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다채로웠던 나흘간의 돌잔치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이 시작된 지는 5년이 넘었지만 서울자유시민대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본부가 문을 연 것은 작년 이맘때다. 서울교육청 옆 옛 기상청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문을 연 본부에선 지난 1년 간 86개의 강좌가 진행되었고, 2,451명의 학습자들이 강의를 들었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본부 개관 1주년을 맞아 4월 10일~16일까지 돌잔치를 했다. 본부의 직원들만 조촐하게 축하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서울자유시민대학의 주인공은 학습자들이기에 다 함께 축하하고 싶어 나흘 동안 매일 한두가지의 재밌고 유익한 행사를 진행했다.

 

‘한강에게’부터 ‘회색인간’까지

돌잔치 첫날인 4월 10일에는 극장 상영 중인 영화 ‘한강에게’의 박근영 감독과 강진아 배우가 영화평론가 안숭범 교수의 사회로 ‘영화의 한 장면 : 삶의 감정들’이라는 토크쇼를 했다.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인 ‘한강에게’의 한 장면을 보면서 감독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감정을 해석하는지, 배우는 어떻게 영화 속 인물에 공감하고 소화하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잘 만날 수 없었던 감독과 영화 배우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시민들은 잔잔하게 감동했다.

둘째날엔 소설가 김동식과 작가 김민섭이 소설 ‘회색인간’을 출판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물공장 노동자 김동식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1년 6개월 동안 300편의 단편 이야기를 올리며 댓글로 독자들과 소통했고, 이때 함께 댓글을 달고 공감했던 김민섭 작가가 출판사와 연결해주면서 출간된 ‘회색인간’은 2018년 출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독자가 작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댓글로 소통하고, 작가가 출판사에 연결해주는 이야기는 SNS의 등장으로 개인과 개인이 어느 시대보다 쉽게 연결될 수 있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 날인 16일에는 최근 돌아가신 일본의 영화배우 키키 키린의 대표작 ‘앙:단팥 인생 이야기’를 상영했다. 팔에 흉터가 있는 할머니의 도라야키(단팥빵) 만들기를 통해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 영화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로 상영되었다. 시력이 약하거나 글자 읽기가 힘든 사람들도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문근영 배우가 화면해설 내레이션을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민 모두가 함께 다닐 수 있는 서울자유시민대학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잔잔한 감동을 맛보는 시간이 되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이야기 ‘소설처방’ 인기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핫코너는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이야기 ‘소설처방’이었다. 미리 예약 신청을 한 시민들이 약속된 시간에 본부 M2층 학습카페에서 작가들과 만나 1:1 인터뷰를 30분 동안 하고, 그 내용으로 작가들이 소설을 써서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다. 소설은 3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초단편 분량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일종의 처방전 형태의 소설로 탄생한다.

15일에는 이하루, 비꽃 작가가, 16일에는 배명솔, 이치야 작가가 인터뷰를 했다. 신청자들은 자신의 과거나 군대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어머니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한 신청자는 암 투병 후 완쾌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30분이나 할 이야기가 있을까 걱정했지만, 인터뷰에 몰입하다 보니 30분이 짧게 느껴져 다들 아쉬워했다. 대부분 무료인 시민대학 행사에는 신청을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소설처방 코너는 거의 대부분의 신청자가 제 시간에 나타나 성황을 이루었다.

담당자인 최진희 대리는 “한 작가 당 하루에 10명 신청 받으셨는데, 인기가 많아 금방 마감됐어요. 혹시 노쇼 신청자가 있으면 현장에서 다른 분께 해보라고 권하려고 했는데, 노쇼도 없었고 다들 시간 맞춰 잘 와주셨어요.”라고 했다. 이 인터뷰는 소설이 되어 일주일 뒤(23일) 서울자유시민대학 본부에 도착한다. 이번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면 스마트폰 앱 ‘바이트’를 다운받아 소설처방 신청을 해보자. 자신의 삶가 꿈, 상상이 짧은 소설로 표현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친상에도 불구하고 샌드 아트를 보여준 임혁필 씨

계획대로라면 개그맨 임혁필의 샌드 아트 공연이 1주년 기념행사의 첫 순서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행사 직전에 임혁필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임혁필 씨와 논의 끝에 샌드 아트 공연은 마지막 날로 연기되었다.

16일 오전 10시, 본부 1층 시민홀에 나타난 임혁필 씨는 “세상의 많은 아들들처럼 저도 아버지와 평소에 별로 친하지 않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돌아가시니까 좀 잘 해드릴 걸, 친하게 지낼 걸, 많이 후회가 되더라구요. 오늘 공연도 아버지가 위에서 보고 좋아하도록 힘내서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하여 박수를 받았다. 개그콘서트의 세바스찬으로 인기를 끌었던 그는 “나가 있어!” “천박해 천박해 천박해” 등의 유행어를 히트시켰고, 대학로에서 공연도 많이 했다. 이번 1주년 기념행사의 주제가 ‘사람을 생각하다’인만큼 그는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미술대학 출신인 그는 같은 과의 후배 박성호와 꽁트를 짜서 개그맨 공채 시험을 봤고,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 객석에서 지켜보던 관객이 개그맨이 되고 싶다며 부탁해서 개그를 가르쳤는데, 그들이 바로 개그맨 정형돈과 최효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열정이다. 박성호는 친구를 웃기기 위해 친구의 사물함에 들어가 한 시간 이상 웅크리고 숨어있었고, 정형돈은 개그맨이 되기 위해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최효종은 개그맨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생인데도 방학마다 대학로에 와서 일을 배웠다. 그들은 열정적이었다.

 

샌드 아트는 ‘시간과 변화의 예술’

뒤이어 그는 ‘생각을 바꿀 때 아이디어가 보인다’는 주제로 접은 종이, 색연필 깎은 찌꺼기, 박스테이프, 계란 껍데기, 커피잔 자국, 호두, 타이어 등으로 그린 작품들을 보여줬다. 그림이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 중 모래로 그리는 샌드 아트가 있다.

펀타지(Fun-tasy)쇼를 하면서 배우게 된 샌드 아트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과학적인 그림이라고 한다. 엄지는 큰 붓, 검지는 작은 붓이 되어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림이다. 갈치에서 뱀장어, 메기를 거쳐 용으로 변화하는 그림을 직접 손가락으로 그려 보여주며 그 사실을 증명했다.

관객으로 오신 분들 중 세 분을 무대로 초대하여 그림 시연도 했다. 판에 모래를 골고루 흩뿌리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임혁필 씨의 지도로 모래를 뿌리고, 그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홍경희 씨는 토끼를, 김정희 씨는 튤립을, 미향 씨는 파도를 그렸다. 참여자들이 처음엔 한글로, 그 다음엔 영어로, 마지막엔 한자로 자기들의 이름을 써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샌드 아트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그림은 서울자유시민대학의 1주년을 축하하며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 서울자유시민대학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잎을 피워내고 결국엔 글로벌로 뻗어나가는 그림이었다. 이어 두 번째 그림은 10분 정도 배경음악과 함께 공연되었다. 사람의 인생에 대한 내용으로, 산골 마을에서 만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고, 서로 사랑하고,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스토리였다. 열렬한 박수와 함께 공연이 끝나고 간단한 질의응답을 한 후, 여러 시민들이 남아 임혁필 씨와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았다.

 

아날로그 향취 가득한 포토부스, 현장 홍보부스 운영도

사진은 본부의 포토부스에서 찍을 수도 있었다. 꽃을 들거나 콧수염을 붙이고 즉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부스가 이틀 간 설치되었다. 찍고 바로 보는 폰카의 시대,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즉석사진이 웬일인가 싶지만, 인화되어 나오는 사진은 손에 쥘 수 있고, 아날로그의 향취를 느끼게 한다.

행사 기간 동안 5호선 서대문역 지하에 홍보 부스를 마련해놓고 직원들이 나가 무료 현장접수를 받기도 했다. 바쁜 시민들은 지나가면서 흘깃 눈으로 볼 뿐이지만 그렇게라도 눈도장을 찍고 싶은 서울자유시민대학 직원들의 마음이었다.

서울자유시민대학 본부는 다양한 규모의 강의실과 동아리실을 갖추고 있으며, 작은 도서관과 학습 카페도 있다. 자유시민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빈 시간에는 대관도 하니, 산뜻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모임이나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은 문의하면 된다. 최근엔 2층에 테라스 벤치도 설치하여 푸른 자연을 보며 휴식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