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쓰는 유기농 펑크 포크 가수 “사이”

홍정화 :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사이님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어제 급하게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요. 블로그와 유튜브도 보고, 냉동만두 노래도 듣고요. 저와 안수진 님, 김보람 님은 모두의 학교의 인연으로 사이님을 알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본인 소개를 한번 해주세요.

사이 : 저는 유기농 펑크 포크의 창시자 사이입니다. 유기농은 아무 뜻 없고 트렌드라서.(웃음) 중요한 것은 펑크 포크고요. 사이는 우리 사이, 좋은 사이, 친구 사이 할 때 그 사이입니다.

홍정화 : 사이님 개인 블로그를 보면서 시도 쓰시는구나, 이분 글발이 좀 되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제가 블로그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를 보고 알았거든요. 저도 사이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와야 해서.(웃음)

사이 : 헉! 그건 어떻게 찾아봤데요? 국제앰네스티는 제가 유일하게 후원하는 단체, 아! 지금은 두 개를 후원하고 있네요. 저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나와서 광고하는 것, 빈곤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앰네스티 같은 인권단체가 아이들을 더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원을 하고 있고요.

 

위로를 받기 위해 듣기 시작한 음악, 그리고 아콤다

홍정화 : 사이님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사이 : 어릴 때부터 음악을 들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찾아서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방송부를 했는데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게 돼서 어른이 되면 레코드 가게 주인이나 라디오 DJ, 라디오 PD 이런 걸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못해서 대학을 못가는 바람에 못했어요.(웃음)

홍정화 : 그럼 어릴 때 음악 접근성이 좋은 가정이었나 봐요?

사이 : 아니요. 어머니는 안 계셨고, 아버지는 집을 돌보는 분이 아니셨어요. 워낙 불우한 환경이어서 음악을 도피처로, 위로를 받기 위해서 그렇게 많이 들었던 것이 아닌가 해요.

홍정화 : 내가 앞으로 음악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은 언제쯤 하셨는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과정은 어떻게 되세요?

사이 : 제가 고향이 부산인데, 고등학교 때 방송부였어요. 쉬는 시간마다 미친놈처럼 노래를 크게 불렀었죠.(웃음) 저는 문과반이었는데 이과반이었던 친하지 않은 친구가 졸업한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예전에 너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밴드 하자고 해서 같이 했죠. 군악대로 군대를 갔는데 거기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제대하고 밴드를 하다가 20대 후반에 서울로 오게 되었고요.

서울에 와서 처음에는 친구 집에 얹혀 살았어요. 국립극장 기관실에 다니다가 ‘작은책’이라는 출판사로 옮겼는데 작은책은 노동자들을 위한 잡지예요. 그때 저는 사회문제를 전혀 몰라서 노동자들 집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2004년 어느 날 광화문에 갔는데 이주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고, 옆에 있는 사람이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다음 주에 명동성당에서 문화제를 한다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재미있어서 자주 갔고, 거기에 몰골도 초라하고 심하게 말하면 거지같은 애들이 “투쟁과 밥”이라는 모임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홍정화 : “투쟁과 밥”은 함께 모여서 공부하는 단체인가요?

사이 : 아니요. 그 친구들은 아나키스트들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준비해간 식재료로 밥을 해서 이주 노동자들과 먹고 가는 거예요. 뭔가 대단한 걸 주장하는 게 아니라 밥을 같이 먹고 하는 것들이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죠. 얘네들과 친해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나중에는 엄청 친해졌어요. 그 친구들과 “아콤다”라는 길거리 밴드를 만들게 되었죠.

안수진 : “아콤다” 뜻은 뭐예요?

사이 : 아무 뜻 없어요.(웃음) 우리끼리 뜻이 없는 이름을 만들어보자고 술집에서 이야기하다가 “아콤다” 그거 발음 좋다 그래서 그 이름으로 하기로 했죠. 인터뷰할 때 물어보면 에스페란토 말로 사랑이다, 저기 먼 호수에 사는 양서류 이름이다 라고 말하면 기사에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웃음) 우리는 집회를 많이 다녔거든요. 집회하는 뒤에서 기타 치고, 탬버린 치고, 영화하는 사람도 있었고, 10대부터 40대까지 정해진 인원 없이 각자 집에 있는 악기를 가지고 와서 거의 매일 만났어요. 아콤다 친구들과 밴드로 다니다가 해체되고 홍대 클럽에서 사이란 이름으로 혼자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홍정화 : 사이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콤다”는 사이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사이 : 그렇죠. 그 친구들한테 정말 많은 걸 배웠죠. 남들처럼 안 살아도 된다. 혼자 있었으면 그렇게 못살았을 텐데, 옆에 친구들이 같이 있으니까.

홍정화 : 사이님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히트곡은 뭐예요?

사이 : “냉동만두”죠. 처음 만든 곡이에요. 아콤다로 활동할 때.

안수진 : “냉동만두” 말고 유명한 노래 있잖아요? 아.~ 그 제목이 생각이 안 나는데 방송에 나온 노래 있어요.

사이 :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쓴다고 만든 “힘내요 노량진 박”이라고 있어요. 추석특집 다큐에 쓸려고 만들었는데, 뒤에 <다큐멘터리 3일> 노량진 편에 그 노래를 썼더라고요. 그때 제 블로그에 댓글이 엄청 많이 달렸어요. 자기가 노량진 고시원에 있는데 그 노래 듣고 울었습니다 그런 글들이요. 제가 그 파일은 음원등록 안하고 필요하신 분 가져가라고 올렸거든요.

홍정화 : 음악 하다가 귀촌해서 생활하신 적이 있으시잖아요.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사이 : 아콤다를 함께 하는 어떤 친구가 석유문명에 관한 다큐를 보여줬는데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되게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구나, 석유문명으로부터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급자족을 꿈꾸기 시작했죠. 그 친구들과 유럽도 다녀왔어요. 덴마크와 독일의 생태공동체를 보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어요.

그쪽으로 관심이 점점 커지면서 작은책을 그만두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에서 1년 반 정도 있었어요. 그곳은 불교계 환경단체인데 남원에서 공동체사업도 하고, 생협운동도 하고, 대안과정 학교도 운영하고, 농사도 1년 동안 직접 지어볼 수도 있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단체예요. 거기 들어가서 시골에 갈 준비를 조금씩 조금씩 하다가 산청으로 내려가서 귀촌 생활을 했었죠.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고요.

홍정화 :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환경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실천하시는 것이 있으면 조금 말씀해주세요.

사이 : 늘 관심을 갖고 있죠. 그렇게 살지는 않지만 늘 관심이 있죠. 제가 녹색당 당원입니다. 최근에는 텀블러를 사서, 텀블러랑 손수건을 갖고 다닙니다. 그것으로 대충 때우고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도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부르노와 살고, 시를 씁니다.

홍정화 : 현재 근황도 말씀을 좀 해주세요.

사이 : 근황이요? 저는 집에 자주 있고요. 부르노라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시 합평 스터디를 하고 있고, 시간 날 때 체육관 다니며 운동하고, 그리고 요즘 제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모두의학교예요.(웃음) 제가 의외로 많이 안 돌아다녀요.

홍정화 : 고양이 이름을 왜 부르노라고 지으셨어요?

사이 : 부르노는 13세기 수도사 이름인데요. 코스모스라는 과학 다큐멘터리에 나온 조르다노 부르노라는 사람인데 진짜 신기한 사람이죠. 이탈리아 수도원 수사였는데, 창고에 숨겨진 아랍어로 된 책들을 읽었죠. 그 당시에는 아랍의 과학이 제일 발달한 시기였고, 그 책들은 금서였거든요. 이 사실이 들통 나서 수도원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해요.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과 같은 게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 태양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죠. 갈릴레오 지동설이 나오기도 전의 사람이니 그 시대에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죠. 한참 부르노에 대해서 생각하고 책 찾아보고 할 때 고양이가 와서 부르노라고 지었어요.

김보람 : 부르노는 유기묘예요? 같이 생활한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사이 : 아는 동생이 원룸에서 키웠는데 못 키우게 됐어요. 제가 동네에서 길고양이들 사료를 주고 있으니까 저보고 형이 키워볼래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고양이를 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밥은 줄 수 있으니까. 우리 동네가 고양이가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살기는 좋거든요.

우리 집이 아직도 기름보일러를 쓰고 마당이 조금 있는 아주 옛날 집인데요. 바깥방은 너무 추워서 사람이 살 수가 없어요. 거기에 문을 열어놓고 고양이가 오고 가게 했는데 어느 날 얘가 다쳐서 온 거예요. 엄청 물려서 살이 너덜너덜해져서 병원 가서 수술하고, 고양이가 가만히 안 있어서 재수술을 두 번이나 더했죠. 겨울이 와서 나을 때까지만 집에서 키우려고 했는데 눌러살게 된 거죠. 외출냥이라 집에 들어온다고 문 열어 달라면 열어주고, 나가고 싶다면 열어주고 하고 있습니다. 1년 정도 같이 생활했고 지금 2년째 같이 살고 있어요.

홍정화 : 시를 쓴다고 하셨는데 문학에도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사이 : 어릴 때부터 간간이 시집을 보기는 했는데, 시골 갔을 때 너무 심심해서 문예지를 보기 시작했어요. 산청도서관 바깥 서가에 문예지가 있었는데 아무도 안 읽어요. 그래서 제가 늘 과월호를 빌려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읽었어요. 그때 시가 갑자기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써야겠다 깨작깨작하다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시인 밑에서 배우다 그 시인이 소개해준 다른 멤버들이랑 지금 2년 넘게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등단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스터디죠.

안수진 : 2년 동안 쓰셨으면 꽤 많이 쓰셨겠어요. 매주 시를 쓰는 게 보통일은 아닌데 시는 마음먹은 대로 써지나 궁금해요. 시는 펜으로 쓰세요?

사이 : 열심히 썼죠. 2년 넘게 썼으니까. 시는 내가 이걸 쓰겠다고 해서 써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쓰다가 앞 문장이 뒷 문장을 만들고, 뒷 문장이 다음 문장을 만들죠. 요즘 현대시는 아이러니, 어떤 어긋나는 순간, 기대했던 것이 어긋나는 것, 그런 것을 쓰죠.

예술은 거의 다 그래요. 선배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하죠. 내가 지금 김광석 노래 가사를 바꿔서 비슷하게 한다고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모든 예술은 그 전 것이 어긋나야 되거든요. 그전 것에 미끄러지는 것, 부수고, 뭔가 다른 것, 새로운 기존의 질서를 부수는 작업이에요. 미술도 그렇고 모든 예술이 다 그렇죠. 소설도 예전 사람이 하던 방식으로 하면 재미가 없는 거죠.

일주일에 시 한 편 쓰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저는 지하철을 타거나 이동할 때 생각나면 휴대폰에 쓴 다음에 컴퓨터로 옮겨요. 늘 생각하고 있으니까 자다가 생각나면 깨어나서 문장으로 적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모두의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하는 수업에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지난주에는 자다가 깨서 애들이 왜 말이 없었나를 쓰게 되더라고요. 시 말고 그렇게 쓴 건 처음이에요.(웃음)

 

모두의 학교와의 인연,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

홍정화 : 사이님은 작년 모두의 학교 개관식 공연도 하셨다는데, 어떤 인연으로 하시게 된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계시나요?

사이 : 제가 하자센터 행사에서 공연을 했는데, 모두의 학교 팀장님이 그것을 보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 뒤로 몇몇 음악 프로그램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의 대안학급 아이들과 음악수업을 하고 있는데 첫 수업에서 울뻔했죠. 아이들이 너무 말을 안해요. 그래서 저도 당황해서 화도 내고 그랬죠. 화요일 두 시간 수업을 하고 있는데, 5회 수업 중 마지막 수업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만든 노래로 공연을 하도록 계획되어 있어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한 줄 알았는데 첫 시간에 자기소개도 안해서 소위 멘붕이 왔죠. 준비한 프린트물을 보고 애들이 엎드려 자기 시작해서 이건 아니다 너무 황당했어요. 시작한 지 30분 만에 휴식을 하고 내가 미안하다, 모자랐다, 끝날 때에는 제가 졌다 다음 시간에는 다른 것을 준비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수업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노래를 만드는 거거든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음악수업이라기보다는 음악을 매개로 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야 하니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야 진행이 됩니다. 차라리 악기는 오히려 간단해요. 타악기는 치라고 하거나 기타는 가르치면 되니까 어렵지 않은데 그런 수업이 아니어서.

김보람 : 사이님이 처음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5회로는 부족하다고 하셨지만, 어떻게 해서든 이야기를 끌어내서 작업을 하셔야 되니까요. 자기 이름밖에 말을 안 하는 상황에서 애들을 데리고 진행하기가 어려었죠. 그래서 첫 수업에서 사이님이 좌절하시고 만반의 준비를 하자고 하셔서 두 번째 수업에는 교실에 침대를 놓는 기발한 방법을 찾았죠.

홍정화 : 두 번째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나요?

사이 : 두 번째 수업에서는 들어올 때부터 달랐어요. 시차를 두고 한 명 두 명 들어오니까 저랑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첫 수업에는 코디네이터 샘이 계셨는데 모든 수업을 설계하셨고 케어하는 보호자의 느낌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중간 중간 앉아 계시고 보람님, 저까지 어른이 네 명이나 되니 아이들이 부담스럽겠다 생각했었죠. 두 번째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대답하고, 무엇보다 교실에 침대를 놓은 것이 효과가 컸어요. 애들이 “이게 뭐냐?” 관심을 보였고, 사다리를 타서 뽑힌 두 명은 잘 수 있다고 말하고 사다리를 타는 순간 이미 끝났죠. 분위기가.(웃음)

홍정화 : 두 명이 정말 잤어요?

김보람 : 한 명은 학생, 한 명은 제가 돼서 저 대신에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 중에 다수결로 한명을 뽑겠다고 하니까 애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사이 : 물론 “선생님 예뻐요.” 그런 뻔한 말을 하는데 어쨌든 그런 말이라도 할 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무시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애들이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너무 걱정해서. 애들이 진짜 아무 말도 못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전 솔직히 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는데.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말을 못 할 수 없는데. 그런데 다행히 제 생각이 맞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나중에 물어봤더니 어떤 애들은 학교 수업이 싫어서, 그리고 이 수업이 어떤 수업인지 내용을 모르고 왔대요. 수업내용은 모르고 이런 게 있다는 것만 알고 신청하고, 담임선생님이 가라고 해서 온 아이도 있고, 진짜 자기가 원하는 어떤 수업을 하고 싶어서 온 게 아니더라고요.

두 번째 수업에는 제가 만든 곡을 틀어줬어요. 왜 그랬냐면 나 노래 만들 수 있다, 나를 믿으라고요. 다음 시간에 조금 더 틀어주고 가사를 쓰는 것이 핵심인데 좀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수업을 봐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제일 중요

홍정화 : <꽃할배 놀이터>에 대해서도 조금 여쭤보고 싶어요. 저는 시작할 때 말이 안 통할 것이다, 안수진 님께도 어르신들이 보통 분들이 아닐 것이니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사이 : 저도 나이 많은 남자 할아버지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잖아요. 지하철에서 봐 온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들, 그런 모습만 봐서 말이 안 통할 줄 알았어요. 엄청 걱정이 되서 처음에 안 한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예상 밖으로 어르신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열심히 하시고, 즐기면서 하시더라고요.

제가 보니까 나이와는 상관없이 할아버지들은 정말 뭐라도 하고 싶은 분들이 오신 거고, 청소년은 하기 싫은 사람이 온 것이 가장 큰 차이더라고요. 어떤 것을 하고 싶으냐 그렇지 않으냐를 판가름 하는 것은 자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홍정화 : <꽃할배 놀이터> 하면서 어르신들과 손발이 맞는다. 어르신들에게 먹히는구나 그런 느낌은 수업을 몇 회 정도 하셨을 때 들었어요?

사이 : 첫날은 비디오 보고 별것 안했고, 두 번째 젬배수업까지도 자신이 없었는데 세 번째 수업부터 슬슬 잘 풀렸던 것 같아요.

홍정화 : 저도 사이님과 같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사진을 찍었잖아요. 회차가 진행될수록 어르신들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좋아하면서 즐기시더라고요. 어르신들과 함께 만든 노래 “우리가 바라는 것” 가사가 그렇게 주옥같이 만들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저 아는 지인에게 노랫말을 말해주니 놀라더라고요.

사이 :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가사 중에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를 빌고 가는 것’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용서를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놀라워하시더라고요. 평범한 할아버지들이지만 인생의 경험으로 삶이 뭔지 아는 분들이어서 그런 가사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홍정화 : 저는 제가 나이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꽃할배 놀이터>가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남자 어르신들이 갈만한 곳이 없잖아요. 주기적으로 갈 곳, 잉여의 시간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곳이 많지가 않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하면서 굉장히 신선했어요.

사이 : <꽃할배 놀이터> 같은 수업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문화예술 수업하시는 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셨어요. 여기는 공공기관이고 문턱이 낮고 무료로 운영되고 있으니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분들은 힘들겠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한 노하우와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소외될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하고 다섯 번 만에 친구가 될 수 없는데, 친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가 없거든요.

홍정화 : 저도 사이님과 비슷한 생각을 해요. 모두의 학교는 나라 예산으로 운영하는 거니까 돈이 안 되는 프로그램도 이것저것 실험적으로 해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아이들도 어르신들도 해보지 않은 경험에 노출이 되어 보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할아버지들도 처음에는 어색해했거든요. 그런데 한 번 두 번 해보니까 재미가 있으셨던 거죠. 한 어르신이 다른 어르신을 데리고 오시고, 또 데리고 오시고 무슨 피라미드 조직처럼 데리고 오셨어요.(웃음) 일하는 선생님들이 고생이 되기는 하지만 이런 공간이 있는 것은 정말 좋아요.

 

실패하는 방법에 관하여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홍정화 : 지금 모두의 학교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시고 계신데, 사이님은 배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이님이 생각하는 배운다는 건 어떤 걸까요?

사이 : 배움이라는 단어가 너무 커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같이 수업하는 애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듣기 싫어할까봐 쫄아서 아직 못했지만.(웃음) 예술이나 인문학이 왜 삶에 필요하냐, 왜 그런 쓸데없는 것을 하냐, 졸리고 잠 와서 하기 싫은데 라고 물어보는 아이가 있으면 대답하려고요. 저는 처음에 이 수업을 받았을 때 ‘실패를 하는 방법’에 관하여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이라던가 그런 건 학교에서 안 가르쳐 주니까.

‘모두의학교’는 사립학교도 아니고 문턱이 높은 대안학교가 아니잖아요. 저는 오히려 이런 공공기관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사귀던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여자 친구를 때리거나, 그 가족들을 죽이고 하는 것은 슬픔과 분노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슬퍼할 상황에서 분노를 하는 거죠. 이건 정말로 배우지 못한 행동이고,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이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걸 누구한테 배웠거나 읽었다면 안 그랬겠죠. 어른들이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줘야 하는 게 바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은 다음 세대에게 성공하는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보는 안목을 키우는 데에 인문학은 필요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삶과 인간에 대하여 공부를 하면 나쁜 남자 혹은 나쁜 여자, 나쁜 친구를 만날 확률을 줄일 수 있으니까. 삶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조금은 줄일 수 있죠. 어쩌면 모든 문학도 예술도 실패의 학문이죠. 제가 지금 뭔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웃음)

홍정화 : 아이들한테 그 이야기는 꼭 해주세요.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때로 가슴에 품고 있는 어떤 문장 하나가 큰 위로가 될 때가 있거든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홍정화 : 저는 <꽃할배 놀이터>를 어르신들과 함께 하면서 죽음이나 나이 듦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이님은 어떠세요?

사이 : 저는 늙거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늘 생각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를 팔목에 문신으로 새겼어요. 이것을 생각하며 살고 싶어서요. 내가 늙고 곧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나라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은 좀 안 하고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해요. 먹고사는 것만 해결되면 좋은데.(웃음) 그게 해결되면 저는 누구든지 다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홍정화 : 이제 인터뷰 마지막 질문인데요. 사람마다 삶에 대한 생각들이 다 다른데 사이님은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사이 : 저는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시 쓰는 건 아직 재밌고, 운동하는 것도 재밌고, 공연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공연은 긴장되지만 위안을 받아서 계속하고 싶어요. 이름도 자주 바꾸고 싶은데 그건 좀 이상하고 특별나 보이니까… 저는 규정되는 게 싫은 것 같아요. 남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른 식으로 시도 쓰고, 음악도 하고 싶어요. 멋있게 보이는 것보다 남들이 안 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재미있어요.

저는 재미있으면 음악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이 재미있으면 그림을 그려도 되고. 지금은 음악 작업은 거의 안 하고, 시간만 나면 시를 쓰기 때문에 거의 시에 투자를 하고 있어요. 신춘문예에 계속 내야죠. 등단하려고 하는 거니까.

홍정화 : 등단하면 모두의학교에도 꼭 알려주세요. 기쁜 소식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 조만간 <꽃할배 놀이터>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만든 노래 “우리가 바라는 것” 녹음을 앞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