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맨 비긴즈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모두의학교에는 예측할 수도, 예측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참 많다.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모두의학교에 활기를 불어넣을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심심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최근 역대급 서프라이즈를 선물해주신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배추를요? 김치 담그는 그 배추?

넉넉한 추석을 지내고 온 다음날쯤이었다. 오전 무렵 사무실이 웅성웅성해지더니 누군가 모두의학교에 배추를 심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배추를요? 김치 담그는 그 배추 맞아요?” 모두의학교에 배추를 심을 땅이 있었던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배추라니.

 

아니 도대체 누가? ?

배추가 심긴 땅 근처는 CCTV에 정확하게 얼굴이 잡히지 않는 말 그대로 사각지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 범인(?)을 알아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설 담당자인 은지님이 하루 종일 배추밭 근처에서 보초를 설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소장님과 경비 선생님께 수시로 배추 주인이 오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을 드렸고, 이틀 만에 배추 주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금천구에 거주하시는 1940년생 이남휘 어르신(이하 배추 할아버지).

 

 

알고 보니 봄학기부터 시민학교 프로그램도 참여하셨던 분이다. 배추 할아버지께서는 주로 우리가 출근하기 전 이른 새벽부터 나오셔서 작물을 관리를 해오셨다고 한다. 그것도 7월 말부터 직접 묘종을 구입하셔서 하나 둘 심으신 양이 족히 배추 40여 포기와 무 15개나 된다. 얼갈이도 있다고 하셨다. 소일거리로 심으셨다고 하기에는 꽤 많은 양임에 틀림없다.

 

또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여기에 이 많은 양의 작물을 심으셨을까? 자세한 내막을 꼬치꼬치 여쭤볼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최근 가족을 여의신 할아버지께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시기 위해 이것저것 해보시려고 하신 듯 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안 후, 다 같이 머리를 싸맸다. 사실 배추 할아버지가 작물을 심으신 땅은 시유지이기 때문에 무단경작을 할 경우 관련 법에 의해 변상금과 벌칙이 부과될 수 있다. 모두의학교와 배추 할아버지 모두가 곤란해질 위기에 처한 셈이다. 강력히 처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써 심으셨는데 다 뽑을 수도 없고…

할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설명해 드렸더니 수확까지의 과정을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대신에 배추 보러 오실 때 꼭 우리에게 연락주시기를 부탁드렸다. 꼭 그러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마음 내키실 때, 우리가 없을 때 조용히 배추를 살펴보러 오시는 게 더 좋으신 모양이다.

 

오늘도 배추 할아버지가 배추를 뽑고 계시다는 전화를 받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알고 보니 오늘은 배추를 묶는 날인 듯 했다. 아무 말씀 없이 배추를 묶고 계신 할아버지께 막간을 이용하여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인터뷰를 시도했다.

 

 

(고은님) 어르신 물은 어떻게 주셨어요?

(배추 할아버지) 대야에 빗물도 받고 집에서 끌차에 물 다 담아왔지.

(고은님) 어르신 이거 뭘로 다 심으신 거예요?

(배추 할아버지) 호미로 심었지 뭐.

(고은님) 어르신 혹시 농약도 치세요?

(배추 할아버지) 농약 안 쳐. 벌레가 다 갉아먹잖아. 이거 다 갉아먹어서 한 20포기 밖에 못써.

(고은님) 어르신 여기 땅이 좀 비옥한 편인가요?

(배추 할아버지) 황토 땅이라 좋아. 내가 비싼 거름도 엄청 뿌렸어.

(고은님) 어르신 왕년에 농사지으신 적 있으세요?

(배추 할아버지) 이제 그만해.

 

우리와 함께 관리하고 수확하시겠다고는 하셨지만, 아마 배추할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조금은 불편하신 모양이다. 그저 당신께서 직접 구입하신 모종이니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다. 11월 중순쯤 서리를 맞아야 배추가 달다고 하니, 수확까지 넉넉잡아 한 달 정도 남았다. 수확한 배추로 김치를 담가 지역사회와 나누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볼까 하는데,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다음 주에도 아마 아무말씀 없이 나오셔서 배추를 살피고 계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오셨다는 경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자동반사로 배추밭으로 달려 나갈 우리들의 모습이 상상된다. 배추할아버지 사건으로 반 배추 전문가가 된 우리들. 어찌 보면 아버지를 통해 모두의학교가 ‘새로배움터’이자 ‘서로배움터’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다.

11월 말 배추를 수확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모두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