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낯선 세계’로 들어섰다

 

평생학습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난감하셨나요? 여러분은 이미 가장 쉬운 방법을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독서’인데요. 많은 분이 새해가 되면 꼭 다짐하곤 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도 하죠.

그래서 웹진 <다들>이 준비한 2020년 기획연재는 세상입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어떻게 읽는 게 좋을까’ 고민이라면, 매월 이 페이지를 주목해 주세요. 서울자유시민대학의 정재권 학장이 여러분의 길잡이가 되어드릴 테니까요!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흥미로운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2000년대의 세 번째 디케이드(decade, 10년)를 앞두고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던 때, 그 10년의 모습을 엿보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포럼의 주제가 솔깃했지요. ‘힘의 역전’(TURN THE POWER AROUND).

‘힘(권력)’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입니다. 가정, 직장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공동체와 국가, 심지어 지구촌에 이르기까지 힘의 원천과 힘을 둘러싼 관계는 우리의 삶을 규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힘의 주인이, 그 힘의 관계가 지금 뒤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강연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천관율 <시사인> 기자,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 이수정 범죄심리학자(경기대 교수), 김경수 경남도지사, 류영재 판사, 신수정 KT 부사장 등 내로라하는 인사 8명이 세상의 변화를 안내했습니다. 우리가 눈치챘든 눈치채지 못했든 이미 ‘낯선 세계’에 들어섰다고 얘기했습니다. 정치, 경제, 여성, 사법 등 역전의 영역도 다양했지요.

다만, 한 가지가 아쉬웠습니다. 강연이 워낙 숨가쁘게 진행되다 보니, 강연 내용을 곱씹고 나의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 아쉬움을 씻어줄 책 한 권이 이달 초 전해졌습니다. 포럼 프로그래머인 정혜승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강연자 8명을 인터뷰한 <힘의 역전>(메디치미디어)을 내놓은 겁니다. <힘의 역전>은 질문과 답변이 서로 꼬리를 물며 강연 내용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 강연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메시지들도 소개합니다.

 

 

정혜승 프로그래머는 “세상은 미친 속도로 변하는 것 같은데 객관식 정리처럼 일목요연하지 않으니 어렵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바로 그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의 판을 흔드는 변수들을 점검하고,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살피는 여정에 나서자”고 제안합니다.

그럼 낯선 세계의 모습이 어떤지,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의 ‘수축사회 전환기의 돌파구’를 통해 살펴볼까요?

홍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대우증권 공채 출신으로 시작해 대우증권 사장,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지냈습니다. ‘샐러리맨 신화’를 쓴 셈이죠. 대부분의 경력을 국내외 시장분석에 쏟은 경제전문가인데, 지난해 <수축사회>라는 책을 내놓으며 경제의 틀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복적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힘의 역전>에서 그가 강조한 열쇳말도 바로 ‘수축사회’입니다.

 

 

홍 대표의 주장은 이렇게 압축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익숙했던 성장사회, 팽창사회는 막을 내렸다. 세상은 수축하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경제사회 시스템과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인구 감소에 따른 공급 과잉, 역사상 최고 수준의 부채, 사회 양극화 등의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 지구적으로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운 국면에 이르렀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미국 2.3%, 일본 1.0%, 독일 0.6% 등으로 고성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6.1%를 기록했지만 이마저도 29년 만에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은 2.0%에 그쳤구요.

이런 가운데 실업자가 늘고 살기가 팍팍해지자 미국 등 강대국들은 ‘내 나라 우선’의 기치를 내걸고 보호주의를 강화하면서 포퓰리즘적 색채가 짙어집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중심주의’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유럽연합 탈퇴)가 대표적입니다. 모두가 ‘각자도생’에만 몰두하고 있죠.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갈수록 심화하는 부의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입니다. 아래 그래프는 주요 나라에서 소득 상위 10%의 사람들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보여줍니다. 2013년의 경우, 프랑스와 스웨덴이 30%대 초반이고, 일본은 40%가 조금 넘습니다. 미국에선 그 비중이 48%로 껑충 치솟습니다. 그럼 한국은? 놀랍게도 50%가 넘네요.

 

출처 : 홍성국, ‘수축사회 전환기의 돌파구’, <힘의 역전>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경제구조의 변화는 일자리 축소, 소매업 위축 등입니다. 일자리 문제는 워낙 익숙하니 소매업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온라인 상거래의 급속한 성장으로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11월의 음식 서비스 온라인 거래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1년 전인 2018년 11월의 거래액이 5110억원이었던 것과 견주면 100%의 증가율입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전체 소매 판매를 보면 2018년 11월에 온라인 거래 비중이 20%였는데, 2019년 11월엔 23%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홍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도 전체 거래 중 온라인 비중이 낮다. 소매 판매 중 온라인 비중이 30~40%로 늘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텐데 그런 상태가 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너무 우울한 얘기가 이어졌네요. 지금 우리 눈앞의 세계는 암울한 회색빛입니다. 그렇지만 터널 끝에는 분명 출구가 있을 겁니다. 이제 우리 사회를 중심에 놓고 홍 대표가 생각하는 수축사회의 ‘돌파구’를 살펴봅시다.

그는 우리 산업의 주력군인 소재(철강, 화학, 정유), 산업재(기계, 조선, 건설, 운송), 자동차 등 하드웨어 중심 제조업이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빠져 있는 만큼 디지털기술을 접목한 4차산업형 제조업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홍 대표는 시대의 변화와 제조업 강국이라는 강점을 접목해볼 때 “기업들이 산업용 로봇 산업 같은 영역에 중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엉성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한편,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는 등 사회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아울러 불평등의 큰 원인인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종합부동산세를 올리고,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정책을 지금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지방 도시의 인프라 확대 등을 통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 ‘강남 현상’을 치유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런 국가적 노력과 함께 홍 대표는 개인 차원에서도 수축사회에 걸맞는 삶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행복에 대한 인식을 역전시켜, 욕망을 조절하라는 겁니다. 그는 197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의 행복 방정식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 조절론’을 아래처럼 흥미롭게 풀어놓습니다.

 

출처 : 홍성국, ‘수축사회 전환기의 돌파구’, <힘의 역전>

 

홍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이 방정식의 분자를 키우려 했다고 말합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성취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방식이죠. 산업혁명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까지 사람들이 사고하고 행동했던 기준입니다.

그렇지만 수축사회에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분자의 확대에서 분모의 축소로 전환해 욕망을 줄이고 조절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홍 대표는 지적합니다. 요즘 ‘소확행’이 유행어가 되거나, 기업들이 ESG, 즉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 등과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그런 변화의 사례로 꼽았습니다.

홍 대표의 ‘수축사회’론만으로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호기심이 생겼다면 그의 책 <수축사회>를 정독해 보시죠.

홍 대표 말고도 <힘의 역전>에 실린 최재천(대화를 통한 힘의 역전-숙의와 통섭), 천관율(2020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역전될 것인가), 이나리(여성, 돌이킬 수 없는 변화), 이수정(피해자 우선주의로 바꿔라), 김경수(수도권 중력에 맞서는 메가시티 구상), 류영재(사법권력에 대한 국민의 통제, 가능할까), 신수정(관점의 역전을 통한 리더십의 전환)의 인터뷰 역시 우리가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큰 세상의 변화를 일러줍니다. 그들의 얘기는 책을 통해 직접 접하시길 권합니다.

<힘의 역전>을 낸 메디치미디어의 김현종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 분야에서 힘의 역전(turn the power around)이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조짐임에 주목했다. 권력과 시민, 남자와 여자, 상사와 부하, 일과 삶, 수도권과 지방, 판사와 피고 등등. 후자가 전자와 대등해지거나 특권과 일방이 사라지고 있다. 또 다른 발전의 시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갈등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왜라는 질문을 놓치면 안 된다.” 김 대표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