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아는 만큼 하는 것, 학습 없이 불가능하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들,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고통을 나누는 정신과 전문의. 진료실대신 거리에서, 하얀 가운 대신 평범한 옷을 입고, 근엄한 표정 대신 공감의 눈짓으로, 우울증 처방전 대신 아픔의 공유로 숱한 목숨을 구한 거리의 의사.

바로 그 사람, 정혜신이 지난 15년 간 거리에서 듣고 보고 겪은 것들을 글로 풀어냈다. <당신이 옳다>(해냄 출판사)라는, 제목만 봐도 마음이 격해지는 이 책은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진료실을 박차고 현장에 밀착함으로써 실전 무술 같은 새로운 심리치유법인 ‘적정심리학’을 창안한 그를 만나 사람의 마음을 퍼올리는 평생 공부의 비결을 들었다.

정혜신 박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2월 7일 오후 1시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실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진흥원 홍보·대외협력팀의 황미연 팀장과 김지현 주임, <다들>의 이유정 작가가 자리를 함께 했다.

 

 

지금은 병원을 안가지고 계시죠? 병원을 언제 그만두셨습니까?

‘병원’이라는 일의 형태를 그만둔 건 15년이 넘었어요. 제가 정신과 의사 30년차인데, 15년은 병원에 있었고, 15년은 다른 형태로 일을 했습니다. 주로 기업의 의뢰를 받아서 기업의 CEO들, 임원들, 오너쉽을 가진 회장들을 1대 1로 만났지요. 2004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분들은 고된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이고,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다 보니 기업이 그런 데 비용을 투자합니다. 이 분들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도 너무 많고, 개인적인 영역의 갈등을 조정할 틈도 없잖아요? 여러 심리적인 부담들이 있고, 그러면 그게 일하는 데도 방해가 되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환자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성공하고 인정받는 사람들이지요. 정신과 의사로 이 분들을 만나긴 했지만 환자가 아니라 일상의 스트레스와 관련해 상담을 하는 형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치유의 패러다임이 바뀌기를 바라며 쓴 책

 

전통적 의미의 정신과 의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정 박사님 같은 의사가 되려면 지금 제도와는 다른 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만약 정 박사님이 의과대학 학장이 돼 의대 커리큘럼을 바꾼다면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요?(웃음)

의과대학에 예과가 있고, 본과가 있잖아요? 예과란 의사로서 본격적인 교육을 받기 이전의 준비과정인데, 그게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습니다. 사법연수원 졸업한 뒤 바로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에 많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을 권하고,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도 하구요.

정신과 의사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돕는 직업입니다. 사람은 입체적인 존재라서 의학적인 시선으로만 들어다 보면 사람 마음을 돕는 데 아주 제한적이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지요. 종래의 의학이라는 재래식 시선에서 벗어나야 사람을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고 마음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지요. 그래야 도와 드릴 수 있구요. 그런 맥락에서 기존의 정신의학적 접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현재의 정신의학이 접근하는 방법으론 사람을 온전하게 도울 수 없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어요.

저는 종래의 정신의학이란 틀에서 벗어나 이전보다 더 온전한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요즘 기준의 정신과 의사의 정의에는 안 맞지요.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정신과 의사라는 것은 종래의 틀을 벗어났을 때 훨씬 더 온전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런 얘기를 기존 정신과 의사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아니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웃음)

 

 

정 박사님 책이 많이 팔리고, 박사님 특유의 적정심리학이 보편화될수록 기존 정신과 의사들은 상당한 위협을 느끼겠군요.(웃음)

뭐 그건 잘 모르겠구요. 다만 치유에 대한 패러다임이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책을 썼습니다. <당신이 옳다> 책이 나오고 나서 많은 독자들이 읽고 계신데, 독자 중에 정신과 전문가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예요. 아직 전문가들의 반응을 직접 들어본 적은 없거든요. 일반 독자들은 많이 읽는데, 전문가들은 안 읽는다….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이지요.

전문가들이 읽지 않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이런 개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얘기가 시작되면 우리 사회 치유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이게 제가 이번 책 <당신이 옳다>를 쓴 유일한 목표입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일까?

 

세계적으로 정혜신의 적정심리학과 같거나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약물치료, 즉 뇌과학이나 생물학적 기전으로 사람의 마음을 해석하려는 흐름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있어요. 일본에도, 미국에도 있지요. 그런데 그게 주류에 어떤 틈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제가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이라는 진단 체계를 만든 팀의 팀장이자 미국 유수의 의과대 교수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강의를 해요. 자기가 처음에 진단 체계를 만들 때는 이렇게 부작용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해석하고 들여다보는 시선이 이렇게 왜곡될 줄은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너무 획일적이고, 너무나 폭력적으로 사람들한테 적용이 되고, 여기에 제약 산업이 들러붙으면서 거대한 산업의 문제가 되고..,. 이런 것에 대한 문제점을 거의 간증하다시피 하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힘이 부칩니다. 주류의 흐름이 너무 공고하니까요.

수련의들이 보는 책, 의대생들이 보는 책들의 방향이 이미 다 정해져 있어요. 사람의 마음을 다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들이지요. 요즘은 그나마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 사람의 마음을 해석하고 심리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거의 다 없어졌어요. 거의 모두 사람 마음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지요.

의사들의 진료 패턴도 마찬가집니다. 어디가 아프다, 불편하다, 그래서 왔다고 하면 “혹시 잠은 잘 자냐?”고 물은 뒤 증상 적고, 처방전 쓰고 하지요. 우울증이라는 건 마음의 감기다, 약 먹으면 치료된다, 이런 게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거잖아요? 이런 통념이 제약회사, 의학계, 언론, 정부의 보건복지 시책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일반인들의 정신을 지배한 결과입니다. 제약회사는 무기회사만큼 엄청 강력해요.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하나 개발하면 그 이윤이 무기회사의 이윤과 맞먹는 정도라고 합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거대 제약회사들 간의 카르텔이 만든 홍보 카피일지도 모른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로 넘어가자. 

 

 

공감과 감정 노동은 다르다

 

<당신이 옳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공감’이라는 말인데,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학습’이나 ‘공부’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공감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학습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어떤 슬픈 기사를 보거나 가슴 아픈 사연을 보면 눈물 주루룩 흘리는 걸 “공감 능력이 있다” 그러지요. 그런 걸 봐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으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그렇게 말하구요. 그러니까 공감 능력이란 타고 나는 것, 배울 수 없는 것, 그러다보니 ‘배우는 공감’은 진실되지 않은 것, 거짓된 것이라고 알고 있는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 건 결코 공감 능력이 아니에요. 그럼 뭐냐? 그건 어떤 상황에 대한 감정적 리액션이지요. 감정이라는 것은 휘발도 잘 되기 때문에, 감정적 리액션은 절대로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눈물 뚝뚝 흘릴 수 있지만, 돌아서서 내 일상으로 돌아가면 달라지지요. 휘발되니까요.

 

잘 물어야 공감이 깊어진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의 저 유명한 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비슷하지요. 공감이라는 것도 아는 만큼 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몇 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거리에서 저러고 있어요. 근데 내 생각에는 잘 납득이 안 돼요. 그러면 물어봐야 됩니다. 내 생각에는 시간이 오래 돼서 이제 슬픔이 좀 덜어졌을 것 같은데, 왜 계속 그러냐구, 물어봐야 되는 겁니다. 물어보면 그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겠지요. “바로 어제 일 같아요, 우리 삶은 4월 16일 이후에 계속 머물러 있어요, 지금 심정이 이래요,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를 못 틀어요, 아직도 그때 그날 뉴스가 나올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 그렇구나, 내가 저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저 사람들은 저런 마음이구나”, 이렇게 알게 됩니다.

알게 되면 아는 만큼 그 상황에 합당한 감정이 생기는 것, 알아서 생기는 마음들, 이런 것이 바로 공감입니다. 알아야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잘 물어봐야 돼요. 공감이라는 건 잘 물어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잘 물어서 그 사람에 대해 입체적으로 구석구석 알게 된 사람이 종내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두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한 인간에 대한 온전한 공감입니다. 또한 그 상황에 대한 온전한 공감입니다. 이런 공감은 지속가능합니다. 이런 공감은 굉장히 오래 가고, 연대하게끔 하고, 실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데로 나아가지요.

막 감정적으로 주루룩 했다가 그 감정적 리액션에서만 멈추면 그건 공감이 아닙니다. 그래서 온전한 공감을 위해서는 묻고 배워야 하고, 학습해야 합니다. 모르는 상태로 끄덕끄덕 참고, 그냥 공감하라니까 들어주고 그런 건 감정노동이지요. 감정노동은 오래 못 갑니다. 곧 폭발하고, 딴 사람에게 상처주고요.

 

 

내 인생에 오지랖 떨지 않아 이미 충분하다

 

<당신이 옳다>에 보면 정상급 연예인, ‘스타’를 “대중의 취향에 나를 온전히 맞추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생태계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규정했더군요. “나를 너에게 맞추는 촉이 고도로 발달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는 표현도 재미있구요. 정 박사님 스스로가 거의 연예인급으로 유명해졌는데, 인기인으로서 스타가 느끼는 부담감, 외로움 같은 걸 느낍니까?(웃음)

아뇨, 전 그런 정도로 유명한 게 전혀 아니기 때문에….(웃음) <당신이 옳다>에서 스타 얘기를 한 건 스타의 속성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자는 것입니다. 스타 만큼 주목받거나 외부의 시선을 강요받지는 않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주변의 기대, 부모의 강요, 사회의 포지션 같은 것에 끊임없이 나를 지워가며 맞춘다는 점에서는 같잖아요? 그런 면에서 권력이나 명예를 거머쥔 사람들, 성공하거나 부를 얻은 사람들은 모두 스타와 같은 그런 위험성에 처해 있다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신문 칼럼을 쓰고, 텔레비전에도 나가고,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칭찬한 책(<당신이 옳다>)도 쓰고, 유명세를 치르실 것 같은데요?

아이고, 전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서 힘든 건 전혀 없습니다. 체질일진 몰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압박을 하나도 안 느껴요. 왜냐하면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저는 저 개인의 삶에서 이미 충분하다는 걸 느끼고, 얻을 것도 이미 다 얻었다고 생각하거든요. 15년 전 어느 인터뷰에서 새해 계획을 묻길래 “제가 지금으로 충분해서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대답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어린 나이였는데…. 저는 늘 그렇게 살았던 거 같아요. 별로 바라는 게 없고, 뭘 굳이 추구하거나 유지하거나 지키려는 게 없었지요. 특별한 삶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고, 선택할 기회들도 있었지만 내쪽에서 적극적으로 그런 길을 일부러 선택하지 않았어요. 말하자면 제 삶에서 오지랖을 떨지 않았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지금으로 충분하니까요.

 

 

<당신이 옳다>를 읽으면서 글을 참 잘 쓰는 분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소설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습니까?

전혀요. 그것도 오지랖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책도 오랫동안 안 썼거든요. 칼럼도 안 쓴지 7~8년이 넘구요. 이전에 어떻게 하다 보니까 글을 많이 쓰게 됐는데, 쓰다 보니까 ‘내가 작가도 아니고, 기자도 아닌데 왜 맨날 마감에 시달리면서 이러고 있나? 난 그냥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데 왜 이러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 그만뒀어요. 그러고 나니까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남아 돌더라구요. 언론인 출신이셔서 잘 아시겠지만 글 쓰는 데 에너지 소모가 어마어마하게 많잖아요? 특히 칼럼을 쓰려면 시사적인 것에 늘 긴장을 놓지 않고 파악하고 있어야 되구요.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마감은 빨리 돌아옵니다.

근데 다 그만두고 나니까 시간이 많아졌고, 너무 좋았어요. 여러 가지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었구요. 활동을 하려고 글을 그만둔 것은 아닌데, 시간이 있다 보니까 관심 있는 곳에 갈 수 있었고, 가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그 하고픈 말을 막 뱉어낸다는 심정으로 쓴 책이 <당신이 옳다>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고, 나의 마지막 사회적 역할이 있다면 이런 생생한 이야기를 하고, 이걸 공유하는 거다, 이런 생각으로 마지막 글처럼 쓴 글이지요. 다 쏟아부었더니 이젠 다시 글 쓸 생각이 없습니다.

 

 

온 체중을 실어 말하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받아준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에서 지난해부터 ‘청년인생설계학교’라는, 청년 대상의 평생학습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과정 막바지에 정 박사님이 강사로 와 열강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강의를 하고 난 뒤 청년들한테 설문조사를 했는데, 만족도가 98%를 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사회 청년들이 보통 까다로운 세대가 아닌데, 이렇게 이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비결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강의가 끝나면 온 몸이 땀에 젖어요. 그리고 강의 하고 나면 늘 똑같이 듣는 얘기가 “열정적인 강의 감사합니다”예요. 제 책을 읽고 쓴 서평 중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뭐냐 하면 “‘온 체중을 실어서’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진짜로 체중을 실어서 쓴 글이라고 느꼈다”는 서평이 많거든요.

책에 나오는 내용이 제 삶에서 나오는 얘기고, 이건 사람에 대한 진실이고, 그러니까 가설이 아니지요. 제가 삶의 현장에서 수백 번, 수천 번 확인했던,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제 온 체중을 실어서 얘기를 하고 있고, 그래서 전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진심으로 받아주는 거 같습니다.

 

 

밥상머리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심리적 폭력’

 

자라나는 세대와 부모들이 급격한 사회 변화와 문화 차이로 잘 화해하지 못하면서 가정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되기도 합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가정교육이라는 게 필요합니까?

가정교육, 흔히 하는 말로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건 제가 책에서 말한 ‘충조평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 이걸 줄여서 ‘충조평판’이라고 표현한 건데, 가정교육이 딱 그겁니다. 그래서 저는 진짜 반대이지요.

책에도 썼지만, 저는 진짜 욕설에 쓰러지는 사람보다 옳은 말, 바른 말에 찔려 넘어가는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봤습니다. 근데 ‘충조평판’을 다르게 말하면 바른 말, 옳은 말이거든요. 사람의 마음의 매커니즘을 알면 옳은 말이 얼마나 비수가 되는지 알게 됩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 젊은이들한테 하는 말, 밥상머리 교육, 가정교육, 이런 게 굉장히 일방적인 충조평판이잖아요?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지요. 요즘의 젊은이들이 제일 기겁을 하고, 제일 싫어하고 제일 진저리를 치는 게 가르치려 드는 거잖아요? 가르치려 드는 것의 본질이 ‘충조평판’입니다. 무슨 얘기를 하면 “그건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건 니가 너무 예민해서 그러는 거야, 그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 아니니?, 이렇게 하렴, 저렇게 하렴, 이렇게 생각을 해봐라, 이런 길도 있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다 평가나 판단을 전제로 한 충고나 조언이거든요. 이런 게 사람 마음에는 폭력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들수록 하지 말아야 되는 게 바른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밥상머리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심리적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존재에 주목하는 것’

 

그렇다면 박사님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한 존재에 깊이 주목하는 것,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 그래서 그 존재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 이게 진정한 교육이고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그 존재가 그 상태에서 가장 화려하게, 최적으로, 최대치의 꽃을 피운다고 저는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한테 영향을 주는 유명 인사들 가운데 가정문제나 자녀교육에 대해선 언행불일치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 교육은 어떻게 시키셨습니까?

아이가 셋인데, 막내가 올해 스물 일곱입니다. 저희 아이들은 말씀 드린 그대로 키웠지요. 공부하라는 말은 물론이고, 직장을 얻거나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진로를 결정할 때, 단 한 번도 안 된다,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세 아이가 3인3색으로, 서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굉장히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잘 컸어요. 무슨 지시나 당부나 주문을 하지 않는 대신 그 존재 자체에 주목하고, 집중하고, 내 체중을 실어 공감해주고, 언제나 그랬지요. 그렇게 하는 게 우리가 얘기하는 교육의 최대치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개인적인 확신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느끼고 확인하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주목하고 집중하고 공감하니까 교육이 되더라, 그런 말씀이군요. 드물게 보는 완벽한 언행일치의 유명 인사시네요. (웃음)

교육이라는 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 아닐까요? 진실로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것. 거기서 그 존재의 최대치가 드러나게 되는 것, 발아하는 것. 그것이 교육 아닐까요? 저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교육자가 아니라 그 존재에 주목하고 집중해주는 사람이 교육자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선 안에서 사람은 자라니까.

 

책에서나 만날 것 같은 인상적인 문장들이 글이 아니라 입을 통해 격정적으로 쏟아졌다. 아마 사람들과의 숱한 만남을 통해 내면화된 어떤 확신이 마음 속 깊이 도사리고 있어서일 것이다. 어떤 질문에도 바로 터져나오는 그의 답변에는 <당신이 옳다> 책을 관통하는 열정과 확신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2017년 펴낸 <정혜신의 사람 공부>. 그는 이 책에서 “책이 아닌 사람에게서 배운다”고 썼다.

 

“개별성에 대한 감각이 진보의 끝이다”

 

지금 평생교육쪽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제대로 된 교육, 참다운 학습과 이상하리만치 똑같습니다. 박사님은 지금까지 개인에 대해 발언을 해 왔는데, 이걸 확장해서 사회공동체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됩니까?

사회공동체나 집단도 결국은 한 개인이 모인 집합체잖아요? 그 매커니즘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을 어떤 공동체, 집단으로 인식하지 않고 한 개별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공동체를 살리고 보호하고 성장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별성에 대한 감각이 진보의 끝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집단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라는 전제가 달라져야 합니다. 집단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람이 대상화됩니다. 개인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여럿 중의 하나, “one of them”으로 보이잖아요.

예를 들어 성소수자가 갖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지만, 그 안에도 개별적 인간은 다 다르거든요. 그걸 통으로 놓기 시작하면 모두에게 폭력이 될 수 있어요. 여자란 남자에 비해 다른 측면이 있지만, 그런 틀로 한 여자를 규정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한 여자한테는 폭력이 되거든요.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주목이 결국 한 집단, 한 공동체도 살린다고 생각합니다.

 

 

7명 뒤에는 30, 그 뒤엔 100동심원의 힘

 

2008년부터 고문피해자를 돕기 위한 재단 ‘진실의 힘’에서 고문치유모임의 집단 상담을 이끌었습니다. 2011년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집단상담을 시작하면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기도 했지요? ‘거리의 의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행보인데, 집단에 앞서서 개인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도 거리에서, 현장에서 깨우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만나러 갔을 때 얘기를 해드릴게요. 5천명이 있는 공장에서 하루 아침에 2646명이 해고를 당했어요. 배우자들까지 하면 거의 5천명이지요. 노등자도 자살했지만, 아내들도 자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상자로 치면 5천명이지만, 제가 쌍용차 현장에서 ‘와락’을 만들고 3년 여 동안 상담한 사람이 150명 안짝이에요. 5천명이나 피해자가 있는데 150명 밖에 상담하지 못했으니 자기 만족 아니냐, 무슨 의미가 있냐, 나머지는 어떡하느냐,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한 사람을 구하면 한 세상이 구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거든요. 바로 개별성에 대한 주목이지요.

쌍용자동차에서 해고가 2년쯤 진행됐을 때인데, 제가 거기 간다고 하고선 제일 먼저 찾은 게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는 사람들, 자원봉사자들이었습니다. 한 50명이 모여서, 그 친구들이 인형탈도 쓰고, 풍선도 불고, 솜사탕도 만들고 음식도 해서 놀거리를 해가지고 평택시청으로 갔지요. 파업 2년 후라 구속되고, 서로가 서로만 봐도 너무 상처가 자극되니까 맨날 피하고 그랬는데, 2년 동안 아이를 데리고 놀아주지도 못했고, 천원 짜리 용돈 한번 줘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근데 아이와 놀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니까 사람들이 온 거예요. 파업 이후 최대 인원이 모였다는데 50명 정도였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놀아주려고 아이들 데리고 확 나가버리니까 엄마, 아빠들이 서로 말들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냥 차 마시고 서성거리며서, 저는 누구라고 소개하기도 하구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으니까 “말도 마세요. 맨날 술로 지내지요” 합니다. “술 얼마나 드세요?” 물었더니 하루에 9~10병을 마신대요. 이런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툭툭 나오는 거예요. 제가 막 물어보고 이야기를 하면 자기도 비슷하니까 삼삼오오 사람들이 주변으로 오지요. 그럼 그런 게 증상이라고 알려주고, 그럴 때 이런 생각 들지 않으시냐고 하면 “나도 그런데요” 이렇게 나옵니다. “이런 게 트라우마이고, 치유되어야 하는 거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자기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왔던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다는 걸 확인하고, “원래 다 이럴 수 있다”는 말에 약간 안심을 해요. 그래서 오후부터 “나는 정신과 의사인데 같이 앉아서 충분히 이야기하고 치료를 해보자”, “나는 그동안 고문당한 사람도 봤고, 어려운 분들을 많이 만났으니 믿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아까 저를 유명하다 그랬는데, 유명하지 않구요, 그 사람들은 제가 누군지 모르거든요. 그러다 제 소개를 하고 오후부터 저를 믿고 집단상담을 해보자, 누가 먼저 할까 물어보면 다들 딴 사람 하라는 거죠. “저는 괜찮은데 쟤가 좀 또라이에요.” “쟤는 좀 이상해요. 선생님, 쟤 먼저 봐주세요.” 다 그러면서 딴 사람을 지목해요. 그런데 이제 용기를 낸 사람이 일곱 명 있었고, 일곱 명이 저랑 같이 앉아서 집단상담을 시작했고, 20~30명이 ‘저는 그냥 볼래요’하고 뒤에 앉아 참관했습니다. 방 안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애들 노는 거 본다고 하는 사람 40~50명이 또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 세 시간쯤 집단상담을 하면 제가 일곱 명과 이야기하지만 그걸 들은 20~30명이 다 자기 얘기인 걸 알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같이 울게 되지요. 끝나고 문 열고 나가잖아요? 그러면 문 밖에 사람들이 있다가 “야 누가 뭐랬냐?” “무슨 소리 했냐?” 서로 막 또 얘기를 해요. 그래서 일곱 명이지만 이 동심원 안에 100명이 들어와요. 그래서 150명을 상담 하면 그 안에 몇 천 명이 들어오지요.

생계나 일 때문에 와락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러다보면 원거리에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고, 가면 자기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고, 뭔가 믿고 의지할만한 데가 있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어떤 존재가 우뚝 있어주면 밖에서 당장은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내가 죽을 만큼 힘들면 내가 저기 갈 수 있다, 이런 것만으로도 버팀목이 되지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한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는 믿음도 그런 경험을 통해 나오게 됐습니다. 아주 작게 일을 해도 늘 만족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구요.

 

<당신이 옳았다> 출판 직전에 펴낸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거리의 의사’ 정혜신이 말하는 참된 치유의 길이 무엇인지, 조근조근 밝혀준다.

 

<당신이 옳다>가 마지막 책, 할 말 다했다

 

한 존재에 주목하고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여러 존재에게 퍼져나간다, 현장 경험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이네요.

그렇습니다. 피해자가 막 넘쳐나는 현장에 가도 저는 그냥 한 명 앉혀놓고, 한 사람만 보고 시작합니다. 이 한 사람이 구해지면 이 파장이 어떤지 저는 너무 많이 경험했으니까요. 이 동심원이 있으니까. 그래서 별로 조급해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고, 무기력해하지 않고, 회의를 많이 갖지 않습니다. 그저 온 체중을 다 쏟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자족하면서 잘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15년 간 트라우마 현장에 있으면서 귀가 아프도록 들은 얘기가 “그렇게 하면 지치지 않냐?” “피해자가 몇천 명 규모인데, 너무 막막하지 않냐?” 이런 말입니다. 근데 전혀 막막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힘을 알거든요. 어떤 공동체, 어떤 집단도 덩어리로 보기 시작하면 막막하고, 무기력해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요. 한 명씩 한 명씩 구하고 눈 마주치고 이 사람한테 무한히 집중하면 그게 결국 모두에게 전해지더라구요.

책을 꽤 많이 쓰셨지요? 여태까지 낸 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은 어떤 겁니까?

마지막 책, <당신이 옳다>입니다. 이 책 쓰는데 딱 4개월이 걸렸어요. 세월호 참사 뒤 안산에 살면서 치유공간 ‘이웃’의 이웃 치유자로 일했어요. 그러다 안산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건강도 그동안 많이 축이 나고, 그래서 몇 개월 쉬고나서 썼어요. 너무나 할 얘기가 많아서 말하듯이 썼지요. 그래서 좀 거친데요, 근데 그게 저만의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마지막 책이라고 밝힌 <당신이 옳았다>. 이 책에서 정 박사는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거예요?”라고 온 체중을 실어 묻고 있다.

 

<당신이 옳다>를 읽으면서 “야, 이 분, 참 할 말이 가슴 속에 많이 쌓였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랬군요. 저는 읽는 내내 마치 가슴 저 밑바닥에 쌓아놓았던 말들을 거침없이 끄집어내는 것 같은 어떤 격정을 느꼈습니다.

할 말이 정말 많았습니다. 처음엔 책을 쓸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할 말이 많아 그걸 공유하고 싶었던 거지요. 근데 공유할 방법이 책이어서 책으로 쓴 거지, 글을 쓰고 책을 내려고 쓴 것은 아니예요. 이 책이 제 마지막 책입니다. 이젠 할 말 다 했으니까요.

 

군더더기 없이, 토를 달기 어렵게, 종지부를 찍는 정혜신 박사가 멋져보였다. 그의 다음 책이 벌써 기대됐다.

 

 

 

정혜신은 누구인가?

1963년생. 연세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했다. 최근 15년은 정치인, 법조인, 기업 CEO와 임원 등의 속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 곳곳의 트라우마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만났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 ‘진실의 힘’에서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2011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심리치유공간 ‘와락’을 만들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518생존자 집단상담’을 추진하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으로 이주해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고 참사 피해자들의 치유에 힘썼다. 또한 서울시와 함께하는 힐링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감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1999년부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매경이코노미>, <월간 신동아>, <조선일보>, <시사저널>,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에 10여 년간 칼럼을 연재했다. 저서로는 <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사람 VS 사람>, <남자 VS 남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