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어려운 일을 맡아 자기계발해온 롯데호텔 김송기 총주방장

롯데호텔 입사 35년만에 총주방장에 오르다

은은한 조명과 화려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을 지나 복도 문을 열면 철제 선반 사이로 물에 잠긴 야채, 밀가루포대 등이 보인다. 주방 복도를 몇 차례 꺾어 안쪽의 사무실 문을 열면 1982년 입사 이래로 35년간 롯데호텔에 몸담아온 총주방장 김송기 명장을 만날 수 있다.

지금처럼 셰프가 젊은이들의 꿈이 아니던 시절, 남자가 앞치마 매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시절, 김명장은 조리학과를 나와서 호텔 주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이 길이 나의 길이라는 생각도 없었고 1~2년만 해보다 안되면 다른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어려움도 있었지만 재미도 있었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현장에서 즐거움을 더 느꼈다. 마침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등을 통해 요리사가 각광받기 시작했고, 국가 차원에서 요리를 지원하는 등 사회 문화적으로 요리사의 위상이 달라졌다.

우리는 주방장을 ‘셰프’로만 알고 있지만, 트레이닝 들어오면 서드쿡, 세컨쿡, 퍼스트쿡을 거쳐 섹션셰프, 어시스턴트 섹션셰프, 헤드셰프, 수셰프, 어시스턴트 수셰프 등 총주방장에 오기까지 11단계를 거쳐야 한다. 아무리 빨라도 30년이 걸린다.

 

 

지방근무 자처하여 부산롯데, 울산롯데 오픈 프로젝트 진행

김명장은 동기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는데, 좀 더 잘하기 위해 일부러 지방근무를 자청했다. 롯데호텔에서 부산과 울산에 호텔을 세울 때, 내려가 오픈 프로젝트를 지휘했다. 구매부터 메뉴, 주방 레이아웃, 직원 교육, 컨설팅 등 호텔에 들어가는 레스토랑 관련 전분야를 다 섭렵했고, 서울과 다른 지방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번씩 내려갔다 오면 스스로도 부쩍 성장했다고 느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느꼈다. 지금은 호텔 오픈한다고 하면 서로 내려가려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지방발령은 좌천과 다름없었기에 김명장의 행보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명장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들은 지방 근무를 자청하게 되었다. 즉, 김명장은 직장 문화를 바꾼 것이다.

“변하려면 주변이 바뀌는 게 아니라 자기 몸통이 바뀌어야 해요. 한 곳에 안주해 있으면 변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김명장도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냐는 물음에, 사이사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부산호텔로 자청해서 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부산역에 홀로 내리자 ‘연고도 없는 여기 나는 왜 왔지? 돌아갈까?’하는 막막함이 앞섰고, 일을 할 때도 매 순간 ‘직원 트레이닝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프닝을 차질없이 할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이 앞을 가렸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순간들이 그를 키웠고, 남들이 가지 않으려는 길을 갔던 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요리책 6, 특허출원 5

요리사 분야의 명장이 되려면 한 파트만 알아서는 안되고 모든 요리를 알아야 한다. 김명장은 처음에 양식당으로 들어와 데판야끼를 하는 일식당에서 2년, 한식당(무궁화)에서 1년, 카페 가드니아와 라쎄느(뷔페)까지 거의 모든 업장을 거쳤고, 전두환 대통령부터 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모든 국빈만찬에 나갔다. 지금까지 요리 분야에는 11명의 명장이 있는데, 그 중 5명이 롯데호텔 출신이라고 한다. 다른 호텔에 비해 롯데호텔은 자기계발을 장려하고, 여유가 있는 편이라 지방에는 롯데호텔 출신의 교수들도 많고, 현재 근무하는 500여 명의 요리사 중 기능장만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직장의 분위기도 한몫 했겠지만 김명장의 부지런함도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지금까지 6권의 요리책을 출간했으며, 특허도 5개나 땄다. 오디 된장, 김천 포도로 만든 스테이크 소스, 여주 소스 등 우리나라 각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요리들이 특허를 획득했다.

석박사 코스를 다니면서 명장을 준비했고, 2011년엔 기능장을 땄다. 나이 먹어 공부하는 게 쉽지 않지만, 시동을 한번 걸면 그 뒤로는 쭉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발전가능성이 많은 요리 분야에 도전하세요!

TV만 틀면 먹방과 맛집 프로그램이 나오는 세상이다. 김명장도 임원 자녀나 친척 자녀의 진로 문제와 관련해 요리사를 해보고 싶다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요리는 발전가능성이 많은 분야이다. 제철, 화학, 전자, 건설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1위이거나 세계 1위를 해봤다. 하지만 요리는 아직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발전가능성이 높다. 현재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한국 출신 요리사들도 많고,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요리사도 많다. 유럽에서 공부했지만 불경기로 취직이 안돼 한국으로 들어오는 인력도 많다.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420개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처음으로 미슐랭 가이드가 들어왔다. 얼마든지 승부를 겨뤄볼 수 있는 분야다. 그래서 김명장은 학생들을 위한 요리교실이나 특강에는 만사 제쳐놓고 달려간다. 요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봉사하는 마음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tip 요리사가 추천하는 식당

맛에 일가견이 있는 요리사들은 어떤 식당에서 밥을 먹는지 궁금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김명장은 단골 식당을 알려주는 대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호텔 요리를 추천하는 이유는 식재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김이라도 구내식당에서 내놓는 김과 호텔 식당에서 내놓는 김은 품질이 달라요. 예를 들어 베이커리도, 생크림 하나를 써도 호텔 베이커리는 낙농업 강국인 네덜란드의 우유로 만든 생크림이거든요. 그래서 호텔 요리가 비싸고, 그래서 호텔 요리를 드시라고 권하는 겁니다.”

정작 호텔에서 근무하는 요리사들은 테스팅할 때만 맛볼뿐 호텔식을 매끼 먹지는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