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대학이 퇴근길로 찾아갑니다!

올해부터 서울자유시민대학은 기업과 연계한 강좌를 운영한다. 5월, 그 시범운영으로 G밸리에서 직장인의 삶과 자기 성찰, 주변인과의 소통에 관한 강의 ‘관계 속 행복한 나를 위한 마음경영’을 4차에 걸쳐 운영한다. 누다심의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강현식 대표와 나다움에듀컴퍼니 백정선 대표가 함께 한다.

  • 강의명 : 인생을 바꾸는 마음회화
  • 강사 : 강현식 (누다심의 심리상담센터 대표)
  • 장소 : 현대아울렛 가산점 6층 기업시민청 창조홀

G밸리는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과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 걸치는 가리봉동, 구로동, 가산동 일대를 뜻한다. 70~80년대 2차 산업의 기반이었던 공단 지대는 이제 높은 고층빌딩과 IT 관련 일을 하는 회사원들의 지대로 탈바꿈했다. 20여 년 전, 이 지역에 잠깐 산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가보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이렇게 고층빌딩이 많은 동네였나 입을 벌리고 구경하다 목적지에 도착해 내렸다.

퇴근길 시민대학이 열리는 현대아울렛은 주변의 마리오 아울렛, W몰 등 아울렛 매장이 즐비한 패션거리에 있다. 백화점만큼이나 화려한 아울렛에 들어가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6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쇼핑몰에서 시민대학이라니!
6층 영화관 옆의 기업시민청은 기업인과 근로자들을 위한 휴식, 문화공간으로 모임이나 워크샵, 강좌 등이 있을 때 예약 신청하여 쓸 수 있다고 한다. 반달형의 책상에는 두 명이 여유롭게 앉을 수 있고, 홀 뒤편에는 만화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요.” “아니 몰라. 네 잘못이 아니야.”

강의 시작 전에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제일 앞자리에 앉아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강사님은 <누다심의 심리학 블로그>로 유명한 강현식 강사님이다. ‘퇴근길 시민대학’이라고는 했지만. 직장인만큼이나 아닌 분들도 많았다. 이채로운 것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양복 입은 중년 남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지난 1차시에는 50여명 정도가 왔다는데, 이번 2차시에는 30여 명 정도가 자리를 채웠다.

오늘의 강의명은 ‘인생을 바꾸는 마음회화’다. 해외여행을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말, 즉 마음회화를 배워야 한다.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을 30여년 간 종단연구한 조지 베일런트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은 돈이나 몸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관계’에 좌우된다고 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말이 안통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때 안통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말이 안통한다”고 이야기한다. 강사님은 오늘 강의에 대해 지난 10여년 간 집단상담의 경험을 집대성한 강의라고 강조했다. 어느 책의 이론이 아니라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한 것들을 대방출하는 자리다.

본격 마음회화에 들어가기 전에 영화 <굿 윌 헌팅>의 몇 장면을 먼저 봤다. 윌은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다가 어느 날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고, 그걸 본 교수에 의해 장학생 추천을 받는다. 하지만 세상만사 삐딱한 윌에게 공부를 하려면 심리상담을 받으라는 과제가 떨어진다. 처음에는 방어막을 치고 삐딱하게 나가던 윌이 결국 상담사와 마음을 터놓게 되고 후반부에 그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상담사가 윌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하자 “알아요.”하는 윌. “아니, 넌 몰라. 네 잘못이 아니야.” “안다고요.”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상담사가 몇 번이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반복해 이야기하자 그를 밀쳐내던 윌은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둘은 부둥켜안고 운다.

이 장면을 보여주며 강사님은 윌이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었다가 3번이나 아동학대로 파양당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셨다. 아동학대로 3번 파양되었으면 그 외의 이유로 더 여러번 파양당했을 것이고, 그런 경험을 어릴 때 했다면 사람은 필시 “나한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지?” 의문을 가지게 되고, “결국 내가 문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걸 알기 때문에 상담사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그렇게 끈질기게 해줬던 것이다. 그저 한 마디 말로는 마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이야기해준 것이다.

 

이기면 뭐하겠노? 다들 떠나겠지.

영화를 보고 감동한 사람들에게 강사님은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감동적이지 않죠.”하면서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을 보여줬다. 육아를 하며 사사건건 식탁에서 싸우는 부부가 나왔다. 담배, 눈치, 육아 등등 행동 하나하나에 싸움을 걸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쌓일 정도였다. 말을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영화와 현실의 차이가 생긴다는 게 강사님 말씀의 요지였다. 사람들은 말다툼을 하기 시작하면 이기기 위해 용을 쓴다. 강사님도 어릴 때부터 말을 잘했고, 성격이 치밀한데다 말이 논리적이라 말싸움에서 항상 이겼다고 한다. 그런데 말싸움에 이기니까 다들 등을 돌리더라는 것이다. 이기면 상대가 무릎을 꿇으리라는 생각은 착각이었고, 그 관계는 파탄난다. 그런데 왜 싸워서 이기려는가 말이다.

“이길 수 있어요. 근데 혼자 사셔야 돼요.”가 간단한 결론이었다.

대화를 하다 감정이 격해지면 한 발짝 물러서야 된다. 사람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어떤 말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집에서 나가.” “그럼 이혼해” “엄마는 하나도 몰라” 같은 말을 내뱉는다. 희한한 것은 자신도 흥분하면 아무 말이나 막 하면서, 상대방은 진심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상처받거나 분노한다. 그러므로 일단 감정에 휩쓸릴 때는 싸움을 중단하고, 나중에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 이야기해야 한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 그릇보다 음식이 중요하다

흔히 말을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릇보다는 음식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마음을 읽기보단 말만 듣는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선 말조심을 해야 한다. 강사님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쳐서 야단을 맞았다. 엄마 말을 왜 안듣냐고 야단치던 엄마는 급기야 “그렇게 말 안들을 거면 나가버려!”라고 했다. 강사님은 어린 마음에 이번에는 말을 잘 들어야겠다 싶어 신발을 신고 나가다가 더 맞았다는 것이다. 왜 하라는 대로 했는데 더 맞아야했는지 몰라서 서러웠다고 한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명심해 들어야할 충고가 아닌가 싶다.

부모는 너무나 당연해서 “엄마는 너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행히도 자녀들은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오글거리더라도 그런 말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언어는 일종의 습관이라 반복 연습이 필요하다. 영어회화처럼 마음회화도 입에 붙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소통도 바뀌어야 한다

강의 후반부에 다시 한번 EBS 다큐프라임을 봤다. 이번에는 10여년 간 사이가 나빠서 서로 말을 한 마디도 안했던 부자가 나온다.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고, 엄마의 전화를 받은 아들이 아버지 병문안을 온다. 아들을 보자마자 아버지는 “나가.”한다. 평일인데 회사에 안가고 왜 여길 왔냐는 소리다. 회사에 얘기하고 와서 괜찮다는데도 자기 병문안 오는 것보다 회사 가서 일하는 게 더 좋다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그래도 저건 기분 좋은 거예요. 아버지는 싫으면 아예 아무 말도 안하세요.”라며 아버지를 애써 이해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약간 뜨끔했다. 상대방에게 미안하면 거꾸로 화를 내는 내 모습이 그 아버지의 모습에 포개졌다.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

강사님은 우리나라 문화가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문화가 아니라서 소통에 힘든 점이 있다며, 정을 강조하는 초코파이가 문제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강생들 사이에선 자기도 모르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하는 초코파이 송이 흘러나와 웃음을 안겼다.
중년의 할아버지 수강생이 손을 들더니 “옛날에는 말을 안해도 통했어요. 안통하는 건 요즘 시대라 그렇습니다. 예전엔 안 그랬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강사님은 “맞습니다. 그러니까 말씀 하셔야죠. 시대가 변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진리인 듯 했다.

 

영어회화처럼 마음회화도 반복연습 할 것

친구의 힘들다는 말에 “야, 넌 나보다 나은 거야.”하기 보단 “그래? 이야기해봐.” 하고, “당신이랑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하는 아내에게 “나는 뭐 안 힘든 줄 알아?” 받아치기 보단 “우리 마음 좀 터놓고 이야기할까?” 하고, “엄마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소리 지르는 딸에게 “내가 뭘 모르는데?” 보다는 “힘든 걸 얘기해야 알지.”라고 하면 상대방의 반응은 조금 나아진다.
힘든 이야기 좀 들어달라는데, “너 맨날 똑같은 소리하잖아.” 하는 친구에게는 “넌 왜 그딴 식으로 말하니?”가 아니라 “그래도 지금은 내 얘기 좀 들어줘. 나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렇거든.”하면 그걸 못 들어줄 친구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해보라는데도 “말하기 싫어.”라는 딸에게 “넌 그게 문제야! 말을 하라는데 왜 안해?” 대신 “지금 힘들면 나중에라도 꼭 말해줘. 엄마는 너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라고 하면 언젠가는 딸이 말을 하게 된다. 이런 소통이 쌓이고 쌓이면 관계는 나아질 수밖에 없다.
“너는 왜 그러니?”, “너만 힘드니?” 등 ‘너’를 주어로 하는 말들은 판단과 비난을 담고 있다. 주어를 ‘나’로 바꿈으로서 소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내가 몰랐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구나.”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

강의가 끝나고서야 왜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 이 강의를 들으러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자녀와 아내와 소리 지르지 않고, 싸우지 않고 소통하기 위해 퇴근길의 2시간을 술 마시는 대신 이 강좌를 들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 뒷모습이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