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왜 발생하지 않는가?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매년 3월 개강을 앞두고 2월에 명사 초청 특강을 연다.

올해의 특강 중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친근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밤늦은 시간에 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자느라 거의 보질 못해서, 나는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지낸다>라는 책을 통해 이수정 교수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후 <다들>의 멘토 인터뷰를 위해 실제로 만났을 때, 프로선수의 속공처럼 빠르고 명확한 대답을 들으며 여러모로 공감하고 속 시원해하며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다.

제목 : 범죄심리학자가 본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

시간 : 2019년 2월 21일(목) 오전 10시

장소 : 시민청 태평홀

강연자 :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강의가 열리는 시민청 태평홀에 들어섰을 때, 스크린에는 <범죄, 왜 발생하지 않는가?>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많은 수강자들 사이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앉는 동안 제목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범죄, 왜 발생하지 않는가’라니! 범죄는 매일 매일 발생하고 있는데, 발생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뜻이지?

그 의문은 1시간 후에 풀리게 된다.

이수정 교수는 강사 소개와 함께 연단에 나와서 마이크를 쥐자마자부터 말을 시작해, 정확히 1시간 45분을 채울 때까지 끊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흔한 아이스 브레이킹도 없었다. 노트 다섯 페이지를 빽빽이 채웠던 그날의 강의를 요약해본다.

 

교양학부 심리학 강의로 시작한 교수 생활

“제가 어쩌다 이 일(범죄심리학)을 하게 되었는지 말씀 드리죠. 심리학에도 기초과학이 있고 응용분야가 있습니다. 진화심리학 같은 기초과학 분야는 연구 결과 산출도 어렵지만 확인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그것이 적용되어 변화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연구자가 죽은 뒤에야 확인되기 때문이죠. 저는 사회의 변화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경기도 광주시 세브란스 입원병동의 조현병 환자를 연구 등을 했죠. 그때 저의 연구주제는 감정이었기에 망상장애 보다는 환자들의 정서 측정과 평가 일을 주로 했습니다. 4~5년쯤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경기대에서 교양학부에서 심리학 강의를 해줄 교수를 뽑았습니다. 90년대 말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심리학과에 여성 교수는 없었습니다. 뽑아주질 않았죠. 경기대는 기초과학 쪽의 과가 없었고, 당연히 심리학과도 없었습니다. 대신 교정학과, 경찰행정학과 등이 있었는데, 그 과 학생들의 심리학을 담당할 교양학부 교수를 뽑았던 거죠. 교양학부라면 여성이라도 뽑아줄 것 같아 원서를 내고 면접을 봤습니다. 마지막 3명의 후보가 면접을 봤을 때, 교정학과 교수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에게 만약 비행청소년을 데리고 와서 얘를 계도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였기에, 엄마의 마음 70%, 심리학자의 마음 30%를 담아 대답했습니다. “비행청소년 문제는 일찍 정신을 차리고 부모를 개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잘 해야 아이들이 다시 엇나가지 않습니다. 더불어 주변 환경도 중요합니다.”

사실 당시에는 부모의 경험을 통해 상식적인 답을 한 것이지만, 이후 연구를 계속 하다 보니 결국 그때 제가 했던 말이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들도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저를 뽑았습니다. 그 이후 저의 연구는 저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위험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교양학부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며 평범한 교수 생활을 해나갈 줄 알았는데, 대학에 들어가 첫 번째 받았던 과제가 교도소 수감자 데이터를 분석해 이를 유형화하여 가장 위험한 사람을 골라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도소에선 재소자들끼리 살해, 재소자와 교도관 사이의 살해가 빈번했고, 그걸 막기 위해 법무부에서 저에게 용역을 준 겁니다. 저는 일단 ‘위험이란 무엇인가?’에서 벽에 부딪쳤습니다. 요즘은 형사들도 위험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당시에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형법교수에게 물었더니, 살인범이 제일 위험하다고 해요. 그렇죠, 생명을 뺏는 범죄니까요. 그래서 제가 가진 데이터를 살펴보니 살인범의 비중이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높았습니다. 왜냐하면 살인범들은 형기가 길어서 감옥에 오래 있고, 그러다보니 수가 누적되는 거죠. 그런데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중 많은 사람이 전과가 없었습니다. 그 말인즉 평소 살인을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인생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살인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술 취해서 싸우다가 밀쳤는데 상대가 추락해서 죽거나, 부부 사이에 살인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어요. 즉 실수나 원한에 의한 살인인데, 이런 사람이 교도소에서, 혹은 교도소를 나가 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위험한 사람일까요?

한국에선 살인범, 영미권에선 성범죄자가 위험하다고?

답답해진 저는 영어 원서를 찾아 읽었습니다. 근데 영미권에는 거의 정답이라 할 정도로 고위험(High-Risk) 범죄가가 지목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냐? 성범죄 누범자입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로 위험한 사람은 아동성범죄자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취약한 피해자를 잘 고르기 때문에 아동이나 장애인을 공격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저항하는 피해자를 만날텐데, 그러면 죽이게 되는 거죠. 범죄의 매커니즘을 잘 알고, 언젠가는 인명피해를 낼 사람들인 거죠. 문제는 제가 받은 데이터 안에 강간범이 별로 없었어요. 10%도 안되었습니다. 그 중 전과 13범인 성범죄자를 찾아내어 면회를 요청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보안과에서 거절 사유로 너는 여자니까 사고 날 위험이 있어 거절한대요. 그것은 제가 연구자로서 최초로 경험한 여성 차별입니다. 물론 일상에선 여성차별을 내내 겪고 살았지만, 단지 여자라 위험하다는 이유로 면회를 거절당했고, 자기네들이 용역을 주고서 연구하지 못하도록 했다는데 저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결국 면회 없이 영미 쪽 의견과 한국 쪽 의견을 섞어 법무부 분류심사용 위험 연구 모델을 납품했습니다.

 

한국에 성범죄가 적은 건 유교 전통 때문?

마침 그때 경기대에선 범죄심리학과를 개설하니 그 학과를 맡아달라 했고, 저는 한국과 영미의 위험에 대한 견해가 너무 다르니 공부를 해야겠다며 해외 파견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교도소 면회도 못하게 한 전력이 있어 그런지 쉽게 파견 결정이 났습니다. 그렇게 2002년에 교환교수로 미국에 가서 오전에는 교도소의 교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미국은 아동성범죄자가 2회 이상 죄를 지으면 징역형이 수십년으로 길고, 만기 출소하더라도 질병으로 진단받으면 치료감호소에서 완치가 되어야 사회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조두순이 내년에 만기 출소한다죠? 그런 우리와는 다릅니다.

그런데 그때는 제가 아무 것도 모를 때라 교수님이 “한국은 아동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는가?” 물었는데, 제가 본 데이터에는 성범죄가 별로 없었기에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교 전통이 강하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들 유교가 뭐냐고 물어서 짧은 영어로 한참 설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해서 용감했던 거죠. 당시만 해도 한국의 성범죄는 친고죄였기에 당사자나 부모(아동성범죄의 경우)가 신고해야 했습니다. 신고해봤자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합의로 풀려나고, 피해자의 행실만 탓하는 사회에서 누가 신고를 제대로 했겠어요?

이런 분위기를 바꿔놓은 사건이 바로 조두순 사건입니다. 그 전까지 아동 성범죄는 아이들이 죽은 뒤에 밝혀졌고, 죽은 피해자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영이가 살았기 때문에, 생존자로서 조두순이 어떤 짓을 했는지 증언했고, 그 덕분에 아동성범죄가 극악한 범죄라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되었죠. 그 사건을 계기로 2010년에야 아동성범죄의 친고죄가 폐지되었습니다. 성인 성범죄의 친고죄까지 폐지된 건 2013년입니다.

어째서 범죄는 억제되는가?

저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가부장제에 순응하며 살아온 사람이지만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에 친고죄 폐지를 위해 노력했고, 아동성범죄자 처벌도 지금보다 엄격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영이는 평생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살아야 하는데, 조두순은 내년에 만기 출소를 합니다. 과연 그가 나와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 위험하지 않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을 저지하기 위해 법은 강력한 욕망보다 더 엄중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범죄자는 항상 있었고, 도덕적 해이가 있으면 사람들은 욕망에 의해 범죄를 저질러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범죄는 왜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어째서 범죄를 참는가? 즉 왜 범죄는 발생하지 않는가를 물어봐야 됩니다.

범죄가 왜 발생하는가에 관해서는 오래 전부터 여러 설명이 존재했습니다. 중세 이전에는 초자연적인 신비로 설명했습니다. 귀신이 들려 범죄를 저지른다며 격리시키거나 퇴마식을 하거나 생명을 박탈(화형, 돌팔매형) 하기도 했죠. 최근에도 한국의 이단종교가 독일까지 가서 사람을 패서 사망케한 사건이 대서특필 되기도 했지요.

 

 

남성호르몬은 성범죄 유발 원인이 아니다

그러다 중세가 지나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주의적 설명이 나왔습니다. 생물학적 범죄원인론이라고도 하는데, 롬브로조라는 의사가 교도소를 돌아다니며 범죄자의 얼굴을 스케치해 모아서 털이 많고, 사각턱에, 광대뼈가 있고 이마가 넓으면 범죄형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저는 범죄형이에요. 후대에 이건 엉터리라는 것이 밝혀졌죠. 롬브로조가 얼굴로 범죄자를 밝혔다면 쉘든은 체형에서 원인을 찾았습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근육질에 포악한 사람이 범죄자라고 했지만, 실제로 제가 만난 성범죄자들은 키가 작고 내성적이고 모범수인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몇 년 전 국회에서 화학적 거세 요법이 통과됐는데, 이런 걸 보면 아직도 생물학적 원인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은가봐요. 남성호르몬은 성범죄의 원인이 아닙니다. 심지어 강간범 중에는 발기부전인 사람도 많습니다. 학계와 의논을 좀 했더라면 이런 어이없는 법이 통과되지 못했겠죠.

가족이 버티고 있어야 범죄가 줄어든다

현대에 와서 범죄를 사회현상의 하나로 보고 그 원인을 규명합니다. 이를 실증주의 범죄학이라 하는데, 허쉬가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다운타운 인근 지역에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회구조의 해체 때문입니다. 중산층 가족이 교외로 이사하자, 다운타운이 공동화되고, 뿌리없는 사람들이 와서 살면서 범죄가 일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수원역전에서 일어났던 오원춘 사건 같은 경우가 바로 그런 범죄입니다. 영통 지구 등이 발달하면서 예전 다운타운이던 수원역 앞의 공동화가 일어나 우범지대가 된 거죠.

가장 강력한 사회구조는 바로 가족입니다. 확대가족일 때는 규범이 확고해서 가족 구성원이 범죄를 저지르긴 힘듭니다. IMF 이전까지 우리사회는 비교적 가족해체가 적었죠. 그러나 요즘은 가족이 해체되어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범죄에 취약합니다. 출소자 중에도 돌아갈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재범률이 낮고, 상대적으로 무연고자나 가족 없는 사람들은 재범률이 높습니다. 가족이 없어도 조기축구회나 교회 급식소에서 밥이라도 먹으면 재범률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즉 지역사회와 끈이 연결되어 있어야 됩니다. 사제총기를 만들어 경찰을 살해한 오패산 터널 사건 같은 경우도 범인이 자살시도를 몇 번이나 하고, 블로그에서 자기가 경찰을 죽일 거라고 경고를 했다는데, 그걸 3개월간 연기한 적이 있대요. 그때가 언제냐면 강북구에서 쌀값을 긴급 지원했을 때였어요.

범죄자들은 다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그들이 돌아와 혼자 표류할 때 지역사회는 그들을 통제하고 돌볼 수 있는가? 지역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야 되는데, 이에 대해 아무도 고민을 안하죠. 돌아온 사람의 위험을 어떻게 무디게 만들 건지 진짜 고민해야 될 시점입니다.”

 

구현되기 어려운 이득에 현혹되지 말아요

강의가 끝나고 이교수는 “질문 딱 한 개만 받을게요.”했고, 한 수강생이 사기를 자꾸 당하는 피해자의 심리에 대해서 물어왔다. 이에 대해 “보이스피싱 같은데 반복해서 걸려드는 분들이 있어요. 범죄학 중에 피해자학이라는 게 있거든요. 여러 범죄 중에 특히 사기는 피해자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 통론인데, 사기치는 쪽에서 내놓은 이야기는 정상적으로 생각해보면 구현되기 어려운 이득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정상인이라면 이게 실현되기 어렵다는 걸 아는데, 이 이득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죠. 흔히 말하는 귀가 얇고, 유혹에 취약한 사람들이 사기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유언을 지키며 삽니다. 보증서지 마라,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마라.”라고 대답했다.

 

평소 추리소설을 즐겨 읽고,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며,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 관련 뉴스도 열심히 찾아보는 사람으로서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했지만, 이 강의를 통해 몰랐던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상에서 갑론을박이 심했던 화학적 거세가 실은 성범죄 억지에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다. 그리고 ‘법적으로 죗값을 치렀다’는 말이 떳떳하려면 성범죄자의 양형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 순간의 실수나 잘못으로 죄를 지은 사람도, 만기 복역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는 차별없이 받아줘야 한다. 하지만 ‘죗값을 치렀다’는 말이 떳떳하려면 지은 죄와 양형이 공평해야 한다. 우리나라 성범죄는 너무나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