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의 예술로 자수의 전통을 잇는 자수공예

남들이 가지 않는 길, 그 곳에 길이 있다

지금은 명장이라 칭송받으며 자수의 전통을 잇고 있는 이승희 명장. 그녀는 이 위치에 오르기까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중학교 3학년, 고교 입시에 실패한 그녀는 과감하게 고등학교를 포기한다. “너희 세대에선 남들이 하는 것 대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살아남는 길이다”라고 강조하시며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으로 딸을 지지했던 어머니의 권유로 ‘자수’의 길을 택했다.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다면 재수를 하고 정규교육을 받아 대학에 가는 보통 사람의 길을 걸었으련만, 그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그녀는 인간문화재 최유현 자수장 밑에서 일하며 도제식으로 전통자수를 배웠다. 19세부터 17여 년에 이르는 오랜 시간 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기본을 익히던 시기였다. 전통 자수를 하면서도 “왜 남의 그림에 해야 돼?”라는 질문을 했고,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자수를 놓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위하여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한다.

 

 

특유의 학습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

모름지기 공부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해야한다는 소신을 실천해온 이 명장은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조카뻘 되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자신 보다 어린 선생님들께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에 이른다. 결국 27세에 방통고를 졸업, 서양화 전공의 길을 택한다. ‘공예과’가 아닌 ‘서양화’를 전공하며 색에 대해서도 폭넓게 배웠다. 전통 민화를 자수로 재해석하겠다는 소신과 신념으로, 장학생으로 들어간 대학을 36세에 졸업한다. 이후 독일로 날아가 한 달 반만에 운좋게 베를린의 실크센터에서 전시회를 연다. 도제식으로 배워왔던 기본기와 대학에서 고민하며 쌓아왔던 실력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남들과 다른 시기에 공부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승희 명장의 삶의 마디에는 ‘학습’이라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었고, 이를 통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개척했다. 이렇게 이승희 명장은 ‘평생교육’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갔다.

 

 

몸에 학습의 자세로 전통을 잇는 명장, 이승희

스스로를 평생교육의 수혜자라 부르는 이승희 명장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도 북촌문화센터, 배화여대, 숙명여대 등에서 성심껏 자수를 가르친다. 명장 타이틀을 단 후에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찾아가는 명장학교’도 추진했다. 10년 동안 같은 커리큘럼이 한 번도 없었을 만큼 연구하고 공부하여 매번 창의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전통이란 옛날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성이 있어야 한다고 이승희 명장은 말한다. 1950년대, 1970년대, 2000년대 작품이 다 똑같으면 그걸 누가 보러 오겠는가? 시대성이 가미되어야 멀리하지 않고 관심을 가진다. 그러므로 무형문화재들은 전승을 하시고, 자신 같은 사람들은 전통에 그 시대의 흐름을 넣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옛것을 찾지 않는 것은 지금 시대를 반영하지 않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승희 명장은 밑그림을 자신이 구상하며, 때로는 천에 바로 밑그림을 그려 자수를 놓기도 한다. 이는 전통의 견지에서 보면 ‘파격’이다. 이승희 자수연구실 벽에 붙어있는 ‘겸손한 달빛’ 같은 작품은 여성의 엉덩이를 목단꽃잎으로 형상화한 에로티시즘적인 작품이고, 여인이 용을 타고 오르는 작품 속의 여인은 이승희 명장 자신을 상징한다. 여치, 오리, 폭포 등 과거의 전통적인 소재에 현대적 의미를 입히며 전통에 시대성을 가미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연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미술 전시회를 빠짐없이 보러 다니고, 꽃이나 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을 찍어 수집한다. 꽃송이만 찍어서는 자료가 안되고, 꽃을 둘러싼 솜털, 뿌리, 흙까지 다 찍어서 이를 RAW 파일로 큰 화면에 띄웠을 때 보이는 디테일들이 자료가 된다고 한다. 몸에 밴 학습의 자세로 전통을 잇는 명장의 모습이다.

 

 

 

자수공예 재미있는 Tip

우리나라 자수공예는 세 가지 흐름이 있다.

전통 장인으로부터 내려오는 흐름,

일제시대에 미술과 합쳐진 흐름,

70년대 분업화된 산업자수가 그것이다.

이 세 분야는 쓰는 용어도 다르고 벽이 높은 편인데, 이승희 명장은 전통 자수를 배워 기본기가 탄탄하고, 서양미술을 전공하여 현대성을 접목시킨 작품을 만든다.

이승희 명장의 손을 보면 의외로 굳은 살이 보이지 않는 고운 손이다. 우리나라 전통 자수는 얇은 비단실을 쓰기 때문에 손이 조금만 거칠어도 실이 핀다고 한다. 그래서 손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자세히 보면 양쪽 검지손가락의 수평도가 다른데, 실을 잡는 바깥쪽이 닳아서 조금 더 납작하다. 검지손가락의 누운 각도를 보면 이 사람이 자수를 열심히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