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책길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1년 중 요즘처럼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있을까? 10월의 볕 좋은 수요일 낮, 모두의학교 일군의 여자들은 모여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을 돌며 산책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뻔한 길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적인 산책에서 비롯된 내밀한 길. 그 길을 따라 벤치에 앉아가며, 싱잉볼 소리를 듣고 명상하며, 김밥을 나누어 먹거나 앞으로 살고 싶은 집을 찜하기도 했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산책을 했을까?

 

대담자
이숙경(감독, 여성커뮤니티 줌마네 운영자)
이경석(작가, 어린이책 그림 작가 겸 산책자)
최고은(모두의학교 주임, 도시여행기획 프로젝트 담당자)
김혜영(모두의학교 팀장, 도시여행기획 프로젝트 제안자)
임지회(모두의학교 주임, 대담 진행자)

 

 

모두의학교 징검다리 프로그램 도시여행기획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회 : 모두의학교가 시민들을 만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커뮤니티에요.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사업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도와드리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그걸 저희는 커뮤니티 징검다리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모두의학교는 이숙경 감독님과 콜라보하여 징검다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콘셉트가 ‘도시여행기획 프로젝트’예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감독이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해주시죠.

경 : 벌써 기억이 안나려고 하네. 하하. 올해 언니들의 봄 산책, 여름 산책이 바로 도시여행기획을 위한 준비단계였던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이 어떤 식의 여정, 즉 코스를 기획하는 건데, 그게 스토리텔링의 방식이거든요.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가지고 어떻게 공간과 사람이 만날 것인가를 창의적으로 고안해내야 해요. 그걸 하기 위해서 판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하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걸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연습을 한 거죠. 요즘 사람들은 이미 그걸 잘 하고 있고, 나름 자기 도구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꽤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 분들에 플러스 새로운 분들이 모여서 도시 안에서 함께 다니고 만날 수 있는 길을 기획했어요. 길은 배움의 길, 만남의 길,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길, 역사와 시간을 다시 기억해내는 길, 뭐든지 할 수 있죠.

총 4시간인데, 첫 시간에는 제가 이제까지 줌마네나 다른데서 해왔던 과정과 도시여행기획의 예를 알려드렸구요, 두 번째 시간에는 제가 개발했던 연남동의 산책로를 하나 샘플로 같이 여행 다녀왔어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보여주고,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고 알려준 뒤 각자 코스를 짜보자고 과제를 냈죠. 그 중 이경석 님의 안산여행 산책로가 채택되어 지난 시간에 함께 다녀왔죠. 경석 님은 너무너무 준비된 기획자였어요. 깜짝 놀랐어요. 드로잉도 하시고, 표현력도 너무나 재밌으시고, 본인이 뭘 하려고 하는지 꽉 잡고 계시기 때문에, 이분은 그냥 프로예요. 바로 상품화해도 돼요.

도시여행기획의 특징이 뭐냐면 관광이나 소비, 눈요기, 예쁜 데 가서 셀카찍기 같은 건 안된다는 거예요. 그런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 우리집 앞에도 역사가 있고, 내가 오래 다녔던 경험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걸 기반으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기획자 경석 님이 서대문 안산 벤치산책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석 : 제가 평소에 혼자 산책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 산책길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벤치라는 아이템이 늘 보는 거고, 평범한 것이지만 공공의 장소에 여럿이 앉을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린 사물이잖아요? 그걸 저 나름의 코스로 정하다 보니까 제가 평소 자주 앉는 벤치가 보이더라구요. 그걸 캐치해서 1번부터 4번 벤치까지 정했고, 1번 벤치에서 싱잉볼을 이용해 눈을 감았다 뜨면서 시작을 알렸죠. 2번 벤치는 12개의 통나무로 이루어진 벤치인데, 여기서 평소에 혼자 김밥을 먹곤 했거든요. 제 단골 김밥가게에서 김밥을 사서 다른 분들과 어울려 김밥을 먹었어요. 3번 벤치는 연못가에 있는 벤치였고, 그렇게 4번 벤치까지 돌고, 크문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헤어지는 코스였어요.

 

 

도시 안에 있는 숲을 산책하는데, 걷다가 멈춰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움직이는 그런 패턴을 유지하고 싶었고요. 거기에 벤치라는 아이템이 있어서 접근하기가 쉬웠어요. 각각 흩어져서 개인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벤치에 모여서 이것저것 하고. 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하시는 거예요. 그냥 던져만 놔도 알아서 너무 유연하게 잘 하셔서 각자 잘 즐기고 계시는구나 했습니다.

 

기획했던 것과 실제로 해보니까 어떤 게 달랐나요?

석 : 그날 마침 제가 원했던 벤치 1번을 누군가가 이용하고 계셨어요. 그래도 우리 동네니까 당황하지 않고 다른 벤치를 이용했구요, 또 제가 기획한 코스에는 없었는데 4번 벤치로 가는 길에 정자가 있었어요. 거긴 예상 밖의 공간이었는데 다들 자연스럽게 신발벗고 올라가는 거예요. 다들 좋아하셔서, 저도 물구나무도 서고 했죠. 마지막 4번 벤치에서 드로잉을 했어야 되는데, 갑자기 공무원들이 나타나서 멧돼지가 북한산에서 나타났다고 하셨어요. 멧돼지는 제가 마지막에 등장시키려고 했는데, 너무 빨리 등장했죠. 하하. 멧돼지가 흐름을 끊긴 했지만 그것 또한 사건이잖아요? 그래서 벤치 5번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드로잉을 하면서 지금의 계절도 느끼고 색감도 찾았죠.
이런 과정이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일이잖아요?
같이 하니까 좋은 것 같아요. 그런다고 해서 부담스럽게 하시라고 떠밀고 싶지는 않았고, 원하시는 만큼 할 수 있는 게 산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제가 드로잉 수업 1시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생동감 있고 본인 스스로가 기록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노란 버스를 타고 서울의 각 지역 골목을 산책하자

은 : 안산 쪽은 경석 님이 개발하셨고, 모두의학교 근처는 오진아 님이 개발하셨거든요. 저희가 지역마다 다 개발하려구요. 각각 참여자들이 살고 있는 곳마다 다 개발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되면 서울의 전역이 다 개발되는 거죠.

경 : 이게 어떤 한 사람의 취향이 반영되고, 자기만의 소중한 공간을 따라가는 거거든요. 이 사람의 산책로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같이 느끼는 거예요. 그 속도대로. 그게 재밌어서 모두의학교 팀장님한테 건의를 했어요. 이걸 기획하는 기획단을 만들자고. 모두를 단절시키고 고립되게 만드는 도시에서 연결하고 만날 수 있는 되게 좋은 기획이고 방법이잖아요. 덧붙이자면 색깔은 꼭 노란색이 아니어도 되지만, 노란 버스를 사자. 시에서 기증을 받아 예쁜 버스를 타고 15~20명 사이의 사람들이 같이 돌아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맨날 북촌, 서촌…사실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잖아요. 같은 코스로 깃발 들고 왔다갔다 하는 거 보면 그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 싶어요. 연남동도 지금 비슷해지고 있죠. 그러니까 골목을 스스로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이 프로그램 준비하면서 예상은 했거든요.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 많이 오실 거라고. 경석님은 안산에 사는 예술가인데, 이 아티스트가 자기가 사랑하는 공간을 쉐어한 거예요. “내 뒷산으로 놀러오세요, 제가 이렇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 개념인 거죠. 공간 뿐 아니라 싱잉볼이라든가 그림도안 같은 자기 생활도 다 공유하는 거예요. 이런 나눔이 없어요. 너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회 : 도시에서 이웃 사람들끼리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 잘 없죠. 저만 해도 이웃집과 아래 위로 다닥다닥 붙어살면서도 사람들과 인사도 잘 못해요. 오히려 모두의학교에 오면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고, 저는 얼굴을 모르는데도 먼저 인사해주시고 그러죠. 이런 게 정말 커뮤니티인 것 같아요. 감독님이 말씀하신 도시여행은 그런 커뮤니티를 만드는 매력적인 방법 같습니다.

 

준비된 기획자들이 많은 시의적절한 프로그램

회 :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막연했던 ‘커뮤니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걸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구체적인 방법으로. 그럼 손쉽게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경 : 예를 들면 무슨 공동체 마을, 무슨 견학…이런 거 너무 도식적이고 똑같잖아요? 자기가 사는 곳에도 얼마든지 좋은 공간이 많은데.

회 : 그쵸. 사람마다 수백 가지의 방법이 나올 수 있잖아요.

석 :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감독님께서 일상에서의 산책이라는 테두리를 만들어주셔서 접근하기 되게 쉬웠고, 시간적인 커트라인과 아웃라인을 잡아주셔서 저도 쉽게 코스를 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 막연하게 그냥 제가 좋아하는 코스니까 이렇게 해봐야지 생각만 했지 구체적으로 시간을 나누어서 어떤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안해봤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렇게 구체적으로 다듬어갈 수 있었고, 저도 흥이 나서 즐기며 다녀왔어요.

경 : 저도 흥이 너무 났어요.

회 : 내년 봄에 꼭 다시 만들어주세요.

은 : 사계절 다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경 : 한 달에 한번 해도 돼요. 경석 님 외에도 오진아 님은 독산동 산책을, 마틸다 님은 관악산과 도림천 산책을 기획해 오셨어요. 그 중 경석 님의 기획은 딱 봤을 때 바로 실행 가능했고, 개념도 분명히 잡히셔서 깜짝 놀랐어요. 경석 님의 산책이 저희가 했던 박사(여행 칼럼니스트)의 서촌산책과 닮아 있는데, 박사는 수첩을 하나씩 나눠주고 서촌산책을 하면서 기록하는 방법으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 산책은 기획자인 우리가 있었고, 박사가 있었는데, 경석 님껀 혼자서 다 하신 거니까 놀라운 거죠.
오진아 님의 산책은 레퍼런스가 된 <독산동 이야기>라는 책의 작가분을 모시고 동네 분식점 같은데서 북토크를 연다는 기획이었어요. 오진아 님도 일요일에 독산동에서 두 분이 산책을 다녀오셨어요. 산책을 거듭하다 보면 더 업그레이드 되거든요. 그런 부분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은 : 저희가 이런 과정들을 다 기록을 하려고 해요. 시범산책 했던 것부터 참여자들의 기획안, 파일럿까지 어떤 방식으로 기록할 지는 논의를 해봐야 되지만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내년에도, 그 후에도 여러 코스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려구요.

경 : 시의적절한 것 같아요. 요즘에 작은 수업들이 많고, 사람들의 도구활용 능력이 좋잖아요? 그걸 하나의 작업으로 만들어서 여행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시의적절합니다. 지금 너무 좋은 시점입니다.

 

나와 이웃, 지역 사회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프로젝트

영 : 저는 인간의 학습이 살고 있는 동네와 연관 되어야지 그 변화가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이나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 관점에서 사업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올해 이숙경 감독님이랑 줌마네 산책학교 시리즈를 할 수 있어서 징검다리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징검다리는 의미 자체가 나와 이웃 사이를 연결한다는 의미인데, 그 연결고리의 역할을 누구나 공통과정으로 알아야 될 것 같고, 그래서 도시여행기획을 징검다리 프로젝트의 누구라도 공통 필수로 하게 하려구요. 올해 이경석 님 같은 분이 발굴되어 놀라워하고 있어요. 감독님이 계속 리드는 하시겠지만, 영원토록 이걸 할 수는 없을텐데, 경석 님이 또다른 경석 님이 등장하게끔 돕는 구조로 설계를 해볼까 하고 있습니다.

은 : 참여하셨던 분들이 하나같이 말씀하셨던 게 딱 세 번 (오늘까지 네 번) 만났는데 이렇게 서로 친해질 수 있고 이렇게 서로 편안해질 수 있냐며, 이런 관계가 너무 신기하다고 하셨거든요. 저희 프로그램의 기획에 담겨있던 의도가 녹아져 나와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 말씀을 듣는데 담당자로서 저는 너무 좋더라구요.

경 : 그것도 산책과 걷기의 힘인 것 같아요.

은 : 오늘 마지막 수업 마무리 잘하고 내년에 또 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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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청년인생설계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