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세 가지 상자

정년퇴임에 즈음하여 “인생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인생이란 나와 남의 인생을 함께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여행입니다.”라고 답변하였다. 그랬더니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두 번째 질문을 받았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의 존재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입니까?”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의 이익, 일터의 이익, 사회의 이익, 그리고 자연의 이익이 합치되는 일을 하면 성공적인 삶이 되고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우리의 인생은 세 가지의 세계를 거치는 과정을 겪는다. 세상에 태어나서 교육의 세계로 진입하고, 교육의 세계에서 나오면 직업의 세계로 진입하고, 직업의 세계에서 나오면 은퇴의 세계로 진입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세계를 각각 세 가지 상자에 비유하여 “인생의 세 가지 상자(The Three Boxes of Life)』”라는 책이 리차드 볼스(Richard N. Bolles)에 의해 1978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우리의 인생이 세 가지 시기별로 상자에 갇혀있는 느낌을 갖는데, 첫째 시기는 학교에 가서 학습을 하는 삶의 시기, 둘째 시기는 일터에 가서 일을 하는 삶의 시기, 셋째 시기는 퇴직 후에 여가를 즐기는 삶의 시기로 나누었다.

 

그는 교육의 세계에서 학습만 하는 것은 균형적인 삶이 아니고, 직업의 세계에서 일만하는 것도 균형적인 삶이 아니며, 은퇴의 세계에서 놀기만 하는 것도 균형적인 삶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균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교육의 세계에서 학습을 주로 하되 일도 적당히 하고 여가 생활도 즐겨야 하고, 직업의 세계에서 일을 주로 하되 적당한 학습과 여가 생활도 즐겨야 하며, 은퇴의 세계에서 여가생활을 주로 하되 적당한 일과 학습도 해야 균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일이 주과업인 어른들에게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필요하다면, 공부가 주과업인 학생들에게 필요한 워라밸은 런라밸(Learn-Life Balance)임을 알 수 있고, 노는 것이 주과업인 은퇴한 노인들에게 필요한 워라밸은 레라밸(Leisure-Life Balance)임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상자에서 학업을 계속하려면 틈틈이 놀아야 공부할 에너지가 생기는 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잘 노는 방법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게임에 중독되거나 일탈을 하는 등 사회병리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술놀이를 통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고, 음악놀이를 통해서 하모니를 익히며, 체육놀이를 통해서 팀워크를 다지고, 연극놀이를 통해서 정서를 키우는 놀이교육을 학교가 소홀히 해서는 학생들이 런라밸(Learn-Life Balance)을 만들 수 없다. 놀이교육뿐만 아니라 일을 통해 일의 의미를 배울 수 있어야 바른 직업관을 형성할 수 있다.

 

두 번째 상자에서 일을 계속하려도 틈틈이 놀아야 일할 에너지가 생기는 데, 학교에서 놀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세대들은 직업의 세계에 진입해서도 잘 놀지 못한다. 일터에서는 직무수행에 필요한 교육은 제공하지만 레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교육은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노는 방법을 몰라서 잘 놀지 못한다. 주당 최장근로시간을 단축했다고 해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노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상자에서 노는 것이 본업이지만 학교에서도 노는 방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일터에서도 노는 방법을 잘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제대로 노는 본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동네 주민센터를 비롯한 각급 평생교육기관에서 학습을 할 수 있는 교양교육프로그램과 노는 방법을 가르치는 여가생활 교육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직업의 세계에서 은퇴한 노인들도 여가생활과 학습뿐만 아니라 일을 적당히 해야 레라밸(Leisure-Life Balance)을 즐길 수 있다. 양로원이나 교도소를 찾아서 재능기부를 하는 노인들은 레라밸의 좋은 본보기이다.

 

나와 남을 함께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여행을 하려면 인생의 세 가지 상자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하며, 그 공간속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휘하려면 평생학습을 하고 평생일도 하며 평생여가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잘 노는 방법을 잘 몰라서 잘 놀지 못한다. 잘 놀아야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