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비추는 인장공예가

칼 라거펠트의 도장을 만든 사람

우리나라 최초의 인장공예 명장 최병훈 씨는 여섯 살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서예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여기서 배운 서예 솜씨로 중앙여고에 필경사로 들어가 5년간 일했고, 복사기가 대중화된 후 동양문화사라는 인쇄소에서 도장 새기는 일을 시작했다. 빠르게 기술을 습득한 최명장은 1977년 삼양사를 열어 독립했고 2010년에 인장공예연구소를 열기까지 수만 개가 넘는 도장을 새겨왔다. 여섯 살 때 시작한 서당 공부에서부터 어쩌면 최명장은 인장공예가로 예비된 길을 걸어온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눈도 아프고 오래 집중하다 보면 뒷골도 당겨 한달에 몇 개 정도의 인장만 작업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한화 김승연 회장의 인장, 인삼공사 정관장의 포장지에 들어가는 인장,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인장을 만들었다. 칼 라거펠트의 경우 시안을 4~5개 보냈는데, 칼 라거펠트가 그 중 한글로 된 인장을 선택하여 한글로 새겨주었다고 한다.

문서를 책임지는 도장, 사인으로 대체 못해

최명장은 도장찍기를 ‘내 이름을 비추는 일’이라고 했다. 도장이 찍힌 자리를 ‘인영’이라고 하는데, 이는 ‘도장(印)의 그림자(影)’를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비췄기 때문에 다시 찍을 수 없고, 인주가 빨간색인 것도 문서가 변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주는 지금도 화공성 기름을 섞지 않고 천연 식물성 기름으로만 만든다고 한다.

요즘은 사인이 도장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하지만 최명장은 도장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사인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어요. 한문은 아래위로 쓰는 글자라 연결하기가 어려워 1, 2자로 그림을 만든 ‘수결’이 있었죠. 이게 사인의 최초 형태입니다. 수결은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데다, 같은 사람이 써도 쓸 때마다 형태가 달라져 분별이 어렵죠. 그래서 나무에 새긴 도장이 나온 겁니다. 전부터 사인은 확인하는 용으로만 썼지, 증명이나 법적인 관계에는 도장을 썼어요. 공무원이나 담당자들은 도장을 찍습니다. 결재자만이 사인을 하죠. 결재자는 도덕적 책임만 지면 되니까요. 도장 문화를 사인문화로 바꾸어보고자 정부에서 노력한 적이 있는데, 전체 서명 발급 중 사인은 0.6% 밖에 안됩니다. 99% 이상 인감을 떼요. 1년에 48만통의 인감증명을 떼지만, 그 중 위조 사고는 5통 정도입니다. 인감이 없어질 수가 없지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인장 공부

최명장은 삼양사를 열고 5년간 120여개 업체를 돌며 다양한 서체와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인장 장인들이 직접 가르쳐줬을리는 만무하고, 과연 어떻게 공부 했을까?

“가게로 선배들을 찾아가면 차 마시며 이야기만 나누죠. 그러다 갈 때쯤 되어 도장을 좀 찍어달라고 해요.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다들 찍어주십니다. 그걸 가져다가 흉내내보고 실험해보고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간단히 구분하게 되었어요. 잘하는 사람은 시간을 오래 걸려서 만들구요, 못하는 사람은 금방 글자만 새기는 거예요. 얼마나 심성을 담아서 새기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기본기술은 금방 익히고, 그 다음에 예술이 들어가는 거지요. 저는 가게 하면서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선조들이 남긴 인장의 쓰임새나 목적을 연구하면서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저 도장을 새긴다고 알고 있지만, 도장 기술은 7가지나 된다. 샌딩, 지렛대 식으로 밀기(상아, 밀도높은 나무), 전각(돌), 진흙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만드는 방법까지 도장 재료에 따라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옥새의 경우 쇠로 만들기 때문에 광택장, 조각장 등의 명인이 필요했고, 기록에 보면 옥새 11개를 개보수 하는데 167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고택에서 직접 인장 재료 공수

여러 도장 재료 중 어떤 걸 가장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최명장은 진열되어 있는 재료들을 가져와 보여주며 상아와 회향목 이야기를 꺼냈다.

“코끼리 이빨 하나면 도장 몇백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새기기도 좋아요. 그런데 잘 갈라지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까다롭습니다. 갈라지는 특성 때문에 나무 기둥에 상아면만 붙이기도 합니다. 저는 상아도 좋지만 회양목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도장목은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숨구멍이 없어야 합니다. 회양목이 그렇죠. 낙랑고분에서 출토되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도장 재료로 사용되었고, 조선말에는 호패나 순찰패 재료로 쓰이는 바람에 150년 정도 자란 쓸만한 회양목은 다 잘라버려 지금은 거의 없죠. 가끔 고택에서 수리할 때 연락이 와서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소금물에 서너시간 삶아 벌레 알을 죽이고, 그늘에 4~5년씩 말립니다. 곰팡이가 몇차례 폈다 졌다 하면서 도장목이 되지요. 10여년 동안 재료를 사지 않고 전부 그런 식으로 구해 손으로 깎았습니다.”

 

 

tip 명장에게 듣는 대한민국 국새 이야기

현재 쓰고 있는 대한민국 국새는 5대 국새다. 1949년 임시정부 때 내각에서 처음 국새를 만들었는데, 한자로 된 국새라 1962년 한글로 바꾸게 된다. 7cm 정방형에 ‘대한민국’ 넉자를 새긴 거북이 손잡이 국새다. 그러다 1999년 전서체 대신 훈민정음체로 다시 만든 게 3대 국새. 봉황을 얹은 모양이었다. 그 국새에 금이 갔다 하여 2008년 4대 국새를 만들었는데, 제작자 민홍기 씨가 공모전을 열어 스스로 책임자가 되어 감리도 받지 않고 만드는 등 비리로 인하여 수감되고, 4대 국새는 폐기되었다. 2011년 5대 국새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국새는 정기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도장의 마모, 글씨문제 등으로 여론이 모아졌을 때 바뀌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