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고쳐드립니다, 김광웅 장인의 일과 학습

 

물고 늘어지면서 일 해요. 그러면 또 쾌감이 있어.

 

인터뷰를 갔던 우리에게 ‘어서 들어오라’는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장인의 첫 인상은 마음씨 좋은 동네 슈퍼 아저씨 같았다. 출근 후 마시는 믹스 커피 한 잔이 제일 맛있다는 장인. 남들이 어렵다는 전자제품을 가져와도 웃으며 수리를 맡아주는 마음씨 좋은 장인이다.

 

“기계를 전공했는데 전기로 바꿨어요.” 후배 앉혀놓고 뒤늦게 일 배워

김광웅 장인은 작은 중소기업 회사를 다니다가 세운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당시 많은 전기·전자 회사들이 있었지만, 작은 기업들이라 자꾸 부도가 나는 바람에 회사를 옮겨다녀야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양해야했기에 안정됨을 선택하기로 했던 김광웅 장인은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무조건 세운상가로 왔다고 했다.
“기계과를 나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깜깜하더라고. 앞뒤로 후배들을 앉혀놓고 수시로 물어보고 배우는 거예요. 노력을 많이 했지…”

 

“고쳐보기도 전에, 얼마 나와요 묻는 고객” 제일 난감해

김광웅 장인의 손님들은 오랜 인연을 가진 경우가 많다. 고객을 만족시킬 만한 수리 솜씨는 물론이고, 어느 손님이건 마다하지 않는 친절함 때문에 한 번 찾아온 손님들과 장인은 여러 해 인연을 이어간다. 장인은 손님들이 수리된 제품에 만족을 느낄 때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라고 꼽았다. 심지어 외국 손님이 아끼는 물건이라며 한국에 온 김에 지인의 소개로 들고 온 낡은 기계를 고쳐줘 기쁨을 준 에피스드도 있다.

그러나 장인에게도 때때로 난감한 순간들이 있다. 물건을 고치기도 전에 “얼마 나와요.”라고 묻는 경우이다. 물론, 가격을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업의 특성상, 제품 수리는 실제로 물건을 뜯어보고 문제점을 찾아내야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떄로 이런 과정들은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제품을 뜯어서) 하나하나 체크를 해야 해요. 그래야 원인이 나오고, 그래야 견적이 나오는 거예요.”
심지어는 수리가 다 끝난 제품도 값이 비싸다며 물건을 안 가져간다고 생떼를 부리는 손님도 종종 있다고 한다.
“시간을 많이 들여 몇 시간씩 뺏겨가지고 했는데…”
김광웅 장인은 돈과 시간도 그렇지만, 장인으로서 자신의 기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IMF도 모를 만큼 일거리 많아

세운상가의 호시절 때는, 국가 전체가 어렵다는 IMF를 체감하기도 힘들만큼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가게를 차리고 사오년 정도 있다가 그 때서부터 막 세운상가가 붐이 일어나니까 일이 많이 들어오더라고. 그때 부리던 기사들도 세 명 정도 있었고. IMF를 겪었어도 그걸 몰랐어. IMF가 뭐야. 우리가 그랬거든. 집에 가서도 일을 해가지고 올 정도였으니까. 그 전에는 세운상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어깨 부딪히고 그럴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몇 년 뒤 중국 제품의 수입이 개방되면서 점차 일감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워낙 싸니까. 제품을 수리하면 거의 새 거 값이랑 맞먹으니까 수리를 안 하는 거야. 수리를 안 하고 ‘아 이거 버리고 하나 사지 뭐, 조금 보태면 하나 사겠네.’ 뭐 이렇게 되는 거야. 그렇게 되니까 수리가 팍 죽어버리는 거지. 그래서 직원들을 다 독립시켜주고 그랬지.”

김광웅 장인은 작은 꿈이 있다. 자신의 기술로 노인들에게 무료로 봉사하는 것이 바로 그것.
“자식들에게 용돈 타서 쓰시는 분들 있잖아요. 무료로 봉사하고 싶은 계획이 있어요. 5천원이나 1만원이어도 큰 부담이 되는 어르신들이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