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청년들 위해 고구마 밭 찾은 스마일 봉사단

고구마 원정대의 탄생

2019년 9월 말, 편의점에 호빵 기계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2년차 서평원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올해는 연말에 부랴부랴 밀린 방학 숙제하듯 전 직원 동원해가며 하는 봉사활동 말고, 원하는 사람들끼리 재미와 보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을 해보자!’

때마침 서울시립장애인영농직업재활시설 ‘푸르메스마트팜 서울농원’에서 가을철 텃밭 작물 수확기를 맞아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운명의 장난처럼 TV에선 인간인지 조각인지 모를 배우 정우성이 산촌 텃밭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캐는 장면도 전파를 탔다. 이것은 바로 서평원 고구마 원정대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10월 초, 정우성보다 근사하게는 불가능할 테니 그저 정우성보다 많은 고구마를 캘 수 있도록 강인한 체력을 가진 대원들을 찾아 임직원들에게 구인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높고 푸른 하늘,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공기, 여기다 핑크뮬리라는 복병으로 전국에서 인증샷 대전이 벌어진 10월에 고구마 원정대에 자원하는 사람은 미미했다. 급기야 진흥원 복도와 화장실 등을 어슬렁거리며 마주치는 이들에게 아련한 눈빛을 발사하기도 하고, 서울자유시민대학과 모두의학교 직원들에게 전화로, 메일로 친한 척도 해봤지만 성과는 여전히 미미했다. 대규모 원정대를 꾸리고 싶다는 열망에 직원들을 강제 동원하지 않기로 한 초심은 점점 옅어져 갔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구마’를 언급하자 한 직원이 ‘고구마 대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평소 사이다 같은 팩폭이 취향인 필자로선 답답함의 대명사 고구마, 그것도 고구마 대장이라는 별명이 몹시 수치스러웠으나 이 원정대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이때 또 한 번, 운명 같은 정보가 입수됐다. 청년인생설계학교 가을학기 농사 체험 프로그램 <리틀 포레스트> 참여자들이 고양시의 한 농장으로 벼 베기 봉사를 하러 간다는 소식이었다. 대학 때 농활 한 번 못 가본 농사 ‘잘알못’으로서 그들을 섭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김주명 원장을 비롯한 임직원 14명에 임직원 가족 1명, 그리고 청년 3명으로 구성된 서평원 고구마 원정대(정식 명칭은 스마일 봉사단)가 탄생했다.

 

이것은 봉사활동인가? 체험학습인가? 

원정대가 푸르메스마트팜 서울농원을 찾은 것은 10월 26일 토요일. 휴일을 맞은 장애 청년들을 대신해 300평 규모의 텃밭을 정비하고, 수확기를 맞은 고구마들을 땅 속 깊은 곳에서 흠집 없이 잘 꺼내는 게 미션이었다.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잠깐 시설 견학 시간을 가졌다. 푸르메스마트팜 서울농원은 ICT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팜 700평과 텃밭 3000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장애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직업 훈련을 통해 자립을 지원하는 곳이다. 온·습도 자동 조절과 원격 제어 기능 등이 구비된 스마트팜에서는 블루베리와 메리골드 등이 자라고 있었으며, 텃밭에서는 계절별로 다양한 작물을 키운다고 했다.

 

이어서 농기구 사용법 등 기본 교육이 있었는데, 필자를 포함한 원정대 18명 중 대부분이 호미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봉사활동 아니라 체험학습을 나온 듯한 도시인들이었다. 이에 프로 농사꾼 포스의 김종선 시민대학국장이 일대일 개인 레슨에 들어갔고, 봉사단은 하나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레슨비는 1인당 500원이었는데, 아직 아무도 지불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원정대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심지어 고구마 뿌리를 외면하고 이 땅엔 고구마가 없다고 믿는 대원도 나타났다. 원정대의 영혼을 앗아간 드넓은 텃밭을 보며 ‘내가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잠시 괴로웠지만, 황금 같은 휴일에 남양주까지 원정대를 이끌고 간 이상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1990년대, 2000년대 인기 댄스곡을 연달아 선곡하며 대원들의 노동력을 끌어올렸고, 그 결과 150kg의 고구마를 수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재미와 보람에 사은품으로 근육통까지 얻으며 서울로 돌아왔다.

 

 

이상 2019년 서평원 고구마 원정대 활동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