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공경 운동으로 ‘새마을운동 시즌2’ 열자

근면, 자조, 협동.

40~50대 이후 중년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다가도 툭 치면 술술 나오는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이다.

지난 3월, 제24대 새마을운동 중앙회장에 취임한 정성헌(74)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 3대 정신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 대신 생명·평화·공경의 새로운 가치를 높이 들고 ‘새마을운동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정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문명의 대전환기를 맞아 생명·평화·공경운동으로 새로운 문명사회를 건설할 것”을 새마을운동의 새로운 목표로 정하고, 운동의 방향도 생명과 환경의 위기 등 사회 상황의 근본적 변화에 대응하는 쪽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새마을운동 중앙회장 정성헌’이 특별히 눈길을 끄는 이유가 있다. 우선 그의 삶의 궤적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변단체인 새마을운동 중앙회의 수장 자리와 애당초부터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정외과 1학년 때인 1964년,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6·3시위에 참여해 최연소인 18세에 첫 투옥된 뒤 거의 모든 역사적 전환기를 정면으로 돌파해 온 ‘진보 진영의 원로’가 박정희의 가장 큰 정신적 유산의 상속자가 된 셈이니,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이 맞다. 한국가톨릭농민회 부회장과 민통련 상임 집행위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 집행위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자 농민운동의 대부였다. 이런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혼이 서린 새마을운동의 전국 책임자 자리를 맡았다는 사실은 관심을 넘어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모두 네 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박 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분이 박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가장 큰 조직의 수장이 됐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맡은 뒤 했던 모든 인터뷰의 첫 질문이 그거예요. 박 전 대통령에게 그렇게 고통당하고, 어떻게 이 조직을 맡았느냐? 저는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과를 따져보면, 산업화는 가난을 벗고 밥을 먹어보자는 것이었고, 민주화는 사람이 밥만 먹고 사냐, 말을 제대로 하고 살자는 것이었지요. 이 둘은 대립되는 게 아니라 크게 보면 서로 승수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어느 단면에서는 대결했는지 몰라도, 크고 길게 보면 밥과 말이 같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밥은 먹고 살잖아요? 말도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까? 산업화와 민주화가 상생작용을 해서 함께 이룬 성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분법적 과거는 극복을 하고,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밥도 먹고 말도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 안전하고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거든요. 먼지 걱정, 물 걱정, 더위 걱정 따위를 한단 말이에요. 이런 큰 문제를 정직하게 다루는 게 중요하지, 과거에 연연해 박정희와 김대중을 말하는 건, 작은 이야기입니다.

 

 

연수원 뜰을 갈아 직원들이 심은 유기농 머루 열매를 살펴보고 있다.

정부 지원 전무, 민주시민교육 등 교육에 집중할 것

꽤 오래된 조직인데, 정권이 바뀌면서 부침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1970년에 당시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처음 제창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강조했고 조직은 만들지 않았어요. 정신 교육을 하고 성공 사례를 만들어 확산하는 캠페인성 운동을 한 겁니다. 별도의 특별법이 제정돼 전국적인 조직이 만들어진 건 1980년 신군부 시절이었지요. 그 뒤로는 고위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들은 의무적으로 새마을운동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구요. 그러다가 1992년 김영삼 정권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자율화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새마을운동을 관변운동으로 착각하지만 1990년대에 이미 조직이나 운동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지요. 지금도 새마을운동에는 정부 예산 지원이 없습니다. 취임해서 들여다보니 얼마나 돈이 없었으면 작년에 24억원이나 꾸었더라구요.(웃음) 예산 지원은 없지만 교육기관이니까 법에 의해 시설 보강 등의 지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취임하면서 정신교육만으로는 안 된다, 민주시민교육, 적정 기술에 대한 교육, 4차 산업기술에 대한 교육 등 새로운 교육을 바로 여기 새마을운동 중앙회 연수원에서 하겠다, 이렇게 정부에 건의했고, 행정안전부에서 이 건의를 받아 들여 새로운 교육시설로 지원하기로 확정됐습니다.

 

인터뷰 팀을 유기농 농작물 밭으로 안내하고 있는 정 회장.

 

아하, 그럼 새마을운동 연수원이 저희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과 경쟁 관계인 셈이네요?(웃음)

경쟁자가 아니라 동업자지요.(웃음) 우리가 장소 제공은 할테니, 전문성이 있는 평생교육진흥원쪽에서 인재와 콘텐츠를 지원해주면 좋겠습니다.(웃음)

저는 운동이 생활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도술이 뛰어나야 된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도’는 운동성과 대의명분, ‘술’은 방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는 뛰어난데, 술이 엉망이고, 어떤 사람은 술은 잘하는데, 도가 없어요. 저는 이 두 가지가 다 뛰어난 사람을 만들고 싶은 겁니다.

 

곳곳에 들어선 유기농 텃밭…부서별 김매기도
영농형 태양광발전 위한 시험단지 조성중

인터뷰 초반, 영농형 발전 농지에서 유기농으로 지은 깨로 만든 참기름병을 들어 보이고 있다.

 

회장실에 들어선 뒤 의자에 앉으려니까 앉아 있던 정 회장이 일어서며 일행을 막아선다.

아, 인터뷰하기 전에 보여줄 게 있어요. 지금 이 탁자 위에 참기름 한 병이 있는데, 이게 영농형 발전을 하는 농지에서 유기농으로 지은 깨로 만든 참기름입니다. 진짜배기 참기름이지요. 영농형 태양광 발전이란 게 무언지 잘 모를텐데, 본격적인 인터뷰를 하기 전에 나하고 밖에 나가서 뭘 좀 보고 옵시다. 내가 와서 여기 부지 곳곳을 갈아엎고 유기농 텃밭을 새로 조성했는데, 이걸 봐야 해요.

일행은 그를 따라 회장 집무실을 나섰다. 본부 건물과 연수원 강의동 사이에 있는 꽤 널찍한 공간들은 이미 갈아엎어져 텃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에는 음양오행에 맞춰 동쪽에는 파란색 부추 등 간과 담에 좋은 식물을, 서쪽에는 하얀색 파, 도라지 등 폐에 좋은 식물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일단 이렇게 시작을 해놓으니 중앙회 직원들이 부서별로 김매기도 하는 등 자발적으로 가꾸게 되더라구요. 숲에 나무를 심을 때도 환경에 더 좋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큰 나무보다 작은 나무들이 광합성을 많이 하고 산소를 많이 내뿜지요. 우리나라에 흔하게 심어진 일본 잣나무의 경우, 다른 식물들이 기피하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종 다양성을 해칩니다.

 

정 회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중앙회 부지를 돌아보던 중 한창 포크레인으로 땅을 다지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이 바로 영농형 태양광발전을 위한 시험단지라고 한다. 직접 태양광발전을 하며 유기농사를 짓고, 계산을 뽑아 수익을 낸 성공 모델을 전국 곳곳으로 확산하기 위한 시범사업이란다.

일본에는 태양광발전 단지가 전국에 1500여 군데 있는데, 한국에는 아직 한 곳도 없어요. 여기 새마을운동 중앙회에서부터 시작해 전국에 1만 군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밭에는 오는 10월부터 쌈채소 등 농사를 지어 먼저 새마을연수원 구내 식당에 공급할 예정입니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있을 때도 평범한 사람들, 특히 농민이나 서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운동의 앞길에서 격렬한 저항의 몸짓으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대개 이상주의자인데 반해 그는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고 운동의 현실성을 고민했다. 이런 모색과 고민은 일찍이 생명운동과 생태운동으로 그를 안내했고, 그리하여 정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현실에 근접한 생명운동가이며 가장 설득력 있는 생태이론가로 우뚝 서게 됐다.

 

정성헌 회장이 생명·생태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지난해 펴낸 연작 만화책 <2030 생명의 길> 제1권 표지와 내용. ‘불·물·밥, 그리고 사람’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만화책은 특히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보급됐으면 하는 기대에서 ‘2030’이라는 숫자를 넣었다. 그림은 탁영호 화백이 그렸다.

미투운동, 학생인권운동도 공경이 바탕을 이루어야

아마 새마을운동 조직이 현존하는 사회단체 조직 가운데 가장 방대한 전국 조직일 것 같은데, 조직 현황은 어떻습니까?

이곳에 중앙회가 있고, 그 아래 17개 시도 광역지부가 있습니다. 그 밑에 227개 시군구 지회 조직이 있구요. 읍면동에는 3천개가 넘는 실핏줄 조직이 있고 그 아래 또 마을조직이 있습니다. 새마을운동 관련 단체들도 있어요. 새마을부녀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직장협의회, 새마을문고중앙회, 새마을금고 등등.

이렇게 다 합하면 새마을운동 회원이 전국에 206만 명에 이릅니다. 그 중 8할이 여성들이예요. 어디서나 여성들이 봉사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다만 자체 반성을 하면서, 왜 새마을운동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냐? 대가 끊기냐?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제가 새로운 운동을 하려는 겁니다.

 

중앙회 부지 한켠을 포크레인으로 갈아 조성 중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 시험 단지.

제가 중학교 다닐 때 ‘근자협, 근자협’ 하면서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을 외우고 다녔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이었는데, 사회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였지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면 이 정신, 이 목표가 바뀌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지난 6월 11일 열린 중앙 이사회에서 제가 새마을운동의 새로운 추진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그게 바로 생명, 평화, 공경의 3대 목표입니다. 그 발표 뒤 생명, 평화는 알겠다, 근데 공경은 또 뭐냐?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봉건시대 용어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는데,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가 겸손하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예요. 그래서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공경 운동을 하자고 한 겁니다. 예를 들어 올해 우리 사회를 달군 미투운동을 봅시다. 미투운동이 주창하는, 남성지배구조를 폭로하고 여기에 항의하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결말이 지어질지는 대개 짐작이 가잖아요? 1대1의 대립구도로, 여성과 남성이 싸우는 구도로 간단 말이예요. 그렇게 되면 원래 미투운동을 했던 여성들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이 아니라 더 나쁜 세상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미투운동이 제대로 되려면 생명으로서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혐, 여혐이 되어버리지요.

대표적인 게 학교인데, 학생인권운동의 경우에도, 우리 애가 따귀를 맞았다, 폭언을 들었다 하면 자세히 알아보기도 전에 우선 인터넷에 올리고, 학교 가서 따진단 말이에요. 그럼 학교는 그 순간 교육기능이 중단되고, 선생과 학부모가 싸우는 곳이 되어버립니다. 학부모가 스승을 공경하고, 아이들이 스승과 부모를 공경하고, 선생은 아이들과 부모를 공경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진짜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것이지요.

나는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차원 높은 걸 추구해야 한다고 봐요. 즉, 개혁을 하고 싶으면 혁명을 추구하고, 혁명을 하고 싶으면 개벽을 추구해야 잘 된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돈 얘기를 하기보다는 사람 사는 얘기를 많이 하자, 그런 말씀이지요.

 

중앙회 본부 벽면에 걸려 있는 새마을 3대 정신 액자.

 

우리밀 한 평 심으면 산소 2.5Kg 배출

 

운동권 출신으로는 일찌감치 생명, 평화, 생태운동 등에 관심을 가졌는데요. 처음 이런 쪽의 운동을 시작한 게 언제입니까?

이 질문은 우리나라 전체 운동에도 관련이 있으니까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1970년대에는 농촌에서 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식량을 증산하는 녹색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도시에서는 중화학공업이 시작되었구요. 이때 ‘공해’라는 단어가 처음 생겼습니다. 인류 전체적으로 보면 총생산량이 총수요를 넘어선 최초의 시대가 1970년대입니다. 생산이 넘치니까 쓰레기가 나오고, 공해문제가 대두된 것이지요. 그때 가톨릭농민회(가농)에서 농약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을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효소 농법을 시작합니다.

1980년 광주 항쟁 이후, 가농에서 내부적으로 반성을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의 뿌리가 되는 원인이 무엇이냐 따져봤더니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반생명성, 폭력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결론이 나왔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두 가지 구호가 만들어 집니다. 하나는 ‘농촌 사회의 민주화’였고, 또 하나는 ‘공동체적 삶의 실현’이었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민주화가 사회적으로 큰 화두였기에 둘 중 민주화에 치중했고, 자본과 과학을 넘어 모든 인간과 생명체가 공동체적 삶을 실현하자는 두 번째 목표는 뒤로 미뤄지게 됐습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생명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생명운동을 대중적으로 퍼뜨리기 위해 시작한 게 바로 우리밀살리기 운동이었어요. 1989년부터 준비를 해서 1991년에 시작했지요. 운동을 하려면 꼭 준비를 해야 됩니다. 준비 없는 운동은 없어요. 내가 수십년 운동을 해 왔지만 운동에서 자동적인 발화는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할 당시 건빵 이름을 제가 ‘우리밀 2.5 건빵’이라고 지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밀 한 평 심으면 산소 2.5Kg이 나온다는 의미지요. 수입밀은 수입할 때 15종의 농약과 방부제를 치지만, 우리밀은 늦가을에 심고 봄에 수확하니까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안 쳐도 됩니다. 그러니 건강에 훨씬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이런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겁니다. 1인당 1만원씩 내서 우리밀살리기 주주가 되자는 운동을 했는데, 15만8천명이 모여 1990년대 초반에 38억원을 모았습니다. 당시 한겨레신문 주주가 7만명이었는데, 우리밀살리기 주주가 15만8천명이었다면 엄청난 숫자인 셈이지요. 한겨레는 말, 우리밀은 밥 아니겠습니까?

 

 

우리밀 사업의 수익은 어땠습니까?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수익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데요.

초기에는 수익을 냈어요. 그러다 밀의 양이 늘어나니까 수매자금이 없어 농협에서 돈을 꿨는데, 이자와 창고보관료로 많이 나갔지요. 사실 농민들에게 대출하는 정책자금 이자는 5%인데, 우리밀살리기 쪽에는 일반 금리를 적용해 12.8%를 받았어요. 실제로 땅을 정상화하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국민운동에 역대 정권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책 금리 5% 해주는 게 뭐가 어렵습니까? 본부장을 할 때 내가 하는 일이란 게 돈 꿔서 이자 돌아오기 전에 갚는 거였어요. 그때 중소기업 사장들의 애환을 훤히 꿰게 됐다니까요.

지금은 우리밀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졌지만, 당시에는 조금만 생산이 많아지면 재고가 쌓여요. 그게 수입밀보다 약간 더 비싸서 그런 건데, 그렇게 비싸지 않거든요. 2천원이면 우리밀 국수 4인분 살 수 있거든.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싶어요. 많이 먹어달라고.

새마을운동을, 조용히,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장본인

얼마 전에 어떤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김부겸 행자부 장관이 그러더라구요. “정성헌 형님이 특유의 장점을 살려 개혁의 ‘개’자도 꺼내지 않은 채 새마을운동을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구요. 새마을운동 조직처럼 오랜 기간 관변단체로 온존해 온 데다 덩치까지 큰 조직은 그리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데, 근본적 변화를 추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나요?

어려움, 힘든 거, 하나도 없습니다.(웃음)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이 안에 많아요. 그걸 바깥 사람들이 모를 뿐이지요.

여기 와서 현장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 분들 상당수는 자기 운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더라구요. 봉사할 자세와 의욕도 상당하구요. 반면, 이 분들이 “신바람 나서 운동을 하고 싶은데, 요즘은 그런 신바람이 통 안 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명이 나도록 이 분들한테 올바른 목표와 방향만 제시하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조직이 바로 새마을운동인 것이지요.

 

 

간혹 간부들이 “우리 새마을운동 대회에 대통령님이 한번 오시면 좋겠다”고 해요. 그러면 제가 대답합니다. “우리가 잘해서 스스로 찾아오게 하는 게 운동이지, 대통령 안다고 와달라고 하는 건 운동이 아니다. 우리가 부르는 게 아니라 잘해서 소문이 나서 그쪽에서 찾아오게 해야 한다.” 간부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운동은 자기에게 엄격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한 자녀 더 갖기 운동’ 같은 거, 새마을운동에서도 열심히 합니다. 정부에서 하니까. 그런데 나는 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두 가지만. 첫째, 전 지구적으로는 인구가 줄어야 좋다. 지구의 인구는 30억 명이 최적인데, 현재는 70억 명이다. 지구의 생태용량으로 보면 인구가 줄어야 된다. 물론 국가주의적으로 보면 자기 나라 인구는 늘어야 되겠지만. 또 하나는, 지금 아이들을 하나 더 낳아서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될 25년 후의 한반도 기후는 어떨까? 그런 가혹한 기후조건에서 살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 아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태어난 아이가 축복받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운동이지, 아이 하나 더 낳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는 게 운동이지, 정부가 한다고 덩달아 하는 게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중앙회장이자 연수원장이기도 하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교육이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까?

교육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입니다. 엄밀히 말해 종교도 교육이지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했고, 예수도 3년간 여기저기 다니며 설교했습니다. 저는 이들이 유목형 교육자라고 봐요. 그러니까 교육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수단인 건 맞다는 생각입니다.

노인들, 어른 대접 받기보다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야

 

지금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이제 고령인구의 생산적 활용이 아주 중요한 화두입니다. 인생이모작, 삼모작을 이야기할 정도로 수명도 늘어나고 있구요. 농촌 운동을 오래 했고, 최근까지 강원도 인제에서 DMZ평화운동을 펼치기도 했는데, 우리 농촌 시골마을의 고령인구에게 접근할 수 있는 교육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평생교육을 공무원 자치행정과 계장이 맡아 하다보니 실적 위주로 하고 있더라구요. 그건 문제지요. 한편으로 노인교육 할 때 많은 강사들이 ‘어르신’이라면서 떠받들어 주는데, 나는 그러면 안된다고 봐요. 나는 노인들에게도 이야기합니다. ‘어르신’ 같은 말 좋아하지 마라, 당신이 인생과 사회의 주인공으로 죽을 때까지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좋은 것이지, 대접받는 게 좋은 것이 아니다, 대접 받는 것보다 대접하는 게 좋다, ‘어르신’이란 말은 대접 받는 말이니 그말 거부하고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내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세 가지 공부가 있는데, 제일 쉬운 게 책 공부. 두 번째가 사람공부. 즉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가 마음공부입니다. 진짜 공부를 하려면 안 보이는 걸 봐야 해요. 안 보이는 걸 보는 게 지혜이고, 책으로 공부하는 걸 지식입니다. 인터넷 찾아보고 아는 건 정보라고 하구요. 지혜가 많은 사람이 지식이 많으면 좋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정보가 많으면 좋은데, 요즘 애들은 거꾸로 돼서 지식은 없고 정보만 넘쳐 나지요.

 

 

그러니 우선 책 공부부터 하고, 좋은 사람을 찾아가든지 불러서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마음공부를 하면 돼요. 마음공부는 특정한 방법이 없고 사람마다 달라요. 내가 하는 방식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겁니다. 애들과 대화가 안 되면 애들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며느리와 대화가 안 되면 며느리 입장에서 생각하는 겁니다.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해요.

인제에서 이런 강의를 했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자연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한 마을 당 개울 하나를 맡아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개울을 만들자. 우리나라 농촌 마을이 3만6천8백 곳이고, 개울이 3만5천개 정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 마을에서 1개씩 맡으면 돼. 깨끗하려면 쓰레기 치우면 되고, 아름다우려면 뭘 하면 되냐 했더니 뚝방에 꽃을 심으면 된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평수 계산을 해서 한 평에 야생화 80개, 약초 70개를 심으면 된다고 알려줬어요. 천평이면 8만개가 피는 것이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걸 군청에 가서 돈 내놓으라고 하지 말고 스스로 해라, 그러면 군수가 소문을 듣고 도와주겠다 해도, 안 받아야 된다. 사정사정 해서 마지못해 받아야 그게 어른이고, 그게 바로 운동이다,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실제로 그 해에 인제군에 네 군데 아름다운 개울이 생겼어요. 이렇게 정보와 지식과 지혜를 끊임없이 계발하게 해주는 것이 평생교육 아닐까요?

 

오염으로 살 곳이 없는데, 통일이 되면 뭐하냐?

디지털 문명이 생활 패러다임 전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거부할 수도 없구요.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해 디지털 문명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원로 생명운동가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웃음)

과거에는 TV가 일반화될 때, ‘바보상자’라고 하면서 문명비판적인 용어로 조롱을 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핸드폰을 ‘스마트폰’이라고 칭송하고 있단 말이예요. 결코 스마트하지 않은데. 현대 지성사회가 문명비판적인 시각이 너무 약화되고, 디지털에 압도되어 있다는 방증이지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결국 평생교육의 힘으로 바꿀 수밖에 없는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처럼 교육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똑똑한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잖아요? 물론 똑똑한 사람 중요합니다. 근데 똑똑한 사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을 합쳐야 성공한다는 겁니다.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 즉 몸이 건강해야 되고, 그게 바탕이 된 다음 마음이 건강하고, 지식이 많아야 되는, 그런 순서가 맞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 중심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계, 종교계, 언론계가 동시에 나서줘야 해요. 교육 ‘개혁’으로는 안 되고 교육 ‘개벽’이 되어야 교육이 좀 바뀔 겁니다.

 

 

오늘 남북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지난 판문점 회담 때는 새마을운동 중앙회에서 공식적인 지지성명도 발표했더군요. 평화운동을 오래 해 온 입장에서 통일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지요.

이번 정상회담, 나는 잘 될 거라고 낙관합니다. 우여곡절이야 있겠지만요. 분단 70년, 핵무기 25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는 없으니 너무 성급하게 보면 안 되구요. 빨리 결과를 내려 하지 말고, 제대로 하는 것이 한결 중요하지요.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어요. 남북 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25년 후에 지구온난화로 이 땅에 사람이 살기 극히 어려워지면 평화가 오고 통일 된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한반도 생명공동체의 바탕 위에서 평화를 이뤄야지, 정치적인 통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남한은 지난 30년 동안 나무를 108억 개 심었는데, 북한은 200억 개는 심어야 해요. 그럼 북한에 15년 만에 어떻게 나무 200억 그루를 심을 거냐?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데, 지금 동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다가 CO2를 제일 많이 흡수해요. 산소도 제일 많이 내뿜구요. 그런데 온실가스가 너무 많이 배출되니까 바다가 산성화되고, 육지 쓰레기의 최종 배출장이 바다가 되는 바람에 백화현상으로 바다 밑의 풀이 죽어갑니다. 물고기는 먹이도 없고 남획으로 씨가 말라가고 있구요. 이렇게 죽어가는 동해를 어떻게 살릴 거냐? 이런 게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이뤄도,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는 바다와 육지를 만들어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핵무기 만들었는데, 사람 살 수 없는 동네가 되면 그걸 어디다 쓸 겁니까? 우리는 통일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대평화운동의 선구자가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중앙회 본부 앞마당에서. 왼쪽부터 진흥원 조한준 주임, 황미연 홍보대외협력팀장, 김영철 원장, 정 회장, 이유정 <다들> 기자.

정성헌은 누구인가?

1944년 춘천에서 태어났다. 춘천고를 나와 196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1학년 때인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해 처음으로 감옥살이를 한 뒤 줄곧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 생명 및 생태운동을 펼쳐왔다.
한국가톨릭농민회 부회장,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 집행위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 집행위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일찍이 생명 및 생태운동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이 분야의 운동에 뛰어들어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을 설립했다. 지금도 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8년 3월부터 제24대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