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영상감시 분야 1인자 텔미전자 박찬덕 대표

열영상감시장치 국책연구과제 선정사

경기도 안양에 있는 텔미전자는 영상감시장치를 만드는 곳이다. 흔히 CCTV로 알고 있는 영상감시장치는 가시광선 감시와 열영상 감시로 나뉜다. CCTV는 가시광선 감시 장치이고, TOD(Thermal Observation Device)가 열영상 감시 장치이다. 텔미전자는 두 분야를 전부 만들지만 그 중에서도 TOD 분야는 경쟁업체를 앞선다고 자부하는,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이다. 가시광선 감시는 비나 눈이 오거나 안개가 끼면 보이지 않는다. 열영상을 통하면 악천후에도 앞에 생물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요즘 텔미전자는 자율주행자동차에 사용되는 열영상 센서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 국책과제 R&D기업으로 선정되어 5억원의 지원비를 받고 한껏 고무되어 있다.

 

TV수리 금메달리스트에서 CCTV의 명장으로

텔미전자의 대표 박찬덕 명장은 공고를 졸업하고 LG전자에 들어가 14년 7개월 동안 근무한 뒤, 창업을 했다. LG전자 시절 TV조립과 생산기술을 담당했고, 1976년 전국기능대회에서 TV수리 직종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87년에는 전자기기 제작 1호 명장이 되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야간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이론공부를 먼저 시작하는 것보다 실무를 알고 이론 공부를 했기에 더 깊게 파고 들 수 있다. 학사를 마치고 나니 기술에 대한 열망이 커져서 퇴사하고 회사를 차렸다. 그것이 ‘씨티앤컴’. 창업 풍토가 없던 때라 주변에선 말렸지만 박대표는 기술이 활성화되어 가던 80년대 후반이라 안정적인 생활보다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창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씨티앤컴에선 카메라와 모니터를 제조, 판매했다. 이때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낀 일이라면 세계 매출규모 1위인 월마트에 꾸준히 영업을 하여 3년 만에 수주에 성공한 일. 세계 No1을 목표로, 계획을 세우고 돌격하여 이뤘다는 것이 스스로도 대단한 일이었다고 자평한다.

창업 후 가장 답답했던 게 회계였는데,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해주는 회계지원사업이 있었다. 회계사가 직접 와서 한달에 5일 동안 재무재표를 보고 분석하고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를 활용하여 재무재표 보는 법을 터득했다. 또한 대표가 되고보니 시간 활용이 자유로워 대학원을 다니며 전자공학 석사도 취득했다.

필요에 따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제도를 활용하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직접 부딪치며 15년 후 미래를 준비

카메라와 모니터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일반적인 일을 하면서 박대표는 15년 뒤 미래를 준비했다. 카메라 분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는 TOD에 주목한 것. 당시 TOD는 군사용 카메라였는데, 박대표는 분명히 이것이 민간으로 퍼질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TOD는 군사용이라 자료도 없었고, 전량 수입했는데 승인이 까다로워 정보 접근도 용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유의 돌파력을 발휘,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정보를 모으고, 미국의 군수업체에 연락하여 미팅을 잡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TOD를 제조, 판매하는 미국의 록히트마틴사에 연락하여 한국에 제품을 팔고 싶으니 미팅을 잡아달라고 요구, 출장 가는 길에 만났다. 미리 많은 준비를 해 가서 열심히 질문을 던졌고, 앉은 자리에서 세 시간 강의를 들었다.

그 후에 만남이 쌓이고, 이에 대한 레포트를 꼼꼼히 쓰고, 이런 자료들이 쌓이다 보니 기술력에 대한 분석도 나왔다.

현재 텔미전자에서 개발하고 있는 차량용 TOD는 ‘TOD의 새끼’라고 할 수 있다. TOD 성능 중 기본적인 것을 압축하고 크기도 소형으로 줄여 자동차에 다는 것이다.

 

특허 전문가의 강력한 특허들

박대표는 30개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명함에도 ‘특허전문가’라고 적혀 있다. 특허정보넷 키프리스에 ‘박찬덕’이라는 이름을 치면 특허가 우수수 쏟아진다. 2017년 9월 8일자에도 ‘자율주행용 서라운드 카메라 시스템’이 특허 등록되어 있다. 특허는 최근 5년 이내의 특허가 알짜라고 한다. 기술은 발전하고, 특허 중에는 등록만 되었다뿐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대표가 낸 특허는 강력한 것들이다. 2004년에 낸 멀티 프로토콜 특허로 최근에도 로열티 6억을 벌었다고 한다.

이렇게 강력한 특허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걸 만들어보고 조립해봤기 때문이다. 직접 손으로 하면서 좀 더 나은 방향이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발명에 대한 마인드도 커졌다. 에디슨이 발명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던 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마인드, 창의력, 돌파력 등이 그를 특허전문가로 만들었다.

박대표는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하다 보니 늦게까지 일해도 지치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과 드라이브가 취미인데, 요즘은 자동차 알고리즘을 풀어야 하니까 운전하면서도 ‘이럴 때는 어떻게 피해야 할까?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하는 생각을 자주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바로 폰에 적어 컴퓨터로 전송한다. 일과 취미가 하나된 보기 드문 행복한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