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지역의 맛있는 빵은 내가 책임진다!

파티시에의 하루

빵집에 자주 가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제과제빵사, 즉 파티시에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마들역 앞 엘리제과자점의 최형일 파티시에의 하루도 오전 5시 40분에 시작된다.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고 마들점에 도착하는 것이 아침 6시 20분. 불 켜고, 청소하고, 준비를 해놓은 다음, 6시 40분에 중계점으로 가서 이미 출근한 생산직원들과 인사하고, 배달이나 시장 보는 등 일을 거든다. 마들점은 7시 오픈, 중계점은 8시 오픈한다. 판매는 전담 여직원들에게 맡기고, 최명장은 생산 쪽을 돌본다. 오후에는 제과협회 일이나 강의를 하고, 밤 11시 30분에 중계점을 마감하고, 12시에 마들점을 마감한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

최명장이 엘리제 과자점을 오픈하고 20년이 넘도록 지킨 철칙은 오픈과 마감을 직접 한다는 것. 그러자니 늦게까지 술마시는 일도 없고, 평균 수면 4시간 정도이다. 간혹 직원들이 흔들린다 싶을 때는 5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나올 때도 있다.

 

제빵사들의 사관학교 나폴레옹에서의 10

이렇게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하루가 몸에 밴 것은 ‘제과제빵사들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나폴레옹 과자점에서의 10년 덕분이다. 최명장은 사회생활의 시작을 양복점에서 했다. 양복점에서 재단을 배웠는데, 당시 국내 대기업들이 패션산업에 뛰어들어 기성복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최명장은 결단을 하고 직업을 전향한다. 처음 들어갔던 나폴레옹 과자점은 군대보다 더 엄격하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밤 10시에 업무가 끝나는 곳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2~3년을 버티는 사람이 잘 없었다. 게다가 최명장은 10대에 시작한 동료들과 달리 20대에 일을 시작해 더욱 힘들었다. 처음 1년은 무척 힘들었으나 낙오하면 안되겠다는 오기가 생겨 남들 술 먹고 놀러 다닐 때 독하게 연습했다. 오죽하면 ‘연습벌레’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렇게 열심히 한만큼, 회사에서도 파티시에를 위해 투자를 많이 해줬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회사에서 보내줘서 일본, 프랑스 등 해외에 나가 빵을 배워왔고, 10년 만에 직원 40명을 통솔하는 총괄책임자가 되었다.

 

내 가게를 하는 즐거움

엘리제과자점을 열기까지도 어려움이 있었다. 최형일 파티시에가 제과점을 열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면 자기네 상권에 열지 말라는 민원이나 협박전화가 오곤 했다. 나폴레옹에서 10년이나 일을 하다보니 아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강남에 3군데나 계약을 했지만 그런 이유로 개업할 수 없었다. 어딜 가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싶어 오게된 곳이 지금의 엘리제과자점이 있는 마들역 부근이다. 그때는 지하철도 없었고, 와보니 여기가 서울의 끝이구나 싶을 정도로 한갓진 곳이었다. 기존 제과점이 몇군데 있었지만 다행히 아는 사람이 없었고, 원래 파리바게트가 있던 자리에 들어가 오픈했기 때문에 상도의도 지켰다고 생각한다.

최명장은 지금도 가게 문을 열고 깨끗이 청소한 후 커피를 내려 마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내 가게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누리는 짧은 여유의 순간이다. 그냥 빵만 만들고 운영해도 되는데, 매번 자격증을 따고 매시즌 프로모션을 하는 이유는 이 직업이 너무나 재밌고 좋기 때문이다. 2002년 기능장을 따고, 2011년 국가대표로 프랑스 페이스트리 컵 대회에서 베스트상을 타 국위 선양하고, 2016년 우수숙련기술인이 되고, 월드비전에서 콩고 난민들에게 빵 만들기를 가르치고, 학교 밖 청소년들의 배움터로 등록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도 이 직업이 천직이었기에 가능했다.

 

매 시즌 새로운 아이디어로 고객의 마음 사로잡아

엘리제과자점은 현재 100%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하며, 서울시 트랜스지방 제로 과자점으로 지정되어 있다. 소보루, 크림빵 등이 1700원부터 시작하니 비싼 편이다. 하지만 시중밀가루의 3배 가격인 유기농 밀가루를 쓰고 있기 때문에 원가 대비 이익이 크다고 할 수 없다. 고객들도 원료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 윈도 베이커리(=즉석빵집) 중 마늘 바게트를 가장 많이 판 집이 바로 우리집일걸요? 1500원짜리 바게트가 하루에 300개씩 나갔으니까요. 물론 마늘바게트 하나를 굽는데도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바게트를 소프트하게 구워보는 등 노력을 많이 했죠. 테라스에서 파티시에들이 하얀 조리복을 입고 직접 빵을 잘라주며 시식회를 개최한 것도 제가 가장 먼저 했을 겁니다. 미도파 백화점 프로모션 때 선보였었죠. 지금은 흔한 프로모션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고객들이 줄을 섰습니다.”

최명장은 시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프로모션을 한다. 아이디어는 생산부장에게서도 나오고 직원들에게서도 나온다. 책이나 TV를 보다가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메모해놓고, 제과점이 아닌 다른 매장에서도 수시로 아이디어를 얻는다. 다른 분야와의 통섭이 훈련된, 인문학적인 사고를 실용적으로 수용한 예가 아닌가 싶다. 수능 시즌에는 떡을 진열하고, 가정의 달 5월에는 카네이션 케이크를 만들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독일 전통 크리스마스 빵 스톨렌을 굽는다. 이런 노력을 고객들도 알아봐준다. 그랬기에 1994년 오픈한 엘리제과자점이 20년 넘도록 한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