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학교 오는 날은 아침부터 설레! 독산동 할머니들

2020년 ‘내 삶을 바꾸는 평생학습’ 첫 인터뷰는 독산동 할머니들이다. ‘독산동 할머니들’이란 모두의학교 싱어송라이터스그룹의 이름이다. 2018년에 ‘꽃할배 밴드’가 있었다면, 2020년에는 ‘독산동 할머니들’이 있다. ‘꽃할배 밴드’가 만들어진 모두의학교 <꽃할배 놀이터> 프로그램의 인기는 대단해서 여성 어르신들도 강좌를 열어 달라는 원성(?)이 높았고, 이에 2019년 봄학기에 <할머니 산책학교> 음악반을, 가을학기에 <건강한 창극 노래부르기>를 하게 되었다. <할머니 산책학교> 음악반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직접 만들어본 할머니들이 노래의 매력에 푹 빠졌고, 모두의학교 송년회인 <실수대첩>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다.
이 무대를 본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김주명 원장이 2020년 1월의 인터뷰이로 이 할머니들을 만나 뵙길 원했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말하자면 스타와 팬의 만남이다.

인터뷰 자리에는 6인 중 4인의 할머니들이 나오셨다.

박영순 님은 이 모임의 리더 격으로 활달하고 목소리가 크다. ‘수줍은 회상’이라는 노래를 만드셨다. 신정숙 님은 박영순 님과 친한 사이로, 남편이 먼저 <꽃할배 놀이터>에 참여해서 독산동 할머니들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부자 님은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으로, 여러 복지관 경험이 많고, <할머니 산책학교> 음악반에는 1주일 늦게 참여했다. 김경희 님은 아직 65세가 안된 가장 젊은 할머니로,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조용조용한 성격으로 독서를 좋아한다.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주명 원장

김주명 : 안녕하세요? 지난 실수대첩에서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고 올해 여러분을 위한 무대를 꼭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김주명입니다. 열심히 활동하셔서 올해는 초청공연도 하고 데뷔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먼저 자기소개 겸 한 분씩 어떻게 모두의학교에 오게 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박영순 : 제가 길 건너에 사는데도 1년 동안 이곳을 모르다가 우연찮게 플래카드를 보고 여긴 뭐하는 덴가 싶어서 들어와 봤어요. 처음에는 <할머니 산책학교> 영화반, 음악반을 들어갔고, 다음에는 청년들이 하는 은수저 밥상단이라는 모임에서 집밥 선생님으로 활동을 했고.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집에서 TV만 보고 있다가 모두의학교를 알고 나니까 이거 끝나면 저거 하고 싶고, 저거 끝나면 이거하고 싶고 그런 거예요. 계속하다 보니 1년 동안 어떻게 보냈는지 몰라요. 보드게임, 창극 다 재밌었어요. 할 줄은 몰라도 너무 재밌고, 선생님이 너무 좋아 정이 들어서 헤어질 때 울었다니까.

신정숙 : 저는 집이 가까워서 공사할 때부터 뭐가 될 것인가 관심이 많았어요. 모두의학교 지을 때 주민모임이 있었는데, 거기도 참석을 했었어요. 처음에는 할아버지들이 <꽃할배 놀이터>를 했어요. 저희 남편도 했는데, 그럼 ‘우리도 그냥 있을 수 있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뭐가 있나 보자’ 해서 부인들도 다 참여하게 되었어요. 4팀이 같이 하게 됐죠.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너무 좋죠.

 

모두의학교라길래 학생들이 가는 학교인줄 알았지

이부자 : 사실은 모두의학교가 노인네들과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어요. 학교라니까 애들 다니는 학교인줄 알았지. 여기 학교가 이사하고 우리는 복지관 같은 시설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했지. 근데 보니까 예술학교라 그래가지고 우리하곤 상관이 없구나 했죠. (구 한울중 본관에는 고교생 대상의 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가, 신관에는 모두의학교가 들어섰다.)

 

이부자 할머니

그런데 한번은 여기 앞을 지나가는데 관계자분이 저에게 “<은수저 밥상단>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는데 오시면 안 될까요?”해요. 늙은이가 가도 되냐니까 오히려 노인들이 좋대요. 나는 요리 선생님을 초청해서 음식 레시피를 배울 수 있을까 하고 왔는데, 와 보니까 된장찌개 같은 순수 우리 집밥을 하는 시간이었어요. 입맛이 세대차이가 있으니까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참여했고, 시간이 지나니까 누가 영화감상 글쓰기가 있다고 해서 참여해보자 하더라구요. 갔는데,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라는데, 제가 젊을 때는 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보고 나면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워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정도로 총명하고 기억력도 좋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여기 스트레스 풀러 왔는데 글 쓰느라 스트레스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자기가 보고 느낀 거 그냥 쓰면 돼요.” 하셔서 그야말로 괴발개발 마음대로 썼죠. 그걸 한두 번 하다보니 “아! 이게 내 계발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집에 있으면 TV나 보고 있을텐데, 그래도 그걸 써보겠다고 정신차려 영화를 보게 되고,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유심히 살피고 하다 보니까 써져요. ‘아… 이게 자기계발이구나, 이것도 괜찮구나’ 하게 되었어요. 이런 게 우리 지역에 잘 생겼구나 하게 되었고. 제가 지금 8학년 2반인데, 늙은이도 괄시하지 않으니까 괜찮구나 하면서 한두 가지 하다 보니 매력이 있어요. 그렇게 참여할 만하니까 그만 방학이 되어버렸네. 하하하.

 

노래교실인줄 알고 왔더니 노래를 만들라고 하네

 

김경희 할머니

김경희 : 저는 지금도 알바로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면 방송에서 “여기는 모두의학교 정류장입니다.”해요. 제 딸이 대림여중(모두의학교 전신인 한울중 이전 명칭)을 졸업했어요. 대림여중이 없어지고 모두의학교라니까 저건 뭐 하는덴가 싶었죠. 저는 오전에 시간이 있고 오후에 나가서 일을 하는데, 모두의학교에 오전에 뭘 하는 게 있나 싶어 가보게 되었어요. 그때가 봄이었는데, 봄의 오전 시간에 음악이랑 영화반 두 개가 있더라구요. 대상이 65세 이상이라고 되어 있어서, 제가 65세는 안됐고 60살은 넘었으니까 전화를 해서 연령대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다들 나이가 70대라고 하셔서 내가 가도 되나 망설이다가 그래도 가보자 하며 갔어요. 사실 제가 음악을 좀 좋아해요.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지금도 다른데서 합창 커뮤니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와 봤더니 노래를 만드는 거라는 거예요.

 

여기서 폭소가 터졌다. 노래 부르는 수업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노래를 만들라고 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김경희 님 뿐만 아니라 많은 어르신들이 노래교실인 줄 알고 왔다가 노래를 만든다는 소리에 우르르 다 빠져나갔다고 한다. 남은 사람들은 인원이 너무 줄어서 모두의학교 매니저와 강사님들이 곤란할까봐 우리라도 빠지지 말자며 열심히 나오셨고, 결국 그 분들이 독산동 할머니들을 결성하게 되었다.

 

김경희 : 저는 도시 사람이에요, 어려서부터. 초등학교도 4대문 안에 다녔어요. 그래서 시골을 잘 몰라요. 그런데 어르신들이 시골 얘기, 어린 시절 얘기 하시는데 재밌더라구요. 그런데다가 선생님이 또 아주 좋으신 분이더라구요. 저희가 얘기할 적에 칠판에 그 얘기를 받아 적으셨는데 그게 노래가 된 거라서, 지금 생각하면 너무 좋아요. 다른 사람은 모르는 우리만의, 창조적인 작업을 한 거죠. 그런데 처음에는 아주 스트레스가 컸죠. 저도 옛날 얘기 한마디씩 했는데, 서울 사람이라 내 꺼도 한 문장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얘기하고 얘기 듣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박영순 : 우리 며느리 친구는 울었다잖아, 애 낳는 얘기, 그 노래 듣고.

 

박영순 할머니

 

여기서 ‘애낳는 얘기’ 노래 가사를 살펴보자.


어느 날 보니까 배가 불렀어
알고 보니 그게 애기였네
입이 말라 짝짝 갈라지네
느닷없이 막걸 리가 생각나
사발로 벌컥벌컥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먹어치웠어
그때 물리면 지금도 싫어
그때 못먹은 건 한이 돼

외롭고 서러워 눈물이 났어
애만 보면 자꾸 눈물이 나
걸레 빨면서도 눈물이 나
신랑이 들어와도 반갑지 않아
애는 왜 낳아서 서럽게 사나
사는 거니까 사나 보다
애가 이쁜 줄도 모르고
백일 넘게 울기만 했어

미역 삼천원어치 숨겨놨다가
한 냄비 연탄불에 푹 끓여서
스뎅 대접이 넘치도록
얼마나 맛있고 배불렀는지
먹어도 배고프고 외롭던 시절
미역국이 곁에 있었네
잊을만하니까 애가 또 생겨
어떻게 배가 또 불러


 

어떻게 배가 또 불러…ㅜ.ㅜ 이건 경험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가사다.
원래 <할머니 산책학교> 음악반 수업에서는 매 수업 당 1명씩 가사를 써서 1인 1곡의 노래를 만들기로 계획했었다. 12주니까 12곡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첫 번째 타자인 박영순 님의 ‘수줍은 회상’이 만들어지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다. 한 주제를 놓고 다같이 이야기를 풀어 그걸로 가사를 쓰게 됐다. ‘애낳는 얘기’ 역시 할머니들의 사연이 모인 가사이다. 이부자 님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 배고팠다 하면 ‘왜 굶어요? 라면 먹지’ 하듯이 옛날에 미역국도 못 먹었나 하겠지만, 그랬어요. 옛날에 입덧한다는 소리를 어디가서 해요? 못하죠. 어디 어른들 앞에서 입덧을 하고 그래. 애기를 가지면 부끄러워. 배 가리려고 노상 구부리고 다녀. 그러니까 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게 맞아요.”라고 했다. 만든 노래 중 ‘들노인네’는 ‘덜 노인네’라는 뜻으로 아직 80이 안된 70대의 노래이다. ‘작년엔 12시 안에 자질 않았어. 그땐 들노인네였어. 올핸 10시 못돼서 자. 27년 다닌 운동클럽 이젠 내가 들어가면 져.’라는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이 가사의 운동클럽 이야기는 신정숙 님의 이야기라고 한다.
박영순 님은 “며느리가 어머니 허락받고 유투브에 올리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마라. 딴 사람들이 듣고 다운받아 베껴서 노래 만들어버리면 우린 아무 것도 아니다. 하면서 말렸어요.”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모두의학교 젊은 직원들은 안타까워하며 “올리셔야죠.” 부추겼다.

 

 

김주명 : ‘수줍은 회상’, ‘오독오독 무말랭이’, ‘애 낳는 얘기’, ‘들노인네’ 네 곡을 만드셨잖아요? 맨 처음 누구부터 만들었어요?

박영순 : 수줍은 회상이 제가 만든 곡인데요, 나는 이런 게 노래가 될 줄 몰랐어요. 가수들은 몇 달을 구상하고 뭘 하고 한다길래 ‘아…작사 작곡이 그렇게 힘든 거구나’ 했거든? 그런데 이거 아무 것도 아니잖아? 얘기가 노래가 되고, 곡은 붙이면 되고. 한음씩 해보라고 하면 ‘음~’ 이건 어떨까 ‘음~’ 해서 곡이 되고요. ‘애 낳는 얘기’는 세 번째 노래니까 내가 트로트로 가면 어떨까요? 했어요. 그러면서 나 혼자 불러봤는데, 선생님이 녹음을 한 거야. 그렇게 밀고 나가니까 되더라구요. 가수들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우리 이주영 선생님만 있으면 10곡도 더 만들어요.
우리 애들은 내가 이런 거 하고 다니는 게 재밌나봐요. 엄마 뭐 했냐고 자꾸 물어보고. CD도 아들이 음악 추출해서 핸드폰에 넣어줬어요.

 

김주명 : 김경희 님은 가족분들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김경희 : 저는 사실 우리 애한테 얘기 안했어요. 딸이 재작년에 시집갔는데 아직 안했어요. 저희 남편도 잘 몰라요. 노래는 여기서 CD를 만들어주셨는데, 요즘은 집에서 CD 들을 데가 없어요. 대신 우리가 연습한 걸 핸드폰에 저장 해놨거든요. 연습할 때 입에 익어서 한 번씩 흥얼거려요. 그게 되게 뿌듯해요. 또 영화반에서 글 쓴 걸 받았는데, 그때 저는 나한테 편지를 썼거든요. 그걸 파일에 끼워주셨는데, 가끔 한번씩 볼 때마다 이거 잘 써놨다 싶어요. 쓸 때는 기억하지만 곧 잊어버리잖아요. 정리하면서 한번씩 보니까 이거 참 잘했다, 잘 간직했다 싶어요.

 

선생님의 친절한 말 한마디가 계속하는 힘을 줍니다

김주명 : 처음에 그만두려고 하셨다는 분들이 많은데, 어떻게 극복하고 지금까지 오게 되신 건가요?

이부자 : 저는 <할머니 산책학교> 음악반에 한 주가 지나서 참여했어요. 나중에 가니까 벌써 한 소절을 했더라구. “어머, 난 이거 못 따라가.” 했는데, 선생님이 “그냥 하시면 돼요.”해서 그냥 했죠. 근데 그날 선생님이 저더러 “선생님, 어디서 이거 하셨어요? 잘 따라오시네요.”해요. 거기에 용기를 얻어가지고 같이 동참하게 된 거예요.

신정숙 : 맞아요, 선생님이 한 마디씩 하는 게 우리에게는 참 힘이 돼요.

박영순 : 영화반 선생님한테도 “나 못 나오겠다. 스트레스 풀러 여기 왔는데, 스트레스 받는다. 그만 둘란다.” 했더니 아니래. “어머님, 안녕하세요? 잘 있어요? 이거 다섯마디만 짧게 쓰면 돼요.”하면서 짧게 쓰래. 이게 될라나 하며 해보니까 어느 정도 되더라구요. 나중에 너무 재밌어 가는 거예요.

신정숙 : 처음에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 오셨다가 다 빠지고 우리 몇 명만 남았어요. 우리가 안나가면 어떻게 되냐? 저 선생님은 어떻게 되냐? 그것 땜에 나왔어요.

박영순 : 안수진 선생님 때문에 우리 나온거여. 저렇게 열성을 보이는데 우리가 안나가면 저 양반 뭐가 되냐구. 저 양반도 직책이 있는데.

신정숙 : 의리로 지키고 있다가, 어머 이거 괜찮네, 그렇게 된 거죠.

 

 

폭소가 터졌다. 수강생이 몇 명 없으면 프로그램 기획한 선생님은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의리로 나오게 된 할머니들. 매니저들과 강사들의 열성, 수강생들의 의리가 엮어낸 좋은 시간이었다. 모두의학교에서는 흔한 일이다.

 

김주명 : 모두의학교 말고도 다른 복지관도 다니시잖아요? 그런 복지관들과 모두의학교가 좀 다른 점이 있나요?

이부자 : 저는 금천노인종합복지관에 한 10년 다녔어요. 거기는 프로그램이 다양하죠. 글 못배우신 분들한테 한글, 그 외에도 중국어, 영어 다 있어요. 오락 프로그램도 포켓볼, 당구, 탁구, 바둑, 장기 다 있어요. 복지관이니까 어떤 오락 프로도 건전하고, 노인들이 소일하기는 너무 좋아. 제가 한번은 독산3동에서 당구실에 의뢰를 해서 지역 어르신들에게 3개월 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30명 하는데 120명이 접수를 했어요. 그렇게 선호도가 좋아. 그래서 모두의학교에도 그런 게 하나 있으면 좋지 않겠나 싶어요. 많은 경비 드는 거 아니고 처음에만 탁구대 설치해놓으면 영구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당구나 포켓볼 치면 노인들이 머리 운동이 되고, 감각도 생기고, 눈 운동도 되고 좋아요. 독산3동에선 시흥까지 가야 칠 수 있거든. 모두의학교 교실 하나에 그런 게 설치되어 있으면 좋겠어요.

 

노래하는 교실 말고 노래 만드는 교실,
시끌벅적하기보다 창조의 시간

김경희 : 저는 여기 노래 만드는 거 1학기 때 끝나고 다음에는 뭘 할까 하다가 낭독을 했거든요. 낭독 프로그램은 좀 짧았어요. 책 한 권을 읽기로 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다 못읽었어요. 그래서 ‘나머지 다 읽자’ 해가지고 낭독 했던 분들끼리 여기 모여서 읽었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화요일마다 모여서 2시간 책을 읽는데, 집에서 책을 읽으면 집안일도 걸리고 왔다갔다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읽으면 집중을 하고 읽을 수 있으니까 좋아요. 낭독하면 다른 사람이 읽는 걸 듣는 거잖아요? 책을 들으면 상상도 되고, 굉장히 좋거든요. 새해에는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는데, 눈으로 읽는 것처럼 빨리 나가지는 않지만 그림이랑 같이 서로 얘기해가면서 읽으니까 아주 좋더라구요.
모두의학교에서는 다른 복지관이나 주민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랑은 조금 다른, 어디서 해보지 못한, 창조적인 프로그램이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신정숙 할머니

신정숙 : 노인들은 이렇게 좋은 시설 해놓고 자기들은 참여할 것도 없고 아깝다 하면서 안좋아하시는 분도 있어요. 말하자면 신나는 게 해야 좋지,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하냐 하시는 건데, 거기하고 여긴 차원이 조금 다르다고 설명해줘요. 오해하실까봐. 우리 아들도 와서 보고 너무 좋다고, 시설이 강남 수준이라고, 동네랑 수준이 조금 안맞는 거 아니냐고 하던데, 근데 좀 끌어올려주면 여기 사는 사람은 좋지요.
저는 지금 마루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어요. 너무 좋아요. 지난 연말에 딱 한 타임 강사님이 스트레칭을 가르쳐주셨는데,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3월에나 되어야 오신다고 해요. 집에서 하는 게 잘 안될테니 모여서 하라는데, 모일 데가 어디 있나? 우리집은 좁아서 안되고. 그때 최고은 선생님이 여기 빌려줄테니까 하시려면 하시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할 사람들 이름 적어놓고 가라 해서 세 분이 이름 적어놓고 가서 연락해서 모았어요. 겨울 오전에 어디 갈 데도 없고, 집에서 TV나 보는 시간에 여기 와서 일주일에 두 번씩 스트레칭하고 가는 거잖아. 너무 좋아요. 선생님이 오실 때를 바라고 하는 중인데 아주 재밌어요.

박영순 : 나는 복지관은 한 번도 안 가봤어요. 난 노래교실은 안가요. 남의 노래 그거 배워서 뭐해? 집에서 배우면 되지. TV에서 가수 부를 때 같이 부르면 되지. 여기 먼저 오신 노인네들은 다 노래 따라부르는 데인줄 알고 왔다는 거야. 아니니까 확 빠져가지고 우리만 남은 거였어. 근데 우리들은 이게 좋더라고.

신정숙 : 복지관 같은 경우는 알려진 노래, 신나게 한두 시간 하고 오잖아요? 집에 오면 엄청 허무하더라구요. 여기 활성화되기 전에 농협에도 노래교실이 있었는데, 갔다오면 음이 안 맞아서 그랬나, 너무 높아서 피곤하고, 그 동안 뭐했나 싶었어요. 남는 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그런데 여기는 이렇게 남아 있잖아? 하하하.

 

그렇다, 할머니들에게는 스스로 만든 노래 네 곡이 남아 있고, 영화를 보며 자신들이 쓴 글이 남아 있다.

 

 

꾸미고 나갈 곳이 있다는 것

김주명 : 마지막으로 각자 모두의학교 와서 달라진 게 있을까요?

박영순 : 어디가든지 자신감이 생겼어요. 나는 못 배워가지고 어디 가서 말 같은 거 못했거든요. (다들 전혀 믿기지 않는다며, 배웠으면 대통령했겠다며 폭소) 내가 원래 여군이 되고 싶었어요. 못 배워서 포기했지 배웠으면 나는 여군 됐을 거예요. 그 전에는 저 사람이 말시키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못 배웠으니까 글씨 같은 걸 예쁘게 못쓰잖아요? 그러니까 자신이 없지. 어디가든지. 근데 이제는 못 써도 못 배워도 모든 게 자신이 생겼어요. 여기 오구 나서.

김경희 : 저는 약속이 없으면 집 밖을 잘 안나가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은 어떻게든 바깥에 나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래도 한번 정하면 지키는 사람이라. 다른 시끌벅적하고, 그때만 즐거운 곳보다 여기가 저하고 맞는 것 같아요. ‘다른 프로그램이 또 뭐 있을까? 1월 지나면 프로그램 뜨겠지.’ 하면서 인터넷에 자꾸만 들어가봐요.

이부자 : 우선은 여기 오는 날은 그래도 얼굴에 뭐 하나라도 바르게 되고 그래요. 노인네들이 집에 있으면 나태해지거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나태해지잖아요. 집 앞이라도 뭐 하나라도 찍어 바르고, 그 다음엔 뭐할까 생각하게 되고. 그만큼 노퇴되는 게 방지돼요. 그것만 해도 좋은 거지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좋고, 다음 프로는 뭐할까 기대가 되고, 여러 가지로 좋습니다.

박영순 : 나는 모두의학교가 설렘이라니까. 모두의학교 간다면 설렌다니까. 아침부터 막 설레. 학교 소리만 들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