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투자, 갭이어”

황미연 : 이번에 청년인생설계학교를 준비하면서 서울청년의회를 처음 알게 됐어요. 이혜민 의원은 어떻게 청년의원이 되셨나요?

 

이혜민 :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이라는 청년 그룹이 있는데, 활동한 지 3~4년 정도 됐어요.

스무살 즈음 정치를 잘 알아야겠단 생각에 선거캠프에서 활동했었거든요. 박원순 시장 초선 때 ‘시민캠프’라고 해서 정치와 관련 없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캠프가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이기도 했구요. 물론 부모님이 이끌어 주셔서 그렇게 됐는데, 그런 상황들로 인해 청년정책에 관심이 생겼어요. 당시에는 청년 대상 정책보다 청년이 정책을 만든다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정책 제안을 하려다 알게 된 곳이 청정넷이에요. 전문성 없는 청년들이 모여서 정책 공부부터 시작하는 곳이에요.

 

황미연 : 청정넷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몇 명이나 되나요?

 

이혜민 : 2~3월에 모집을 하고, 멤버십 캠프를 하는데 100명 이상 와요. 전체 인원은 200명이 넘죠. 매해 숫자가 바뀌긴 하는데 보통 200명 이상이에요. 분과별로는 5~10명 정도 되는데, 분과가 다양하니까 다 합하면 정말 많죠. 분과별로 활동하니까 사실 타 분과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의회에서 발표를 하는 분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과도 있어서 서로 존재를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아요.

 

황미연 : 청정넷에서 ‘갭이어(Gap year)’ 분과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이혜민 : 제가 활동하는 ‘사이랩’이라는 청년 커뮤니티가 있는데, 1년 단위로 활동을 해요. 연초에 함께할 멤버를 모집하고 성장해서 연말에 발표회 같은 걸 하면서 수료하는 형식이에요. 그 1년의 과정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계절을 같이 겪는다는 게 3~4개월 함께 보내는 거랑은 다르더라구요. 3~4개월은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1년을 같이 보낼 땐 여름휴가, 추석연휴를 갔다 오면 동력이 확 떨어지거든요. 하반기를 보내는 건 인내심이에요. 그래서 1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됐고, 사이랩 같은 활동을 외국에선 개개인이 각자 하고, 그걸 갭이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3개월도 6개월도 아닌 1년을 쉬는 건 어떤 걸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이랩도 일종의 갭이어가 될 수 있다고 봤어요. 사이랩이 4년차인데, 2015년 한 해를 보내고 2016년에 갭이어를 알았어요. 그래서 2017년엔 갭이어를 직접 만들어보자 했는데, 준비를 많이 했음에도 어려웠어요. 더 많은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2017년부터 청정넷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갭이어에 대한 청년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기회로 삼자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갭이어라는 분과를 따로 만들게 됐고, 제가 제안한 사람이라서 자연스럽게 모임지기가 됐죠.

 

갭이어가 무엇인지 한국 청년들의 입을 빌려서 정의하고, 서울시에 갭이어라는 게 필요하단 걸 제안하자고 했던 게 갭이어 분과를 만든 배경이에요. 작년에 갭이어 분과가 등장한 후 청정넷 안에서도 강력하게 정책으로 추진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작년 청정넷 메시지가 청년들의 자존과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는 거였거든요. 올해는 좀 더 다양성을 갖춘 서울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1년 혹은 그 이하의 일정한 시간을 주고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자는 갭이어가 그런 흐름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인정받는 공백, 청년인생설계학교

 

황미연 : 발의하신 내용이 청년인생설계학교라는 이름으로 곧 시작되는데, 청년의회에서 구상하셨던 것과 흡사한가요?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혜민 :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하기 조심스럽고, 어떻게 구현될지 생각해보는 게 쉽지 않아요.

처음 발의할 때는 ‘공백’ 자체에 좀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인정받는 공백이요. 지금 사회는 청년들에게 “왜 젊은 나이에 놀고 있냐”고 다그치는 사회잖아요. 그런데 청년인생설계학교는 공백을 준비하기 위한 설계를 배우는 시간이잖아요.

 

 

갭이어라는 공백이 존재하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고, 사회가 어떻게 이해하는지 이후 작업도 필요한데, 작년에 발의할 때는 그냥 공백 자체만 보였지 전후 작업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 정책이나 청년인생설계학교가 제가 발의했던 것과 다른 방향은 아닌 것 같아요. 어쨌든 서울시에서 하는 일이니까 메시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스스로 서서 살아가기 위한 준비는 누구나 필요한 거고, 그 준비를 혼자 못하는 건 틀린 게 아니다.” “지금 당장 쉬라고 하면 불안하지? 그 불안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거다.”

이 학교가 시범적으로 시행된 후가 기대되고, 정책을 계속해서 지켜보려는 마음이 있어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게 아니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교육을 서로 협조하고 연대해서 하자는 거죠. 감시하는 주체는 이미 너무 많잖아요. (웃음)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이 많이 변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예전 마음과 비교하기보다는 여기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실제로 무엇을 기대했고,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시 공무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더 많은 청년들이 이런 걸 경험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어요. 외부에선 공무원들이 맨날 탁상공론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들은 너무 알고 싶은데 모르는 거예요. 요즘 청년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알려달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지 못한 것들도 많이 지적할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청년인생설계학교에 참여하고 싶어도 알바하느라 이 정도 시간도 못내는 청년들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은 기존의 어떤 정책도 도움이 안돼요. 청년수당도 한 달에 50만 원꼴인데 그걸로 생활이 안 되잖아요. 그들이 이 학교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시는 걸 보고, 당사자보다 더 청년들에 대해 고민하시는구나 싶었어요. 저는 이제 일반적인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입법자들과 정책 공무원들을 너무 이해하게 돼버렸어요. 그래서 미지의 청년들 이야기를 듣는 게 유의미하다고 봐요.

 

청년들에겐 쉼이 미래에 대한 투자일 수도

 

 

황미연 : 사실 청년들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도 실제 당사자가 아니니까 제대로 이해하긴 어렵잖아요. 앞으로도 서울시가 여러 청년 정책들을 추진하게 될 텐데, 혹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혜민 : 되게 많아요. 사실 백번 이해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게 정말 많아요. 모르는 걸 못 두고 보시는 거예요. 공무원이나 준공무원이나 젊은 날에 굉장히 노력하셔서 그 트랙에 올라타시면 흔들릴 일이 별로 없으시잖아요. 근데 저는 지금의 청년들이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거든요. 미사일이 떨어진다고 했다가 통일이 된댔다가 또 아니랬다가, 페미니즘도 그렇고 이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졌던 것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던지 다양한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분들은 청년들이 근면하게 노력하고 싶지만 사회가 따라주지 않으니 도와주자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저는 불안정하지만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기도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들은 혈세를 쓰기 때문에 공백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수당도 그걸 가지고 놀면 안 되고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해요. 근데 청년들에겐 쉼이 미래에 대한 투자일 수도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치킨 사 먹고 예능 프로그램 보고 여행 다녀오는 게 투자일 수도 있는데, 이전의 경제 발전 시대에 맞춰 생각하니까 노력하지 않는 시간에 대해 이해를 못하시죠. 아무리 인류애가 있으신 분이라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저를 보면서 모든 청년들이 혜민 씨처럼 열정적으로 시간을 썼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근데 저도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거든요. 그분들의 자녀는 정말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쉼이라는 게 마이너스가 아니라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겪어보지 않은 걸 이해하는 건 당연히 어렵지만, 서울시 청년 정책은 대학생 위주인 경우가 많아요. 대학교육 밖에 있는 청년도 많거든요. 왜 그들이 대학 밖에 있는지, 그들의 삶이 어떤 건지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아요. 대학에 가지 못했던, 가지 않았던, 갔다가 탈출한 청년들이 적지 않아요.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70%가 넘지만, 졸업률은 그렇지 않거든요. 대한민국이 대학 중심적 사회이고 청소년기를 대학, 대학 하면서 보낸 친구들이 90% 이상이잖아요. 그들이 중퇴나 장기휴학, 졸업유예 등 다양한 변수를 택하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대학을 둘러싼 일들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존의 인생설계도는 너무 낡아서 누구에게도 맞지 않아

 

 

황미연 : 우리 사회가 당장 ‘갭이어’라는 걸 인식하고 인정하면서 청년들에게 쉬라고 얘기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초등학생 딸에게 쉬라고 말하고 싶은데 도태될까봐 두렵거든요. 요즘 청년들 2~3년 정도의 공백만 있어도 취직이 잘 안 된다고 그러잖아요. 사회 분위기와 구조 같은 것들이 쉽게 바뀔 수 있을까 싶어요. 대학 졸업하고 창업이나 스타트업을 해보고 싶은 친구들 많이 있는데,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서른이 넘고, 그러면 또 취직이 어려울 텐데 싶은 거예요.

 

이혜민 : 당사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그거예요. 어떤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면 바로 도태된다고 생각하죠. 개인적으로는 대학 나와도 취업 힘들다고 봐요. 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대학 잘 간 친구, 그렇지 않은 친구 다 대학원 가요. 석사과정 한 3년씩 하죠. 지식들은 막 쌓였는데 활용할 곳이 없어서. 아주 운 좋게 취업한 친구들도 승진이 안돼요. 위에 다 버티고 계시니까. 장년층들이 너무 장성하시니까. 지금은 50~60대 분들도 사회적 에너지가 좋으니까 활발히 활동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들어가도 5~6년씩 막내인 거예요.

교육기관에서 완전한 성장을 이뤄낼 순 없다고 봐요.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현장에서 훈련하고 또 자라난다고 보는데, 그런 경험을 지금은 직장에서는 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취업한 친구들 얘기 들어봐도 직장이 나를 훈련시켜주기는커녕 부속품, 소모품으로 느끼게 한대요. “아파? 쭉 아파. 휴가 써. 영원히 써.” 그러는 거죠. 정성들여 길러주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처럼 키워주는 게 아니라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대체품처럼 여긴다고 해요. 인생에 있어 일이 큰 의미가 없는 거예요. 돈 버는 수단일 뿐.

 

 

밀레니엄 세대들의 특징이 일에서 돈과 의미를 같이 찾으려 하는 거래요. 이제는 청년들이 뭘 하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해요. 버텨서 열매를 따는 것만으로는 소용없어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해요. 그래서 취직하지 않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취직해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그게 계속 미완성이라면 취직 후에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돈을 벌고 안 벌고의 차이라면 알바해서 벌어도 된다고 봐요.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한 번은 쉬어봐야 해요. 대부분의 청년들은 계속해서 어딘가 소속된 상태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무소속 상태를 모를 거예요. 그러면 삶의 다양한 방식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쉼이라는 게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위한 준비일 수 있다고 봐요.

 

 

취직도 자기 필요에 의해 해야 더 버틸 수 있는 건데, 취직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나요? 지금은 엄청난 저성장 사회이고, 세대교체가 그만큼 느리다는 걸 이해해야 해요. 임금을 좀 더 줘서라도 숙련자들을 쓰지 대학 나와 미완성인 사람을 길러내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저도 물론 친구들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기에 갭이어를 권유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서울시가 해야 한다는 거예요.

 

황미연 : 이혜민 의원은 갭이어를 경험하셨나요? 처음 갭이어의 필요성을 어떻게 느끼셨어요?

 

이혜민 : 저는 5년을 무소속 상태로, 자유인으로 살았어요. 물론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삶의 설계도가 생기고, 이쪽이나 저쪽은 아니고, 이렇게도 꺾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친구들에게 5년은 무리일 수 있어요. 자퇴가 싫으면 휴학이라도 해보라고 해요. 공공 시스템이 허락하는 한 그걸 최대한 활용해서 한 번쯤 쉬어봤으면 좋겠어요. 사적으로 보낸 시간은 증명할 수가 없으니까 공적으로 보내는 갭이어가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이 친구들이 덜 불안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으로 녹록치 않은 상황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방식으로 살 순 없어요. 다양성의 시대이고, 기존의 설계도는 너무 낡아서 누구에게도 맞지 않거든요. 어린이나 청소년도 마찬가지예요. 저희 엄마가 어렸을 때 교련복 입고 군사훈련을 받으셨다고 해요. 사립학교는 그 시절에 선생님이었던 사람들이 아직도 선생님을 하는 거예요.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 21세기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마인드는 19세기에 있는 거죠. 현재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고 교육으로 지원해야 해요. 이런 얘기 하면 “5년간 놀았다고? 있는 집 애일 거다” 그러는데 아니에요. 돈을 특정 용도로 몰아서 썼을 뿐이에요.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잘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 삶에 후회가 없어요.

 

 

정책과 공공은 느릴 수밖에 없어

 

황미연 : 이혜민 의원은 나이에 비해 굉장히 성숙하고 독립적이에요. 요즘 청년들은 취직, 결혼 등에 있어서 정해져있는 시간표에 늦을까봐 조마조마하고 불안해하잖아요. 저 역시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마음이 딸한테도 가는 거예요. 중학교 갈 준비하라고 하고. (웃음)

그런 면에서 의혜민 의원의 부모님이 궁금해요. 어떤 분들이신가요?

 

 

이혜민 : 그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고, 심지어 저도 있어요. 그냥 견디는 거예요. 철학 공부 열심히 하면서 ‘200년 전에 산 사람들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하는 구나. 다 지나가는 거겠지.’ 하면서요.
제가 5년간 한 달에 50~60만원씩 벌면서 살았잖아요. 부모님께 불안하지 않으시냐고 여쭤보면 “그래도 빚은 없잖아” 나중에는 엄마가 “네 아빠랑 손 꼭 잡고 이겨냈다”고 하셨지만요. 저한테 적어도 내색을 하지 않으셨어요. (웃음)

 

제가 어릴 때 몸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건강하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최대한 행복한 방법을 고민하신 거죠. 부모님들에겐 많은 갈림길이 있어요. “1억은 모아야 해”, “내 집 마련을 해야지” 등등. 자식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으니까요.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이죠.

 

저희 부모님은 기존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의 범주 안에서도 행복하지 않은 애들을 많이 보신 거예요. 엄마는 교육 관련 공부와 일들을 하셨고, 아빠도 주변에서 많이 보셨죠. 그 삶의 경험 속에서 본질을 보신 거죠. 저희 부모님은 삶의 조건 같은 걸 설정할 때, 저의 주체성이나 독립성을 존중하셨어요. 자기주장을 하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시곤 뒤에서 불안해하신 거예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대안학교를 다녔는데, 부모님이 저 몰래 맨날 학교 와서 선생님 만나고 친구들 만나고 그러셨대요.

 

저는 행복이라는 게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반은 운이고, 반 정도만 조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반만 잘 맞추면 내가 행복할 수 있구나 생각해요. 물론 제 삶을 일반화할 순 없어요. 그래서 공간 민들레에서 10대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한대로 하라곤 안 해요. 그렇지만 제가 시도한 방법들 중 몇 가지를 알려주고, 그게 잘 맞으면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하죠. 제 경험은 상황이 좋아서 가능했을 수도 있고, 지금 후회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다른 걸 선택했어도 그 정도는 좋고, 나빴을 거라는 뜻이지 항상 좋았다는 건 아니에요. 제 삶을 본 따서 정책을 만들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엄청난 우연적 조건들이 결합돼서 가능했던 거예요.

 

어쨌든 청년인생설계학교도 그런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좋은 거예요. ‘자기주장을 잘하는 청년’, ‘글로벌 리더’ 같은 특정한 인재상이 있는 정책이었으면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았을 거예요. 100% 성공한다는 설계도는 존재하지 않아요. 엄청난 정보와 다양한 가능성을 조립해야 하는 세대예요. 요즘 너무 정보가 많고 갈 수 있는 데가 많으니까 친구들이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큐레이팅된 소스들이 던져져야 해요. 일단 줘보긴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지금 정책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정책과 공공은 느리고 딱딱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왜 사각지대까지 왜 봐주지 않느냐는 불만은 없어요. 그렇지만 계속 씨를 뿌려야죠. 요새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처럼 중간 영역에서 확장하는 사회가 필요하죠.

 

그 세대를 지났어도
그 세대를 연구하고 중요성을 얘기할 것

 

 

황미연 : 평소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관심 분야도 궁금해요.

 

이혜민 : 혼자 있을 때 제일 바빠요. 시중에 있는 SNS를 다 해봐요. IT에 관심이 많아서 블로그도 온갖 툴을 다 이용해서 해요. 요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이용해 주로 정보를 수집하고, 사회혁신 영역의 친구들이 많아요. 5년간 놀았던 게 아니기 때문에 지인이 다종다양해요. 중학교는 대안학교를 다녔고, 고교는 인문계고를 다녔어요. 또 청년 이슈에 관심 있다는 걸 아니까 친구들이 많이 물어보고 선생님들하고도 많이 얘기해요.

 

 

생각보다 책은 많이 안 읽구요. (웃음) 패션잡지를 맨날 봐요. 무비판적으로 보진 않죠. 기본적으로 미의식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엔터테인먼트도 좋아해서 아이돌 영상이나 뮤직비디오도 많이 보고 화보도 많이 봐요. 그런 걸 많이 흡수하고 생각하죠. ‘이게 왜 유행할까? 멋져 보이나? 나한테 예뻐 보이는 게 남한테도 그럴까?’ 그런 생각이 쌓이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요즘 뭐가 유행하는데 봤어?” 하고 묻죠. 저 엄청 마마걸이에요. 남동생하고는 3살 차이인데, 20대 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붙잡고 앉아서 많이 얘기해요. 생각이 많고 섬세한 스타일이라 자기 생각을 잘 얘기해줘요. 그런 대화를 통해서 많이 축적하고 있어요.

 

황미연 : 사회적 활동이 많은 편이신데, 앞으로 목표나 삶의 지향점 같은 게 무엇인지 소개해 주세요.

 

이혜민 : 설계도 같은 걸 어느 정도 그렸다고 말씀드렸는데, 앞으로도 쭉 청소년과 청년들에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왜냐면 일단 모든 인간은 생애주기로 나눌 수 있잖아요. 나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니까. 저에게 가장 깨달음을 주고, 일하면서 즐거웠던 분야는 청소년, 청년들이었어요. 지금 사회변화에 발맞춰서 제일 바뀌고 있는 것도 그 세대들이고, 그런 경향을 분석하는 것도 재밌어요. 더 이상 당사자는 아니지만 청소년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청소년 참정권에 관심 가지면서 ‘청소년기가 끝나도 나는 이걸 공부할 거야’하고 다짐했어요. 청소년기가 지나면 멀어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서울시만 봐도 노인, 아동, 신혼부부 등에 비해 청년을 위한 예산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청년기를 지나가면 청년 이슈를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세대를 지났어도 그 세대를 연구하고 중요성을 얘기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늙어서까지 계속 배우는 자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해요. 나이 들어서도 뭔가 사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뭔가를 계속 배우려고 하고, 삶에 대해 탐색하고 사색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사회에 내 자리가 있을 것 같아요.

친구들은 나이 먹는 게 두렵다고 하는데, 저한테 노후대비는 저축이나 내 집 마련이 아니라 제 방식으로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되는 거예요. 연구자적 자세, 객관적인 태도, 분석하는 생활 등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