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관광열차는 금강산 전기철도

 

남북이 경색되기 전, 화해무드일 때 많은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산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꿈을 꾸었다. 분단으로 끊겼던 철로가 다시 이어진다면 우리는 섬나라보다 답답한 반도에 갇혀 사는 느낌 대신 유라시아와 한 대륙에 사는 느낌을 받게 될까?
이런 상상이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의 철도가 서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학기 대학연계 시민대학에 참여하는 서울시립대에선 ‘철도와 근대 서울’ 강좌를 개설했다.
경부선과 경의선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경원선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20명이 넘는 수강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다.
수강생 중에는 30년간 철도청에서 근무하다 은퇴하신 분도 있고,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전주부터 KTX를 타고 올라오는 청년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근대 서울과 철도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강의 전체는 강의명과 같은 제목의 책 <철도와 근대 서울>에 잘 나와 있으니 내용 전체가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고, 이 지면에선 그날 강의에서 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경원선은 왜 일본 군대가 놓았을까?

경원선은 이름처럼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도 노선이다. 당시 원산은 정어리가 많이 잡히는 어장으로 세계 4대 어장에 꼽힐 정도였다. 정어리 기름 짜는 공장이 해안을 따라가며 세워질 만큼 성황이었는데, 원산에서 서울로 정어리든 기름이든 실어 나르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배에 실어 동해, 남해, 황해를 빙 돌아가는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산과 서울을 잇는 경원선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에는 경부선, 경의선 등 남북 횡단선만 있었지 동서 횡단선이 없었다. 경원선은 최초의 동서 횡단선이다. 원래는 한국인들이 시작했던 철도로, 혜화문 밖에서 기공식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자본이 투입되었다가 곧 일본 군대가 접수했다.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은 부산항만으로는 일본 군대와 물자를 데려오기가 부족해 마산항을 개발했고, 마산선을 만들어 철도를 연결시켰으며, 이렇게 들어온 군대가 만주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경성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원선은 공사가 이루어지다 중단되었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겼기 때문이다. 러일전쟁 때문에 놓다가 전쟁에서 이기고 나자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이후 총독부 조선철도국에서 이어받아 완성했다.)

 

 

경의선은 왜 종로 대신 이촌을 지나게 되었을까?

경의선은 서울과 의정부를 잇는 철로이다. 원래 설계대로라면 서울역-종로-청량리-의정부로 이어지는 노선이었다. 그러나 종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심이었고, 도심의 토지를 수용해 철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토지 위의 집이나 상가 등에 보상을 해줘야 한다. 막대한 보상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정부는 종로 대신 이촌-용산-왕십리를 거쳐 청량리로 가도록 노선을 변경했다. 당시만 해도 이촌-용산은 한강변이라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의중앙선이 이촌-용산을 거쳐가는 이유가 바로 보상금 때문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철도는 한번 노선이 결정되어 놓이면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경부선이었기에 국토가 남북으로 발달되었고, 고속도로 역시 경부선 방향으로 놓을 수밖에 없었다. 철도가 생기면 역이 생기고 역주변으로 시가지가 발달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자가 왔다갔다 하며 교통량이 많아져 도로 역시 철로를 따라 생길 수밖에 없다.

호남 차별도 실은 일제시대 국토개발이 경부선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철도 하나의 노선이 이후 100년 가까운 시간의 국토 개발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왜 경부선부터 생겼을까? 동서로 가는 길에는 태백산맥이 버티고 있는데, 당시에는 산맥을 뚫을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도 노선 실측자들은 왜 사냥꾼 복장으로 다녔을까?

철도의 핵심은 노선 선정이다. 철도를 통해 일본군과 군수물자가 들어오면 우리나라를 뺏긴다고 생각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병대를 조직해 철도를 공격했다. 철도 공격이 발각되어 총살당한 의병들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선 선정을 위해 실측 다니는 일본인(철도 공무원 등)들은 한복을 입고 조선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철도 실측을 하는 일본인이라는 게 알려지면 언제 의병의 습격을 받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냥꾼을 가장하여 다니기도 했는데, 마을에 얼굴 모르는 낯선 이가 나타나면 경계하는 조선인들에게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새 표본을 납품하기 위해 사냥 다니는 사냥꾼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실측을 하곤 했다.

 

신고산 타령이 경원선 때문에 나온 노래라고?

‘신고산이 우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로 시작되는 ‘신고산 타령’. 거기에 나오는 신고산이란 산이름이 아니라 역이름이다. 러일전쟁 승리로 중단되었던 경원선 공사는 한일합방 후 철도국유화 정책을 시행하며 통감부에서 맡았고, 나중에 총독부 조선철도국에서 넘겨받는다. 그리하여 경원선은 1914년에 완공된다. 경원선이 지나가던 길에 고산(지명)이 있었고, 고산 옆에 신고산역을 지어 열차가 정차했다. 신고산 타령은 바로 이 신고산역에서 징용에 끌려가거나 전쟁에 차출되는 자식들을 보내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담은 노래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열차는 무엇이었을까?

경원선에는 지선이 많았다. 경춘선, 중앙선(당시 전경선), 동해선, 그리고 금강산 전기철도가 경원선에 연결되었다. 경원선 자체가 중요했다기보단 경원선을 거점으로 하는 새로운 철도망들이 중요했기 때문에 경원선은 중요했다.

그중 금강산 전기철도는 금강산의 수력발전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여 운행되던 철도다. 자본가들이 금강산 전기철도 주식회사를 세웠고, 이는 나중에 경성전기가 된다.

경원선을 타고 철원역에 내려 내금강까지 220km를 가는 철도가 금강산 전기철도이다.

 

 

당시 금강산에는 석왕사, 목장지대, 스키장, 근처 명사십리의 외국인 별장지대 등이 있어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었다. 금강산 전기철도가 연결되자 무박 3일의 금강산 관광이 가능해졌다. 경원선을 타면 서울에서 원산까지 8시간이 걸린다. 토요일 저녁 6시에 서울을 출발하면 일요일 아침 6시에 금강산에 도착했고, 하루종일 놀다가 밤 10시에 금강산을 출발하면 월요일 아침 7시에 서울에 도착해 직장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열차였다. 물론 이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 중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외국 관리들이 가장 좋아했던 곳이 금강산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은 금강산 대신 경원선 창동역에 내려 우이동 벚꽃놀이를 즐겼다.

이런 경원선의 기억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없어졌다. 하지만 남북이 통일되면 철로 복원시 가장 중요한 선로가 경원선이다. 가장 중요한 선로이기에 6.25 때 가장 먼저 폭격의 대상이 되었고, 철의 삼각지대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탈북자들은 왜 두만강을 헤엄쳐 건널까?

경원선의 선로를 따라 보통 열차도 다니고 급행 열차도 다녔다. 경원선 도문역이 국경선 근처에 있다. 우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본 적이 없어 큰 강이라고 생각하지만, 두만강은 별로 큰 강이 아니다. 끝으로 가면 개울 정도의 넓이로 좁아지기도 해서 탈북자들이 두만강을 건너 오는 것이다. 안수길의 <북간도> 같은 소설을 읽을 때 이런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통일이 되면, 혹은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체제가 가능해지면 경원선을 복원하여 금강산 레저용으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일제 말기 무기를 만드느라 선로를 걷어서 쓰는 바람에 없어졌다. 경원선 역시 북한에서 평나선 등 다른 선로를 만드느라 걷어가 버려 복선 철도가 단선 철도로 바뀌었다. 때문에 평균속도가 엄청 느리다.(시속 20Km 내외)

경원선의 목단강역에서 내리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갈아탈 수 있다. 그러므로 경원선이 연결된다면 우리는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거쳐 바로 유럽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