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와 평생학습, 다르지만 같은 길

촛불혁명은 한국사회에 중요한 과제를 가져다주었다. 가장 큰 과제는 역진 불가능의 민주주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민주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민주적 권력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시민들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는 자원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시민들의 문제의식, 문제해결 의지, 공익의지, 연대의지, 인권의식, 상상력을 조직하는 것이다. 전자가 권력교체라면 후자는 사회교체이다.

 

사회교체를 위해서 민주주의는 첫째,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 기반이 된다.

둘째,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민들 스스로 문제의식을 내고, 대안을 세우고, 결정하고, 기획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셋째, 일상에서 만질 수 있고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향유자가 아니라 주체가 될 때만이 지킬 수 있다.

넷째, 남의 일을 나의 일로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연대요 참여다. 그때 개인은 비로소 시민이 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상에서 민주적 인격 즉, 시민성을 배울 수 있을 때 가능하다. 20세기까지는 집중된 권위로 운영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21세기 사회는 다양한 주체, 인격, 입장,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는 운영할 수 없다. 이러한 가치는 일상에서 배워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다. 자원봉사와 평생학습은 이러한 민주주의 영양소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자원봉사와 평생학습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지속성이다. 평생학습은 말 그대로 평생 배움을 반복(習)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에 있어서도 지속성은 핵심적인 속성 중의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한판 승부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오랜 반복 배움을 필요로 한다.

둘째, 상호성이다. 자원봉사는 일방적인 제공이 아니라 상호관계를 맺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생학습은 세상과 창조적인 관계를 맺는 방법을 평생 터득해가는 것이다. 관계 맺기는 시민이 갖춰야 할 핵심적인 덕목이다.

셋째, 실천성이다. 보통 자원봉사를 경험학습이라고 말한다. 즉, 경험으로부터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마찬가지로 평생학습은 실천(praxis)과 의식성장이 선순환 하는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실천과 의식성장의 선순환 과정을 통해서 더욱 성숙해진다.

 

그렇다면 배움은 자원봉사에 무엇인가? 자원봉사시민들은 자원봉사를 통해서 사회의식, 다양성, 사회적 관계 맺는 법, 협업하는 법, 주인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인간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세계관, 인격 형성이 달라진다. 소위 명문 코스를 밟아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느냐,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법, 협업하는 법을 배우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큰 배움은 없다. 자원봉사에는 그러한 배움이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시민들은 스스로 문제의식과 대안을 내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주인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 한국 현대사를 지배해온 발전주의 교육에서 국가는 최대한 공급·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지식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며 대중은 소극적 시민과 적극적 시민의 경계를 넘기 어려워진다. 자원봉사시민은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 자기 삶의 주인, 자신을 사랑하는 법, 자기 감정의 주인, 관계 맺기의 주인 되는 법을 배운다. 이로써 자원봉사시민은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된다.

 

반대로 자원봉사는 배움에 무엇인가? 자원봉사는 단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액션(action)에 머물지 않는다. 자원봉사는 새로운 질서는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활동(praxis)이다. 자원봉사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새로운 꿈을 꾼다. 바로 이 지점이다. 배움은 자원봉사의 프락시스를 주목해야 한다. 실천이 빠진 배움은 공허해진다. 가령, 컴퓨터를 사용설명서만으로 배울 수는 없다. 수영을 교습서만으로 배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민주주의는 실천활동(praxis)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이처럼 자원봉사와 평생학습은 서로 보완관계를 이룬다. F. 프레이리의 말을 원용하면 배움은 곧 세계를 변형시키는 일이다. 그렇지만 행동만을 강조하게 되면, 배움은 행동주의화 한다. 그래서 자원봉사 없는 배움은 허약해지고, 배움 없는 자원봉사는 불안해진다.

 

그러나 프레이리의 말은 아직 철학적 개념이고 전략적 개념이 부족하다. 한 인간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안내하지 못하는 교육으로는 강의실 교육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자원봉사교육이든 평생학습이든 강의실형 강사보다 조직가가 많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대중들을 의식화시켜서 정기적금 붓듯이 차곡차곡 쌓는 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작은 실천의 산술적인 합이 곧 민주주의 성과로 나타나진 않는다.

 

그래서 어디서 실천지점을 찾을 것인가, 문제해결의 지렛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시민 스스로 세우는 자원봉사 기획이다. 자원봉사시민은 지렛대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인이 된다. 지렛대를 대기 위해서는 막혀 있는 곳, 절실한 곳,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곳, 파급효과가 큰 곳을 찾아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성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 배움이다.

 

그러한 기획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바로 지역이다. 지역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프락시스로서의 자원봉사-서로 배움-관계 맺기-사람의 성장이 어우러진 또 하나의 생태계이다. 그러한 생태계를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 기반은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