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베트남 대사관에서 대사와 함께한 국민외교 열린 캠퍼스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을 위해 특별히 문 열어준 베트남 대사관

국민외교 열린 캠퍼스의 문을 연 나라는 베트남이다. 5월의 마지막 날, 30명의 서울시민들은 삼청동 언덕배기에 있는 주한 베트남 대사관을 찾았다. 원래 정문은 닫아놓고, 민원인들이나 공무수행자는 옆문으로 드나드는데, 그날은 대사관에서 서울자유시민대학생들을 위해 정문을 개방했다. 덕분에 스마트폰의 맵만 보고 온 시민들은 문이 달라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지은 지 50년이 넘었다는 베트남 대사관은 베트남 양식의 하얀 건물로, 베트남기와 아세안*기가 사이좋게 게양되어 있었다. 대사관 건물 옆의 소담한 정원에는 베트남 전통식 목재 건물이 서있었는데, 물어보니 절이라고 했다. 안에 불상이 모셔져 기도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 푸른 숲과 정원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하얀 건물이 보기엔 고즈넉하고 아름다웠지만, 막상 사용자들에겐 불편할 터. 이곳을 거쳐간 5명의 대사들이 신축하려고 노력했으나 서울시계획위원회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옥마을이 있는 특수 지역이라 규제가 복잡해 그걸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 ㈜아세안(ASEAN): 동남아 버전의 EU를 꿈꾸는 경제공동체.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1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수교한지 26년, 비약적으로 발전한 한-월 관계

대사관 대회의실에서 “신짜오!” 인사하는 베트남 대사의 이름은 우엔부뚜(Nguyen Vu Tu). 주한 베트남 대사로 임명된 지 2년 되었고, 이 전에 필리핀 마닐라, 미국 워싱턴 등에서 근무했으며 그 전에는 35년 간 호치민시 외교국에서 근무한 외교 베테랑이다. 2년 간의 한국살이로 적응을 했지만, 아직 한국어를 잘 못한다며 통역을 대동하고 강연했다.

강연은 한국와 베트남 양국의 현재와 과거를 설명하며 시작되었다. 양국은 26년 전 수교했는데, 짧은 수교 기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빨리 발전한 양국 관계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고 한다. 한국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며, 2번째 교역국이다. 반대로 베트남은 한국의 4번째 교역국이다. 베트남에는 10만 명의 한국인이, 한국에는 20만 명의 베트남인이 체류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삼성전자의 휴대폰, 가전제품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모든 생산품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양국 간의 투자나 교역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우엔 대사는 어떤 이유로 양국 관계가 이토록 비약적으로 발전했는지 해답을 찾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답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베트남인들의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쉽지만,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세안 타 국가의 인건비는 더 싸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베트남 사람들이 더 많이 일하고 있다. 가끔 주한 태국 대사를 만나면 “한국정부는 아세안이라는 이름을 걸고 베트남 하고만 교역한다”는 불평을 듣는다고 한다. 아세안 10개국 전체 교역량의 45%를 베트남이 독점하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1226년에 베트남 왕자가 한국에 살았다?!

베트남과 한국이 역사적으로 최초로 관련 있었던 게 언제였을 것 같냐는 대사의 질문에 시민들은 70년대(베트남 전쟁), 90년대(베트남 통일 이후) 등 의견이 분분했다. 놀랍게도 1226년, 즉 고려시대에 베트남의 이용상 왕자가 배를 타고 한국 땅에 도착한 기록이 있다. 이용상 외에도 다른 이왕자가 망명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의 화산 이씨와 정선 이씨의 조상은 베트남인들이다. 이용상은 원나라가 고려를 침략했을 때 공로를 세워 조정에서 땅을 하사받기도 했다. 이용상의 13대손 이장발은 임진왜란 때 전장에 나가 전사했는데, 죽기 전 소매자락에 20자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우엔 대사는 작년 경북 봉화군에 가서, 충효당 옆 유허비에서 이용상 3글자를 봤으며, 이장발의 소매자락에서 발견된 시가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하라’는 내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이 유교문화권이며, 충효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래서 한국과 베트남이 다른 아세안 국가들보다 더 친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한국이 베트남에 지고 있는 마음의 빚

또 우엔 대사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서 “한국이 과거에 베트남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그래서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NGO단체를 만나도 “우리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3번이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언급을 했고, 2018년 베트남 공식 방문 때도 주석에게 마음의 빚 이야기를 했다.

특히 나이 드신 한국분들은 그런 마음의 빚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에게 잘해주려고 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한국과 베트남 관계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두 번째 이유가 아닌가 싶다.

 

불법체류 문제는 시장의 방식대로 풀어야

실제 아세안 10개국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노동자를 파견하는 국가는 필리핀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베트남 노동자가 더 많다. 우엔 대사는 2년 동안 한국의 노동력 부족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력 부족을 메꾸기 위해 해외 노동자들을 받는데, 문제는 불법체류자다.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 중 30% 이상이 불법체류자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동부와 대사관이 협의하고, 행정적인 조치를 취하는 등 무수히 노력했지만, 불체자 비율을 겨우 3% 내렸을 뿐이다. (35% → 32%) 행정조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법이 아니었다.

이 문제의 해결법은 시장경제적 방법뿐이다. 이를테면 베트남에선 인력을 교육시켜 보내고, 한국에선 그런 인력을 받아 장기적으로 고용하면 좋겠다. 불체자들이 생기는 이유는 수요가 있기 때문, 즉 불체자를 고용하는 고용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수요를 없애고 합법적인 사람들로 채울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했다.

 

박항서 매직을 통해 알 수 있는 양국 교류의 시너지

요즘 베트남은 어느 때보다 한국에 대한 이해와 호감이 높은데, 바로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 덕분이다. 우엔 대사는 이런 시절에 주한 베트남 대사를 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베트남 국민들은 축구를 좋아하고, 대표팀이 잘 하기를 언제나 바라왔지만 그 꿈이 이뤄진건 박항서 감독 덕분이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박항서 감독이 오기 전까지 성적이 좋지 못했다. 박항서 감독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만 하더라도 유명 선수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둘이 만나 어마어마한 결과를 이루어냈다. 좋은 축구선수와 좋은 감독의 조화가 시너지를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한국과 베트남이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다는 말로 우엔 대사의 강연이 끝났다.

 

강연 시간보다 더 길었던 질의응답의 열기

강연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시민들이 서로 손을 들며 열띤 질문 공세를 펼쳤다. 장내 열기가 후끈하다 보니 나중엔 창문을 열어야 했다. 창문 너머 숲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에어컨 바람 대신 자연의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것도 베트남 대사관의 축복같은 장점이었다.

질문자들 중에는 한국과 베트남이 교역을 활발히 할 수 있는 6가지 방법을 적어와 발표한 이도 있었고, 6월 28일 어린이대공원 앞에 개관하는 베트남 관광청의 조직위원회 임원도 있었다. 모두들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여러 방면으로 베트남과 인연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 몇 가지 인상적인 질문과 답을 만나보자.

 

베트남 관광을 갔더니 나라가 남북으로 길어 원하던 곳을 다 못 돌았다. 북쪽과 남쪽의 문화가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베트남은 우리나라처럼 분단되었다가 통일되었는데, 유경험자로서 한국에 조언해줄 것이 있는지?

베트남은 해안선이 3200Km에 달하는 긴 영토이고, 그러다 보니 북부/중부/남부가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베트남 뿐 아니라 프랑스, 한국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은 전에는 경비가 삼엄해 다른 지역을 방문하거나 여행하기가 불편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베트남 뿐 아니라 지구촌 모든 도시가 그렇듯 기업이 도시를 비슷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도 어디를 가나 롯데마트, 이마트, 뜨레쥬르, 파리바게뜨가 있지 않나? 베트남도 그렇다. 심지어 호치민에는 서울보다 뜨레쥬르 지점이 더 많다. 그게 시장의 힘인 것 같다.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이 되었다. 이런 방법은 권장하고 싶지 않다. 한반도는 독일처럼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면 좋겠다. 베트남은 남한과 북한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이므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완전한 비핵화를 지지한다. 얼마 전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하노이에서 개최했다. 그만큼 우리는 한반도 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다.

직접 가보니 베트남은 여성들에 대한 대우가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오토바이 천국이지만 그 나름의 질서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오토바이들끼리 질서가 있다. 결코 위험하지 않다. 여성에 대해서는 베트남에 살 때는 잘 몰랐는데, 외국에 나갔다 들어와 보니 여성들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겠고,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평가해준다. 베트남은 남성들이 전쟁에 나간 동안 여성들이 모든 것을 책임진 역사적 사실이 있다. 지금은 평화 시대이지만 여성들이 월급을 관리하므로 역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박항서 매직이나 K-pop 외에 양국 간 젊은이들의 교류를 위한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는가?

한국에서 공부 중인 베트남 유학생들이 굉장히 많다. 석박사를 하며 한국 교수들을 돕고 있는 인원이 줄잡아 1만여 명에 이른다. 한국 교수들도 베트남 유학생들을 선호한다. 문화협력도 중요하지만 교육협력도 앞으로 두 나라의 관계에 크게 기여할 거라고 본다. 한국은 과학기술이 뛰어나고, 베트남은 지금 한국 대학교의 자연과학 파트에서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종자를 심는 단계인데, 나중에 결실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문화 교류는 박항서 매직이나 K-pop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혼으로 한국에 온 베트남 여성들이 많다. 그 이주민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출산과 양육을 위해 본국의 부모를 초청할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상 아이가 7세 이하일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도 엄마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고 할 일이 많다. 그 규정을 11살까지로 완화해주면 좋겠다.

2년간 느낀 한국인의 장점은? 또한 한국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

한국인의 장점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첫째, 열심히 일하는 것(hard working), 둘째, 목표의식(strong determination), 셋째 애국심(strong sense of nation)이다. 한류가 K-pop과 K-드라마에서 비롯되었듯이 베트남은 요리로 세계의 주방이 되어보자는 논의가 있다. 한국에서도 베트남 음식의 인기는 높고, 에머이 같은 식당이나 이태원 등지의 식당도 많다. 베트남 쌀국수도 맛있지만 나는 한국 수제비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식은 체류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변치 않고 좋아하는 음식은 갈비탕, 순두부, 굴비, 간장게장이다.

 

 

우엔대사는 질문이 많은 강연을 성공적이라 하는데, 오늘의 강연에 질문이 많아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다들 동의하는 뜻으로 박수를 쳤다. 강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기념촬영을 했다. 단체 촬영이 끝나자 시민들이 우엔대사와 따로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왔고, 결국 줄을 섰다. 우엔대사는 미소를 잃지 않고 한명 한명과 웃음을 띤 채 사진을 찍었다. 베트남 대사관 정문은 시민들이 돌아갈 때 다시 한번 열렸다. 그 열린 문은 앞으로 베트남과 한국 관계의 활짝 열린 미래를 보여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