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亡)하지 말고, 망(網)하자!

만약 전국의 퍼실리테이터들이 다 모이는 행사를 개최해야 한다면, 그 행사의 퍼실리테이터로 누굴 섭외해야 할까? 평생교육계에서 열에 아홉은 주저 없이 이 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뛰어난 입담에 기타 연주, 문화예술감성까지 못하는 거 빼고 다 잘하는 만능 재주꾼! 행사 진행의 끝판왕! 평생교육계의 유재석! 박현규 전 컬러퍼플 대표가 다원이음터센터장이 됐다더니, 요즘 다같이 “망하자”를 외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경기도 화성으로 달려갔다. 이경아가 간다! (이경규 말고 이경아가 간다!)

 

지구 너머 화성인 박현규, 센터장되다

이경아: 화성이 생각보다 가깝더라구요? 서울역에서 광역버스 타고 30~40분 만에 온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거대한 도시인 줄 몰랐어요. 신도시답게 쾌적하고 참 좋네요.

박현규: <살인의 추억>으로만 기억되던 도시였는데 정말 많이 변했죠. 동탄1, 동탄2를 다 합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도시가 만들어졌어요. 이전까지는 인프라가 워낙 없었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냐면, 3일 연속으로 화성시평생학습관, 어린이문화센터, 통탄청소년문화의집이 개관을 했습니다. 저희도 7월 5일 개관 행사를 앞두고 있죠.

이경아: 다원이음터센터가 화성에서 두 번째 ‘이음터’라고 들었는데, 어떤 곳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 복합시설인 데다 공간 자체도 넓어서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

박현규: 화성시 이음터라는 브랜드는 최근 정부 정책 중 하나인 생활SOC사업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일종의 학교복합화시설 모델입니다. 즉 학교 부지에 시가 건축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는 문화교실, 체육관, 대강당 등 이음터 시설을 학생들 위주로 사용하고, 방과 후 시간에는 주민들 중심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이음터 내에는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도서관, 육아시설이 함께 있어서 이것 또한 새로운 이음의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공식 오픈 전이라 지역사회 ‘대관’을 통한 이음도 실천하고 있구요. 현재는 동탄중앙이음터와 다원이음터가 운영 중이구요, 향후 2년 내에 총 7개의 이음터가 열릴 예정입니다. 모든 이음터의 기본사업으로는 마을교육공동체 및 평생학습사업이 있구요, 각 이음터마다 특성화 사업이 있는데요, 동탄중앙이음터는 ICT사업, 다원이음터는 문화예술사업입니다.

이경아: 다원이음터 하나만 해도 면적이 상당한 것 같은데요? 운영하려면 직원도 꽤 많아야겠어요.

박현규: 면적이 3천 평 정도 되는데, 3~4층이 구름다리로 다원중학교와 연결돼 있어요. 1층에는 망GO카페, 청소년놀이터, 요리스튜디오, 어린이도서관, 육아시설이 있구요, 2층에는 도서관, 휴게실, 열람실, 대형 강의실 2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3층에는 학습실 및 동아리실 9개, GX룸 2개, 소극장 2개가 있구요, 4층에는 체육관, 대공연장, 미디어실 4개, 스튜디오 1개가 있어요.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대학로 소극장 같은 작은 계단식 소공연장이에요. 거기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내 생에 처음으로>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공연하고 강연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죠.

현재 이음터를 운영하는 기관은 화성시인재육성재단이고, 이음터마다 직원은 10명 내외입니다(용역 및 안내직 15명 별도). 그 중에 마을교육공동체 및 평생학습 분야에 2명, 문화예술 분야에 2명이 있어요.

이경아: 화성에 오래 전부터 사신 건 익히 알았는데, 어떻게 다원이음터센터장이 되신 건가요?

박현규: 그러게요. 15년 전에 지구를 떠났더니 이렇게 화성에서 기회가 주어졌네요. (웃음) 비록 역량은 부족했어도 평생교육에 대한 애정을 갖고 간신히 버티고 살아왔더니 정말 우연히도 기회가 찾아왔네요. 이곳에서 일하다보니 지난 4년 동안 서평원과 함께 기획하고 실천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단순히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이곳에서 일할 때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 당시 함께 나누었던 상상과 전략들이 엄청 도움이 돼요. 그리고 오랜 친구 평생교육을 이제 어떻게 새로운 이음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네요.

또, 행정이나 감사, 시의회, 지자체와 만나는 일들 사이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소소하게는 전자결재부터. 1호 이음터인 동탄중앙이음터의 센터장을 겸직 중이어서 결재를 하루에 50~60개씩 해야 해요. (웃음)

 

화성시장의 한마디 “망해도 좋습니다!” 

이경아: 다원이음터 첫해에 가장 중시하고 계신 부분은 역시 ‘이음’이겠죠? (웃음)

박현규: 올해는 ‘망’ 시리즈예요. ‘다원이음터와 망하자’가 슬로건이구요. 서철모 화성시장님이 임명장 주시면서 하신 첫 마디가 “망해도 좋습니다!”였어요. 그래도 좋으니 다양한 실험을 하고, 천천히 가라고 하셨죠. 그때 딱 떠오른 게 ‘망’이었어요. 그물 망(網)!

이음터가 나름 새로운 모델이다 보니 벤치마킹을 오는 기관이 올해에만 벌써 50개 기관이었어요. 그래서 이것을 통해서도 새로운 ‘이음’을 생각해냈죠. 보통 벤치마킹 가면 잘된 것 또는 좋은 것 중심으로만 얘기해 주잖아요. 어려운 점이나 갈등 관련해서는 말을 잘 하지 않고. 그래서 생각한 게 나중에 벤치마킹 왔던 기관들을 다시 초대해서 우리의 실수 또는 시행착오를 전해주는 포럼을 하는 거예요. 나름 재미있겠죠? 마찬가지로 그동안 대관해 준 기관이나 단체도 초대해서 이음을 시도해 보는 거예요.

또 여기가 신도시다 보니까 공동체가 약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잇는 게 정말 중요하죠. 그래서 1층 카페 이름도 ‘망GO카페’예요. 연대해서 앞으로 나가자는 거죠.

이경아: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신도시라는 지역 특성이 시설 운영에 크게 작용할 것 같아요. 다양한 곳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모였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공동체 형성이 더 쉬울 것 같기도 하고 그 반대일 것 같기도 하네요. 다원이음터가 화성시의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합니다.

박현규: 가장 중요한 과제죠. 이곳 동탄 시민의 평균 나이가 30대 초반이에요. 그만큼 어린 아이들이 많아요. 어른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요. 제가 사는 동네도 마을공동체가 한 6년 됐는데 어른이 안 계셔서 노인정을 못 짓고 있거든요. 그런데 다원이음터는 어찌 되었든 공공시설이다 보니 아동부터 노인까지 전 연령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이음터별 특화 분야가 있는데, 다원이음터는 문화와 예술로 하나되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마을공동체 사업이라는 게 사실 지자체들마다 다양한데, 그 성과 를 뭘로 봐야 할까요? 마을 수, 아니면 참여자 수 늘어난 거? 그렇게 양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그동안 마을공동체 사업을 들여다보고 질 관리를 해보니 진짜 공동체를 경험하기엔 부족함이 많았어요.

이젠 사업 담당자도, 기관장도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일회성 프로그램이라도 우리가 어떤 데 가치를 두고 기획하고 진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소소한 프로그램이라도 공동체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일상에서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음터 내부 직원 간 이음, 이음터 간 이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공공의 역할을 다할 수 없거든요.

이경아: 단순한 프로그램 제공자가 아니라 마을공동체와 다양한 활동들을 연계해 나가겠단 생각이시군요.

박현규: 예를 들자면, 이음터의 체육관을 누가 제일 좋아할까요? 운동 동호회겠죠. 그렇다고 운동 동호회에만 개방하면 될까요? 안됩니다. 체육관을 더 이음터답게 쓰려면? 가족이나 마을이 써야겠죠. 주말엔 가족 단위만 쓸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엄마, 아빠, 아이들이 함께 와서 노는 거죠. 저도 주말엔 아이 데리고 와요. 가을엔 아파트별로 초대해 운동회를 하려고 해요. ‘동네운동회’를 하는 거죠. 아파트에 체육관 없잖아요. 아파트 공동체 하라고 운동회 열어주는 거예요.

이경아: 저희 아파트도 커뮤니티 시설이 놀고 있어요. 문제는 촉진자가 없다는 거예요.

박현규: 퍼실리테이터가 회의 진행에서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5월 5일엔 어린이날 행사를 하려고 해요. 어린이날 다 놀러가는 거 아니잖아요. 부모님 사정으로 부득이 아무데도 못가는 어린이들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냐. 동네가 해주는 겁니다. 어버이날은 동네 어르신들 모셔놓고 아이들이 공연을 하는 겁니다. 댄스도 합니다. 다 가능하죠. 강당이 있으니까요. 이음터는 외부의 전문가나 교강사에 의해서만 운영되면 안 된다고 봐요. 그런 비중은 30% 이하로 줄일 겁니다.

저희 직원들과 올해 사업 네이밍을 연습 삼아 해놨어요. 그 중 하나가 <내 맘대로 워크숍>입니다. 평범한 주민도 워크숍 해볼 수 있어요. 또 다른 건 <내 맘대로 개론서>예요. 음악 공부한 사람이라면, 자기가 배운 만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거예요. 내가 공부한 음악, 요리를 공부한 만큼 나누는 거죠. 강사, 교수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도 할 수 있어요. 물론 교강사를 배제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들은 물론 자원봉사자나 청소년 서포터즈도 다 마찬가지에요. 그들과도 ‘이음’이죠.

 

잇다 x 있다 x 잊다

이경아: 저희는 모두의학교나 서울자유시민대학과 관련해서 그런 고민이 있어요. 이음터처럼 다른 영역과 통합된 시설이 아니고 딱 평생교육시설이잖아요. 그래서 기존의 다른 시설과 차별화해야만 한다는 시선도 있어요. 예를 들자면, 시민대학에서 왜 아동이나 청소년 프로그램을 하느냐는 문제제기 같은 거죠. 이런 부분에서 이음터처럼 완전히 다른 타이틀을 가졌다면 좀 더 유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현규: 물론 이음터는 이름에 평생교육이 포함돼 있지 않으니 어떤 사람은 이곳이 평생교육시설이라는 관점을 안 가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전공자인 제 입장에선 너무도 중요한 평생교육시설이죠. 그런데 또 일반 평생교육시설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어요. 학교 일과 시간에 학생들이 와서 저희한테 인사를 하기도 하구요. 저희가 간식도 나눠주죠. 또 다른 학교 학생들이 와서 미디어실을 쓰고 가요. 그런 장면들이 저에게도 엄청 다이내믹하게 느껴져요. 그동안 제 경험이나 경력에서는 학교하고는 그리 친밀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문을 연 두 개의 이음터는 모두 학교 연계 사업이 필수 사업이에요.

이경아: 모든 영역에서 ‘이음’이 핵심이 되네요. 시설 자체가 학교와 연결되어 있으니 자연스러운 과제가 아닐 수 없겠어요.

박현규: 사업계획서를 쓸 때 ‘이음’과 관련해서 핵심가치를 몇 가지 넣었는데요, 첫째가 ‘공감’입니다. 이음터 내부의 공감도 필요하고,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시민과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둘째는 ‘학습’입니다. 학습을 매개로 잇겠다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 만들고 싶은 상 이름이 ‘상상초월’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상을 초월하려고. 올 한해 학습 시도했다 제일 많이 실패한 분, 자격증 시험 가장 많이 떨어진 사람 뽑아서 상 줄 겁니다. 그 분들 소감 들어보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겠어요. 이렇게 학습을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이음을 실현해 보고 싶어요.

또 하나는 ‘성찰’입니다. 잘 배우고 많이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배움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고 나의 공동체를 되돌아보는 게 중요하죠. 성찰은 조직으로서도 중요하고, 사업에서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정말 이음터의 본질에 맞게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물론 저 개인에게도 중요하구요. 오늘 하루 내가 센터장으로서 잘 경청하고 공감 했는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가 다 성찰의 대상입니다.

이경아: 이음터라는 새로운 시설을 통해서 우리 평생교육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평생교육계는 유재석이라는 자원을 잃었잖아요. 7월 5일 개관식에선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센터장이 사회를 보진 않으시겠죠? (웃음)

박현규: 화성시는 모든 행사의 진행을 시민이 합니다. 이번 개관식 진행은 중학생 딸과 엄마가 해요. 그리고 다원이음터 비전선포는 직원과 초등학생 딸이 하구요. 대단하죠? (웃음) 저는 마지막 순서에 있는 합창을 할 때 뒤에서 재단 대표이사님과 함께 조용히 기타만 연주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얼마 전 모 기관에서 벤치마킹하러 오셨을 때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이음터를 한자로 표현해 보면 ‘두 이(二)’와 ‘소리 음(音)’입니다. 이음터를 운영할 때 두 가지 목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르게 쓰면 ‘다를 이(異)’와 ‘소리 음(音)’입니다. 이곳엔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생각과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도 이음터가 해야 할입니다.

이음터라고 하면 ‘잇다’만 생각하시겠죠? ‘있다’와 ‘잊다’도 있습니다. 특별한 게 있는 곳, 그리고 마음의 아픔이나 상처, 고통을 잊어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음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