양극화가 초래될 것이다.”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지만 그림의 떡일 뿐이고, 내게 익숙한 일자리는 없어진다는 위기가 팽배합니다. 이런 통찰력과 노하우를 국가, 기업, 지역사회, 대학, 개인이 공유하자는 겁니다. 굳이 바닥까지 떨어진 다음에 재취업 프로그램을 돌리지 말고, 이동성과 유연성을 높여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가게 하자, 그것을 전세계가 협력하자, 이런 취지로 서울선언을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은 평생학습으로 우뚝 섰고, 미국은 평생학습의 힘으로 지금까지 선진국의 위치를 누렸지요. 요즘은 중국이 평생학습을 주도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번 세계대회를 통해서 6개국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1960년대 평생학습 운동의 50년만의 리바이벌

 

이번 선언을 보니까 전제가 “모든 사람에게 지속적 능력 향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을 인자한다”이더군요. “기업은 현장 사원에서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쉽게 신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강력한 지속적 학습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구요. 최근 공공 부문에선 인문학에 바탕을 둔 평생학습이 대세인데, 이 선언에서 평생학습은 직업훈련이 위주가 되어 있더군요. 방향이 살짝 다른 것 같던데요.(웃음)

그렇습니다. 25세 이전의 공교육이 인문학적 리더십, 자유시민에 대한 소양을 포함해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기본적인 소양과 자격을 갖추게 되는 셈이지요. 그러나 21세기가 되면서 대학교육이나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그 다음 10년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최소한의 기술 교육만으로는 현장에 적용하기 힘들구나, 현장이 너무 빨리 변하는구나, 그러니 일자리를 기반으로 한 평생학습이 중요하구나, 이런 점들을 인식한 게 1960년대입니다. 이걸 유네스코 등이 전세계적인 운동으로 끌고 가려고 했는데, 그때까진 대학진학률이 20%도 안 되는 나라도 많아서 너무 앞선 운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평생학습 운동이 소수의 운동으로 끝나버리고 잠을 자고 있다가 1990년대 말, 또 2008년, 세계적 경제 위기와 함께 독일이 주도한 4차 산업혁명이 붐을 이루면서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전 세계가 빨리 같이 움직이자 하게 된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50년 만의 리바이벌인 셈입니다.

 

 

유한킴벌리가 공식적으로 이런 고민을 한 게 1980년대 말이고, 얼마나 평생학습이 중요한가를 입증해보인 게 1994년부터 1999년까지입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전세계적인 공용어가 됐고, 특히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2007년 1월에 세계경제포럼에 와서 “이제 정부의 모든 조직과 활동과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 일자리와 직장 내 평생학습을 위한 새로운 학습 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메르켈 총리 발언 뒤 1년 9개월 지나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벌어지면서 미국이 무너집니다. 50년만의 리바이벌인 것이지요.

 

유한킴벌리, 사람 해고 대신 설비·토지를 해고

 

이 대목에서 문 대표님이 지휘하셨던 유한킴벌리의 실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내고, 게다가 실행까지 할 수 있었나요?

우선, 당시 저희 회사가 노사분규가 심했습니다. 회사가 망해가고 있었는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회사를 구할 수 없었어요. 두 번째, 큰 위기가 오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사람을 해고할 것이냐, 설비를 해고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대개 설비와 토지, 건물을 남기고 사람을 해고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건물이나 토지는 다시 살 수 있지요. 또 어쩌면 아예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특히 사람을 해고하면 회사 분위기나 노사분규도 더 심해질 것이구요.

또 지금은 사람의 손발만 빌리는데, 이제부터 마음과 머리도 빌려서 집단지성을 만들고 주인의식과 기업가 정신을 발현하게 하면 의외의 생산성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게 이미 선진국에서 다 해본 겁니다. 그래서 우린 사람의 반을 해고할 게 아니라 근무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나머지 반 시간 중에서 일부를 평생학습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건물과 설비를 팔았습니다. 그런 것들을 팔아 생긴 돈으로 3년을 버티면, 어쩌면 노사분규가 없어질지도 모르고 주인의식과 기업가 정신에 의해 사고도 줄어들고 생산성도 늘어날 가망이 있으니 실험을 해보자,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실험을 한지 불과 3~4년 만에 여러 단위별 강성노조가 개혁의 중심에 섰고, 모든 문제가 선순환이 되더라구요.

 

 

그때 다른 나라 모델도 참고를 하셨습니까?

그랬지요. 아무래도 미국과 호주가 모델이었습니다. 제가 호주에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구상을 가져온 게 1983년입니다. 70년대 캐나다와 미국, 80년대 호주에 있을 때 근무시간을 아주 적게 잡으면서도 높은 품질과 생산성을 올리는 걸 많이 목격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기업의 사회운동으로 야생동물 지키기, 녹화운동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고국에 돌아가면 저런 것을 해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때 호주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을 몇 달 전에 봤는데, 그 사람이 “우리가 같이 꿈을 꿨는데, 30년 넘게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자리잡은 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무역입국’이 아닌 ‘사람입국’의 시대

 

지금 대한민국 평생학습은 공공 부문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광역시도마다 평생교육진흥원이 다 생겼지요. 그러나 민간과의 괴리가 있어요. 이 부분을 고민 중인데, 공공 부문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면 좋을지, 공공과 기업이 어떤 식으로 네트워크를 맺고 상생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게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부터 고민이 있어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사람입국 신경쟁력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위원장으로 같이 했는데, 노 대통령이 “이제 25세까지의 교육 가지고는 미래가 보장되는 사회는 아니지 않느냐. 직원 육성, 직원의 경영 참여를 이루려면 평생학습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근로 시간이 전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걸 자랑으로 삼지 말고 이제는 직장 내 평생학습을 통해 가정과 직장의 균형을 이루고, 기술경쟁력을 높이고, 직장 내의 사고나 결함을 최소화하는 사회를 만들 수 없겠느냐”고 해서 만들어진 위원회입니다. 무역입국만이 아니라 이제는 사람에 투자해서, 모두가 혁신과 창업의 주인이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해서 만든 것이지요.

이 위원회에서 뉴패러다임센터가 만들어지고, 2년 동안 함께 했지요. 뉴패러다임센터는 2008년까지 존속을 하다가 새 대통령이 정반대의 길을 가니까 빙하기를 거치다 끝내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센터의 정신을 나름대로 제가 인수해서 지난 9년째 유지하고 있는 게 뉴패러다임연구소입니다. 이번에 국제 노동·고용 관계 학회에서 LLL(직장내 평생학습)88000에 대한 제안과 선언을 유도한 연구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국가연구소가 폐쇄되니까 민간이 그 정신을 이어서 한 것입니다.

 

서울 선언 다음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서울선언이 외국인들만 사인을 많이 할 게 아니라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야 합니다. 사회 각계에서 알게 할 필요가 있고, 정부가 한번더 교육을 국가의 5대 전략에 넣어서 재래식 교육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성공하고 있는, 현장에서의 자발적 학습체제를 보완하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선진 5~6개 지역의 생태시스템(교육 포함)을 서로 교환해 센터가 생기면, 그 센터들이 세계표준을 만들어서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 스타트업, 벤처기업 등 기업 규모별로 성공 사례를 활용해 평생학습을 도입하는 겁니다. 또 그것을 활용한 전사원의 경영참여가 이루어지면 혁신과 창업활성화가 가능하구요. 세계표준 채택까지 빠르면 5년, 길면 10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희는 중국모델보다는 미국 실리콘밸리 모델을 바탕으로 한 학습체제를 한국에 연결시켜 한국 젊은이들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다가 마음에 안 들면 우리보다 10배 이상 큰 미국에서 찾을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든가, 유럽 등의 창업 운동을 연결시켜주는 게 서울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의 국제적 역할이라고 봅니다.

사실 국내에는 4차 산업혁명을 가르칠 교수조차 없어요. 왜? 재래식 교육을 받고 과거 경험밖에 없는 분이 새로운 기술로 박사 학위를 받으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것이지요. 박사 받고 가르치려고 보면 이미 10년 전 기술입니다. 그러니 요즘은 아주 특별한 분야가 아니면 현장이나 프로젝트 베이스로 학습할 방법 밖에 없는 것이구요.

학습과 교육도 경영처럼 소비자, 시민이 중심

 

우리나라에서 평생교육을 공약화했던 최초의 정치인이었는데요, 정치한 거 후회하십니까?

아휴 뭐 행복했지요.(웃음) 다만 제 기업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전 세계적인 위기가 오니까 국민들한테 알리기 위해서 나갔던 거예요. 단기간에 그렇게 폭발적인 지원을 보내주실 줄 알았더라면 사실은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 됐었지요. 특히 서울 은평에 나가 압도적 당선을 했을 때는 그간 기업인으로서만 활동해 왔던 게 미안했어요. 저만 잘 살고 이 어려운 현장을 외면했구나 싶었지요. 곳곳에 다 다른 필요성과 다른 기회가 있는데, 이걸 일반화해서 획일적으로 쉽게 해결하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끓어오르는 애국심, 또 사회 혁신에 대한 열망을 보며 후배들이 잘하기를 바랐는데, 요즘 보니까 후배들이 훨씬 더 잘하고 있어 참 좋습니다.

 

공공 부문의 평생학습 정책이나 사업에 대해 특별한 조언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2010년부터 약 9년 정도의 공백이 있으니까 함부로 언급하긴 좀 어렵구요. 다만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 부문이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가 교육으로 입국한 나라지만, 이젠 평생학습으로 재입국, 재도약해야 합니다. 25세까지 공교육에 취해서 그 다음 50년의 평생학습 기회를 소홀히 하다 보니까 기술이 2~3년이 멀다하고 바뀌는 세상에 준비가 덜 되어 있어요.

국제 사회에 원조를 요청하거나 협력을 요청하면 금세 달려올 겁니다. 평생교육 세계에는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국경을 넘은 협력체제가 있어 문호를 열어놓고 있거든요. 중요한 건 외국은 평생학습을 자발적으로 하는데, 우리나라는 군대문화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평생학습마저도 군대식으로 하려고 해요. 학습과 교육도 경영처럼 소비자, 즉 근로자나 시민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진흥원이나 공무원 교육원, 기업의 큰 연수원들은 자꾸 군인을 만들려고 해요. 독일 병정 같이 굳건한, 애사심이 넘치는 사람. 그런데 그렇게 성공한 경우가 공산주의를 포함해서 하나도 없거든요. 수백만 명이 각각 다른 장점과 다른 여건 속에서 다른 기회를 가지고 있는데, 전부 다 같은 사이즈의 옷을 입을 수는 없잖아요? 개개인의 장점과 기회를 연결시킨 자발적 학습체제가 성공했지, 획일적인 과정을 마치면 증명서 주고, 학위 준 데는 다 실패했어요. 독일과 미국 실리콘 밸리가 왜 성공했는가를 살펴보면 전통 대학이 기득권을 포기했기 때문이에요. 기득권이 모든 사람을 증명서나 학위로 통제하거나 구별하려고 했던 것을 극복했기 때문에 성공했어요.

 

일자리와 집안 문제를 해결하면 평생학습의 자발성 싹터

유한킴벌리가 3일 일하고, 3일 놀던 그 시절에 어떻게 했냐면 먼저 본인이 하고 싶은 것부터 했어요. 아내하고 싸우지 않는 방법, 자녀들과 의견이 다를 때 극복하는 방법, 디지털 디바이스에 의해 자녀들과 의사소통이 안될 때 등 가정사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그 다음에 취미, 즉 낚시나 등산 같은 자기 몸을 건강하게 하는데 썼어요. 그걸 다 하는데 반년도 안 걸려요. 그러고 나니까, 즉 반년을 참아주니까 일부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자신들이 직장의 노예 혹은 공돌이 공순이가 아니라 나도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내가 회사에서 이렇게 사고를 줄일 수 있구나, 이렇게 낭비를 줄일 수 있구나, 이렇게 결함을 줄일 수 있구나, 하게 됐죠. 이게 빠른 사람은 6개월도 안 걸리구요, 버티고 버티던 그룹도 3년 이내 다 자발적으로 기술교육이나 과학교육까지 관심을 갖게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평생학습에서는 기다려주는 인내심도 중요합니다.

옛말에 세 명이 길을 가면 그 중 한 명은 스승이 있다고 했지요. 서울시에서도 서울시를 넘어 나라 전체를 보면서, 모든 일자리와 세상 도처가 평생학습의 터전이고 혁신과 성장의 터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예산은 서울시에서 나오는지 모르지만 그 역할은 전 국민과 아시아, 세계사회를 바라봐야 해요. 그래야 제4차 산업혁명의 과정에서 혜택자가 더 많아질 겁니다. 일자리가 수백만 개 생길 거고, 그 일자리 하나하나가 다 평생학습의 기회이고 혁신과 성장의 터전 아니겠어요? 그래서 평생학습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문국현은 누구인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를 존경해 1974년 유한킴벌리에 입사,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1984년부터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운동을 주도하고,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근로자 감축이 아니라 근로 방식 변경으로 극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킴벌리클락 동아시아 총괄사장직, KT 사외이사직을 사임한 후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5.8%의 유효득표를 얻었다. 이듬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서울 은평구 을)했다. 현재 한솔섬유 대표,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