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의 강의와 함께 보낸 2018년

시민대학이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

그런 것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번도 그런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각종 문화센터, 여러 출판사나 서점 등의 문화단체에서 하는 특강, 하다못해 집 근처 평생학습관의 강좌에는 꽤 관심을 가지고 들었던 학습자인 나에게도 시민대학은 좀 먼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서울의 시민대학은 ‘자유’라는 수식어가 붙어 언제나 ‘서울자유시민대학’인지 ‘서울시민자유대학’인지 헛갈렸다. 그렇게 영 나와 인연이 없는 학교인줄 알았던 서울자유시민대학에 매달 한번씩 가서 강의를 듣고,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일곱 번의 강의를 들으며 2018년을 보냈다.

 

이렇게 많은 배우는 사람들

참으로 다양한 강의를, 매우 다양한 학습장에서 경험했는데, 그 과정에서 매번 놀란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구나’하는 사실이었다.

시민청에서 있었던 ‘오늘의 한국인을 위한 세계근현대사’는, 아무리 제목 앞에 ‘오늘의 한국인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갔더라도 결국엔 세계사 강좌이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시간에 주로 졸았던 나로서는, 이런 강좌를 누가 들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천장이 엄청 높고, 넓은 시민청의 중앙홀을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빽빽이 메우고 앉아 있었다. 포르투갈의 해상무역, 바스코다가마와 리콴유 수상, 칼 폴라니를 종횡무진하는 세계사 강의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니!!

8월엔 더 놀랐다. 올해 8월이 어떤 8월인가? 1994년을 찜 쪄 먹을 무시무시한 더위가 휩쓸고간 8월이 아닌가? 재난 수준의 더위를 뚫고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서대문 시민대학 본부 강의실에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계속 들어왔다. ‘우리들의 감각을 깨우는 시간’은 인기 강좌라 미리 신청하지 않은 학습자들이 와서는 학습매니저에게 자료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35도 넘는 더위와 오르막길도 사람들의 배우겠다는 의지를 꺾지는 못하는구나 싶었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보는 한국문화론’ 강의실도 터져나갔다. 워낙 페미니즘 강의가 인기있는 한 해이긴 했지만, 기본 자리를 다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뒤쪽에 책상 없이 의자만 일렬로 놓았고, 그 자리마저도 빼곡히 들어찼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공부에 관심이 많고, 공부를 좋아하는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강의실에서 시작해 SNS로 이어진 네트워크

요즘은 TV나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연예인을 보면 곧바로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검색해보고 그를 팔로우한다. 그 연예인이 올리는 사진과 일상을 보며 그를 좀 더 알게 되고 친근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자유시민대학에서 들었던 강의를 계기로 누군가를 팔로우하거나 유투브 동영상을 검색해보는 등 온라인으로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좋아요 눌러놓은 글을 읽다가 그 글이 ‘오늘의 한국인을 위한 세계 근현대사’ 강사님의 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신기했던 경험도 있고,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보는 한국문화론’ 강의를 듣고 강사님 페이스북을 찾아보다가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여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나의 페친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페친이라고는 얼굴 아는 지인들 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권김현영, 손희정 님의 글이 올라올 때마다 즐거워하며 읽는다. 이분들의 계정이 자유시민대학에서 페미니즘 수업을 들은 이후 팔로우한 계정들이다.

‘귀가 트이는 클래식 감상 가이드’ 수업 시간에는 유투브로 음악 감상을 했다. 이후 수업후기를 쓰기 위해 한동안 유투브에서 클래식 음악을 찾아들었더니, 요즘은 유투브에 접속하기만 하면 클래식 추천 동영상이 자동으로 뜬다. CD장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세워져있던 클래식 음악 CD들을 다시 오디오에 넣고 듣기 시작한 것도 수확이다.

요즘 큐레이팅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너무 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있어 그 중 어떤 것을 보고 들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시민대학의 수업은 큐레이터의 역할을 한다. 수업이 한번의 수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관심사를 넓혀주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평생 몰랐을 것들과의 만남

내가 들은 일곱 번의 강의 중에는 관심있는 분야의 강의도 있지만, 취재가 아니었다면 평생 들었을 리 없는 강좌도 있다. ‘자이언트 페이퍼 플라워 만들기’ 수업 같은 경우가 그렇다. 평소 지지리 손재주가 없고, 만들기에 젬병인 내가 무려 꽃을 만들다니! 이 수업을 듣고 몇 달 후 합정동 어느 카페에 갔다가 벽을 장식한 자이언트 플라워들을 발견했다. 평소라면 벽에 그런 장식이 달려있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내 손으로 꽃을 만들어봤더니 그냥 지나쳤을 종이꽃이 바로 눈에 확 들어왔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클래식 음악 감상 수업 역시 “음악 감상은 콘서트에 가거나 CD를 들으면 되지, 뭘 굳이 강의까지 들으며 음악 감상을 배워야 돼?”가 기본적인 나의 생각이었다. 친구가 아기를 가졌을 때, 세종문화회관까지 가서 클래식 음악 감상 수업을 두 번이나 듣는 걸 보면서도 태교에 열심이라고만 생각했지 좋아서 들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수업을 들으면서 그 친구가 왜 같은 수업을 두 번이나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발성이 좋은 강사의 목소리로 흥미진진한 음악 뒷이야기를 들으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은 내 몸과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가득 채워준다. 수업을 듣고 나오는 길에 하늘이 달라 보이고,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이런 시간을 가진다면 살맛이 두 배는 더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잠든 감각을 깨우는 시간’에서 내가 들은 강의는 사진 잘 찍는 방법과 영화에서 화면 구성을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 즉 영화문법이었다. 이 수업을 듣고 영화 <덩케르크>를 보게 되었는데, 영국에서 자신들을 태우러 올 함선을 기다리는 군인들이 바닷가에 모여있을 때, 카메라가 양 옆으로 나무 울타리를 집어넣고 그 사이에 군인들의 무리를 잡는다. 이는 군인들의 국적이 영국이건 프랑스건 상관없이 다들 같은 마음으로 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강의를 듣기 전이라면 나는 그 장면에서 그런 사실을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에도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앞과 뒤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면서 주인공의 운명과 현재 심정을 가늠해본다.

단지 한 회씩 들은 강의임에도 이토록 내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주었고, 상식을 더해주었다. 그렇다면 내년엔 코딩이나 유투브 업로드 및 편집 같은 궁금하지만 전혀 모르는 분야를 한번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못 다 읽은 책

이렇게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내가 쓴 원고들을 들추다 보니 꼭 읽어야겠다며 리스트에 올려놓고는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들이 눈에 밟힌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해서 적어놨는데,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올해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큰 발견은 <사피엔스>였는데, <거대한 전환>도 그 정도의 감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페미니즘 문학 수업을 듣고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읽었다. ‘노라’는 각성된 여성의 대명사 같은 인물인데, 소문만 들었을 뿐 실체를 마주하지 못하다가 자유시민대학 강의를 듣고서야 드디어 읽어본 것이다. 희곡인지도 몰랐고(원작이 소설인줄 알았다^^;;), 노라와 남편 외에 중요한 인물들이 나온다는 사실도 몰랐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작품이었다. 그러니 그 강의 때 <인형의 집>과 함께 꼭 읽기로 결심했던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도 얼른 읽어봐야겠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서울자유시민대학의 강의들은 큐레이터의 역할을 한다. 그 분야 전공자인 강사들의 해박한 지식을 듣고, 그들이 추천해주는 책과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 익사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짜다. 듣는 사람은 시간과 열정만 바치면 된다.

그러니까 자유시민대학의 강좌들을 한줄로 정의해 보라면, 나에게 ‘자유시민대학은 큐레이터이다’ 혹은 ‘정보의 바다를 비추는 길잡이 등대다’라고 해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