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부터 잠수정까지 무엇이든지 고쳐드립니다

 

청진기를 대고 어디가 아픈지 아는 것처럼,
<기계도 마찬가지에요.

 

인터뷰를 하러 찾아간 날, 장인은 분주하게 부품을 옮기기에 바빴다. 찾아올 손님이 있다면서 장인은 짧은 시간만을 허락했다. 그러면서도 수리중인 라디오를 보여 달라고 하자 이내 부품들로 어지럽혀진 작업대 위에 놓인 라디오를 자랑하며 보여줬다.

 

“전자를 배우러 원주에서 서울까지 학원을 다녔어요”

변용규 장인은 오디오 제품 수리 장인이다. 그는 하굣길에 동네 전파사에 놀러가서 구경을 했을 만큼 어렸을 적부터 오디오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재밌으니까. 열 살 때부턴가 그때부터 하여간 관심이 있었어요. 시골에는 벽면에 하나씩 가구마다 붙어있었는데, 그것도 돈 내고 들었어요. 유선으로 저쪽에서 틀어주면 그대로 듣는 거예요. 크게 작게도 안 되고 한 가지 방송만…”

장인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공부보다 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서 서울로 학원을 다니기까지 했다.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나왔는데, 이게 너무 신기하니까 학원을 다녔어요. 원주에서 서울까지. 전자 학원을… 그런데 일 년도 채 안다녔어요. 재미가 없더라고. 너무 기초적인 것만 가르쳐주니까. 뭐 내가 만드는 게 더 재밌더라고.”

 

“남이 시키는 일은 싫어요. 내가 알아서 더 잘하는데…”
세운상가가 좋아 뒷골목 좌판에서 일 시작

군대를 다녀와 장인이 처음 일하게 된 곳은 전자회사 대리점이었다고 한다. 대기업에서 TV나 라디오가 나오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방문 수리를 해주는 것이 그의 첫 직업이었다. 그러나 안정된 직업에도 불구하고 큰 조직 생활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 무작정 회사를 나오게 된다.

“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내가 알아서 자기들 보다 더 잘하는데…”
그는 연고도 없이 그 당시 최고라고 불리는 세운상가로 무작정 오게 되었다고 했다. 변변치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기에 더욱 만족감을 가지고 일했다.
“처음에는 세운상가도 아니고 여기 뒷골목에서 쪼매난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일제 워크멘 같은걸 주로 고쳤어요.”
그러다 몇 년 뒤에 상가를 얻어 세운상가로 진입하게 된다.

 

“부품 사는 것도 기술. 노하우 유출될까 서로 공유 안해”

장인은 경력 초기 히터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샅샅이 배웠다고 한다.
“다 했어요. 경리 일은 기본이고, 회계, 자재 구매, 영업, 생산… 그러니까 다 하는 거지 뭐.”
이 과정을 15년 동안 거쳤다. 특히 장인은 영업도 해보고 사무실에서 접견도 하면서 이 산업군이 돌아가는 생리를 직접 몸으로 체득한 경우였다.

“영업할 때는, 직접 현장에 납품도 가보고, 현장에 기술자들한테도 가보고… 내근할 때는 외부에서 구매하러 오는 분들하고 상담도 해주고. 학교, 그 때 당시에는 학교에서 많이 왔어요, 연구하기 위해서. 그러면 뭐 대학원생, 박사과정도 있고 석사과정도 있고. 그런 분들도 그럼 거기에 히터를 써야 되는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 써야 될지를 모르는 거예요. 자기는 필요한 게 이게 있는데, 상담을 해주는 거지. 그래서 이제 그 분들한테 실질적인 도움도 주고 그랬지.”

 

“새로운 일. 나를 필요로 하는 손님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가요.”

그의 주된 수리 품목은 라디오 진공관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종종 일상적이지 않은 품목을 수리해달라는 고객들의 요청이 있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수심 천 미터까지 내려가는 잠수정이었다. 잠수정에 연결된 케이블이 파도에 상해를 입어 전기가 새는 것을 고쳐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이다. 그는 잠수정 수리를 위해 제주도, 속초를 오가며 일했던 기억을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꼽는다. 이렇듯 장인은 새로운 일에 늘 관심이 많다. “맨날 똑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 그게 제게는 특별한 일이에요. 지인들끼리 물어물어 소개해서 오는 거예요. 그 사람이면 해결할 것이다. 이렇게”주로 라디오를 수리하는 그이지만, 자신을 찾는 손님을 위해 늘 새롭고 특별한 도전을 찾아 열심히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