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과 창조: 진공관 라디오에서 미디어아트로, 이정성 장인의 일과 학습

작가가 추구하는 게 뭔지 알아야 되고,
그게 기술보다 중요한 덕목이죠.

 

이정성 기술장인은 미디어아트 전문가로 불린다. 이정성 장인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백남준의 손’으로 기억한다. 백남준 선생의 예술세계를 기술적으로 구현해 낸 사람이 바로 이정성 장인이다. 이정성 장인은 오히려 백남준 선생 사후에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우리가 지금도 백남준 선생의 예술작품을 모두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도 이정성 장인이 살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도 전자장치의 특성상 작품이 작동되지 않을 때 그곳에 이정성 장인이 있다. 백남준 선생이 예술의 창조자라면 이정성 장인은 기술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이끌림과 지독한 학습.
“이놈을 그걸 꼭 알고 말겠다는 욕망에 라디오를 맨날 들여다봐도”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장인은 일과의 만남이 지적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보통 일의 시작이 생계문제에서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장인은 어린시절 줄도 없이 방송이 술술 나오는 진공관 라디오를 보면서 신기한 마음에 이끌려 이것을 꼭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시골이었던 양평에서는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서울에 사는 둘째누님에게 떼를 써서 그냥 배우겠다는 생각 하나로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줄도 없는데 방송이 술술술 나오고 방송 돌리면은 막 나오는데, 그거 얼마나 신기해. 내가 이걸 배워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그러면 내가 시골에서 사는 것 보다는 서울 가 이걸 배워야 되겠다는… 그 후에 뭐가 되야겠다 이런것도 없어요. 그냥 배워야 되겠다는거지. 그래서 누님한테 어거지 써가지고 하여튼 영등포 단칸방인데…… 이놈을 그걸 꼭 알고 말겠다는 욕망에”

서울로 올라온 장인은 영등포에서 을지로에 있는 라디오학원까지 당신 전차요금인 2원50전을 아끼기 위해 걸어 다니며, 라디오를 배웠다고 한다. 또한 학원 선생님 댁에 시간이 날 때 마다 들려 일본기술서적과 각종 전자서적들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TV수리공에서 미디어아티스트로의 확장
: 백남준 선생과의 만남

1987년전 까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선생은 당시에 동갑내기 기술자인 일본의 아베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백남준 선생은 다국어에 능통했지만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소통 할 수 있는 기술자를 찾고 있었다.

화랑대표 및 삼성전자 등 여러 곳에 기술자를 문의하던 중 당시 신트라86이라는 큰 전자전에서 삼성전자의 530대짜리 TV WALL를 만들었던 이정성 장인이 추천받아 백남준 선생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장인은 백남준 선생의 전속 테크니션이 되었고 다다익선 작품을 시작으로 그 인연은 1987년부터 백남준 선생이 타계하는 2006년까지 평생을 이어진다.

 

백남준 선생의 예술창조,
그리고 이정성 장인의 기술창조

이정성 장인은 작가의 예술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의도와 추구하는 바를 파악하는게 기술보다 중요하며 늘 작가와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이야기한다. 장인은 백남준 선생의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항상 백선생과 교감하고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백선생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몰입하였다고 한다.

미국과 한국간 몇 시간이 넘는 작품을 위한 통화, 두 명이서 식당에서 한참 이야기한 작품이야기, 생각날 때 마다 적어놓은 네프킨 메모, 프랑스 작품 오프닝 중 선생님과 몰래 빠져나와 바에서 나눈 작품 이야기 등 수 많은 일화에서 작품 창조를 위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얘기가 상당히 길지만은 선생님하고 짬만 나면은 그 별난 얘기를 다해요. 이를테면 오늘은 작품얘기만 한다 그게 아니고 미국에 계시니까 한국에 있는 내 친구 걔 뭐하냐? 뭐 그러다가도 딱 말 끊고 야 그거 말고 이거 만드는 건 또 어떠냐 그러면서 선생님 머리 속에 복잡하게 심어놓은게 얘기하다가 튀어나오면 그 즉시 그냥 자기 동창얘기하다 튀어나오지. 그럼 전 앉아서 적고 아, 그거 하고 싶으세요? 그러면 내가 서울가면 내가 함 시험해 볼게요. …..저녁 먹다가 우리 얘기 좀 길게하자 그러면 웨이터 불러가지고 우리 큰 자리로 옮겨줘 그러면은 둘이 먹는데 큰 자리 왜 필요해. 그러면 여섯명, 여덟명 먹는 자리로 옮기잖아요? 그러면 다 시켜요. 우리 둘이 앉았는데. 그러면 웨이터가 물어봐요. 언제오냐고. 아 안와. 너희들 장사시켜주려고…….”

장인은 인터뷰 중에 한 번도 본인이 만들어냈다거나 기술적 부분을 창조했다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뒷받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백남준 선생님에게 누가 될까봐 주위에 크는 작가들이 해달라는 요청도 단호하게 거절해 왔다고 한다.

“저는 선생님하고 작품 작업을 할 때도 주위에 작은 그런 크는 작가들이 지것도 좀 해달라고 막 쫓아다니고 그랬는데 저는 그거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왜 그러냐하면 내가 보잘 것 없는 한국의 촌놈이 백남준이라는 대작가를 모시고 활동 한 것만 해도 벅차고 참 조심해야 되는데 감히 돈 좀 벌겠다고 곁눈질 해가지고 누구 거 한다는 것은 제 적성에는 안 맞아가지고…”

 

깊은 숙련의 끝에 발현되는 창조력

일반적으로 창조, 창의의 3가지 구성요소로 내적동기, 깊은 숙련,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지적호기심으로 인한 내적 동기는 주도적으로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배우고 학습하게 한다. 이러한 동기는 깊은 숙련을 가능하게 하며, 깊은 숙련의 끝에 상상력이 결합되어 창조력이 발휘된다. 연세대학교 장원섭 교수는 현대장인들은 단순히 전통의 계승자가 아닌 일의 내재적 가치인 배움과 성장을 실현하는 사람들로 깊은 숙련의 끝에 창조력을 발휘한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