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내가 주도적으로 사는 힘’에서 나온다

지난 2000년, 우리나라 최초로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를 창간해 한국을 넘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이 매체를 성공적으로 키워내 언론인으로도 확고한 위상을 다진 오 대표는 그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노무현), <정치의 즐거움>(박원순), <진보집권플랜>(조국) 등 유명 진보 인사들을 연쇄 인터뷰한 뒤 이를 책으로 묶어내는 등 기자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 2013년부터 덴마크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 오 대표는 그곳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2014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펴냈다. 우리나라에 북유럽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사회연대, 복지제도, 공교육과 평생교육, 디자인과 인테리어까지, 그칠 줄 모르는 북유럽 열풍의 시작에 ‘오연호’가 있었던 건 아닐까?

오 대표는 2016년,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청소년 인생학교)를 본딴 ‘꿈틀리 인생학교’를 강화도에 열었고, 내년부터는 전남 신안군과 힘을 합쳐 어른을 위한 인생학교인 한국판 ‘호이 스콜레’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런 열정과 의욕에 대한 보답일까? 그는 지난 10월 27일, 덴마크 현지에서 아주 영예롭고 상징적인 상을 받았다. 덴마크의 교육사상가로 오늘날 이 나라를 ‘평생학습의 파라다이스’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덴마크의 국가 영웅 그룬트비를 기리는 ‘그룬트비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룬트비상은 그룬트비 정신을 오늘날에 맞게 되살린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으로 2010년 제정됐다. 오 대표는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는 영광도 아울러 누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덴마크와 사랑에 빠진 이후 “실천하는 만큼 보인다”는 새로운 선언을 내놓은 오연호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1월 22일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실에서 오후 4시부터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때마침 초청 강연을 위해 덴마크를 거쳐 스웨덴에의 3박4일 일정을 마무리한 뒤 귀국한 그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달려왔다고 했다. 진흥원 홍보·대외협력팀의 황미연 팀장과 김지현 주임, <다들>의 이유정 기자가 함께 했다.

 

비덴마크인으로는 최초로 ‘그룬트비상’ 수상

덴마크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습니까?

2013년 봄에 덴마크라는 나라에 처음 갔습니다. 우연히 신문 기사를 봤는데, 행복지수 세계 1위라고 하더군요.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첫 해였지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정치를 바꾸고, 언론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려고 뭔가를 부단히 해왔다. 근데 저 밑바닥에서 무엇이 정말로 바뀌고 있는 것일까? 내가 언론인으로 수많은 어젠다 세팅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일까?”

제가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당시 서울대 교수)와 함께 <진보집권플랜> 같은 책을 썼던 이유도 정치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변화를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길거리에 걸어가는 보통사람이 “나 지금 행복하다. 나만 행복한 게 아니라 옆사람도 같이 행복해야지”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이러저러한 정치 이벤트를 통해 변화를 이룬 건 맞는데, 왜 우리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이런 질문이 생긴 겁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 ‘언론인 오연호’의 인생을 바꾸었네요.(웃음)

그런 셈이지요. 앞으로 무엇을 포커스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좀 쉬면서 근본적으로 되물어 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행복지수 1위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무작정 가본 것이지요. 당시 제 생각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대통령 하나 바꾸려고, 정책 하나 바꾸려고, 그런 건 아니다. 대통령이나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질이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는 왜 그것이 연결이 안 될까? 그런데 덴마크 사람들은 행복하다니까,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됐지?” 이런 의문이었지요. 그렇게 덴마크를 가기 시작했고, 이번 방문까지 모두 19번째가 됐습니다.

 

함께 한 시민들의 힘으로 수상한 그룬트비 상

무엇보다 그룬트비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도 북유럽 평생교육 견학 차원에서 덴마크에 몇 차례 다녀왔는데, 덴마크에선 그룬트비라는 사람이 국민적으로 추앙을 받는 분이더군요. 그래서 이 상이 엄청난 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요. 수상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시상식 현장에서 5분 정도 수상 소감을 얘기했습니다. 그룬트비가 선도를 하긴 했지만, 덴마크가 저렇게 된 건 한 명의 그룬트비가 아니라 수많은 그룬트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시민들, 선생님들, 정치인들…. 수많은 그룬트비가 오늘날 덴마크를 만든 겁니다.

10월 2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그룬트비상 시상식에서 오연호 대표(오마이뉴스 사진 제공)

덴마크를 왔다갔다하면서 그 사회의 상징적인 인물인 그룬트비의 정신을 우리는 어떻게 배울까 고민했습니다. 한국에서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학교도 만들고, 덴마크 여행단도 조직해서 가보고 했지요. 근데 이 모든 일들이 미리 계획한 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1개년 계획, 2개년 계획…, 이런 계획은 하나도 없었어요. 하다 보니 책도 나왔고, 하다 보니 학교도 만들었고, 졸지에 여행단도 꾸려졌구요. 이게 뭐냐 하면 이 일들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힘, 이 분들이 끌어주는 에너지가 이 일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고 이어갔다는 것이지요. 목말라하는 시민들, 참여하는 시민들, 함께 하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거지요. 제가 처음 ‘꿈틀리 인생학교’ 얘기를 했을 때, 만약 학부모들이,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참여하는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항로를 정해준 셈이네요.

그렇지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게, 지난 6년 동안 수많은 시민들,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이걸 만들어낸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상을 받은 게 더욱 영광스러웠어요. 덴마크를 저렇게 만든 게 수많은 그룬트비였듯이, 이 상을 받는 과정도 한국의 수많은 꿈틀리 주민들(=꿈틀꿈틀거리는 사람들,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덴마크 현지 사람들 앞에 두고 수상 소감이라고 밝힌 겁니다.

시상식을 앞두고 호텔에서 수상 소감 연습을 했는데,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구요. 미리 울어서인지, 다행히 본 행사 때는 안 울었어요.(웃음) 제가 2007년, 미국 미주리대에서 미주리메달을 받은 적이 있어요. “<오마이뉴스>로 ‘시민참여 저널리즘’을 새로 열었다”는 공로로 받았는데, 그때 너무 감격해서 울었거든요. 10명이 수상을 했는데, 저 혼자 한국 사람이고 나머지는 전부 미국 사람들이었어요. 영어 발음도 후진데, 울먹이기까지 해서 아무도 뭔 얘기를 하는지 못 알아들었지요, 나 혼자 감격해서…(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메시지는 전달하자, 울지 말자, 다짐했고, 그러니까 진짜로 안 울게 되더라구요.(웃음)

덴마크 본국 사람들 말고 외국인이 받은 첫 번째 케이스라면서요?

그렇습니다. 시상식에서 주최쪽 분들이 왜 상을 주는지 길게 낭독하더라구요. 말하자면 선정 이유를 발표하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룬트비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정신이다. 그런데 그룬트비 정신이 한국으로 수출되는 과정이 아래로부터 위로의 과정이었다. 덴마크 정부나 한국 정부가 도와준 게 아니다. 한 저널리스트가 ‘이 나라는 도대체 왜 행복한지’를 찾다가 그룬트비 정신을 알게 됐고, 이를 본국에 가져갔다. 그것도 100% 민간에서 확산했고, 지금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룬트비상 수상 직후 코펜하겐에 있는 그룬트비 동상 앞에서 오연호 대표(오마이뉴스 사진 제공)

 

계획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끌고 왔다

상을 준 덴마크 NGO ‘그룬트비 포럼’의 ‘2018 그룬트비상 선정 이유’ 원본 문건을 보니까 제일 앞에 ‘100% 그룬트비’라고 써 있던데, 그게 이런 의미였군요. 주최쪽인 덴마크 NGO가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셈이네요. 그래서 더욱 뜻깊은 상이었겠습니다. 오 대표는 현재 꿈틀리 인생학교 이사장이기도 한데, 강화도 꿈틀리 인생학교는 언제 설립한 겁니까?

2016년에 만들어졌어요. 제가 2014년에 첫 번째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썼습니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덴마크가 왜 이렇게 행복한가 죽 살펴봤더니 여러 가지가 있더라.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내 인생을 내가 주도적으로 사는 힘’이다. 그들은 인생이 내내 성장기다. 그 상징이 애프터 스콜레(청소년 인생학교)와 호이 스콜레(어른 인생학교)다.”

학부모들이 이 책을 읽어보고, 강연장에서 내 얘기를 듣더니 “그거 우리도 한번 만들어 봅시다”, 이러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한번만 들었으면 그냥 잊어버릴텐데, 가는 데마다 들으니까 “그럼 우리가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이 샘솟은 것이지요. ‘만들어볼까 토론회’를 평일 오전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했는데, 100명 이상이 왔어요. 깜짝 놀랐지요.

지금까지 1천 번 가까이 강연을 했더군요. 강연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습니까?

덴마크 갔다오면서부터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책 낼 계획이 없었고, 그냥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했지요. <오마이뉴스> 기자들의 특징이 해외 취재를 가면 그날그날 기사를 써서 올립니다. 그럼 그 기사를 보고 그 지역의 시민 기자들이 “니네 여기 왔냐?” 하면서 달라붙어요. 이게 ‘<오마이뉴스> 스타일’이거든요. 근데 제가 1988년, 월간 <말>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덴마크 갔을 때는 해외 가서 최초로 첫 열흘 동안 단 한 줄도 기사를 안 썼습니다. 나부터 스스로를 점검하고, 쉬었다 되돌아보고 싶어서였지요. 일로 생각하고 서두르기가 싫더라구요.

근데 덴마크 갔다와서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나혼자 알고 있어서 되겠나? 하는 거였지요. 그래서 <오마이뉴스>에 쓰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7~8꼭지 써나갔더니, 그때부터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강연 계획은 전혀 없었거든요. 그리고 강연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덴마크 사람들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많이 키웁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는 그거하고 행복하고 뭔 상관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질문자의 의도는 인간 사이의 관계망이 좋으면 굳이 강아지 같은 반려동물에 의존 안 할 것이라는 거였지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너무나 모르구나 하면서 또 덴마크에 갔다오고.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거 보고 책을 내라고 하더라구요. 학생들이랑 교재로 사용하겠다면서. 그래서 첫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내게 되었지요. 가장 최근의 일은 신안군에서 어른용 애프터 스콜레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은 건데, 이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신안군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군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강의를 다 듣는 거예요. 그러더니 자기가 평소 신안이라는 지리적 환경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얘기한 ‘호이 스콜레’(성인용 인생학교)를 같이 한번 해보자는 거예요.

 

며느리가 김치 담글 수 있으려면 시어머니는 방관해야

그러니까 최근까지 일련의 일이 죄다 그런 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왔다는 것이군요. 대단하네요. 그나저나 대표가 그렇게 외도하면 <오마이뉴스>는 어떡하나요?(웃음)

이병한 편집국장이 잘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2000년에 만들어졌는데, 그때 대학교 4학년짜리 3명과 제가 창간 멤버입니다. 이른바 이름 있는 기자나 유명 언론사 출신은 한 명도 없었어요. 이병한 국장은 그때 들어온, 당시 대학교 4학년 친구이지요.

덴마크 프로젝트가 시작된 즈음, 상암동 사무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누가 들어와요. 이병한이었는데, 얘도 어느새 머리가 허옇더라구요. 나는 서른일곱살에 <오마이뉴스>를 창간했는데, 얘는 이미 40대 중반이야.(웃음) 그때 이런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얘네들은 첫 직장으로 <오마이뉴스>를 택해 청춘을 바쳤는데, 이제 얘네들이 주도해야 된다, 덴마크를 저렇게 만든 힘이 자기주도성인데, 우리도 후배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새로운 판을 만들고, 오연호 없이도 되는 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 하는 게 항상 마음에 안 들잖아요?(웃음) 마음에 안 들 때마다 개입하면 며느리가 김치를 계속 못 담그게 되니까,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참는 겁니다. 너희들끼리 한번 해봐라, 라구요.(웃음)

시어머니가 자기가 좋아하는 딴 일이 하나 있으면 잘 참아지는 법이니까 괜찮아요. 잘 됐습니다.(웃음)

제가 끊임없이 시어머니로 배가 고프면 또 개입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기사를 기획하고 쓴 일,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일치되는 거예요. 그 동안에는 글로 썼는데, 지금은 강연을 합니다. 제가 970회 강연을 했는데, 970번의 연재 기사를 쓴 셈이지요. 강연의 과정이 기사를 쓰는 과정과 상당히 일치할 뿐 아니라 더 입체적이고 실천적입니다. 독자가 내 기사를 읽어보고 “내가 이렇게 실천했습니다”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이 기사 참 좋습니다” 정도지. 강연은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강연을 들은 청중들이 편지를 보내거나 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실천 과정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제 두 번째 책은 실천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다른 제목으로 하면 <우리도 실천할 수 있을까>가 되지요. 5년 전에 나온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9만부 정도 팔렸고, 올 2월에 나온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2만부 정도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이미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강화도 꿈틀리 인생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커리큘럼이랄까 운영 체계는 어떻게 됩니까?

이 학교에 세 가지 모토가 있습니다. “쉬었다 가도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괜찮아, 이미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미’가 붙은 이유는 우리가 항상 이미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오케스트라 멤버가 되려면 이미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꿈틀리 인생학교는 1년짜리 인생 설계학교입니다. 기존 대안학교 커리큘럼과는 물론 완전히 다른데, 최종적인 목표는 비록 1년이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인생은 즐거운 거네” 하는 걸 경험해보자는 거예요. 제가 강연을 통해 중고생을 6만 명 가량 만났는데, 얘들한테 강연할 때마다 물어봐요. “초등학생 때가 더 좋아, 아니면 중고생 때가 더 좋아?” 그러면 당연히 초등학교 때가 더 좋대요. 그때는 좀 놀기도 하고, 내 마음대로 해본 것도 있고, 아주 썩 잘하지 않아도 칭찬도 받았는데, 중고등학생이 되니까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너무 바빠. 그리고 1등급에서 3등급 안에 들어야 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요. 그래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가? 엄마가 살아가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고, 애들이 “인생은 별로 안 즐겁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지요. 그 독을 빼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어떡해야 되나? 첫째가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걸 바탕으로 옆 사람도 사랑하고 챙겨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과정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지요. 기존 학교에서의 수업 방식보다는 내가 스스로 찾아서 뭔가를 하는 개인 프로젝트가 굉장히 중시됩니다. 그 다음에 남들과 뭔가 함께 해보는 팀프로젝트가 중요하구요. 물론 선생님도 있고, 민주시민교육, 외국어 교육, 농사 교육도 하지만 내가 스스로 해보는 것, 그래서 나를 깨닫는 것과 친구랑 같이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이 세 번째 기수인데, 1년짜리이다 보니 기수마다 콘셉트를 바꿀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나와 우리’를 아는 것에 집중했다면, 내년에는 ‘나를 알고 우리를 알고 세계를 알자’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2학기 때 30명의 학생들이 5주간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에 단기 입학을 해볼 예정입니다.

건물은 폐교를 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게 왜 가능했냐면 제가 <오마이뉴스>를 만들 당시 창간 계획서에 “시민기자학교를 만들겠다”고 썼어요. 시민기자학교를 어디다 만들까 해서 전국의 폐교를 돌아다녔는데, 강화도의 한 폐교가 마음에 들어 임대를 했지요. 7년간 거기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학교를 운영했습니다.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같은 2박3일, 3박4일 프로그램이었지요. 그걸 통해서 숙박프로그램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기숙학교를 만들려고 보니 학교를 사야되겠다 싶어 인천교육청으로부터 매입을 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소유로 되어 있어요. 지금은 ‘사단법인 꿈틀리’가 <오마이뉴스>로부터 임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그룬트비+풀무고등학교가 탄생시킨 꿈틀리 인생학교

학교를 운영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었나요? 재원 마련을 어떻게 했습니까?

덴마크는 운영 재원의 75%를 정부가 지원해 줍니다. 법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지요. 우리나라는 법이 아예 없어서 아무 지원을 받을 수 없구요. 교직원 8명에 학생이 30명인데, 학생 1인당 월 120만원을 받아야 수지가 맞아요. 근데 그러면 너무 부담이 되니까 첫 해에 85만원을 받았고, 지금은 95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나머지 갭은 제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강연료 일부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강연할 때 “나도 이런 학교 만들고 싶다” 하는 분들 찾아가서 그런 학교 만들기 전까지는 여기 재정 지원 좀 해 주세요,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한양대 이사장님 같은 유력 인사 분들이 1천만원씩, 2천만원씩 내기도 하구요. 그런 분들을 조직해서 겨우 맞춰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분들인가요?

모든 분이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고등학교 출신들입니다. 풀무고등학교는 1958년에 세워진 학교인데, 안창호 선생과 북한에서 오산학교를 만들었던 세력이 이남에 내려와 세운 학교지요. 이 학교가 설립 당시 이미 그룬트비 정신을 알았어요. 저는 덴마크에 왔다갔다하면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됐구요. 풀무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8년간 하신 정승관 선생님을 찾아뵙고 꿈틀리학교의 교장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나머지 4명의 담임 선생님도 그 학교 졸업생들이구요. 풀무고등학교도 기숙학교예요. 우리 학교도 기숙학교잖아요? 단순히 교과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들과 같이 살면서 삶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기숙학교를 체험해 본 사람들이면 좋겠고, 풀무고등학교의 정신을 함께 담지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풀무팀을 모셔온 겁니다. 그러니까 꿈틀리 인생학교는 <오마이뉴스>의 에너지와 풀무고등학교의 에너지, 그리고 덴마크의 에너지, 이 세 에너지가 하나로 합쳐진 학교인 셈이지요.

우리나라에는 그룬트비와 비슷한 철학이나 사상을 가졌던 분이 없나요?

도산 안창호이 계십니다. 오산학교가 만들어진 과정이 그룬트비 정신과 비슷합니다. 안창호 선생이 “우리가 깨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이 중요하다”면서 전국 순회강연을 하고 다녔잖아요? 북한 지역에서도 강연을 했는데, 청년사업가 이승훈 선생이 우연히 그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의기투합해 학교를 만들게 되는데, 그게 오산학교입니다. 그룬트비도 “우리가 깨어나야 한다”를 주제로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지요. 본인은 학교를 만든 적이 없지만, 그 강연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덴마크 곳곳에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의 전국 순회강연과 그룬트비의 전국 순회강연이 일치되고, 저 또한 전국 순회강연을 하다가 학부모들이 응원해서 꿈틀리 인생학교를 만들게 됐지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덴마크

꿈틀리 인생학교가 2016년 설립됐으니까 올해로 3년차인데, 이쯤 됐으면 이런 학교 자체를 제도화할 생각도 할 만 한데요?

제도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습니다. 민간 차원에서 더 시도를 해보고, 더 실패를 해보고, 더 시행착오가 축적된 다음에 제도화를 추진해도 괜찮을 것 같더라구요. 꿈틀리 인생학교 같은 게 전국에 10개, 20개 쯤 생긴 뒤에 제도화해도 괜찮겠다, 이런 생각이었지요. 또 우리 사회는 관이 지도를 하면 뭔가 개입이 많아지잖아요? 덴마크 같은 경우는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철저해요. 자율성을 보장해 주지요.

그런데 이제는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서서히 옮겨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학교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을 굉장히 많이 만났는데, 실현이 쉽지 않은 겁니다. 학교 하나 만드는 게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잖아요? 기숙형이다 보니 학생들 안전 문제도 있고, 제대로 된 기숙사를 만든다는 게 1~2억으로 안 돼구요. 근데 사실 우리 사회에 돈이 없는 게 아니에요. 배분의 문제이지요. 건물도 여기저기에 많구요. 제가 전국을 돌면서 보니까 수많은 수련원이 있고, 수많은 영어마을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민간의 펜션단지도 쓰여지지 않고 방치되어 있구요. 농촌마을도 비어가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앞으로는 그런 논의를 민과 관이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회에 대안교육법이 몇 개 계류되어 있어요. 그것들이 통과된다면 한결 수월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 학생들이 내는 95만원 중 30만원이 식비입니다. 고교에서 무상급식을 하잖아요? 얘네들은 여기서 의미있는 교육을 받고 있는데도, 학교 밖 청소년들이라 식비 지원을 못 받아요. 법이 통과되어 이게 지원되면 학부모들이 학비를 65만원만 내도 되거든요. 거기에 약간의 숙식시설과 선생님 급여에 대한 지원이 되면 덴마크처럼 50%만 내고도 할 수 있지요.

 

아직도 덴마크에 배울 게 남아있나요? 이제 다 배운 거 아닌가요?

덴마크에 대해서는 한도 끝도 없구나 싶을 만큼 배울 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덴마크를 배우다 보니 한국에도 괜찮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는 우리를 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곳곳에서 일하는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저는 강연하면서 “꿈틀거리는 것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즉 실천하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지요. 내가 아는 거랑 실천해보는 거랑은 완전히 달라요. 내가 꿈틀리 인생학교를 만들기 전에는 부러워서 덴마크에 갔고,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는 어떻게 만들었나 싶어 갔고, 해보니까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해서 또 갔습니다.

요즘은 왜 덴마크에 가냐 하면 문화 때문에 갑니다. 우리도 헌법이나 학교에서 내세우는 것들은 꽤 잘 되어 있습니다. 덴마크랑 똑같아요. 차이는 그걸 실천해서 문화가 되었느냐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옛날부터 가르쳤잖아요? 그런데 그게 실천해서 문화가 되었나요? 이번에 스웨덴 룬드대학교 초청으로 강연하고 왔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 유학생이 재미 있는 얘기를 들려주더라구요. 스웨덴 교수가 숙제를 내줬는데, 이 숙제가 내 성적에 반영이 되나 안 되나 궁금하더랍니다. 반영이 되면 좀 더 열심히 하고, 안 되면 대충하자 싶어서지요. 옆의 스웨덴 학생에게 물어봤더니, 그 친구가 “그거 참 흥미로운 질문이다.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하더래요.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한다는 게 완전히 문화화된 것이지요. 우린 아직 멀었습니다. 자기 속에 내면화된 거랑 “그래야 되는데…”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지요.

인생은 내내 성장기다

나이든 사람한테도 인생설계학교가 필요한가요?

제가 1년에 2~3차례, 30~40명씩 조직해서 덴마크에 다녀옵니다. 제일 눈이 반짝반짝 하는 분들이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에요. 자녀가 이미 대학생이나 청년이 된 엄마들은 “내가 이걸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우리 애를 닦달하지 않고 키웠을텐데…, 지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했을텐데…”, 후회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씀 드려요. 덴마크의 정신이 인생교육이고, 인생은 내내 성장기라는 건데, 대학생 때도 사람은 성장하고, 30대 때도, 60대 때도 성장합니다. 그래서 덴마크에는 호이 스콜레(성인대학)라는 게 있어요. 물론 22~24세가 90%를 차지하지만 나이 제한이 없어서 50대~60대도 갑니다. 6개월 과정이지요.

어른들이 “우리도 제대로 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다. 내가 30~40대인데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부모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부부 교육 받아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어른용도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청소년 학교부터 시작한 이유는 그들이 1년을 쉬기가 제일 어렵잖아요? 어른들은 자의든 타의든 쉴 수 있단 말이지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중3이나 고1이 1년 쉬기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제일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부터 시작한 것이지요. 성인용 인생학교는 당연히 있어야 됩니다.

2019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직 MOU 단계이긴 한데, 신안군과 함께 성인용 꿈틀리 인생학교를 만들 계획입니다. 2020년 개교가 목표인데, MOU 체결하니까 군수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왜 2020년까지 기다리냐? 2019년에 하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2019년에 첫 선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담주에 신안군 현장을 가볼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7박9일 일정으로 ‘꿈틀비행기’이라는 여행단을 꾸려서 덴마크에 11번쯤 다녀왔어요. 거기 참여하신 분들이 전국에 360~370명 쯤 되는데, 저는 이걸 ‘7박9일 간의 인생학교’라고 불러요. 가서 덴마크도 구경하지만, 30명이 7박9일 동안 서로 자기 인생을 나누는 거예요. 이걸 확장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어떻게 정착시켜 볼 것인가가 2019년의 화두입니다.

여러 군데서 성인용 프로그램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조금 장기적으로, 10일, 한달, 혹은 6개월 동안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팅해 보는 게 필요합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덴마크는 우리와 달라서 나를 발견하는 것을, 나만 하는 게 아니라 옆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퇴근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한 2~3시간 교육프로그램은 많지만, 퇴근길 인문학에서 우리를 형성하기는 힘들어요. 집에 가야 되니까. 근데 나를 발견하는 것을 사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할 수 있거든요.

제가 지금 우리 교회에서 50대 댄스팀을 운영하고 있어요. 자격 조건은 50대, 내가 정말 춤을 못 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20명이 모였어요. 두 달 째 하고 있는데 “아, 춤을 춰봤더니 별 게 아니네. 멋지게 추려 하지 말고 나의 혈액순환을 위해 춤을 췄더니 느는구나!” 하거든요. 이게 나 혼자 춘다고 발견하는 게 아니잖아요? 옆 사람들과 함께 추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평생학습 강의는 너무 짧고, 많은 프로그램들이 분절적이고 파편화되어 있어요. 학부모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런 강의를 들을 때는 아이가 성적을 못 받아와도 보듬어주고 사랑해줘야지, 이렇게 다짐하는데, 약발이 2주가 되면 떨어진다”구요. 그러니 장기적으로 인생을 돌아보는 그런 학교가 필요한 것이지요.

 

어느덧 인터뷰를 진행한 지 두 시간 여가 흘렀다. 열정적으로 얘기를 이어가던 그가 시계를 훔쳐본다. “아, 오늘 교회 댄스팀 모임입니다. 회장이 늦으면 안 되니 이쯤 일어나야 겠네요.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하고 함께 할 일이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앞으로 천천히 많은 얘기 나누지요.”

 

 

오연호는 누구인가?

전남 곡성 산골에서 1964년 태어났다. 중학교 때 김유정의 농촌 소설을 읽고 소설가를 꿈꿨다.

연세대 국문과 4학년 때 독재 정권 비판 유인물을 써내 수배자로 쫓기다 옥살이를 했다.

월간지 <말>에서 1988년부터 12년간 일했고, 2000년 2월 22일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인터넷미디어 <오마이뉴스>를 창간했다. 그 해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워지던 2013년 봄,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처음 찾았다. 행복사회의 비밀을 발견하고 이듬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펴냈다. 쏟아지는 강연 요청에 전국을 순회하며 1,000회에 달하는 강연을 해오고 있다. 2018년에는 10만 명의 독자와 함께 찾은 행복한 인생의 비밀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덴마크를 오간 이후 뒤늦게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2016년 강화도에 ‘꿈틀리 인생학교’를 만들었다. 이 학교에 국어 선생님을 맡고 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청소년들이 1년간 진로를 유예하고 인생을 설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