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제일 잘한 일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동물 애호가 ‘지회님’

 

모두의학교에서 길고양이를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소식에 번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장에서, 화단에서, 옥외 계단에서 슬그머니 출몰하는 길고양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유독 애정 가득한 눈빛을 발사하던 그녀 임.지.회.

 

몇 달 전, 지회님은 집 앞에서 떨고 있는 유기견을 구조했다며 강아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주변에 입양할 만한 가정이 없는지 묻곤 했다. ”슬픈 눈을 가진 강아지” 라면서.

 

슬픈 눈을 가진 우엉이

 

우엉이(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서 지어준 이름)를 만난 건 늦여름이었어요. 아파트 단지 앞에서 몸을 덜덜 떨면서 헥헥거리고 있는 거예요.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눈이 너무 슬퍼 보였어요. 털도 깨끗하고 잘 관리한 것 같아 주인이 있는 강아지인 줄 알았거든요. 동물병원에 전화해보니 잃어버린 사람이 없대서 다산콜센터로 신고했어요. 잠시 우엉이를 집으로 데려가 물도 주고 나중에 먹으려고 놔뒀던 떡갈비를 구워줬더니 허겁지겁 너무 맛있게 먹는 거예요. 또 내려놓자마자 신나서 돌아다니는 걸 보니까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였더라구요. 자기 집처럼 돌아다니니까 보내기 싫었는데, 결국 보호소로 보냈어요. TV에서 반려견 전문가가 혼자 사는 사람이 강아지를 키우면 좋지 않다고 얘기하는 걸 봤거든요.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 카페에 올라왔던 우엉이 사진과 설명

 

그렇게 보호소로 간 우엉이(a.k.a 아기돼지)는 건강해서 안락사 대상이 되진 않았지만, 다른 개들에 비해 입양이 늦어지는 듯했다. 지회님은 전국의 유기동물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PAWINHAND)을 설치해 수시로 우엉이를 사찰했고,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로 가게 된 걸 알고 난 후 인터넷 카페도 가입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렇게 또 몇 주가 흐르고, 가을에 어울리는 갈색 강아지 우엉이는 드디어 좋은 가정에 입양돼 다이어트 사료를 먹으며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작년에 제일 잘한 일 같아요. 우엉이 구조한 거, 길고양이 집 만든 거.

 

 

길냥이 보금자리 27호 분양

 

그렇다. 지회님은 강아지만큼 고양이도 좋아했다. 모두의학교가 정식 운영에 들어가면서부터 ‘모두의 앙상블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는 수진님과 보람님한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프로그램을 제안하곤 했다. 물론 고양이 목에 진짜로 방울을 달자는 건 아니고, 매일같이 모두의학교를 드나드는, 모두의학교에 거주하는 길고양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보자는 취지였다. (수의사 자문 결과 고양이들은 목에 방울을 달면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여러 번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연말에 선물처럼 이 프로그램 <길고양이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만들어 줬어요. 모두의학교는 독산동 고양이들의 성지죠. 근처가 다 주택가라 고양이가 아주 많아요.

독산동 고양이들의 성지 ‘모두의학교’에서 졸고 있는 길냥이

 

고양이계에서 ‘냐옹신’으로 통한다는 나응식 수의사, 길 고양이 겨울 집을 대신 만들어 주는 봉사 단체 ‘윈터캣 프로젝트’와 함께한 <길고양이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작년 모두의학교에서 진행한 ‘모두의 앙상블 프로젝트’ 84개 중 단연 인기 폭발이었다. 참여 인원 20명이 하루 만에 모집됐고, 대기자도 줄을 이었다. 대부분 고양이에 관심이 있거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는 시민들이었고, 수의학과 학생도 있었다.

 

프로그램은 고양이 행동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길에서 생활하는 고양이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또 롱패딩 하나 없이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길냥이들을 위한 DIY 보금자리를 만들어보는 기회였다. 시민들은 각자 고양이 집을 1채씩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가져가거나, 모두의학교에 기증하고 떠났다. 그렇게 모두의학교산 길냥이 집 27호(운영진이 만든 집 포함)가 서울 전역으로 분양됐다.

 

 

지회님도 직접 만든 집 한 채를 들고 가던 날, 지하철에서 어떤 캣맘이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다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커다란 상자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고양이 집이라고 했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경우도 있었단다.

 

그럴 수 있죠. 다만, 고양이와 캣맘들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선 유독 고양이를 안 좋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도둑고양이’라는 용어도 있는데, 길 고양이들도 집이 있고 돌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지 않는대요. 인간과 동물이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집 앞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밥을 주고 왔는데, 저만 보면 도망가서 슬퍼요. 모두의학교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죠. 올해 목표는 고양이들한테 ‘찜’당하는 거예요. 고양이들이 찜을 하면 가까이 와서 자기 털을 부비부비한대요. 친해지고 싶다는 표현이겠죠? 그런데 이건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어요.(웃음)

 

모두의학교에서 만든 길 고양이 보금자리
<겨울길냥이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시민 김지혜 님이 기증한 집이다.

 

‘모두’에는 동물도 포함이죠

 

캣맘 지회님의 일과는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고양이 밥 주는 걸로 시작된다. 모두의학교에 오면 제일 먼저 1층 사물함에 비축해둔 사료와 물을 챙겨 고양이 집으로 향한다. 현재 모두의학교에 설치한 길냥이 하우스는 총 3개. 한 집 한 집 돌며 밤새 고양이들이 다녀갔는지, 밥은 먹었는지 순찰하는 게 주요 임무다.

 

출근하자마자 사물함에서 사료를 꺼내는 지회님
길냥이 하우스 방문은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지금까지 안면을 튼 고양이는 두 마리예요. 쫄보랑 젠트리. 쫄보는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무서워서 못 내려오는 아이라 쫄보고, 젠트리는 턱시도 입은 고양이라서 젠트리예요. 이상한(?) 이름은 다 수진님이 지어줬어요. 얘네 말고도 다섯 마리 정도가 정기적으로 오는데, 친구들도 데리고 오곤 해요. 한 집에 세 마리 정도 입주할 수 있거든요.

옆에서 대화를 엿듣던(?) 초등학생들이 “실화냐” 하고 나지막이 외쳤다. 그러자 지회님은 또 들으라는 듯이(?)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말라, 고양이는 해치지 않는다” 고 얘기했다.

 

김지혜 님의 하우스에서 쉬다 나와 주변을 살피는 젠트리

모두의학교 인근에는 지회님 말고도 두세 분의 캣맘이 활동한다. 또 운동장 한쪽에 흰색 스티로폼 상자로 만든 고양이 집이 있는데, 그건 동네 캣맘이 몇 달 전에 이미 만들어 설치한 거라고 했다. 또 인근 편의점 앞에 설치된 고양이 집도 동네 캣맘의 작품이었다. 고양이 밥 주는 길에 따라갔다 우연히 마주친 동네 캣맘은 “누가 시켜서도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그냥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밥 먹으러 왔다가 카메라를 경계하는 겁쟁이 쫄보

 

평생교육사 출신 동물보호협회장이 꿈이라는 지회님은 올해도 모두의학교에 동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두의학교는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에요. ‘모두’에는 동물도 포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