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달픔 이겨내게 해주는 평생학습”

 

 

2018년 <다들>이 만난 첫 번째 멘토는 조정래 작가였습니다. 평생학습의 일꾼들을 위해 무술년의 희망 메시지를 들려달라는 주문에 그의 답변은 명쾌했습니다. “분당 우리집으로 오소!” 백의(白衣)의 염결함이 배어 나오는 흰색 무명옷을 곱게 차려 입고 편집진을 맞은 그는 평생학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길 없는 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지요. 저는 이런 말을 즐겨 합니다.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다” “인생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 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외롭고 고달프지 않은 삶이란 없다.” 그래서 도를 닦고,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덜 외롭고, 덜 고달프기 위해 도를 닦고 마음을 닦는 셈인데, 저는 이것이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고달픔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힘, 그것이 평생교육이지요.

 

 

공교롭게도 두 번째를 멘토를 찾아간 곳 역시 분당이었습니다. 도정일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을 만났죠. 우리나라에서 한글을 가장 논리적이면서 가장 아름답게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글쟁이답게 그의 말은 시종 잘 다듬어진 한국어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듯했습니다. 인문학의 멘토인 그에게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를 꺼내자 이런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대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떤 직업 영역을 지망해야 되는가, 어떤 영역에서의 기술을 터득했는가라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과이건 아니건 간에 대학이라는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이 반드시 체득하고 있어야 할 기본 능력과 가치관이 없으면 인생의 좌표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무엇이 삶의 기본적 가치인지를 판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는 어떤 학문 영역보다도 인문학 분야의 교육은 강력합니다.

 

 

화창한 봄,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을 직접 찾아온 멘토는 방송인 강유미 씨였습니다. 인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히브리어, 헬라어까지 배운다는 그는 배움을 생활화하고, 자신을 천재라 치켜세우는 후배에게 “나는 천재가 아니라 노력파다”라고 답하는 겸손한 청년 멘토였습니다.

 

후배들이 저한테 “선배님은 타고 나셨으니까 모르실 거예요”, 뭐 그런 말을 많이 해요. 그때마다 전 좀 화가 나지요. 그래서 “네가 만약 내가 무슨 노력을 하는지 안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너는 얼마나 노력을 해봤길래 그렇게 얘기를 해?” 그렇게 되묻습니다. 저는 연습 없이는 못해요. 밖으로 드러나는 건 피눈물 나는 연습의 결과입니다.

 

 

창간 이래 많은 멘토들을 만나왔지만, 이번 인터뷰 장소는 좀 특별했습니다. 연극 공연을 두 시간 앞둔 극장 대기실이었죠. 1934년생이니까 올해로 만 여든 네 살. 그런데도 나이가 무색하게 브라운관과 스크린, 그리고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직진 순재’ 배우 이순재 선생을 만나러 간 곳이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거침없고 재치 있는 답변, 인생살이의 너른 폭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포개지면서 빚어내는 지혜의 언어들은 인터뷰의 재미에 의미를 더해주기 충분했습니다.

 

 

완성이나 종결이 없는 게 예술이고 연기예요. 시대에 따라 최고의 작가, 최고의 배우가 있을 뿐이지, 그게 완성은 아니라구요. <햄릿> 같은 경우도, 최고의 햄릿이 있는 게 아니라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 랄프 리처드슨의 햄릿, 존 길구드의 햄릿이 있을 뿐이고. 잠시 뒤 막이 오르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도 나와 주인공으로 더블 캐스팅된 신구의 표현하고 내 표현이 달라요. 그런 게 우리 직종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여성 멘토’에 대한 열망 속에 찾아간 분은 범죄심리학자, 프로파일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수정 경기대 교수였습니다. ‘범죄’와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때론 따로, 때론 붙어 있는 책들이 양쪽 벽에 빽빽이 들어찬 연구실에서, 어떤 질문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야말로 ‘속공’으로 답변을 이어간 카리스마 넘치는 멘토였죠.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에 대해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아줌마이고 여자이다 보니 연쇄살인 사건보다는 배우자 살해 사건 같은 게 더 기억에 남아요. 정말 도와주고 싶은데 정당방위 인정을 못 받고 실패한 사건들, 이를테면 남편에게 30년 이상 학대받다가 살해했는데 정당방위도 인정 못 받은 분들, 그때마다 우리나라 형사사법기관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절감하게 됩니다.

 

 

7월 23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8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에서 ‘평생학습 서울선언’이 발표됐습니다. 공공기관이나 평생학습 관련 단체도 아닌 곳에서 ‘평생학습 서울선언’이라니! 김영철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은 놀랐지만, 그 중심에 문국현 한솔섬유 대표가 있었다는 소식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었죠. 그래서 <다들>은 그를 서울 평생학습의 심장 서울자유시민대학 본부로 초대해 평생학습 서울선언의 배경에 대해 물었습니다.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지만 그림의 떡일 뿐이고, 내게 익숙한 일자리는 없어진다는 위기가 팽배합니다. 이런 통찰력과 노하우를 국가, 기업, 지역사회, 대학, 개인이 공유하자는 겁니다. 굳이 바닥까지 떨어진 다음에 재취업 프로그램을 돌리지 말고, 이동성과 유연성을 높여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가게 하자, 그것을 전세계가 협력하자, 이런 취지로 서울선언을 채택하게 된 것입니다.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의 어느 날 찾아간 멘토는 ‘진보 진영의 원로’라 불리는 정성헌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네 번의 감옥살이를 하고, 박 정권으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분이 그가 남긴 가장 큰 조직의 수장이 되었다니, 감회를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거침없는 답변 속에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어느 단면에서는 대결했는지 몰라도, 크고 길게 보면 밥과 말이 같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는 밥은 먹고 살잖아요? 말도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까? 산업화와 민주화가 상생작용을 해서 함께 이룬 성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분법적 과거는 극복을 하고,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를 뵈러 가는 날은 서울에 미세먼지가 유독 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뿌연 공기를 가르며 한강변을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덧 펼쳐진 낯선 풍경. 노랗고 빨갛게 물든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반겨주는 강화도 우리마을이었죠. 촌장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모자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김성수 멘토는 장애인들을 위한 삶,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쓸모없는 사람을 세상에 내놓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도, 버릴 게 없고 쓸모없는 게 없다, 세상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이런 얘기를, 이런 일을 하다보면 안 할 수가 없어요.

 

 

2018년 마지막 멘토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였습니다. 비덴마크인으로는 최초로 ‘그룬트비상’을 받은 분이죠. 인터뷰 당일에도 덴마크를 거쳐 스웨덴에서 막 날아온 그는 덴마크 행복사회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덴마크가 저렇게 된 건 한 명의 그룬트비가 아니라 수많은 그룬트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시민들, 선생님들, 정치인들…. 수많은 그룬트비가 오늘날 덴마크를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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