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동력으로 날아오르는 잠자리

 

명동역 3번 출구로 나와 주민센터와 호텔 사잇길을 걷다 보면 우측으로 재미난 간판이 하나 보인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적힌 다섯 글자 ‘막걸리학교’. 자세히 보면 그럴싸한 술잔까지 그려져 있다. 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벌써 11년째에 기수는 44기까지 이어져 온 우리 술 배움터다. 해마다 일산막걸리축제에서 활약한다는 비공식 막걸리 감별사 ‘막믈리에’가 이곳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같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외치게 됐다. “코너 속의 코너, 이경아가 간다! 이경규 말고 이경아가 간다!”

 

 

11월 21일 오후 4시, 막걸리학교에서 만난 허시명 교장은 테이블 위에 다섯 가지 술과 사과, 쿠키를 올려놓고 막믈리에와 <다들> 편집진을 맞았다. 충남 청양 칠갑산 자락에서 빚었다는 아리랑주조의 ‘술공방 9.0 생 막걸리’, 논산에서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무농약 찹쌀이 들어간다는 양촌양조장의 ‘우렁이쌀 손막걸리’, 수백 년 이어진 전통 비법으로 만들어 충북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됐다는 중원당의 ‘청명주’, 전남 해남에서 햅쌀 반, 찹쌀 반으로 빚는다는 해창주조장의 ‘해창 생 막걸리’, 누룩과 쌀, 물 이외에는 어떤 첨가물도 안 넣고 빚었다는 전북 정읍 태인양조장의 ‘송명섭 막걸리’까지. 각양각색의 술병처럼 맛, 향, 목 넘김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이들을 음미해가며 하는 인터뷰라니! 막걸리+학교 못지않게 신선한, 아니 신성한 술+인터뷰가 될 것 같았다.

 

 

 

40대에 배워서 80대에 써먹어도 괜찮은 기술

막걸리학교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민족이 가장 즐기고 많이 마셔온 술이었음에도 서울올림픽 이후 외래 술에 밀려 왕좌를 내줬던 막걸리가 근 20년 만에 인기를 되찾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민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상황이었고, 정부의 쌀 소비 촉진 정책에 웰빙 바람까지 맞물려 슬금슬금 막걸리 붐이 일고 있었다. 때마침 한류 열풍을 타고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막걸리의 인기는 대단했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졌다. 자연스레 당시 여행작가로 술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냈던 허 교장에게 막걸리를 주제로 한 강연 요청이 이어졌다.

“프레시안 인문학습원에서 시민 강좌를 오픈했어요. 콘텐츠의 특별함 없이는 수강생을 모집하기 쉽지 않은데 막걸리학교는 빠르게 10기를 넘겼어요. 당시 막걸리 붐과 문화적 관심이 많은 얼리어답터들의 영향이었죠. 그런데 강의를 하다 보니 전에 들으셨던 분들이 또 와계시는 거예요. 다시 찾아주신 분들을 감안해 다른 내용을 준비하자니 처음 듣는 분들이 기초적인 내용을 들을 수 없는 문제가 생겼어요. 강사로서 심화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허 교장은 2009년 경복궁 앞에 30평 규모의 공간을 마련하고 강의 체계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막걸리학교의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인문학을 표방했지만, 수강생 중 절반가량이 술 빚기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실습장도 마련하고 차츰 기술을 접목하게 됐다. 더 적절한 공간을 찾아 남산 자락으로 터를 옮긴 건 2017년의 일이다.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점을 하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문화적인 요소를 잘 고려해야 하죠. 이를테면 최근에 사람들이 ‘혼술’이나 ‘홈파티’를 즐기는 경향이나 ‘먹방’ 콘텐츠의 붐 같은 트렌드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1년이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거든요. 하지만, 술 빚는 기술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요. 40대에 배워 80대에 써먹어도 문제없죠.”

 

 

막걸리는 말 그대로 ‘막 거른 술’이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2016년 소규모 주류 제조 면허가 생기면서 10제곱미터 이상의 부지만 있으면 양조장을 차릴 수 있게 됐다. 권력과 자본이 있는 사람만이 양조장을 운영할 수 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원한다면 누구나 자기 이름을 붙여 술을 만들고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막걸리학교를 찾는 수강생들의 면면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산균을 개발해 막걸리와 접목시켜 보려는 사업가부터 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막걸리를 직접 빚어서 판매하려는 교포 2~3세, 그리고 귀촌을 앞둔 이들까지.

그러나 허 교장은 커리큘럼을 기술에만 맞추지 않는다. 술맛을 모르면 도달할 지점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맛을 비교해 평가하는 자기 기준이 없으면 어떤 술이 맛있는지 모를 것이기에 막걸리학교는 맛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따라서 초급과정은 인문학이나 술에 대한 창의적 발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테이스팅, 네트워킹, 그리고 기본적인 술 빚기 수업이 더해진다. 중급과정에 들어가면 ‘생활 속의 술 빚기’라는 이름으로 10회 정도 직접 술을 빚어볼 수 있다. 상급과정은 창업 등을 목표로 하는 이들을 위한 실리적 강좌로 대량 생산에 필요한 기술부터 막걸리를 증류해 만드는 소주, 식초 그리고 맥주 등에 대한 프로그램까지 제공한다. 모든 술을 만드는 원리는 동일하지만, 그 원리 안에서 창의적인 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막걸리학교의 목표다.

 

 

막걸리학교는 ‘감성학교’

막걸리학교장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시음을 해야 하고, 방과 후 수강생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데 허 교장은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빨리 취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막걸리학교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다.

“진짜 동기는 이것을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마치 여행자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호기심이었죠. 조직에 대한 동경은 없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는 이 호기심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조직에 남았다면 헬리콥터나 비행기 조종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제 인생을 스스로의 엔진으로 움직이는 잠자리 정도로 봅니다. 내가 나를 움직이는 것이 대단히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거대한 기계를 움직여 날기보다 자기 동력으로 날아다니는 잠자리가 되기를 택한 사랍답게 허 교장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의 가치관은 곧 그의 교육관이 되었다.

“현대 교육은 너무나 목적 지향적이고 결과물을 내기 위한 피로감 때문에 중간과정을 많이 생략하고 있어요. 그러나 종착지보다는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산 정상에 올라도 계속 그곳에 머물진 않거든요.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죠. 술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명주라도 마시면 없어져요. 절대적인 순간은 아주 잠간이고, 술을 마시는 자리, 술을 만드는 과정에 더해진 노동과 정성 등을 소비하는 것, 이 과정을 즐기는 것이 곧 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술은 마시면 없어지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게 하는 좋은 수단이에요. 누군가 독점하기보다 나눌 때 더욱 가치를 발휘하게 되지요. 교육을 받아 하는 일 중에 가장 쉬운 건 그 교육을 활용해 다시 교육을 하는 겁니다. 사실 이것이 교육의 목적에 가장 충실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약 누군가 막걸리학교의 내용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카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창의적으로 진일보된 상태이길 바랄 뿐이죠.”

 

 

허 교장에게 막걸리학교는 다른 말로 ‘감성학교’다. 최고의 술 전문가를 만들거나 술을 많이 마시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닌, 술을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을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것, 또 향기를 맡거나 맛에 대해 표현하는 것, 이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해내는 언어를 발견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맛을 표현하는 것은 사람을 섬세하게 만들고, 이런 감각을 공유하는 것은 타인의 감성과 나의 감성이 교차하는 과정이에요. 사람들은 그것에서 흥미를 느낍니다. 이 과정은 공감대를 확장하고 새로운 술이나 음식을 먹게 될 때 주의를 기울여서 마음을 투영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막걸리학교가 예술적인 감각을 풍부하게 하는 감성학교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