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꿈이 뭐야?”

윈도우에 익숙한 사람이 맥 OS를 쓰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최소 10개 이상의 단축키를 외울 것! 낯설고 번거롭더라도 이 과정을 거치기 전과 후 업무 처리 속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어쩌면 매일 저녁 ‘칼퇴’를 부르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때로 무언가를 알고 난 후, 인생의 방향이나 속도가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단축키처럼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게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30대~40대 전업주부였던 박다운, 방미희 씨는 ‘평생학습’이란 단축키를 만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서울자유시민대학 학습자에서 학습매니저로 한 차례 역할을 바꾸었던 이들은 이제 어엿한 평생교육사로서 노원구와 용산구의 동네배움터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평범한 이웃들이 경험한 삶의 변화를 통해 평생학습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김주명 원장이 그녀들을 시민대학 본부로 초대했다.

 

 

김주명 : 방미희 주무관은 자녀의 질문이 계기가 되어 평생학습에 입문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질문이었나요?

방미희 : 전업주부로 지내다 아이들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어요. 방과 후에 책 놀이 수업을 했는데, 그때 저희 아이도 있었거든요. 어느 날 ‘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었어요. 제 아이가 “엄마는 꿈이 뭐야?” 하고 묻는 거예요. 좀 충격이었어요. 제게 꿈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학교 다닐 땐 되고 싶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잊고 지냈던 거죠. 그래서 고민하다 선택한 게 평생학습이었어요.

거주지가 인천인데요, 평생학습이 활발한 지역이지만 제가 참여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 서울자유시민대학에 평생교육사 역량 강화 과정이 있다는 걸 알고 1년 정도 참여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내면에 저만 아는 꿈틀거림 같은 게 있었어요. 한발 더 깊숙이 들여놓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다가 학습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됐죠.

 

 

박다운 : 저도 시민대학에서 평생교육사 실습을 막 끝냈을 때, 거기 계셨던 분들한테 학습매니저 활동 제안을 받았어요. 시민청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학습매니저로서 강좌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공간이었어요. 그렇지만 시청 앞 광장 지하에 있다는 게 굉장히 신선했어요. 옛날에 아고라 광장에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며 서로 배웠다고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시민청이라는 공간이 이상적으로 다가왔고, 일이 힘들어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력적이었거든요. 그 공간과 평생학습, 그리고 그런 경험 자체가요.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인생의 나침반

김주명 : 두 분다 학습자이자 학습매니저로서 시민대학을 경험하셨는데, 시민대학은 여러분에게 어떤 곳인가요?

박다운 : 시민대학을 만나고 삶 자체가 아예 전환된 것 같아요. 학습매니저는 학습자들 만나는 게 주된 일인데요, 그분들이 평생학습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 에너지가 저도 모르게 저한테 녹아내린 느낌이에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덕분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믿어요.

 

 

방미희 : 저도 시민대학을 거치면서 평생학습이라는 길,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공부할 땐 교수님들의 말씀이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시민대학에서 현장에 계신 분들 이야기도 듣고 직접 경험하다 보니까 더욱 이 길을 잘 선택했다고 느끼게 됐어요. 평생학습을 더 깊이 알아보고 싶어지기도 했구요. 또 시민대학에서 만난 다양한 분들의 삶을 통해서 배운 게 많아요. 특히,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어르신들의 열정을 보면서 나는 아직 젊은데 다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죠. 시민대학은 제가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을 안내해주는 곳이에요. 많은 학습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김주명 : 기억에 남는 시민이나 사건이 있으신가요?

박다운 : 멀리서 굽이굽이 시민대학을 찾아오시는 분들, 그 학습자들의 의지가 제게 큰 의미였어요. 그분들과 같은 환경일 때 나는 시민대학을 찾아왔을까 생각해봤는데, 저는 못 했을 것 같거든요.

자치구에 들어와 인상 깊었던 분들은 같이 일하는 지역 활동가들이에요. 평생학습은 사람을 깨우는 일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어떤 대가가 주어지지 않음에도 그런 마음가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함께 해주시니 인상 깊지 않을 수가 없죠.

방미희 : 저는 학습매니저 시절 중 마지막으로 뵌 분이에요. 6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항상 짐도 많고 바쁘신 것 같았어요. 자주 늦으시는 거예요. 어쩔 땐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오시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좋은 인상을 받았던 건 항상 겸손하셨거든요. 나이 어린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모든 것에 감사해하는 마음을 가진 분이었어요. 그런데 얼굴은 웃고 계셨지만 어딘지 좀 힘들어 보이셨어요. 친해지고 난 후에 알게 됐는데, 가족을 간병 중이셨더라구요. 바쁜 틈에 잠깐씩 나와서 10분씩 강의를 듣고 가는데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한참 후에 시민청에서 다시 뵈었는데, 얼굴빛이 달라지셨더라구요. 지금은 역사활동가, 독서지도사로 활동하신대요. 평생학습을 통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으신 것 같아서 그분이 크게 다가왔어요.

박다운 : 평생교육사 역량 강화 과정 수료생 중에 재능 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게 시민대학의 힘인 것 같아요.

김주명 :평생학습을 통해 경험한 자신의 가장 큰 변화는 어떤 거였나요?

방미희 : 정체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에 도전하고 성장하려 애쓰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돼요. 저는 평생학습이 집안에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집에서 평생학습이 잘 되려면 가장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봤어요. 엄마나 아빠일 텐데, 엄마들은 보통 외부 강의나 뭔가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고 그로 인해 변화를 가질 수 있는 기회도 많은데, 아빠들은 기회가 좀 적은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집 평생학습을 위해 남편한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자극을 주기 시작했어요. 그 후로 남편의 변화도 지켜보게 됐구요. 남편도 저로 인해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얘기해요.

박다운 : 저는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했어요. 전에는 뭔가를 배운다는 게 혼자만 잘하면 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평생학습은 같이 배울 수 있다는 게 큰 가치인 것 같아요. 동네배움터로 나와 보니 제가 살고 있는 지역 안에서 다양한 주민들과 평생학습을 함께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어요. 공동체가 된 거죠.

 

배움의 문턱으로 한발만 들여놓으면

김주명 : 몇 달 전부터 노원구와 용산구에서 동 평생학습 전문가로 근무 중이신데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직접 소개해 주시겠어요?

박다운 : 제가 살고 있고 또 일하고 있는 노원구는 민간단체들과 협력해 동네배움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자체와 민간단체들 사이에서 네트워킹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공영역에서 이런 활동들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시민대학에서 학습매니저로 일하다 올해 7월 노원구에 동 평생학습 전문가로 채용됐어요.

방미희 : 저는 용산구에서 운영하는 동네배움터 8개 중 4개를 맡고 있어요. 용산구는 동마다 특징이 다양한데요, 한남동은 외국인 거주자가 많아서 그분들이 평생학습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공예관에서 옻칠이나 도예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어요. 한국인들도 접하기 어려운 분야잖아요? 그런데 내국인, 외국인 구분 없이 전통공예를 함께 배울 수 있다는 게 강점인 것 같아요. 이촌2동은 다른 동에 비해 인구가 적고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연령대는 높은 편이었는데, 동네배움터를 통해 젊은 층의 관심도 많아지고 주민센터를 찾는 분들도 늘어나는 걸 느끼고 있어요. 아직 동네배움터가 없는 동도 많은데, 그분들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김주명 : 평생교육계에는 박다운 선생님처럼 젊은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50대 이상이나 은퇴하신 분들이 많죠. 청년들이나 직장인들, 아니면 결혼이나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된 여성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평생학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분들에게 한 말씀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박다운 : 저도 시민대학에선 주로 50대~60대를 만났는데, 동네배움터에서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요. 의외로 문해교육을 통해서 만나게 돼요. 공교육에 거부감을 가졌던 학교 밖 청소년들이 미 진학 청년들로 성장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근로계약서 쓰는 방법은 물론 은행이나 관공서를 이용하는 방법, 집을 계약하는 방법 등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 데 필요한 생활문해교육을 하고 있어요.

김주명 : 평소 “우리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요, 두 분 모두 그런 현장에 계신 것 같습니다. 평생교육사로서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나 평생교육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방미희 : 저는 자치구에서 동네배움터 사업을 하면서 제일 부담스러웠던 게 ‘동 평생학습 전문가’라는 말이에요. 아직은 각 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전문가가 아닌 것 같은데, 처음부터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야 할 것 같거든요.(웃음)

시민대학 학습매니저 기간을 제외하면 이제 3개월 된 햇병아리 평생교육사다보니 원대한 포부를 얘기하긴 좀 쑥스럽구요. 평생교육은 사람이 중심이 된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떤 구조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 중심의 평생교육이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박다운 : 저도 평생교육사로서 3개월 밖에 안 됐지만, 내가 살고 있고 또 일하고 있는 지역의 움직임을 읽고 그 분위기를 평생학습으로 어떻게 체계화할 것인가 생각하니까 일이 조금 수월해지더라구요. 자치구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앞으로 늘어날 동 평생학습 전문가 분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같이 일하는 지역 활동가 분들은 평생학습에서 소외된 분들에게 동네배움터가 좋은 발판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시민대학처럼 좋은 평생교육기관을 알고 있어도 각자의 환경 때문에 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동네배움터는 문턱이 낮고 다양한 학습 형태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분야에 전문적이지 않았던 학습자가 동네배움터를 통해 강사로 성장하기도 하구요, 지역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어요. 또 카페처럼 주민들에게 친숙한 곳이나 유휴공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더 참여하기 좋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주민센터에서도 강좌가 열리는데 왜 안 가시냐고 하면 관공서는 가면 뭘 써야 할 것 같고 벽이 느껴지신대요. 그래서 저는 문턱 낮은 평생교육, 벽 없는 평생교육을 위해서 더 일하고 싶어요.

 

김주명 : 서울시민의 평생학습 참여율이 40% 정도 되는데요, 아직 용기를 못냈다거나 개인적으로 여건이 안돼서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분들에게 해주고픈 말씀이 혹시 있나요?

방미희 : 평생학습 안으로 한발 내딛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먼저 오셨던 분들을 통해 함께 오셨으면 좋겠어요. 강좌를 여러 개 열어도 항상 오시는 분들이 자리를 채우시더라구요. 다른 분들은 왜 관심을 안 가지실까 생각해봤는데, 기존의 학습자들께서는 좋은 걸 다른 분들에게 알리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더라구요. 본인들의 기회가 적어진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면 더 좋은 강좌, 더 나은 평생학습의 기회들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예전부터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평생교육사 방미희입니다.”라고 소개하곤 하는데요. 평생교육을 통해서 혼자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는 삶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주명 : 오늘 배움의 문턱으로 한발만 들여놓으면 삶의 의미가 깊어지고 새로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아직 그 문턱에서 망설이고 계신 분들이 두 분을 통해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