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관점 넓히는 게 평생교육사의 숙제

2002년 창립, 평생교육 정책과 현장 사이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평생교육사들의 구심점인 한국평생교육사협회가 5대 회장을 맞았다. 평생학습도시를 거쳐 부산에서 ‘삶과 앎 모두의 평생학습’과 ‘뒹굴뒹굴공작소’를 운영하고 있는 전하영 대표다. 지난 4월 26일, 전국평생학습연석회의 참석차 서울을 찾은 그를 이경아 기획조정국장이 만나 인터뷰했다.

 

평생학습도시 나와 ‘관계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이경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한국평생교육사협회장 취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5대째 회장이 되신 거죠? 요즘 협회에서 느끼고 계신 평생교육사들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전하영: 우리나라 평생교육이 이제 사회로 나가는 문턱을 막 넘었다고 생각해요. 이전까지 집안에서만 작동하다가 사회와 만나려고 하는데, 아직 준비가 덜 돼서 좌충우돌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사회에는 이미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 평생교육의 색깔들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잖아요. 평생교육은 우리들만의 울타리 안에 있다 보니 다소 어린애 같은 모습이 보이는 거죠.

 

이경아: 저도 같은 심정이에요.(웃음) 지난 30년간 법제도나 이런 걸 만들어낸 걸로 봐선 굉장히 많은 걸 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처럼 변화가 많은 사회에서는 아직 멀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죠. 지금 부산에서 ‘삶과 앎 모두의 평생학습’이라는 단체와 ‘뒹굴뒹굴공작소’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소개 좀 해주세요.

 

전하영: 국가 정책과 지역사회의 사업들이 만나면서 ‘동네배움터’ 같은 마을 단위 평생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작 마을에서 보면 평생학습은 또 다른 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참여하는 이들에겐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를 주고 그러겠지만, 참여하지 않는 이들에겐 벽처럼 느껴질 수 있죠.

정책이 마을까지 뿌리 내리게 하는 게 과연 시스템만으로 될까? 그게 제가 평생학습도시에 있는 동안 가졌던 고민이었어요. 밖으로 나와 마을공동체 활동을 해보니 주민들에게 평생학습은 어려운 존재였어요. ‘교육’이라는 단어가 녹록치 않잖아요. 학교에서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또 모든 강의장이 학교 교실과 별반 다르지 않잖아요.

주민들이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배움’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삶과앎 모두의 평생학습’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공간을 중심으로 평생학습이라는 핵심 가치는 가져가되, 마을에서는 그것이 다른 색깔로도 번역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저희들의 운영 방향이었어요. 때로는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주민자치라는 이름으로, 또 마을놀이터라는 이름으로 변화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이경아: 뒹굴뒹굴공작소에서 주제별로 영화나 책을 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시더라구요. 사실 그런 것들도 분명 배움 활동이 맞는데, 평생학습도시라든가 제도권 안에서 하려다 보면 소홀해지는 부분이기도 하죠.

 

전하영: 평생교육이 시스템화될수록 놓치게 되는 게 많아요.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지면서 평생교육사의 전문성에 대한 압박도 늘어났죠.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사람의 역할이 줄어들잖아요. 전에 평생교육사들이 발로 뛰어가며 했던 일들을 이제는 공무원들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다면 공무원이 하는 사업과 평생교육사의 사업엔 어떤 차이가 있느냐가 문제죠. 가장 큰 차이는 평생교육사들이 사업을 통해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2003년부터 평생학습도시에서 일했는데, 주민들 만나는 게 일이었어요. 그런데 2007년 이후 평생학습도시가 확 바뀌고 나서는 서류 만드느라 주민들 만나는 시간이 너무 줄어들었어요. 지금 평생학습도시에서 일하는 평생교육사들 중에는 주민들을 만나는 걸 다소 부담스러워 하기도 해요. 시스템은 한정돼 있는데, 주민들의 요구는 점점 더 많아지고, 또 그 요구가 너무도 쉽게 위로 올라가 버리잖아요. 그러다 보니 결국 관계 맺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마을단위에서의 평생교육 활동이 무척 중요하다 생각했고, 학습도시를 떠난 이후 작은 규모의 공간을 기반으로 평생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만들게 됐어요. 한 번 나왔다가 안 오시는 분도 계시고 마니아처럼 계속 오시는 분도 계시죠. 그 안에서 친분을 쌓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러다 보니 이 공간이 관계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사회 시스템이든 핵심은 ‘교육’

 

이경아: 자연스럽게 평생교육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협회에서 주장하는 평생교육사 직렬화는 평생교육사들이 제도권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기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평생교육사들이 제도권에 있다 보면 자칫 본질적인 가치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될 것 같아요. 주민과의 관계나 그들의 학습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오히려 더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어요.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제도권에 안착하려는 노력보다는 더 나가서 세상과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이런 맥락에서 평생교육과 다른 영역 사이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계실 것 같아요. 협회에서도 그런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나요?

 

전하영: 일단 협회에서는 평생교육사의 직업적 안정, 권익 보호 등을 위한 정책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그 중심에 직렬화가 있는 것이죠. 물론 직렬화가 된다고 해서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직렬화를 위해선 전제 조건이 필요하죠. 직렬화가 평생교육 행정을 전담하는 인력으로 그친다면 분명한 한계가 있어요. 현장으로 나아가는 부분까지 직무가 함께 만들어져야겠죠. 즉, 평생교육 행정력과 평생교육 현장성이 동시에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경아: 전 회장님께서는 평생학습도시에서도 계셨고, 지금은 활동가로 일하고 계시니까 정책과 현장의 간극을 더 크게 느끼실 거라 생각됩니다. 요즘 전국의 평생학습 현장을 많이 다니시는데, 특별히 감지하고 계신 현안은 무엇일까요?

 

전하영: 위기가 발생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는데, 평생교육은 반대인 것 같아요. 기회가 왔는데 위기를 담고 왔죠. 우리나라 평생교육은 빠르게 성장했고, 이를 위해 평생교육계에 계신 분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세상을 만나는 지점에 오니까 노력한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으려면 예비 부모가 많은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면 공부했던 수많은 것들이 통하지 않아 머리가 멍해지기도 하죠. 지금의 평생교육이 딱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까지 평생교육은 늘 희망을 이야기하다 보니 급변하는 혼탁한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다른 사회 시스템은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회 시스템이든 그걸 작동시키는 핵심 축은 교육이고, 그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 축을 작동시킬 평생교육 고유의 시스템을 제대로 못 만들어낸 거예요. 그나마 서울에서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같은 시스템이 생겨나고 있긴 하죠.

우리는 지금까지 평생교육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하지 않았나 싶어요. 교육이 잘 운영되는 모습, 주민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도 많이 느꼈죠. 그런데 평생교육은 교육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잖아요. 이제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해요. 그들로 인해 지역사회가 변화하고 성장하고 통합될 것이라고 하는데, 정작 우리가 실천한 건 무엇이었나 싶죠. 이미 다른 영역에서 평생교육의 많은 가치들을 흡수해버리고 있는 실정이죠.

 

평생교육사라면 대상에 관계없이 기획력 변화시켜야

 

이경아: 두 가지 가치가 어떻게 보면 같은 걸 수도 있어요. 사회적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반이 교육이잖아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실천적 방법론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죠. 우리가 평생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선 주구장창 이야기할 수 있는데, 앞으로 평생교육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논하자면 고민이 좀 돼요. 어쩌면 회장님께서 임기 내에 풀어야 하는 숙제도 이게 아닐까 싶은데요.

 

전하영: 이러한 숙제는 사실 평생교육사한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형국이라고 생각해요. 초기에 직무 구성했을 때부터. 자꾸만 전천후 인력이 되길 원하죠. 그나마 시도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다수의 평생교육사들의 업무 분장이 명확히 돼 있으니 어느 정도 분야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겠죠. 그런데 평생학습도시나 다른 현장으로 가면 거의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내야 해요. ‘교육’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모두 평생교육사의 일처럼 생각하죠.

그래서 평생교육사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어떤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선 쉽게 말할 수가 없어요. 현장은 특히나 다양하잖아요. 어쨌든 평생교육사의 핵심 직무가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이라면, 기획의 관점을 보다 더 넓혀갔으면 좋겠어요. 교육 기획에서 나아가 삶을 기획하고, 마을을 기획하고, 도시를 기획한다라는 의미로 확장해보는 거죠.

우리 사회는 빈틈이 정말 많아요. 어쩌면 저렇게 기획을 못할까 싶은 부분들이 있죠. 평생교육사라면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요. 마을에서 주민들은 거시적인 관점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단위 사업들은 잘해도 마을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잡는 일에는 약한 경우가 있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평생교육사가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지만, 그 콘텐츠가 어떻게 작동되도록 할 것인지 ‘기획’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또, 평생교육사는 어떤 대상이든 그에 맞춰 본인의 기획력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자꾸만 콘텐츠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죠. 장애인교육이나 문화예술교육을 한다고 할 때, 꼭 그 학과를 전공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기획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어떤 콘텐츠라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평생교육사들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경아: 주어진 자원을 갖고 작은 단위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서 나아가 거시적 관점으로 프로그램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까지 기획하는 것이 평생교육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씩 웃을 수 있는 한국평생교육사협회가 목표

 

이경아: 마지막으로 협회장으로서 혹은 한 명의 평생교육사로서, 아니면 개인 전하영으로서 갖고 계신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 듣고 싶어요.

 

전하영: 평생학습도시에서 일하면서 2004년에 부산에 있는 평생교육사들과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다가 한국평생교육사협회가 있는 것을 알게 됐고, 그때 이규선 초대 회장님을 처음 만났어요. 그분이 갖고 계신 평생교육의 철학과 가치, 방향 이런 것들에 완전히 반했죠. 그래서 지부를 만들게 되었고 제가 지부장이 되었어요. 그분을 바라보는 게 제 삶의 큰 방향이었어요. 그런 저에게 한국평생교육사협회 회장이라는 자리는 평생교육사로서의 삶의 가장 마지막 위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맡게 되어 다소 당황스럽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지금 회장을 맡은 게 너무 좋기도 해요. 3년 후 임기가 끝나는데, 그때 제가 딱 50살이 되거든요. 나이 50에 정점에서 내려 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이후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전이 생긴 것이죠. 물론 지금 협회에 산적해 있는 다양한 문제를 잘 해결하고 물러나야 겠죠.

 

이경아: 오늘 인터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느꼈는데, 굉장히 긍정적이신 분인 것 같아요.

 

전하영: 맞아요. 저는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요. 협회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평생교육사들의 치열한 삶이 협회로 고스란히 내려와 있어요. 너무나 치열한 이야기들을 하시죠. 웃으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지금 제일 큰 고민이에요. 우리가 세상을 치열하게 사는 건 좋지만,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치열함과 더불어 웃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삶은 특정한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평생학습이라는 길 위를 걷고 있다 생각해요. 때로는 8차선 대로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오솔길도 만나고 산길에서 헤매기도 하는 거죠. 그치만 이 모든 길이 평생학습의 길이란 말이죠. 협회장이 된 지금 제가 대로를 지나고 있는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다 보면 쉴 수 있는 그루터기도 만나고 함께 걷는 동료들도 만나고 그러겠죠. 그러면 같이 걷기도 하고 같이 쉬기도 하고 그러면서 각자의 평생학습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거죠.

저는 협회가 그런 존재이길 바래요. 어떤 길을 가든 평생학습의 길 위에서 함께 하는 협회, 그래서 평생교육사들이 협회를 떠올리면 씩 한번 웃을 수 있는 그런 협회가 되길 바래요. 그러면 힘들 때 협회에 전화 한 통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이러한 저의 생각이 다소 추상적인 것 같지만, 협회가 늘 평생교육사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위해 존재 한다는 신뢰를 만드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협회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구요. 협회는 평생교육사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