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잘할 수 없을까’가 만든 명품가방 수선의 달인

좀더 편하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기술 발전의 원동력

서울숲 포휴 105호 명품정. 어떤 문제가 생긴 가방이라도 이곳에 맡기면 새 것처럼 말끔하게 수선이 되어 나온다는 곳이다. SBS <생활의 달인>에 두 번이나 출연해 유명해진 남정현 장인은 이곳에서 4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작업실 바닥과 책상, 선반에는 발디딜틈 없이 수선을 맡긴 가방들이 빼곡했고, 인터뷰 중에도 수선 의뢰 손님들의 방문이 잦았다.

보통은 본드나 아교 등으로 수선하는 가방. 남장인은 밀랍과 마늘 진액을 섞거나, 말린 해삼과 해파리로 접착제를 만들어 쓴다. 한천 가루로 구겨진 가방을 펴기도 하고, 검은 콩과 옻나무 숯으로 만든 검정색으로 염색을 하기도 한다. 한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고 그 부분만 갈면 원래의 가방 모양과 달라지기 때문에 통으로 수선하는 걸 선호한다.

어떻게 이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수선 기법을 생각해내느냐는 질문에 남장인은 “저도 처음 배울 때는 고무 녹여서 접착제로 쓰고 했죠. 그때는 가내수공업으로 기술을 가르치던 시대였으니까. 그런데 일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져요. 좀 더 빨리 할 순 없을까? 조금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 사람이 반복적인 일을 하다보면 10명 중 8명은 그냥 일을 해요. 그런데 1~2명은 다른 방법을 강구하거든요. 그건 실험정신이 투철해서라기보단 일을 좀 더 빨리,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게 결코 나쁜 태도가 아닙니다. 일을 그냥 하는 사람들은 밥숟가락에 밥을 올려줘도 못 먹을 때가 많아요. 하지만 생각을 하며 일하는 사람들은 가르쳐 준 것에 살을 붙여 더 잘하죠.”라고 했다.

다섯 번 실패하고서야 알게 된 수선의 가치

17세에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 취업한 이래로 남장인은 5번의 실패를 겪었다. 자영업을 하다 부도나기도 했고, 홈쇼핑에 가방을 팔다 반품이 쏟아지는 바람에 망하기도 했고, 가방을 만지는 것이 싫어서 다른 사업에 손댔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어 도망치다시피 일본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에르메스 가방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특피라고 하는 악어, 타조, 뱀 등의 가죽을 그때 제대로 다뤄보고 공부하게 되었다.

여러번 실패하고, 빚을 진 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수선을 시작한 지 10여년이 넘었다. 몸이 불편해서 막노동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는데, 다행히 예전에 배워놓은 기술이 있어 가방 수선을 하게 되었고, 그때서야 어른들이 말했던 “기술을 배우면 안굶는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느꼈다고 한다.

가방을 제조해서 판매하는 일은 기다리는 일이다. 이 가방이 마음에 들어서 사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야 팔 수 있고, 그런 손님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수선은 이미 마음에 드는 가방을 산 사람이 그걸 고쳐 쓰겠다고 하는 것이다. 제조와는 다른 의미로 수선이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방을 만들었던 세월이 낭비는 아니었다. 남장인은 가방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전체를 보고 제대로 수선할 수 있었다. “수선만 해서는 테두리만 아는 거예요. 만들 줄을 알아야 수선이 가능합니다.”

중국도 이제는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가방을 만들 때 라인이 분업화되어 있기 때문에 손잡이 만드는 사람은 손잡이만, 재단하는 사람은 재단만, 조립라인은 조립만 할 줄 안다. 하지만 명품정은 패턴에서 미싱, 조립까지 전부 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방의 어떤 부분이라도 제대로 수선할 수 있다.

서로에게 배운다

“우린 서로 배워요.”라고 남장인은 말한다. 기술자들은 자신의 기술을 잘 안 열지만, 남장인은 자신의 기술을 열고 남들로부터도 계속 배운다.

“예를 들어 알바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도 배워요. 가방에 유약을 칠할 때, 저는 세 번 칠하거든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들은 두 번만 칠해도 제가 세 번 칠한 효과가 나요. 약품을 미지근한 온수에 넣는다든가하는 자신만의 기술이 있는 거예요. 그런 작은 포인트들이 결국 일의 차이를 만들거든요.”

35년 동안 가방을 만들고, 10여년 이상 수선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일터에서 배우고 있는 남장인.

“비슷해보이는 가죽 원단도 진한 밤색, 연한 밤색, 붉은 밤색 다 다릅니다. 만약 처음 본 원단의 가방이 들어온다면, 그 가방에 직접 실험을 해볼 수 없습니다. 1만원 짜리 구두굽 갈려다가 200만원 물어주는 게 명품수선계에 비일비재하니까요. 그럴 경우 저는 최대한 비슷한 원단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구해서 실험해봅니다. 돈이 따로 들더라도 그렇게 알고나면 제 기술이 되니까요.”

수선을 맡긴 수많은 가방 중에서 가죽 전체가 해진 샤넬 가방을 들어보이는 남장인.

“이런 가방의 경우 다른 수선업체에선 못한다고 합니다. 염색을 새로 해줄 수는 있지만 표시가 나는 거죠.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생각을 못하는 일 하는 걸 좋아해요. 이 가방의 경우 판 자체를 교체해서 만들어 드리죠. 그런 일들이 재밌어요.”

판에 박힌 일을 그냥 하는 것으로는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고, 배우는 자세가 장인을 만든다는 것을 남정현 장인이 알려주었다.

 

 

 

tip 수선의 도구 나꿔치기 바늘

자신만의 도구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있던 거 다 남들 물려주고 별로 없어요.”하던 남정현 장인은 나무손잡이에 뾰족한 철심이 박힌 도구를 들고 왔다. ‘나꿔치기 바늘’이라는 것인데, 이거 하나만 있으면 수선에 필요한 바느질을 다 할 수 있다. 바느질을 할 때 가죽에 상처가 나면 안되기 때문에 바늘의 거친 부분을 다듬고 손수 갈아 매끈하고 뾰족하게 만들었다. 손때가 묻은 이 바늘은 시중에서 파는 물건이 아니고 남장인이 직접 만든 도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