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숙희 vs 술고래 지혜의 대결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언니들의 산책학교, 봄산책 현장을 가다

수요일 저녁 7시. 한참 출출할 시간이다.
저녁을 못 먹고 올 수강생들을 위해 테이블에 샌드위치, 바나나 우유, 머랭쿠키 등이 차려진다. 언니들이 하나 둘 들어와 허기를 채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모두의학교 앙상블 프로젝트 ‘언니들의 산책학교’ 봄산책 마지막 날이다.

 

노트 만들기, 판화에 이어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기

그간 언니들의 산책학교에선 고무판을 조각해 도장을 만들거나 종이를 실로 꿰어 나만의 노트를 만드는 등 여러 문화예술 활동을 해왔다. 그 틈틈이 과제로 동영상을 찍어 오픈 채팅방에 올리기도 했다. 핸드폰으로 기껏해야 사진이나 찍을 줄 알았던 언니들이 앱을 다운받고 영상을 찍어 편집해서 나레이션까지 곁들일 수 있게 되었다. 서로 알려주고, 도와준 결과다.

오늘은 봄산책의 마지막 시간. 두 팀으로 나뉜 언니들이 각자의 스토리로 한 컷짜리 영상을 만드는 날이다. 감독, 배우, 촬영감독, 스트립터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자신의 역할에 맞는 소품과 카메라(=핸드폰)를 준비해와 촬영계획서를 놓고 어떤 장면을 어디서 어떻게 찍을지 활발하게 토론한다.

 

언니들도 영화감독처럼 제작발표회

조금 늦게 온 각 팀의 배우들을 기다렸다 제작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줌마네 이숙경 선생님의 사회로, 각 팀의 감독들이 나와 작품을 설명하고, 이어서 촬영감독이 화이트보드에 콘티를 그리며 어떻게 찍을지 이야기했다. 두 팀은 약속이나 한 듯 술을 마셨거나 술을 마시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한 팀은 숙희라는 이름의 술 취한 여자, 한 팀은 지혜라는 이름의 술 마시는 여자. 혹시 ‘술’이라는 주제가 주어졌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고, ‘술고래 지혜’팀의 지혜가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먹는 여자였다가 과자가 맥주로 바뀌는 바람에 술고래 지혜가 되었다고 한다.

 

선생님한테서 아빠 냄새 나요!

‘취한 숙희’ 팀은 학습지 교사인 숙희가 술을 마시고 수업 갔다가 아이로부터 “선생님한테 아빠 냄새 나요!” 소리를 듣는 내용으로, 오늘은 그 중 숙희가 술 깨려고 숙취해소 음료를 마시려다 잠드는 컷을 찍기로 했다. 촬영은 벤치에서 이루어지며,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카메라가 훑어가며 보여주면 단정해보였던 숙희가 알고보니 술꾼이었다는 반전의 느낌으로 찍는다고 부연설명했다.

촬영감독은 전경, 발에서 머리까지 따라가는 클로즈업, 뒷모습, 숙취해소음료가 굴러가는 클로즈업 등 4컷을 찍어 이어붙이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이숙경 선생님은 무척 힘들 거라며 그냥 한 컷으로 찍으라고 조언했다. 서로 다른 크기의 네 컷을 이야기가 되도록 이어붙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한 컷 안에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 팀은 제작발표 이전에도 교실에서 계속 리허설을 했다. 숙희 역의 배우가 에코백에서 컨디션을 꺼내 마시려다 떨어뜨리는 장면을 여러번 연습하며 컨디션이 꼭지부터 떨어질지 바닥부터 떨어질지를 토의했다. 배우가 컨디션을 손에서 굴려 떨어뜨릴 때마다 촬영감독은 핸드폰을 들고 왔다갔다 하며 어느 방향으로 줌인했다 아웃할지 방법을 연구했다.

 

맥주 한 모금에 행복해지는 지혜

‘술고래 지혜’ 팀은 지친 직장인 지혜가 퇴근길에 슈퍼에서 양손 가득 맥주 피처를 사서 들고 나와 한 병 따서 마시며 활력을 찾는 내용이다. 지혜 역의 배우는 노란 곰돌이 푸우 인형을 소품으로 준비해왔다. 곰돌이를 어떻게 쓸 거냐고 묻던 이숙경 선생님은 인상적인 소품일수록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곰돌이 푸우는 무척 눈길을 끄는 물건이므로 등장하면서도 극의 끝까지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관객들이 의문을 가질 거라고 했다.

이에 팀원들은 가방에 푸우를 담아가지고 들어갔던 지혜가 맥주를 딸 때, 푸우에게 건배하고 마시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푸우가 지혜의 친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팀은 ‘취한 숙희’ 팀과 달리 촬영계획서도 없고, 리허설도 하지 않았지만 지난주 로케이션을 통해 최적의 장소를 찾았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편의점을 찾다가 그 대신 불빛 환한 슈퍼마켓을 찾았다고. 배경음악으로 김목인의 ‘그게 다 외로워서래’라는 노래를 깔면 어떨까 하자, 이숙경 선생님이 맥주 마시며 골목길을 걸어가는 지혜의 뒷모습을 롱테이크로 잡으면 그 노래와 어울리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팀원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아이디어를 내며, 조언을 해주는 선생님의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학습이라는 느낌도 없이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고 있었다.

 

자동차가 계속 지나가지만 열정은 식지 않아

교실에서 슬레이트 치는 법, 레디 액션을 외치고 쇼트 안에 슬레이트를 포함시키는 법 등을 배우고 연습한 뒤, 드디어 촬영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술고래 지혜’팀은 모두의학교 앞쪽의 벤치로, ‘취한 숙희’팀은 모두의학교 단골 할인마트 앞으로 갔다. 언니들의 산책학교 첫 시간에도 컴컴한 거리를 다 함께 산책했는데, 이렇게 마지막 시간에도 촬영을 위해 동네산책을 하다니 시작과 끝이 똑떨어지는 수미쌍관의 모습이었다.

할인마트에 도착한 시각은 8시 15분. 주어진 시간은 45분뿐이다. 길어봐야 15초 정도의 영상을 찍기에는 충분해보였지만, 현장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할인마트는 사거리 모퉁이라 시도 때도 없이 승용차와 화물차가 지나다녔고, 손님들도 많았다. 자동차들을 피해가며, 할인마트에 들어가는 고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원하는 컷을 건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인생 처음 영화를 찍는 언니들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과연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 클릭! [술고래 지혜] [취한 숙희]

 

 

미 · 니 · 인 · 터 · 뷰

여름산책까지 이어질 언니들의 문화예술 스터디

수진님

수진님은 ‘언니들의 산책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모두의학교 직원이다.
2018년 초 모두의학교가 문을 열 때부터 같이 일해왔다.

언니들의 산책학교는 모두의 앙상블 프로젝트 중 하나인데, 모두의 앙상블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앙상블’은 조화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세대 간의 조화, 각자 다른 분야끼리의 조화를 모토로 새로운 경험과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두의학교에선 시민학교나 커뮤니티 지원사업처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모두의 앙상블 프로젝트는 모두의학교에서 기획하여 제공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산책학교’가 많더라구요? 할머니, 청년, 언니들…

네. 원래는 앙상블 프로젝트 중 같은 세대끼리 구성한 프로그램을 산책학교라고 명명했어요. 여성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할머니 산책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산책학교 등이 있고, 앞으로 할아버지 산책학교, 어린이 산책학교도 운영할 예정이에요. 언니들의 산책학교 역시 중년 여성들을 타깃으로 만들었는데, 신청을 받아보니 저희 의도와 달리 20~30대 여성들도 신청을 많이 하신 거예요. 그래서 명실공히 언니들의 학교가 된 거죠.

언니들의 산책학교를 어떻게 담당하게 된 건가요?

제가 작년에 할아버지들과 함께 꽃할배 프로젝트를 했고, 그 분들이 지금 ‘모두의 리듬’이라는 바디퍼커션을 하고 계세요. 그래서 올해는 할머니 산책학교를 만들었죠.
언니들의 산책학교는 원래 기혼자가 담당하려고 했는데 스케줄이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담당하게 됐습니다.
언니들의 산책학교는 줌마네 이숙경 대표님이 멘토인데 지도하는데 노하우가 있어요. 무척 쉽고 자연스럽게 잘 가르쳐주세요. 영상 찍는 게 뭔지 몰랐던 분들이 앱 하나 다운받고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될 정도로 잘 가르쳐주세요. 수업시간이 7시~9시인데 보통 9시 30분 넘게까지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줌마네의 노하우와 모두의학교의 장점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오늘이 봄산책 마지막 시간인데, 자연스럽게 여름산책도 맡아주시기로 했어요.

그럼 말 나온 김에 여름산책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봄산책에선 수업시간에 판화, 그림 등을 그리면서, 매주 과제로 꾸준히 영상을 찍어왔어요. 밥 먹는 식단을 5초 동안 찍어서 며칠간 연결시킨다거나 흘러가는 구름을 찍고 나레이션을 넣거나 했죠. 여름산책에선 스토리가 있는 영상을 찍어보는 게 목표예요. 일종의 독립 다큐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영상에 대해 좀 아는 분을 모집할 예정입니다. 봄산책에 참여하신 분들 중에 여름산책으로 이어서 나오실 분들도 있을 것 같구요. 모두의학교에선 한번 배우는 걸로 끝나지 않고, 배움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게 참 좋아요. 저는 이게 모두의학교 프로그램의 장점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