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내 안의 요구와 열정에서 시작된다

겨울 추위의 칼끝이 옷속을 헤집고 들어오던 날 지난 2월 12일 오전, 이전에 가정과(전문학교 시절) 건물로 사용됐던 본관 건물 총장실로 들어섰다. 접견실에서 잠시기다리니,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 눈물을 흘리던 당시 철학과 김혜숙 교수가 환한 표정으로 들어선다. 초면에 대뜸 “초등학교 때 누나 손에 이끌려 영국의 인기 가수 클리프 리차드 내한 공연을 보러 대강당에 들어와 본 뒤 이화여대 건물 안에 들어온 건 처음”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어머 그 공연을 보셨구나. 저도 고등학생 때 이 학교 와서 클리프 리차드 공연을 봤다”고 받는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근엄해서 자칫 건조할 수 있는 ‘대학 총장님’과의 인터뷰 분위기를 초반부터 말랑말랑하게 반전시킨 건 의외로 클리프 리차드였다. 인터뷰의 전조가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비약을 감수하고 말하면, 박근혜 탄핵을 불러온 ‘최순실 사태’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내 시위에서 비롯됐다.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 설립을 놓고 학교 측과 대립할 때만 하더라도 학생들은 이 물줄기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몰랐다. 하지만 정유라, 최순실 등 줄줄이 딸려나온 고구마줄기에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다.

국회 청문회장에 나와 이화여대생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김혜숙 교수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뒤 그는 학생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개교 이래 첫 직선제 총장으로 선출됐고,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올해 5월이면 취임 2년을 맞는 김혜숙 총장과 이화여대의 현재, 미래 그리고 대학에서의 평생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는 2월 12일 오전 11시부터 이화여대 본관 총장 접견실에서 1시간 여 진행됐으며,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홍보·대외협력팀의 김지현 주임과 <다들> 이유정 기자가 자리를 함께 했다.

 

취임 2, 이화여대의 일상성 회복에 주력했다

이화여대 최초의 직선제 총장으로 학생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셨지요. 취임 당시에 많은 과제가 있으셨을 줄 압니다. 취임한 지 2년,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 시간이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보람이라면 학교의 일상성을 회복한 것이지요. 저희들로서는 상당히 깊은 상처로 남았고, 그 충격이 상당할 수밖에 없지요. 저희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지난 2년은 그래서 우리 나름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이었지요.

다행히 이화여대가 그런 과정을 거치고도 여러 가지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벌점을 받고서도 원래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를 통과했고, 입시 시장에서도 큰 동요 없이 오히려 입시 결과가 오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요. 그게 큰 보람입니다. 다음 단계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부하는 대목이지요.

아쉬운 점도 없을 수 없지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여성폄하, 여성비하, 요즘은 여성혐오라고 하지요? 혐오문화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젊은이들이 여러 아픔을 겪고 있구요, 그게 어떤 때는 좀 속수무책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시대적인 상황이랑 맞물려서 우리 기성세대가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어떤 희망을 줄 건가가 아직 잡히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취임 이후 이·문과 통합선발, 단과대 분권화 등 난제들을 추진하셨습니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저항보다는 이런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 때문에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비슷한 일을 추진하려던 대학들은 이미 실패를 했고, 중앙에서 강제하는 분권화는 살아남지 못했어요. 그래서 모델 케이스가 없다는 게 큰 어려움입니다. 지금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어 뭐라고 얘기하기가 어렵네요. 지방자치제도 마찬가지지만 대학에서의 분권화도 힘듭니다. 그런데 대학 사회도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합적인 조직이에요. 기숙사, 유아원, 유치원 등 학생들 일상 생활이 유지되는 곳이면서, 동시에 연구라고 하는, 생활적 공간하고는 상당히 분리되어 있는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행정이라든가 인사관리, 조직관리도 이루어지는 곳이지요. 학생, 직원, 교수, 용역 등 성격이 다른 집단들이 같이 모여서 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게다가 인문대, 공대, 조형예대 등의 규율이나 과정이 달라요. 예를 들어 인문대에선 논문과 책 위주로 평가를 하지만, 예술대에선 작품으로 승부를 봐야하고, 또 같은 예술이라도 미술과 무용은 작품이 다르고. 이럴 때 어떤 기준에서 수월성을 판단할 건가? 이런 걸 생각해보면 대학이라는 조직이 균질적이질 않고 굉장히 이질적인 조직들과 사람들 간의 집합체입니다. 장기적으론 분권화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

 

미래 사회에서는 문과와 이과의 통합이 불가피하다

문이과 통합선발은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까?

통합선발은 2007년에 스크랜튼대학을 시작하면서 40명 정도 규모로 시작 한 바 있습니다. 한번 실험적으로 했던 것을 확대한 케이스인데, 올해 382명을 뽑았지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이미 문이과 통합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가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대학도, 사회도, 세계적으로도 디지털 혁명으로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문명이 겪게 된 격변을 요즘 우리들이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요즘은 핸드폰 하나를 사더라도 저희가 학생들한테 물어보는 시대가 됐잖아요?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일상을 살 수가 없어요. 스마트키를 이용해서 집으로 들어가야 된다든가, 아주 간단한 걸 하더라도 기술이 있어야 되는 사회가 됐잖아요? 그래서 문과생이라도 통계, 수학 등 기술의 기본이 되는 지식이 있지 않으면 자기 재산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구요. 이과생들은 이과생들대로 기술만 가지고는 안 되고, 이 기술이 도대체 뭘 위한 것인지, 어떤 가치를 더 높이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문이과가 통합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이지요.

제가 재직하던 한겨레신문이 1988년 창간 당시부터 편집국장과 사장을 언론 사상 처음으로 직선으로 뽑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20년쯤 지나고 보니 일부 부작용과 폐해가 있더라구요. 학생들에게 95%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빛과 부담이 많다는 의미인데, 학생들의 요구와 실제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사이에서 고민이나 충돌은 없습니까?

당시엔 몇 달 사이에 많은 일들이 긴박하게 벌어진 상황이었어요. 사태가 진전되면서 총학생회라든가 정치적인 입장을 가진 학생들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이 정치 상황에 연루되어 버렸어요. 아마 1~2년 사이에 학생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단절, 일반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좌절감 같은 것이 축적이 되어 있었지 않나 싶어요. 대다수 일반 학생들의 쌓였던 에너지가 그런 식으로 확 분출된 것 같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똑똑하고 강한 것 같지만, 멘탈이 굉장히 약해요.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도 유리멘탈이라고 나오던데, 어려서부터 잘 자라서 참 많이 약해요. 그러니까 혼자 나오는 걸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SNS 라는 익명의 공간을 이용하고, 안경 쓰고 마스크 해서 얼굴을 가리는 무브먼트를 하지요. 그러다 보니까 학생들의 관점에서 문제 상황에 대해 공감하거나 얘기하는 교수 집단이 처음에는 없었어요. 제가 그 당시 교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은퇴를 2년 앞둔 시점이라 학교 일에 대해서는 프라임 사업이 뭔지 입력이 안 된 상태였지요. 사실 교수협의회도 지지부진해서 제가 은퇴하면 문 닫는다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던 직책이었는데, 학생들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2~3개월 안에 확 벌어진 일에 아무도 나서는 주체가 없었기 때문에 교수협의회에서 그 일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정유라 사건 등 그게 어찌된 건지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었던 겁니다. 제가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배경에는 학생들의 불안함을 달래준 게 컸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이 학생들이 엄청 불안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같이 얘기할 너희의 대표를 뽑으라고 하는데도 안 보내는 거예요. 학생들이 그걸 안 하는 거예요. 그냥, “우리들은 대변자이지 대표가 아니다”, 그 얘기만 반복하는 겁니다. 그것도 선두에 나오는 학생들이 끊임없이 바뀌고, 뭘 좀 얘기를 해보려고 해도 터치가 안 되는 거 있잖아요? 아마 지금 여성운동들도 그런 식이 아닐까 싶어요. 혜화동 여성시위도 누가 대표인지 모르고, 누가 핵심인지 모르잖아요?

 

경찰·학교가 외면한 학생 손을 교수들이 잡아줬다

그때 제가 보기로는 두 가지 점에서 학생들이 엄청 많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들한테는 어렸을 때부터 경찰들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우리 세대는 경찰이 약간 나쁜 인간들이라는 의식이 있었잖아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이었는데, 경찰은 정권의 앞잡이고 이런 권력을 지지해주는 세력이기 때문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학생들에게는 그게 아니에요. 경찰 아저씨들이 길 건널 때도 도와주고, 파란색 옷을 입은 아저씨들은 공복이고 좋은 사람들이었단 말이에요. 생각해보세요. 지금 스무살, 97~98년생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그 사람들한테 적이 되어버린 거예요. 경찰이 쫓는 인간이 됐다는 게 굉장한 충격이었구요. 또 하나는 학교는 항상 자기네들을 보호해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가 자기네들을 버리고 경찰을 불러들이니까 충격받은 거예요. 그걸 우리 세대는 잘 이해를 못해요. 왜냐면 우리는 학교가 우리를 돌봐준다 생각 안 하고 산 세대이고, 학교에 프락치도 있었잖아요. 학생들이 초기 단계에서 엄청 불안정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가 나서서 학생들의 말을 들으려고 만나고 그러니까 학생들도 마음을 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마움 덕에 총장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건데, 그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말씀하신 대로 직선제가 고착화되면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 포퓰리즘적인 요소들이 개입할 수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학 내에서 직선제라는 제도가 그닥 바람직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저 스스로도 그런 문제에 대한 정리를 못하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제가 은퇴를 해야 그런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을까요?

 

배움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의 요구와 열정에서 시작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석·박사를 철학으로 하셨습니다. 전형적인 인문학 과정을 거친 셈인데, 인문학자인 총장님한테 배움, 공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는 지적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공부는 싫어했던 것 같고, 누가 하라고 하면 안 하는 성격이었구요. 제가 스스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하는데, 하다가도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면 하기가 싫어지는, 그런 못된 성격이 있었지요.(웃음)

대학 들어오기 전까지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 부모님이 하라는 것, 이런 것들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학교 들락날락하면서 했는데, 그러다보니 대학 와서 1학년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왜 여길 이러고 다녀야 되지? 거의 디프레스될 정도로 심했어요. 2학년 때 유신, 민청학련, 위수령을 다 겪었는데, 그러면서 사회과학 서적들을 보고, 친구들과 세미나 하면서 배움이라고 하는 게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 문제의식의 답을 얻기 위해서 탐구하는 과정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지요. 그렇게 제 길을 찾다가 철학을 하게 되었구요.

약력을 보니 ‘한국인문학총연합회’ 회장도 하셨던데, 시민들이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의 본질은 반성적 사고를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돌아보고, 인간에 대해 사고하다 보면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 자기를 둘러싼 환경, 자연에 대해 생각을 확장할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인문학 열풍을 보면서 느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의 교육받을 준비는 잘 되어 있는 문화예요. 언제든지 교육받고 뭐든지 배우려고 해요. 그런데 그 배움이라는 게 항상 바깥에서부터 와요. 정답이 있어서, 공자님 말씀을 읽어야 되고, 뭘 해야 되고, 이런 강한 명분의식이 있어요. 이 정도는 알아야지, 이건 해야지, 이런 식이지요. 근데 그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의 요구는 자기 내부로부터 나와야 돼요. 자기 안에서의 열정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근데 우리 사회 문화를 보면 뭐든 문제가 생기면 바깥에서 문제를 풀거나 해결을 찾잖아요. 내가 뭘 좋아하고 뭐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하게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학원을 보내거나 선생님을 모셔와요.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구요. 문제가 생기면 이거 가르쳐주는 학원 없나 찾아다니구요. 그러다보니 사법연수원에서도 과외를 한다잖아요?(웃음)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입각해 판결을 해야 하는 사람이 남에게 하는 법을 배우다니요. 한국이 하우투에 굉장히 능한 문화라서, 저는 정말 내가 제대로 목적을 설정했는가, 내가 진짜 가고 싶은 게 이건가, 하고 싶은 게 이건가, 이런 걸 좀 들여다보는 문화가 형성되어야한다고 봐요.

 

대학과 지자체의 평생교육은 달라야 한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서울자유시민대학이 서울에 있는 28개 대학과 함께 ‘대학 연계 시민대학’이라는 걸 열고 있습니다. 물론 이화여대도 저희와 함께 하고 있구요. 총장님이 생각하는 이화여대 평생교육의 특별한 방향 같은 게 있습니까?

사실 우리 학교가 대학 평생교육원을 제일 먼저 시작한 대학입니다. 지금 국가가 나서서 이렇게 평생교육을 하는데, 국가는 국가적인 차원의 기능이 있잖아요? 제가 교육부 같은 곳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할 때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우리나라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그 때문에 대학의 문을 닫을 게 아니라 기왕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나 인프라를 가지고 중국 학생들을 위한 전문적인 대학을 운영한다든가, 늘어나는 노령인구에 대한 시민대학을 운영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겁니다. 근데 지금 진행되는 걸 보면 기왕에 있는 자원들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돈을 새로 들여 확장을 하고 있잖아요? 저는 이건 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이화여대 사태가 미래라이프대학이라는 평생교육 단과대학에 대한 학교 측과 학생들의 갈등으로 시작되었지요. 총장님은 대학에서의 평생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전에는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하던 일들을 지금은 서울시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다 합니다. 그럼 이제 대학의 평생교육원이 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되는데, 저희는 교육과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기관입니다. 시민대학이 연구를 하는 곳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지식을 생산해내야 되는 곳이거든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대학은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평생교육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대학의 평생교육은 시민대학이나 일반적인 평생교육과는 다른 차원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구요. 저희는 사회의 재교육 과정, 좀 더 전문화된 차원에서의 재교육 과정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단순한 교양 차원에서의 역량 강화보다는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고, 병원, 학교, 은행 같은 제도권의 시스템도 굉장히 달라지리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렇게 됐을 때 사람들이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야 되잖아요? 우리가 익숙한 시대의 규범과 문법은 2차, 3차 시대의 룰이란 말이지요. 하다못해 회사원 생활을 하려고 해도 기술 발달이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되거든요. 대학의 평생교육은 그런 종류의 사회재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0년제 대학도 필요하지만, 고도의 지식을 창출하는 대학도 필요하다

저희 <다들>이 지금 이 대학 석좌교수로 계시는 최재천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국립생태원장이던 최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4년제 대학을 100년제 대학으로 확대하는 게 평생교육”이라구요. 심지어 “대학의 교과 과정을 특정 나이가 아니라 인생의 전 구간에서 언제든지 다닐 수 있도록 개편하는 것이 미래 대학개편의 핵심”이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물론 그런 대학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의 지식을 창출하는 대학도 있어야 되지요. 저는 이게 양분화될 것 같은데요. 요즘은 프로그램 자체를 프로그램화하는 소프트웨어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옛날 프로그래머도 이제는 직업을 잃게 돼요. 그렇지만 누군가는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 거 아니예요? 고도의 기술 능력,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들어내야 돼요. 인간 문명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사고 실험을 끊임없이 해야 우리 문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대학이 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대학은 이윤을 만들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인간 지식을 확장하기 위해서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 지식의 생산과 소비가 여기서 이루어져야 되지요. 그러니까 최재천 교수님 말씀처럼 쫙 펼쳐놔서 누구든지 올 수 있는 대학도 있어야 되지만, 리서치 중심의, 고도의 지식을 창출하는, 이걸 끌어가는 대학도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번 정부에서 공공성을 굉장히 강조하는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수월성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경쟁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고, 지식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서 갖다 사서 써야 할지도 몰라요. 이렇게 지식기반 사회가 고도화되는 상황에서는 그걸 해주는 대학도 반드시 있어야 되지요.

 

남성 주도의 사회는 똑똑한 여성 한두 명으로 바뀌지 않는다

대학 평생교육이 그런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데, 지난번 논란이 됐던 미래라이프대학은 그냥 평생교육 단과대를 하겠다고 하니까 반대가 많았던 거지, 대학 평생교육 취지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닙니다. 이화여대가 대학 평생교육 자체의 취지를 거부한다면 사회 정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엘리트주의로 비판 받는 게 맞지만, 대학이 가지고 있는 목표들이 대학마다 다 다르잖아요? 우리는 여자대학으로서 수월성을 끌어가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느 대학도 여성들만의 집단지성을 통해서 인간 문명을 재규정하고, 비판하고, 대안적 지식을 모색하는 데가 없어요. 항상 다 남성적 시각에서 이루어지거든요. 결국 인간은 자기 경험에 갇힐 수밖에 없지요. 마치 서구인들이 자기네들의 표준에 맞게 짠 판이 아시아인들의 작은 체구로는 따라가기 버거운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일본 사람들이 코카콜라도 작은 병으로 만드는 식으로 재조정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여성들도 남성들이 주도하는 금융, 경제, 기술을 여성적 시각 안에서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 뭐가 문제인지를 재단하고 부정하고 분석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이른바 집단지성의 처소같은 곳이 꼭 필요합니다. 이건 유수한 대학의 똑똑한 여자들 한 두 명이 있다고 해서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화여대가 지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걸 할 수 있는 곳이지요. 제가 요즘 계속 그 얘기를 강조하고 다니는데, 제 얘길 듣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아, 그렇네” 라고 합니다.

이화여대를 ‘여성들의 시각으로 문명을 재규정하는 곳’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웅혼한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기대하겠습니다. 임기가 2년 남았는데, 남은기간 동안 뭘 하고 싶으십니까?

지금까지 1년 반은 학내 안정화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화여대가 132년이나 된 조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가지의 조직적 관성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그걸 완전히 다 거슬러서 뒤집는 건 불가능하고 그럴 이유도 없지요. 취임 초기에는 그런 일을 감당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구요. 그래서 취임 초기에는 뭔가 뒤집는 것보다 조직을 안정시키는, 지금까지와 비슷한 보수적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임기가 2년 밖에 안 남은 시점인데, 지금의 시대상황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엄청난 전환기 아닙니까? 이화여대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여자대학으로서의 프리미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우리 스스로 여자대학이 왜 있어야 되는지를 증명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가 있음으로써 뭐가 달라지는 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남은 임기 동안 그걸 위한 노력을 하려구요.

지금 우리학교에서 공대가 제일 큰 단과대학입니다. 우리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그건 나쁜 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가 인문사회적 기반이 굉장히 강하고, 이제는 융합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지요. 기술이 별의별거 다하고 다 접목이 되잖아요? 핸드폰만 봐도 언제 컴퓨터와 전화가 이렇게 결합이 되리라고, 사진기가 여기 들어오리라고 상상을 했겠어요? 그런 식으로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어떤 식으로 결합해서 뭐가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상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그래서 융합선도적 과제를 3개 분야 정도 구성해서 추진해 보려고 합니다. 저희가 의대, 공대, 예술대, 약대 다 있습니다. 그런 대학이 많지 않아요. 그런 저희가 가지고 있는 특장점을 활용해서 세 가지 정도의 융합연구를 설정해 선도적으로 추진해 보고 싶습니다.

김혜숙은 누구인가?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6년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동 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87년 시카고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가 됐다. 2002년부터 인문학연구원장, 교수협의회장, 스크랜튼대학 초대 학장, 철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17년 5월, 개교 131년 만에 학생‧교수‧직원‧동문이 직접 뽑은 첫 직선제 총장(제16대)으로 선출됐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교육인적자원부 기초학문육성위원회, 문화융성위원회 인문정신특별위원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심의위원회 등 다양한 조직에서 기획‧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또, 2017년부터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회 위원, 대학윤리위원회 위원장, 대학교육협의회 이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제31대 위원, (한경)글로벌인재포럼 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