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으로서의 어린이’를 이해하다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모두의학교.
네이밍처럼 이 학교의 주인은 바로 시민이다. 모두의학교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하며 공간 이용자에 대한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개관한 지 1년 반, 이곳을 가장 많이 찾은 열정적인 방문객은 바로 어린이들이었다. 모두의학교 관계자들은 처음에는 이들의 활력이 신선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1년 반이란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 이슈가 생겨났다.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의 부재는 학교의 기물 훼손, 공유 자전거 ‘따릉이’ 파손 등 사고로 이어졌다. 3층의 도란마당 난간을 위험천만하게 뛰어다니고, 경비 선생님과 미화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언행과 행동도 문제가 되었다. 모두의학교 스태프들 앞에선 순한 양처럼 약속을 지키는 척하다가 뒤돌아서면 어김없이 딴짓을 하는 어린이들을 대하며 스태프들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

그러면 모두의학교를 찾는 어른들의 행동은 과연 어린이들의 모범이 될까? 안타깝게도 학교 운동장에서 반려견 산책 시 펫티켓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 학교 시설을 자신의 전유물인양 사용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선 모두의학교에서는 안전사고 발생의 위험 때문에 어린이부터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 첫 번째 대책으로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10일까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출입을 제한했다(보호자 동반, 프로그램 참여 시에만 출입 가능). 또한,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모두의학교 단골 어린이를 중심으로 일대일 인터뷰와 그룹 인터뷰를 진행해 현재 상황에 대한 당사자 어린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한여름의 볕이 뜨거웠던 8월의 어느 토요일, 최전방에서 어린이들과 만나는 경비원 박춘배 선생님, 모두의학교 임지회 주임을 비롯한 스탭들, 실행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희정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의학교 순항을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다. 어린이 출입 제한을 시행한 지 꼭 한 달여 만이었다.

 

 

한 달간 ‘조건부 누구나 출입’ 선언한 모두의학교

지회 : 모두의학교는 이름처럼 모든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기를 희망했지만, 여러 이슈가 불거지면서 한시적으로 어린이들의 출입을 제한하게 됐어요. 어린이들에게 너무 야박한 조치가 아닐까 우려했지만, 어린이 멤버십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여기 계신 김희정 프로젝트 어린이 대표님과 함께 그 일을 하고 있는데요. 직접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희정 : 8월부터 11월까지 여러 번의 워크숍 형태로 진행하고 있어요. 모두의학교 운영진과 어린이들이 함께 공간의 역할과 기능, 정체성과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간 운영과 이용 방안들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이용자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는 것을 넘어서 공간의 운영 원리와 철학, 구성원들의 합의 과정 등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거든요.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이들을 심리나 병리학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변화를 위한 정서 기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동시에 공간 운영자들은 어린이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그들에게 공간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제시해야 할지,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 방안은 무엇일지 내규를 마련하는 과정이죠.

지회 : 모두의학교라는 공간을 이용하는 데 대한 공감대 형성이나 규칙을 지키는 일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과도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린이 멤버십 제도가 완비되면 어른 대상 멤버십 제도도 정비할 계획이에요.

사실 우리 모두 ‘어린이’라는 시기를 경험했지만, 성인이 되어서 그 시기의 시민들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처음 모두의학교 문을 열었을 땐, 이곳을 찾아준 어린이들이 반갑고 고마웠죠. 그런데 차츰 그들과 이 공간을 공유하는 게 버거워졌고, 어린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에게 맞는 가인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희정 : 모두의학교가 개관하기 전부터 어린이들은 이미 이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고, 이 공간이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다만,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모두의학교의 정체성이 그들에게, 또 이 지역에 알려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죠.

어린이들은 공식적인 경로보다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운동장이라고 하는 공간을 통해 모두의학교가 어떤 곳인지 탐색했을 거예요.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인지,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봤겠죠.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보거나 공놀이를 하는 식으로요. 모두의학교 운영진이 이 아이들로 인한 활력을 환대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을 거예요.

지회 : 물론이죠. 그런데 점차 이용 규칙을 어기고 아무 때나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거나, 기물을 훼손하는 등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어요.

희정 : 모두의학교가 자신들에게 열린 공간이며,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동시에 공간 운영에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을 수도 있어요.

도시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간들은 어린이들이 아니라 이미 사회화를 마친 성인들, 특히 전문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 의해서 기획되고 조성되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어린이를 비롯한 다양한 당사자들이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실제 그 공간이 운영되고 사용되는 과정에서는 그 의미가 무색해지죠. 다양한 형태의 시민들이 민원인으로 돌변하기 일쑤거든요. 그 중에서 어린이들은 민원조차 어떻게 넣어야 할지 몰라서 그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드러냈을 수도 있어요.

 

 

어린이를 넘어, 모든 세대가 화합하는 열린 공간을 꿈꾸며

지회 : 모두의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어린이들을 인터뷰하고 계신데, 그 얘기도 좀 소개해 주세요.

희정 : 저는 그 과정에서 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어른을 위한 워크숍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정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어른과 어린이, 전 세대의 변화가 함께 필요한 거죠. 실은 지난해 모두의학교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의 요구를 조사했던 적이 있어요. 보호자와 함께보다는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모두의학교를 오는 소위 ‘단골 어린이들’은 모두의학교가 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린이와 참여하지 않는 어린이로 나눌 수 있었는데, 특히 참여하지 않는 어린이들의 행동은 뭔가 배회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태프들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고 통제가 어려운 어린이들을 대하며 지친 상황이었고, 인터뷰를 해보니 어린이들은 막상 자신들의 행동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어린이들은 이미 이곳에서 놀이문화를 형성했어요. 그리고 모두의학교는 열린 공간이므로 자신들의 행동이 용인될 것이고, 나아가 금기된 활동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죠.

춘배 :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더 앞선 정보를 갖고 있고 영리해요. 그런데 어른들이 이 공간의 주인이기보다는 공간을 점유하는 행동을 보이며 어린이들을 배척하니 어린이들은 거기에 대한 반항으로 버릇없이 행동하게 되는 거죠. 사실 미화 일을 하시는 최 선생님은 저한테 어린이들 다루는 게 힘들지 않냐고 하시는데, 개인적으로 스트레스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교직 생활을 30년 넘게 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어왔고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으레 성장통처럼 많은 문제가 생겨나기 마련이죠.

희정 : 저 역시 어린이들이 유능하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모두의학교가 말 그대로 ‘모두’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 어린이들과 규칙을 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모두의학교에서도 어린이들을 받아들일 사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모두가 동의된 방식이 아니라 개별로 다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들을 꾸짖다보니 어린이들도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또 자신들을 혼내는 사람을 피해서 그 뒤에서 원하는 걸 해왔고요.

인터뷰를 할 때 너희들의 잘못된 행동을 모두의학교에서도 공론화해 대책 회의를 할 거라고 하니 어린이들도 긴장을 하더군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을 하고 있는데 전 세대가 만족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자 실험이라 생각합니다.

지회 : 다른 지역의 평생교육기관 담당자분들이 모두의학교에 견학을 오셔서 공통적으로 놀라는 한 가지는 바로 “여기 어린이들도 있네요”란 반응이에요. 그때마다 모두의학교가 전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현재 모두의학교에는 여러 세대가 공존하고 있어요. 거기에서 비롯된 갈등이 수면으로 떠오른 거고요.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걸 모두의학교의 장점으로 내세웠는데, 이제 그 다세대의 공존은 풀어야 할 하나의 숙제가 되었어요. 이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모두의학교에는 어른 또는 어린이만 남게 될 것 같아요. 현재 그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것 같고요.

희정 : 규칙을 어린이들과 함께 정해보는 건 어떨까요? 한번 해본다는 실험 정신으로요.

춘배 :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가는 경향이 커요. 여기 모두의학교에는 어르신들도 많이 찾으시는데 어린이에게 제대로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어른들의 주인의식도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모두의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어린이들은 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죠. 그런 어린이들을 우리가 제대로 대접해주고 용기를 심어주면 어떨까요?

지회 : 실은 이렇게 어린이를 생각해주는 경비 선생님을 만나 뵙기도 힘들어요. 문제를 일으키는 어린이들로 저희 직원들도 힘겨웠거든요. 그런데 박춘배 선생님께서 한 문제 어린이를 1년간 일대일 상담 해주셨어요.

춘배 : 워낙 거칠게 노는 어린이들은 통제가 어려웠어요. 평소엔 잘 지내다가도 학교에서 나갈 시간이 되면 화장실에 숨어서 안 나오거나, 억지로 내보내면 공으로 교문을 차면서 분풀이를 하고요. 1층 폴딩도어를 부술 듯이 공으로 차던 한 아이를 추격 끝에 붙잡은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 아이가 제가 교사로 근무했던 학교 축구단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 축구단 코치가 제 제자라 반가운 마음도 들었죠. 이후에 아이를 만나면 빵과 우유를 주면서 말도 건네고, 다 해진 축구공을 가지고 있어서 마침 경비실에 굴러다니던 주인 없는 새 축구공도 선물로 줬죠. 이후 오가면서 얼굴을 마주치면 말을 건네며 관심을 줬는데, 그렇게 1년 여간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전보다 유순해졌고, 몰려다니던 그룹에서도 빠졌더군요.

지회 : 박춘배 선생님께서 그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신 것 같아요. 한편으로 어린이와 소통하며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이번 하반기 모두의학교 공통의 숙제라고도 생각합니다.

고은 : 1년 반 정도 프로그램 운영하면서 천방지축 어린이들을 대하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같이 부대끼며 정도 많이 들고 친해졌어요.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건 방과 후에 모두의학교를 찾는 어린이들 대부분이 가방을 내려놓고 몇 시간동안 핸드폰 게임만 하다가 집에 간다는 거죠.

춘배 : 모두의학교에서도 어린이 대상 교과목 수업을 운영해도 좋을 것 같아요. 한 동료는 퇴직 후 임대주택에 사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학논술을 가르치는데, 퇴직 교사의 재능을 활용한 교과목 수업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지회 :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모두의학교 사업을 하면서 ‘시민은 무엇인가’란 생각을 많이 해요. 더 많은 시민들이 모두의학교에서 제공하는 편안함을 누렸으면 좋겠는데, 다양한 세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 같아요. 그래서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계자들께서 여유를 갖고 지켜보시면서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춘배 : 아직 모두의학교가 개교한 지 1년 반 밖에 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문제도 모두의학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고요. 그리고 우리의 인생사가 그렇듯 시행착오는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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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청년인생설계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