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패션계 입체패턴의 역사를 쓴 입체패턴사 서완석 명장

재단사의 시대에서 디자이너의 시대로

옷을 만드는 사람을 디자이너라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재단사가 옷을 만들었다. 입체패턴 연구소 서완석 소장이 명동에서 일하던 70~80년대 의상실에선 재단사가 왕이었다. 의상실에서 일하는 사람 중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도 재단사뿐이었다. 손님들이 일본 잡지를 찢어와 비슷하게 만들어달라고 하면, 재단사가 체촌(몸의 치수를 재는 것)을하고 재단하여 가봉해 옷을 만들었다.

80년대에 기성복 시장이 형성되면서 패턴사가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넘기면, 재단사가 원단을 자르고, 그레이딩사가 몸 사이즈에 맞게 재단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등 분업화가 시작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야 디자이너가 패션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서소장은 디자이너와 재단사는 동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디자이너는 이름을 날리고 유명세를 타지만 재단사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서소장은 “요즘 디자이너 중에는 그림을 그릴 줄만 알지 재단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사람의 몸에 맞는 멋진 옷을 만들려면 재단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한다.

 

 

스스로 개척한 입체패턴의 길

서완석 소장은 국제복장학원을 나와 70년대에 명동 의상실에서 일하다 82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입체패턴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패턴은 평면패턴과 입체패턴으로 나뉘는데, 평면패턴은 종이에 그리는 것, 입체패턴은 마네킹에 그리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빠르다. 한 판으로 만드는 스커트, 이음매 없는 드레스 등은 평면 패턴으로 만들 수 없고, 입체로만 풀 수 있다. 입체패턴으로 옷을 만들면 세월이 흘러도 옷의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이제 입체패턴의 시대가 시작될 거라는 포부를 안고 한국으로 돌아와 1984년에 입체패턴 연구소를 차렸지만, 시기상조였다. 여전히 주어지는 일은 평면패턴이었고, 호구지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입체패턴이 무엇인지 보급해나갔다. 그렇게 14년이 흘러 드디어 기회가 왔다. 1997년 제1회 서울패션위크에서 프랑스 디자이너 마들리네 비오레의 옷을 입체패턴으로 만들어 전시하면서 서완석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때마침 <새로운 패턴의 기법>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도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한국 최초의 입체패턴사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대학 강의도 시작했다.

 

 

40년을 공부해도 어려운 입체패턴

이미 20년 전에 피에르 가르뎅이 “더 이상의 새로운 디자인은 없다”고 했을 정도로 디자인에선 나올만큼 나왔다. 이제는 소재와 기교로 차별화를 둘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디자이너도 입체패턴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요즘 해외에 뜨는 디자이너들은 전부 입체 재단을 한다. 이세이 미야케의 독특한 주름, 한국 디자이너 루비나의 콜렉션 등이 그렇다.

재단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다. 서소장은 “인체는 20대, 40대, 50대의 체형이 다 다르고, 소매통이나 진동둘레의 유행 역시 시대마다 달라요. 70년대에는 사람 몸에 맞는 재단을 일류 재단으로 쳤어요. 당기는데 없고 우는데 없으면 좋은 재단이었죠. 그런데 기성복이 만들어진 이후 자기 체형을 감추는 옷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예쁜 틀에 체형을 맞춰요. 체형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재단이 각광받고 있는 거죠. 이렇게 달라지기 때문에 40년을 해도 어려워요.”라고 했다.

50대 여성의 테일러드 재킷에 관한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서소장은 나와 있는 모든 패턴책이 20대 여성의 몸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50대를 위한 패턴책을 쓰고 싶다고 한다.

“주변에선 다들 말려요. 나이 들어 좀 쉬지, 뭘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하냐고. 하지만 저는 계속 하고 싶습니다. 공부에 끝이 있나요?”

후배들의 논문도 도와주고 싶고, 100세시대에 50대 이상을 위한 패턴 원형도 만들고 싶고, 손이 고운 제자들을 소수만 가르쳐 고급인력을 배출하는 일도 계속하고 싶다. 혼자서 개척하고 길을 만들어간 명장다운 바람이었다.

 

 

tip 입체패턴의 대가들

요지 야마모토 : 검은 색의 자루 같은 불규칙적이고 비대칭적인 옷으로 1980년대를 풍미한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 그를 설명하는 말은 해체주의, 포스트모던, 아방가르드 등이다.

준야 와타나베 : 꼼데가르송의 수석 디자이너. 여성복에선 새로운 개념의 재단과 독특한 드레이핑을 선보였고, 남성복에선 텍스처가 드러나는 피니쉬, 패치워크를 선보였다.

아제딘 알라이아 :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디자이너. 밀착의 귀재, 타이트의 거인. 여성의 몸에 밀착한 관능미 넘치는 패션을 선보였다. 마돈나, 나오미 캠벨의 의상 디자인.

이세이 미야케 : 비구조적인 평면성과 비대칭적인 무정형을 기반으로 착장에 따라 달라지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저지 한 장으로 만든 옷 (A Piece of Cloth : A-POC)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