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세우기’와 ‘함께 살기’의 균형을 찾는 시간, 청년 갭이어

우리 청년들은 한때 ‘88만원 세대’라 불리거나, 또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청춘 예찬론을 들어야했다. 이어 국가는 여러 청년 지원 정책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청년 정책은 88만원 세대의 강화거나 아파도 참으라는 훈계의 변주들이었다. 그 어느 것이나 계속 달리기 경쟁의 출발선에 선 듯 긴장감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청소년들과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민들레에는 청년들도 곧잘 찾아왔다. 우리는 청년들과 사이랩(4.2LAB)이라는 작은 학습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라거나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공부가 아닌, 오로지 ‘내 삶을 위한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1년 동안 열 명 남짓한 청년들이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나는 누구인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지’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는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심리학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갈등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갈등해야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으므로, 지혜롭게 갈등하는 워크숍도 수시로 열었다. 내 삶을 위한 실력은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이들과 나눌 때 배가 된다는 경험은 여러 실천으로 절로 실감하곤 했다. 함께 시간을 보낸 청년들은 한참 지난 뒤 그 1년의 시공간을 ‘따뜻한 비빌 언덕’으로 기억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뿔뿔이 세상으로 흩어졌지만, 때때로 따뜻한 비빌 언덕을 찾아 모이곤 했다.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여유롭게 ‘자기 세우기’와 ‘함께 살기’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돌아보니 그런 순간이 정말 없었다고, 내 친구들에게도 이런 시공간이 필요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 1년이 청년들을 위한 갭이어(전환의 시간)이었다고 평했다.

 

갭이어는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피난처’ 같은 시간이어야 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삶’의 압박은 생각보다 위압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출세나 성공신화를 발신하는 미디어는 물론이고, 그 통념을 그대로 내면화해 자녀나 친구에게 강요하는 가족이나 주변인들은 청년 당사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런 자극들이 청년들에게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해 나가는 힘을 빼앗고 있으며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떠밀리듯이 살고 있는 청년들에겐, 그 무언가에서 놓여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당장 절실하다.

 

갭이어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활동내용과 참여 형태를 자유롭게 기획 실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주어진 정규 교육과정을 밟으며 삶의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받지 못하면서 청년은 갑작스럽게 닥치는 삶의 변화와 늘어난 책임감에 방황하기 십상이다. 청년 스스로가 자기가 보낼 시간과 만날 사람, 경험에 대해서 스스로 기획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 그리고 동료들과 미래를 설계하고 따로 또 같이 삶을 꾸려 나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자유롭게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시도하는 안전한 시, 공간, 동료가 있을 때 자신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타인과 공존하는 밀도 깊은 체험이 가능하다.

 

공무원이 청년들의 삶의 목표가 된지 오래인 대한민국 노량진 고시촌에는 헐렁한 트레이닝복의 청년들이 열공 중이다. 곁도 주지 않고 컵밥으로 끼니를 떼우며 열공 중이다. 그들 중 다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죽인다. 그들의 열공이 오히려 맘이 아픈 이유다. 이 땅의 청년들이 진정 자신을 위한 열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하고 써 먹는다네” (박노해 시 ‘자기 삶의 연구자’ 중에서) 라는 시인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