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누르고 선을 드높이자!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시민청, 은평, 중랑, 뚝섬, 금천의 학습장 외에 서울의 28개 대학과도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건국대, 경희대, 동국대, 명지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세종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총신대, 한국외대, 홍익대 등 서울 시내 웬만한 대학은 모두 참여하고 있으며, 각 대학은 특화된 영역의 인문학을 담당하고 있다. 그 중 고려대는 한국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을 담당한다.

 

성북마을버스 20

이달에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하는 ‘주역의 이해1’이라는 강좌를 듣기로 했다. 서울 와서 고려대 근처에는 딱 두 번 가본 게 전부. 고려대 캠퍼스 안으로 진입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한국학관을 찾아가는 길이 험난했다. 기복이 심한 경사지에 3개의 캠퍼스가 도로를 두고 분리되어 있어, 안암역에서부터 한국학관까지 여러 명에게 길을 물어 찾아가는데 꼬박 30분이 걸렸다. 강의실에 앉았을 때는 등 뒤로 땀이 줄줄 흘렀다. 한국학관까지 쉽게 가려면 안암역에서 성북 20번 마을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이 버스를 타고 고려대 아이스링크 정류소에 내리면 기와집 모양의 한국학관이 눈앞에 보일 것이다.

 

남자 수강생들이 많은 강의

주변 사람들이 나이 마흔을 전후로 전부 약속이나 한 듯 사주팔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기 삶이 버거워서일텐데, 대체로는 사주풀이앱을 다운받아 남들 사주를 엉터리로 봐주는데서 그치치만 개중엔 깊게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주변이 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나 또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기토(己土) 사주이며, 주변에 신금(辛金)들이 우글우글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덕분에 내가 주역에 관심이 많다고 착각했다.

강당에 들어서 보니 일반적인 강의들과 달리 여성 수강생보다 남성 수강생들이 더 많았고, 머리가 희끗희끗 하신 분들이 꽤 많았다. 물론 젊은 분들도 있었지만, 이제껏 내가 들었던 어떤 강의에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많은 강의는 보지 못했는데, 이 강의는 달랐다.

자리에 앉아 교재를 열어 보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페이지 전체에 빡빡한 한자가 가득 차 있었다.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진 이래 이렇게 가득한 한자를 본 게 언제였더라?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강의의 연령대가 높은 것은 한자를 일상적으로 보고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 연령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혼자서 읽으라면 더듬더듬 한줄을 제대로 읽지 못하겠지만, 강사님과 함께라면 뜻을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이 강의를 듣고 기사는 어떻게 쓰지? 이해를 해야 전달을 할 것 아닌가? 나는 과연 이 강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온갖 걱정이 머리를 스쳐지나갈 즈음 앞에서 강의를 듣는 분들보다 현저히 젊어 보이는 강사님이 들어오셨다.

 

()와 동()은 다르다

오늘은 천화동인(天火同人)과 화천대유(火天大有)에 대해 배우는 날이다. 앞머릿글자인 ‘천화’와 ‘화천’은 서로 뒤집힌 말이라 괘가 좋고 나쁨이 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동인(同人)이라는 말에 대해 알아보자.

논어에 보면 ‘화이부동(和而不同)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나오는데, ‘군자는 어우러지되 같지 아니하고, 소인은 같되 어우러지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주체적 존재이고, 리더가 될 수 있지만, 소인은 타율적이며 길들여지는 존재다. 둘은 특히 판단 기준이 다르다. 군자는 의(義)로 판단하지만, 소인은 이(利)로 판단한다.

화(和)는 영어로 harmony,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고, 동(同)은 획일적으로 같은 것, 즉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는, 조화를 파괴하는 뜻이다. 비슷해보이는 同과 和가 이토록 다른 뜻이었다니!

논어에서는 이렇게 동과 화를 다르게 보지만, 주역에서의 동인(同人)은 ‘화(和)’에 가까운 뜻이라고 한다. ‘문학 동인지’ 할 때의 그 동인이다. 여기까지가 동인(同人)의 뜻풀이였다.

 

동인의 범위를 넓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문장풀이는 한자 대신 한글로만 풀어보겠다.

‘2명이 같은 마음을 지니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끊을 수 있으며,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향기가 난과 같다. 들에 사람들이 모이니 형통하다. 그 걸음이 큰 물구덩이도 건널 수 있어 이롭고, 군자가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그 아랫줄에 천화동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인 ‘유족변물(類族辯物)’이 나온다. ‘무리를 분류에 따라 나눈다’는 뜻인데, ‘물(物)’은 한자에서 나를 뺀 나머지(사물)를 일컫는다고 한다.

동인을 할 때,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는 매우 중요한다. 이를테면 제주도의 예멘 난민 수용에 관한 입장에서 난민 수용 불가를 밝히는 사람들은 동인의 범위를 한국인으로 잡는 것이고, 난민을 수용하자는 사람들은 동인을 세계적으로 잡는 것이 된다. 동인을 어디까지로 잡느냐에 따라 이렇게 사안에 대한 대응이 달라진다.

 

버스운전사가 미치광이면 끌어내려야 한다

동인괘에는 2~9효가 있는데, 2효는 ‘종끼리 뭉친다’, 3효는 ‘풀숲에 숨어 매복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지켜보는데, 3년 동안 일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런 괘가 나온다면 어떤 모임에서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안으로 쭈그러든다는 뜻이 된다. 모임이 오래 가고, 정당이 세를 얻으려면 외연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10년 이상 몸담았던 모임들도 우리끼리만 똘똘 뭉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회원 받아들이기를 즐겨했다. 모임 자체의 기운이 약해지면 신입회원을 받아 분위기 쇄신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 못했던 모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4효에선 ‘그 담 위에 올라가 공격하지 않으니 길하다’는 뜻인데, 반대로 ‘그 담 위에 올라가 공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하니 길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성공하지 못했는데, 길하다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해석이다. 이에 강사님은 1944년에 돌아가신 본 회퍼 목사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본 회퍼 목사님은 독일의 모든 교회들이 나치에 협력할 때 “만약 버스 운전사가 미쳤을 때는 어떡해야 하나? 교회가 희생된 승객들을 돌보고 기도해주는 걸로는 부족하다. 버스 승객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기사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비유를 들며 고백 교회를 출범시키고 히틀러 암살단을 조직했다. 그러나 암살시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본 회퍼는 히틀러가 자살하기 3주전에 교수형을 당해 죽었다. 즉, 그 담 위에 올라가 공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길하다니? 본 회퍼 자신의 입장에서는 죽었으니 길하다고 할 수 없으나, 독일 교회에서 다만 본 회퍼라도 있었기에 기독교가 완전히 타락하지 않고 지금에 올 수 있었고, 이는 대의적 측면에서 ‘길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뭔가 깨달음이 지나갔다.

 

교회 집사님의 주역 풀이

천화동인의 괘로 해석한 예가 나눠준 강의록 뒤편에 나와 있었다.

신학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학생이 졸업 후 진로 상담을 해왔다. 공부를 더해서 신학자가 될 것인지, 국내 교회에서 목사를 할 것인지, 해외 선교를 나갈 것인지 어느 쪽으로 나가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강사님이 떠오르는 숫자를 말해보라고 하자 5를 말하기에, 5효를 읽었더니 ‘눈물 콧물 쏟고 탄식하겠지만, 길하다’라고 나왔다. 고생길을 선택하겠지만, 이게 좋은 길이라고 풀이해줬더니, 그 신학생도 마음속으로 해외선교를 생각하고 있었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아마 그는 현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섬기는 선교를 잘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신학용어로 제국주의 선교가 아니라 토착화 선교라고 한다. 그것이 동인(同人)의 의미다.

어째 주역 강의를 하시는 분 입에서 본 회퍼 목사, 신학대 같은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더니, 강사님이 현재 개신교 집사라고 한다. 헐…. 놀라서 보고 있는데 “왜 신학대 나와서 기도를 안하고 점을 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저를 통해 하나님이 그 신학생에게 역사하신 거죠. 제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인 거죠.”라고 했다. 기독교와 주역이 합쳐지는 이 신통방통한 세계라니!

 

길하다는 공공선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2교시에는 상괘와 하괘가 뒤집어진 화천대유(火天大有)를 해석하는 시간이다.

상괘는 좋고 하괘는 나쁜 천화(天火)와 달리 좋은 괘에 속한다.

‘대유(大有)’는 크게 가진다는 뜻이니 형통하다.

‘불이 하늘 위에 있으니 대유이며, 군자는 악을 막고 선을 드러내어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자성어는 ‘알악양선(遏惡揚善)’ 즉, 악을 막고 선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대유괘에도 2~9효가 있다.

2효는 ‘큰 수레에 싣고 갈 바가 있으면 좋다’로 해석된다. 이 괘가 나오면 분명히 좋은 뜻이지만, 주역은 역설의 언어이므로 잘 헤아려봐야 한다. 강사님은 어젯밤 TV에서 한유총(한국 유치원 총연합회) 관련 뉴스를 봐서 그런지 한유총의 집단행동이 떠오른다며 예를 들어주셨다. 만약 한유총에서 이런 괘가 나왔다고 대형버스를 대절하여 함께 타고 가서 데모를 했을 때, 결과가 좋았느냐면 그렇지 않았다. ‘길하다’고 나오는데 왜 그렇지 않을까? 그건 주역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길하다’가 누구의 편에서 길하냐를 묻기 때문이다. 그들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면모가 밝혀져 아이들의 부모뿐 아니라 온 국민이 등을 돌렸는데, 그럼으로써 공공선에 기여했기 때문에 ‘길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하! 이래서 누군가는 주역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해석을 잘 해야 된다’고 했구나! 뭔지 알 것 같았다.

 

이익을 기준으로 움직이면 소인

대유를 대부분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재산만이 아니라 별을 달면 큰 별을 달게 되고 나쁜 것 역시도 크게 온다는 뜻이 숨어있다.

3효는 ‘제후가 천자에게 대접하나 소인은 그러지 못한다’는 뜻으로, 만약 외교나 통상관계에서 3효가 나왔다면 상대편을 극진히 대접하고, 우리의 이해관계만 내세워서는 안된다.

군자냐 소인이냐를 따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전형적인 소인이다. 왜냐하면 이익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업인은 모두 소인이다. 이걸 나쁘게 생각하면 안된다. 만약 군자가 기업을 한다면 이익을 내지 못하고 망할 것이다. 기업인은 당연히 이익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한다. 강사님은 소인이나 이익을 폄하하는 게 아님을 여러번 강조했다.

또한 ‘대접한다’는 ‘같이 밥을 먹는다’는 의미로, 친교에서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 종족에선 외간 남녀가 성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는 터부시하지 않으면서 같이 밥을 먹으면 중형에 처한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밥을 먹는 것이 친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셨다.

 

공익성을 돌봐야 지속적인 부를 하늘로부터 받는다

5효는 ‘신뢰관계를 모색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 길하다’는 뜻이고, 9효는 ‘하늘에서 복을 내려주니 불리함이 없다’는 뜻이다. 지속가능한 부를 하늘로부터 받으려면 공익성을 돌봐야 한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 메디치 가문이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로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이나,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가 자신이 번 돈의 90% 이상을 기부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강의록 뒤편에 나와 있는 화천대유에 대한 사례는 이명박 후보의 대선결과였다. TV에 보이는 이명박 후보의 머리 위로 태양이 뜨고 축포가 터지는 이미지가 겹쳐 보여 강사님은 대승을 예견했다고 한다. (사실 그때 누군들 이명박의 대승을 예견하지 않았을까?) 거기에 5라는 숫자까지 겹쳐보였는데, 50%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5효가 바로 ‘신뢰관계를 모색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 길하다’는 괘인데, 당선 후 이명박 대통령은 소통(주거니 받거니)하지 않았고, 불통에 불신을 사면서 4대강 사업을 비롯한 각종 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 기소되었다.

강사님은 “주역은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이득인 것처럼 보여도 흉할 수 있고, 흉한 것처럼 보여도 길한 것일 수 있어요. 그러므로 사심을 가지고 점을 보면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보게 됩니다.”라는 이야기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꼭 기억해야 할 두 가지 한자성어를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유족변물(類族辯物) : 공동체의 범위를 넓혀라!

알악양선(遏惡揚善) : 악을 누르고 선을 드날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