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를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만들기 위하여

 

2019 서울자유시민대학 학습 매니저 양성과정

서울자유시민대학의 각 강좌에는 학습매니저가 있다. 수강신청이 완료되면 수강생은 본격적으로 학습매니저의 도움을 받게 된다. 강의 전날 개강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출석을 관리하는 것도, 강의 자료를 돌리고 강사님을 소개하는 것도 전부 학습매니저가 한다.
강사 외에 수강생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바로 학습매니저이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지역사회 전문가들의 평생교육 활용 실무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가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11월에는 학습매니저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자유시민대학 학습매니저 양성과정 커리큘럼

 

 

하루 4시간 빡빡한 수업에도 열정적인 학습매니저들

학습매니저 양성과정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4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빡빡한 과정이다. 그 중 두 번째 시간,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 평가’에 대한 강의를 하러 나온 분은 부천시평생학습센터 소장으로 재직했고, 지금은 한국평생교육사협회 교육연수분과장으로 있는 이소연 강사이다.

4년 전 내가 웹진 다들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제일 처음 인터뷰했던 분이 바로 이소연 강사였다. 부천에서의 맹렬했던 3년을 보내고 다시 이곳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 이소연 강사는 부천에서 어떻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했는지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학습매니저가 가져야 할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대한 자세를 들려줄 예정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시민대학 본부 시민홀은 학습매니저들의 열기로 꽉 찼다. 실습과 토론 위주의 수업이기에 테이블을 6개 모둠으로 모아 배치하고, 자리마다 이름표를 올려두었다. 친한 사람끼리 앉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 한 모둠이 되어 인사 나누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학습매니저의 역량강화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학습매니저에게 가장 필요한 DNA는 뭘까요?

수업은 우리나라 평생학습의 역사에 대한 개괄로 시작했다. 우리나라 지자체, 즉 공공에서의 평생학습은 2001년 광명시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평생교육사의 두 가지 무기는 ‘최고의 기획력’과 ‘강사 리스트’였다. 이 두 가지만 손에 쥐고 있으면 성공한 평생교육사가 될 수 있었다. 좋은 강의를 개설하고 이름난 강사를 섭외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수강자 수가 많으면 그 프로그램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2007년쯤 되자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이 뭐가 좋아졌어?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어?”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이 궁색했고, 슬럼프가 이어지다가 2008년부터 평생학습의 목표는 지역활성화로 바뀌었다. 조사 결과 평생학습 참여자는 여성이 90% 이상인데다 학력이 높고, 고소득자가 많았기에 이들은 공공 부문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자기계발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평생학습 참여자의 진입률은 더 이상 늘지 않았다. 남성들을, 청년들을, 자기계발이 필요하지만 할 수 없는 지역주민들을 동참시킬 생활밀착형 평생학습이 요구되었고, 이때부터 학습매니저, 즉 지역활동가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조별 토론을 듣고 있는 이소연 강사

 

조별 토론한 키워드를 발표하는 학습매니저

 

본격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6개의 조별 토의를 통해 학습매니저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이 무엇인지 1개의 키워드로 발표하기로 했다. 조원들이 토의하는 동안 이소연 강사는 각 조를 돌아다니며 경청했다. 토의가 끝난 후 한 명씩 대표로 발표했다. 각 조에서 나온 키워드는 이렇다.

 

 

거의 모두가 소통과 공감, 경청을 베이스에 놓는 키워드였고, 이에 이소연 강사는 “평생학습 현장에서 몇 년은 해보신 분들 같다”고 칭찬했다.

 

프로그램은 우리의 창과 방패, 하지만….

요즘은 핸드폰에 ‘나의 동네’를 추가해놓기만 해도 동네 강좌가 다 뜨는 세상이다. 개수를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강좌가 매일 열리고 있고, 강좌의 주최자도 다양하다. 주민센터나 평생학습관은 물론, 기업 문화센터, 자기 사업을 하는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도 원데이클래스를 연다. 문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스승이고 모든 곳이 학교인 시대가 되었다.

공공에서 무료로 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에도 오지 않는 청년들이 박막례 할머니의 클래스101 한식 레시피 프로그램에는 몰려든다. 이런 민간의 성장을 보고 있자면, 프로그램은 우리의 창과 방패이지만, 이것으로 민간 영역과 경쟁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민간과는 다른 공공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습자 존중이다. 그동안 우리는 학습자를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시켜왔다. 우리 스스로가 학습자들이 평생학습을 통해 변화되고 성장하는 게 아니라, 강좌 쇼핑을 하도록 만들어버렸다. 학습자를 평생학습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바람에 학습자들이 쇼핑하듯 프로그램과 강좌를 골라 듣고,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성장하는 대신 소비만 하는, 참여자가 아닌 요구만 하는 소비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학습자존중은, 학습자의 요구만 100% 들어주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학습자를 학습의 주체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5P, 다섯 개의 체크리스트

프로그램을 만들 때 체크해야 할 5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첫째, 프로그램의 목적(Purpose).
이 프로그램을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사람(People). 이 프로그램을 누가 들을 것이냐를 생각해야 한다. 셋째, 결과물(Product). 평생학습은 이제까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이 듣고 나면 끝이었다. 평가라고 해봤자 만족도 조사와 수료율이 전부였다. 설문지를 돌리는 만족도 조사는 의미가 없는데, 왜냐면 끝까지 다 들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리기 때문이다. 끝까지 다 들은 사람들은 당연히 만족하기 때문에 끝까지 다 들은 것이다. 평가의 영역이 현재 불모지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방법이 나온다면 블루오션이 된다. 넷째, 장소(Place)가 필요하고, 다섯째, 순서와 방법(Process)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다섯 가지를 고려하여 만들어 성공했던 프로그램이 바로 ‘퇴근학습길’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퇴근학습길을 만들었나?

다른 모든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부천도 평생학습의 대상자 90%가 여성이었다. 어떻게 하면 남성학습자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며 팀 회의를 했는데, 그때 나온 신입 직원의 푸념 한 마디가 단초가 되었다. “저도 평생학습 하고 싶죠. 퇴근길에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직장인을 끌어들이려면 주간 강좌가 아닌 야간 강좌가 있어야 했고, 퇴근길에 술 마시는 대신 평생학습을 선택하게 하려면 인문학이나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또한 지하철과 가까운 장소여야 했다. 대중교통에서 너무 먼 곳은 강좌 들으러 오다가 옆길로 새서 술 마시기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슬로건이 ‘퇴근길, 우리는 학습을 마신다’였다. 술 대신 학습을 마신다는 의미다.

 

 

‘퇴근학습길’이라는 콘셉트를 정하고, 지하철 5분 내의 장소를 찾다보니 대신증권의 유리 객장이 발견되었다. 마침 대신증권은 유명 강사도 많았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다. 유리 객장의 위치는 좋았지만, 평소 고객들이 담배를 피고 라면을 먹으며 대기하는 장소라 찌든 냄새와 더러움이 많았는데, 대신증권 측을 설득해서 새로 깔끔하게 리모델링 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개발을 할 때는 학습자, 강사, 실무자, 공간 대여자 등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가져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대신증권은 사회를 위해 공헌한다는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었기에 협조가 가능했다.
이렇게 장소를 확보한 뒤, 퇴근길 직장인을 불러들이기 위해 ‘승진을 부르는 넥타이 컬러 찾기’, 유명 대신증권 강사를 초빙한 ‘수요 금융Day’ 등 3개의 강좌를 열었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모든 준비를 하는데 1년이 걸렸다.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는 초반에 에너지를 확 쏟아서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한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면 나머지 변화들은 자연적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다. 언제나 비슷한 것을 비슷한 에너지로 하게 되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부천에서는 평생학습의 사각지대를 공략하여 퇴근학습길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는 곧 전국으로 퍼져 퇴근길 인문학 등의 아류 프로그램들을 낳았다.

 

개강 오리엔테이션의 중요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시(지역)의 평생학습 정책이 무얼 중심으로 돌아가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몸담은 기관의 비전을 알아야 정책적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시대감각에 뒤떨어지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 홈페이지의 평생학습과에 들어가보면 오픈되어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공공기관 평생학습의 고질적인 문제는 높은 노쇼 비율이다. 평균적으로 30% 정도의 높은 노쇼율로 인해 개강 전 학습매니저들의 주업무는 전화돌리기가 되어버렸다. 결석을 할지 확인하고, 꼭 오셔야 된다고 독려하기 위해서다.

부천평생학습관에서는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미행(아름다운 배움의 길)’이라는 노트를 만들었다. 노트 첫장에 ‘내가 지금 듣고 있는 이 강의는 누군가에게 절실히 필요한 강의일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의 몫까지 나 000는 최선을 다해 학습하겠습니다’라는 글을 인쇄하여 결석하지 않고 강의를 듣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노쇼가 없어진 건 아니지만 최소한 강의취소나 결석에 대한 연락은 왔다고 한다. 시민학습자를 학습의 주체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오리엔테이션 시간이기 때문에, 개강 오리엔테이션은 중요하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2시간 강의를 듣고도 아직 2시간의 강의가 남았는데, 시민홀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학습매니저들의 열정과 성실함이야말로 서울자유시민대학의 분위기를 만들고, 학습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그 열기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배움의 터전이 되고 시민 모두가 더불어 배우는 도시,
삶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서울은 학교입니다.
학습하는 시민, 성장하는 도시를 위해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합니다.

<다들>이 서울은 학교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월 서울자유시민대학, 모두의학교, 동네배움터 소식을 전합니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각양각색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이야기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